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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로 띠를 띠라 (엡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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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묵상하려고 하는 에베소서 6장에 있는 전신갑주는 어쩌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기 양쪽에 있는 로마 군인을 하나하나 관찰해 가면서 이 편지를 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쓴 편지입니다. 기록을 보면 사도 바울이 갇혀 있을 때, 사도 바울의 양쪽에 로마 군인들이 자기 팔에 수갑을 채우고 그리고 쇠사슬로 사도 바울의 팔에도 연결해서 수갑을 채우는 형식으로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전해져 내려오는 농담 같은 말에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항상 감사했던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이 항상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설교할 수 있도록 양쪽에 한사람씩 늘 청중을 붙여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묵상하려고 하는 에베소서 6장에 있는 전신갑주는 어쩌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자기 양쪽에 있는 로마 군인을 하나하나 관찰해 가면서 이 편지를 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옷을 입는 순서가 여기 나와 있는 순서와 아주 비슷하다고 합니다. 옷을 다 입고난 이후에는 허리띠를 먼저 띤다는 것입니다. 먼저 허리띠를 띠고 그리고 가슴에 방패 같은 흉배를 붙입니다. 그리고 신을 신고 방패를 들고 머리에 투구를 쓰고 마지막 남은 한 손으로 칼을 든다는 것입니다. 물론 로마 군인들의 무장이 여섯 가지가 전부가 아닙니다. 이보다 조금 복잡한 것이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군인들의 일상적인 복장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영적으로 무장해야 될 부분들을 교훈 하기 위해 그 중 여섯 가지를 고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가 허리띠입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 허리띠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다 압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이 살던 이 시대의 허리띠가 용도가 좀 더 많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로마 군인들의 허리띠를 생각을 하면 이것은 단순히 허리를 조아매는 역할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허리띠에 칼을 차야 합니다. 그리고 이 허리띠가 그냥 조그마한 벨트를 하나 매는 것이 아니고 아랫배와 엉덩이 윗 부분을 가리는 가죽 덮개가 함께 붙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군인 뿐 아니라 당시의 일반 사람들의 옷을 보면 펄럭펄럭하는 긴 옷이 대중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허리띠를 맨다는 것은 펄럭거리는 옷을 몸에 딱 붙여서 조아맨다는 것입니다. 군인이나 혹은 사람들이 허리띠를 맨다고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전쟁을 하기 위해, 또는 일을 하기 위해 준비를 갖춘다는 뜻입니다. 허리띠를 딱 졸라매야 뭔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허리띠를 풀러 놓고 있을 때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때입니다. 그러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든지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맨 먼저 하는 것이 허리띠를 딱 조아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탄과의 영적인 전투에서 허리띠를 맨다고 하는 것이 무엇에 해당하는 말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14절)”라고 말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며 진리를 가지고 영적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자세를 갖춘다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말씀을 오늘 아침에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의 진리-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전서 1장 13절에 보면은 사도 베드로는 바울과 비슷하게 이런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이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동여매라는 것입니다. 띠로 허리를 동여매는 것은 무엇인가를 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사탄이 공격해 올 때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마음의 준비요 영적인 준비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허리띠를 띤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가장 존귀한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한 주간을 새롭게 시작하면서 내 삶 속에서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 분은 바로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백하는 자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야말로 유일한 진리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면 우리는 바로 진리로 우리의 마음을 동여맨 사람입니다. 그 분이 나의 삶에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면 나는 내 생각대로 내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종된 나는 주인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내가 내 지혜나 내 방법을 가지고는 내 삶이 온전할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분의 지혜로 살기로 작정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마음을 진리로 동여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사를 하는 사람이든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든 공무원이든 가정에서 살림을 사는 사람이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 내가 하는 이 일이 단순히 내 가족, 내 회사를 위해서만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궁극적으로 주인 되신 그 분에게 기쁨을 드리고 주인 되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위해 내가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바로 우리의 허리띠를 진리로 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런 자세로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 14절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자세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세상에서 살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멋있는 삶을 살 것인가에 궁극적인 목표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가진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푯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상을 바라보고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가치였습니다. 그래서 그 최고의 가치를 위해서 호주머니가 좀 비어도 그것 때문에 그렇게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외로워도 가난해도 몸이 건강하지 못해도 심지어는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자기를 배신하고 떠나가도 사도 바울은 자세를 허물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마음의 허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동여매고 달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세상을 대항해서 싸워서 이기기를 바란다면, 세상의 배후에서 우리의 원수 노릇을 하는 사탄과 싸워서 이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지혜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좀 더 멋있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지혜가 5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절 이하의 말씀을 잘 읽어보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이 둘로 갈라지지 않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그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내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만 가지고 있으면 그 다음에 부수적인 지혜는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누가 마음이 갈라집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마음이 갈라집니까 그들은 마음이 갈라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한 마음으로 하나님 없다 하는 자들입니다. 한마음으로 세상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둘로 갈라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이 그래도 이런 저런 분이라고 믿어지긴 지는데 성경이 우리에게 설명하는 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탄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갈라져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무엇을 향해 있을 때 사탄은 우리를 공격하기가 아주 쉽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은 이러한 사람들을 사탄이 공격할 때 “바람에 밀려서 요동하는 바다의 물결같이” 그 삶이 비틀거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을 쳐다보면서도 한 쪽으로는 자꾸 다른 것을 쳐다보는 마음을 가지고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주님께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마음을 품고 삽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고 세상만 사랑하니까 그 사람들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세상에 좋은 것들이 많고 세상에서 내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보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한 분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새인가 다른 것이 예수 그리스도하고 대등한 자리에까지 나아 오는 상황을 주님께서 경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그런 태도를 가지고는 영적인 전투를 치를 수가 없습니다. 진리로 띠를 띤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주시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만이 내 삶을 온전히 받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그 분을 위해서 살리라 하는 삶의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의 자세를 갖출 때 우리는 허리를 동여매는 사람들처럼 전쟁 준비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를 가지고 삶을 시작할 때 사탄이 긴장하고 우리를 쉽게 건드리지 못합니다. 내가 부족한 자이지만 주님의 뜻을 받들어 살겠습니다, 주님 내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하는 자세를 가지고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갈 때 사탄이 우리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이중적으로 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분쟁하는 집마다 설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예수그리스도를 온전히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일에 마음이 둘로 갈라질 때 우리는 사탄과의 싸움에서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물질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고 승진을 구하고 자녀가 잘되는 것을 구하는 모든 것들이 무엇을 위해서 구하는 것입니까 주인 되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하는 것들입니까 그래서 주인 되신 그분이 너 좀 가난하게 살아라 그렇게 말할 때 가난이라도 주님을 위해서 감수할 그런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습니까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생명을 불러간다해도 그 분이 나를 그 영화로운 나라에 데려간다면, 또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 영화로운 나라에 데려간다면 쓰라리고 슬프지만 주인 되신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진 일임을 우리가 인정하고 그분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신뢰하고 살아야 되겠다는 그런 결단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까 이런 결단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마음의 허리띠를 띠는 것입니다. 이런 결단을 가지고 살아갈 때 사탄이 우리를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아침에 우리를 군사로 불러 주신 사령관 되신 그 분을 생각하면서 내가 좋은 군사가 되기 위해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고백했던 여호수아처럼 이 고백을 드리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Ω 인 2 의의 흉배를 붙이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고통들 가운데 죄책감과 그 죄책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낙심, 영혼의 침체 같은 것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부담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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