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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빌2:5-8)

본문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3절과 4절 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 보아 나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라" 고 권고 했다. 3-4절의 말씀을 요약한다면 한 마디로 "오직 겸손"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도 겸손이요 자기 일을 돌아 볼줄 아는 것도 겸손이요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 볼줄 아는 것도 겸손이다. 이 겸손이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드을 향하여 5 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의 말씀의 제목을 5절의 말씀 그대로 정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 고 했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이 말은 에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네 마음에 반사 시켜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예수는 하나님의 본체 겸손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라면 도대체 그리스도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서 단지 "겸손" 한 가지 만을 보고 그리스도 에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 보다는 먼저 그리스도 예수가 어떤 분인가를 확실히 알고 그리고 그분의 마음을 품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6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여기에 그는 그리스도 예수를 가리키고 있는 말이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라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가 입으셨던 인간의 모습인 육체로 있었다는 것 아니라 육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본체시라는 말씀이다. 즉 이 말은 천상에 하나님과 같은 또 다른 한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음이다. 하나님이 곧 예수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예수도 그렇다.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구속자이시며, 진리이시며, 길이시며, 생명이시며, 과거이시고, 현재이시고, 미래이시다, 영원하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도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체라는 말은 인간의 모습이 본체가 아니라 그리스도 에수의 신성이 하나님의 본체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의 서신에서 잘 증명되고 있다. 요1;1-4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며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 은 사람들의 빛이라" 고 했다.
2,자기를 비우신 예수 이 세상에 겸손한 사람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우리들 주위에도 겸손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겸손한 사람 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즉 우리들의 주위에 어떤 사람을 닮으라는 말이 아니다. 만약에 우리들 중에 겸손한 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저 사람은 "참 겸손해" 하는 말을 듣는 분이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그런데 그렇게 겸손하다고 칭송을 받고 있는 그 장본인이 바로 "나"라면 어떻게 하시련가 나는 더 이상 닮아야 할 사람이 즉 모델이 없게 된고만다. 또 있다.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살고 있기는 있는데 모두 자기 나름대로 다들 똑똑 소리는 나는 것 같은데도 진정 자기가 누군지를 알지 못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정말 사람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사람이 자기가 누군지를 바로 알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겸손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죄인것을 알고 있다면 자기가 죄 값으로 죽어야할 인간임을 알고 있다면 자기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아들 에수가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사람의 겸손이 무슨 자랑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람의 겸손을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시고 있는 것이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그리스도 예수는 원래 하나님의 본체 이다. 사람이 아니시란 말은 원래부터 죄와 아므런 관계가 없으신 분이라는 말이다. 죄와 관계만 없으신게 아니라 죄를 다스리고 인간을 심판하셔야할 위치에 계신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분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이다. 왜 오셨는가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비었다고 했다. 자기를 비우기 위하여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신 것이다. 자기를 비웠다는 것은 어떤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해탈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것이나. 또는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말함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해탈할 필요도 없으시고 무아 지경에 들어가야할 미완 의 인간이 아니시다. 여기 비웠다는 말은 신의 특원 가운데 일부를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처럼 되셨다는 표현인 것이다. "종의 형체"를 가졌다고 했다. 여기 형체라는 이 말은 6절의 본체라는 말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종 = 사람처럼 되셨는데 종의 형체를 입으셨다는 말씀이다. 종 = = 노예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이신데 우리 인간들처럼 되셨다는 이 사실이 겸손 인 것이다. 그것도 종 즉 노예와 같이 되셨으니 그 이상의 겸손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다. 말로만 겸손 겸손 하지 말고 내 주위의 형제들의 자리에 까지 내려가 주라는 것이다. 그렇치 않고는 그 형제를 바로 이해할 수도 없고 , 또 진정으로 위로도 할 수 없고, 사랑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3절을 시작할 때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라고 했던 것이다. 형제를 이해할 마음이 있는가 형제를 위로하고 사랑할 마음이 있는가 있다면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워야 한다. 상대방처럼 형제의 자리로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생각해서는 결코 예수의 마음을 품을 수가 없다.
3,죽기까지 복종하신 에수 자기 자신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믿음을 위하여 신앙을 위하여 직장을 포기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든 것처 럼 형제를 위하기 위하여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그 가능성이 우리들에게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많다. 아 나도 주님처럼은 되질 못해도 조그마한 것 아주 작은 것 마음 한 구석 에 주님처럼 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는 바로 그것이다. 우리들이 어떤 때 은혜속에 깊이 잠길 때가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의 세계에 깊이 감싸일 때가 있다. 성령의 인도에 이끌릴 때가 있다. 그렇다. 충분한 가능이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그러나 그런 것들이 순간적이거나 일시적인 것들이 되지 않도록 간곡하게 권하고 있다. 8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 했다. 우리들의 주님은 겸손을 행함에 있어서 죽기까지 하시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언정 겸손을 잃지 않으셨다.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을.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옷을 입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인 우리들이 참 사람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참 사람이 되었을 때 그 때에도 자랑할 하지 말라. 우리 모두는 반사경이 되자 !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형제들에게 또 더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마음을 비추며 살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 곧 여러분들의 마음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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