행함이 없는 믿음 (약2:14-22)
본문
누군가가 말하기를 30대 초에는 백일과 돌잔치 초대가 많았고,40대 후반에는 자녀문제가,그리고 50대에는 결혼 청첩장이,60대 후반에는 부고장이 오더라면서 인생의 의 미를 새겨보는 말을 들었다.각 세대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다고 자부도 해 보겠건만 사실 나이들면서 남는 것은 별로 자랑할 것이 없는 것 같다. 어느 때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도 흘렸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니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그래서 어떤 홀로 사시는 집사님은 하루종일 일에 시달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지구에 종말이 와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네가 어떤 자격으로 내게 왔느냐고 질문하신다면 우리는 무었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분명 열심히 주를 위해 뛰기는 뛰었는데 무언가 허전하여 주님께 내놓을 것이 없다 면 지금부터 다시 나를 점검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바울이 고백했듯이 "내가 원 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 라는 고백이 왜 내 입에서 나오는가
1.형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14-17).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서두에 항상 '사랑과 믿음'을 강조했고(살전1:3'믿음의 역사 와 사랑의 수고;골1:4'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야고보 역 시 (약1:3,6 '믿음의 시련과:시련은 믿음이 행동으로 표현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 두가지 사실을 자꾸 떼어 놓고 생각하려 한다.
1)믿음은 행위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14):믿음은 인간의 사고 전반을 지배하고 세 세한 행동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의식의 큰 흐름이다.마치 아침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말씀을 통해 마음의 확신이 넘치면 하루의 삶이 활기차듯이 믿음은 나의 하루 하루의 기초이다."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나의 반석이시다.너는 내것이다." 등의 말씀이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또한 그럴때에 행위(용서,사랑,인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자는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려는 강력한 힘의 지배를 받게되는 것이다(막2장:중풍병자를 위해 지붕을 뜯은 친구들의 믿음)
2)믿음은 시련을 은혜로 바꾼다(14):'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란 말에 믿음의 이익은 무엇일까
(1)자신을 위한 이익:약1:3,4(믿음의 시련이 인내를,그 리고 이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다).
(2)타인을 위한 이익:고전10:24,12:26 "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행4장:베드로와요한이 잡히니 오히려 그들이 담대해 졌고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서로 도왔다.바대매오가 소경되었기에 주님을 만났으며 12년간 혈루증을 앓았기에 주님을 향한 치료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2.죽어가는 믿음이기 때문이다(17).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믿음은 실천의 근본이 되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마치 살아 있는 나무가 계절을 좇아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의로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1)신앙이 약한자를 비판하지 말라(롬14:1):남의 신앙을 비판하는 것부터 교만임을 알라.신앙과 성격은 다른 것이다.마치 조개와 같이 알맹이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정도로 부드럽지만 껍질은 역시 껍대기이다.다만 오랜 세월 흐르면서 깍일뿐이다. 물론 말씀의 방망이로 부숴져도 속성은 남는다.내 죄성이 죽을 때에 속사람이 새 롭게 변하는 것이다.<<모세에게 보여주신 이적:문둥병이 발한 손과 고침받은 손, 다시말해 예수를 판 돈을 만지던 유다의 손이나,말고의 귀를 친 베드로의 손은 불 순종과 감정의 손이지만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의 손이나 주님의 옷자락 을 잡은 혈루증 여인의 손은 치료의 손 능력의 손이 된 것이다.기도의 손에서 막대 기가 떠나면 뱀이 된다.자신의 감정과 말,그리고 행동을 잡아라.>> 잠12:14 "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2)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온전해 진다(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선한 행위를 나타냈다 해도 예수 십자가의 구 속의 은혜가 전재되지 않은 선행은 구원과 직결되지 못하는 '착한 일'로 끝나는 것이다.
3)지적인 믿음을 버리라(19). 믿음은 진리에 대한 지식(knowledge)과 동의(assent),신뢰(trust)를 의미한다. 신앙이란 단순히 진리의 지적인 앎(awareness)이나 지적인 인정(acceptance)이 아닌 것이다.알았으면 인정하고 그후에는 실행(Practice)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신앙이 없을 수 있다.오늘 아침 Q.T와 같이 입과 머리로는 죄를 인정하면서도 가슴으로 뼈져리게 느끼지를 못하며 행동으로 나타나 지 않음으로 죽은 믿음이 되는 것이다. 믿음은 마치 천국으로 들어감에 필요한 열쇠와 같다.열쇠는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그것을 열쇠구멍에 넣고 돌려야 열리는 것이다.마찬가지로 어떤이는 죠지 워싱 턴이나 이순신을 믿는다.그러나 실재 그들이 지금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본문 19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당신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그러나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성도님 입이나 머리로만 인정하지 마세요 나의 삶에서 인정하고 따를 때에 하나님 의 능력을 체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구에 종말이 와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네가 어떤 자격으로 내게 왔느냐고 질문하신다면 우리는 무었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분명 열심히 주를 위해 뛰기는 뛰었는데 무언가 허전하여 주님께 내놓을 것이 없다 면 지금부터 다시 나를 점검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바울이 고백했듯이 "내가 원 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 라는 고백이 왜 내 입에서 나오는가
1.형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14-17).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서두에 항상 '사랑과 믿음'을 강조했고(살전1:3'믿음의 역사 와 사랑의 수고;골1:4'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야고보 역 시 (약1:3,6 '믿음의 시련과:시련은 믿음이 행동으로 표현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이다).
그런데 사람은 이 두가지 사실을 자꾸 떼어 놓고 생각하려 한다.
1)믿음은 행위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14):믿음은 인간의 사고 전반을 지배하고 세 세한 행동에도 영향력을 미치는 의식의 큰 흐름이다.마치 아침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말씀을 통해 마음의 확신이 넘치면 하루의 삶이 활기차듯이 믿음은 나의 하루 하루의 기초이다."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나의 반석이시다.너는 내것이다." 등의 말씀이 활력소가 되는 것이다.또한 그럴때에 행위(용서,사랑,인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진자는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려는 강력한 힘의 지배를 받게되는 것이다(막2장:중풍병자를 위해 지붕을 뜯은 친구들의 믿음)
2)믿음은 시련을 은혜로 바꾼다(14):'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란 말에 믿음의 이익은 무엇일까
(1)자신을 위한 이익:약1:3,4(믿음의 시련이 인내를,그 리고 이는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다).
(2)타인을 위한 이익:고전10:24,12:26 "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행4장:베드로와요한이 잡히니 오히려 그들이 담대해 졌고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서로 도왔다.바대매오가 소경되었기에 주님을 만났으며 12년간 혈루증을 앓았기에 주님을 향한 치료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2.죽어가는 믿음이기 때문이다(17).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한다면 살아 있는 믿음은 실천의 근본이 되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마치 살아 있는 나무가 계절을 좇아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의로운 열매를 맺는 것이다.
1)신앙이 약한자를 비판하지 말라(롬14:1):남의 신앙을 비판하는 것부터 교만임을 알라.신앙과 성격은 다른 것이다.마치 조개와 같이 알맹이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정도로 부드럽지만 껍질은 역시 껍대기이다.다만 오랜 세월 흐르면서 깍일뿐이다. 물론 말씀의 방망이로 부숴져도 속성은 남는다.내 죄성이 죽을 때에 속사람이 새 롭게 변하는 것이다.<<모세에게 보여주신 이적:문둥병이 발한 손과 고침받은 손, 다시말해 예수를 판 돈을 만지던 유다의 손이나,말고의 귀를 친 베드로의 손은 불 순종과 감정의 손이지만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의 손이나 주님의 옷자락 을 잡은 혈루증 여인의 손은 치료의 손 능력의 손이 된 것이다.기도의 손에서 막대 기가 떠나면 뱀이 된다.자신의 감정과 말,그리고 행동을 잡아라.>> 잠12:14 "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2)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온전해 진다(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선한 행위를 나타냈다 해도 예수 십자가의 구 속의 은혜가 전재되지 않은 선행은 구원과 직결되지 못하는 '착한 일'로 끝나는 것이다.
3)지적인 믿음을 버리라(19). 믿음은 진리에 대한 지식(knowledge)과 동의(assent),신뢰(trust)를 의미한다. 신앙이란 단순히 진리의 지적인 앎(awareness)이나 지적인 인정(acceptance)이 아닌 것이다.알았으면 인정하고 그후에는 실행(Practice)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신앙이 없을 수 있다.오늘 아침 Q.T와 같이 입과 머리로는 죄를 인정하면서도 가슴으로 뼈져리게 느끼지를 못하며 행동으로 나타나 지 않음으로 죽은 믿음이 되는 것이다. 믿음은 마치 천국으로 들어감에 필요한 열쇠와 같다.열쇠는 차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그것을 열쇠구멍에 넣고 돌려야 열리는 것이다.마찬가지로 어떤이는 죠지 워싱 턴이나 이순신을 믿는다.그러나 실재 그들이 지금 나를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가 본문 19절을 새번역으로 보면 "당신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훌륭한 일입니다.그러나 귀신들도 그렇게 믿고 떱니다." 성도님 입이나 머리로만 인정하지 마세요 나의 삶에서 인정하고 따를 때에 하나님 의 능력을 체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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