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고통들 (엡6:13-17)
본문
생을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면서 여러분 마음속에 고통을 주고 괴로움을 주는 사건들은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아마 오래 사신 분들일수록 그 살아온 연수의 길이만큼 외로움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별로 길지 않은 제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 마음에 참 잊히지 않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제 바로 밑에 국민학교 3학년 짜리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학교에서 4, 5, 6학년만 영화 구경을 가는 날이 있었습니다. 줄을 서서 극장으로 쭉 가는데 제 동생이 자기도 가겠다고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어찌 그리 창피한지 너는 못 가니까 빨리 집에 가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도 이 녀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기어이 간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실랑이에도 말을 듣지 않아서 어찌 화가 나던지 한 대 탁 때렸는데 어디를 맞았는지 아이가 그냥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길바닥에 앉아서 서럽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좀 붙들어 일으키고 싶었지만 여러 사람이 보고 있고 창피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내 내버려두고 가 버렸습니다. 영화도 잘 봤습니다. 집에 돌아오니까 멀쩡하게 놀고 있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일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일년쯤 후에 그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그 동생이 길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던 그 모습이 오랜 세월 동안 제게 고통이 되었습니다. 제 형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동생의 시체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던 장면과 제가 그 아이를 때려서 길바닥에 눕혔던 그 두 장면이 오랜 세월 동안 제게 너무 큰 고통이 되었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함을 받는다는 말씀을 제가 받지 못했다면 이 일과 더불어 수 없이 계속해서 제 영혼에 얹혀지는 온갖 죄의 무게 때문에 아마 인격이 파탄되었을 것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을 제가 그 자그마한 사건을 통해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고통들 가운데 죄책감과 그 죄책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낙심, 영혼의 침체 같은 것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부담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것쯤은 아무리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시간이 가면 해결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이상한 것이 기억해야 할 것은 잘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좋을 것은 잊어버리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의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지식수준이 얼마나 더 나아지든 현대인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되는 것은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다”라고 말한 어떤 심리학자의 말을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라 사도 바울은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고 세상이 우리를 괴롭힐 때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흉배는 가슴에 붙이는 방패라는 뜻입니다. 목 아래 부분부터 시작해서 이 허벅다리 윗 부분까지 가슴과 배 전체를 완전히 가려 주는 방어용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화살이 날아올 때 그 화살이 가슴을 뚫지 못하게 만들고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심장, 폐, 위, 콩팥 등의 중요한 기관들이 이 흉배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심장, 위 등의 이런 기관들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들을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의학 지식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어서 우리는 가슴을 열고 들여다보지 않아도 무엇이 들어 있고 이 기관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꽤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위장이 어떤 역할을 하며 간이 어떤 역할을 하며 그게 나빠지면 어떤 병이 생기고 하는 지식들이 전혀 없던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그 시대 사람들은 이 내부의 기관들이 사람들의 감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도 그 시대 사람들의 그러한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무슨 권능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말하는데 여기 긍휼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실은 ‘창자’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창자가 너희에게 있거든’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긍휼이 네게 있다는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신체의 기관을 가지고 사람의 감정이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예가 많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쓰는 언어 표현에도 이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에 병이 있다’고 하면 요즘은 아 그래서 얼굴이 저렇게 누렇고 건강에 문제가 있구나라고 이해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는 뜻으로 이 말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지금 흉배를 붙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해석한다면 바로 이 기관들과 연관되어 있는 인간의 감정, 정신 상태, 인간의 마음의 상태 등을 잘 보호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사탄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고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감정에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것은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감정이나 느낌을 아주 의지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사람에게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기쁘다, 화가 난다, 기분이 않좋다 등등의 감정이 표출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감정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신에게 일어난 그 엄청난 사건과 진리 앞에서 마음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바로 이 부분을 교묘하게 공격을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에서 감정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탄이 압니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과장합니다. 감정을 강조하고 마침내는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사실 같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들마저도 내가 감정적으로 느끼면 그것이 진리이고 느끼지 못하면 진리가 아닌 것처럼 보이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지금 흉배를 붙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해석한다면 바로 이 기관들과 연관되어 있는 인간의 감정, 정신 상태, 인간의 마음의 상태 등을 잘 보호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사탄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고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 만듭니다. 내 감정을 우선 순위 일 번에 갖다 놓고 객관적인 진리는 저 뒤로 갖다 놓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혼란케하고 낙심케하고 좌절케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저녁에 자기 전에 “엄마 나 내일 아침 돈 만원 학교에 가져가야 되요.” “그래, 내일 아침에 학교갈 때 줄테니 들어가서 자거라.” 이 말을 듣고 그 아이가 감격에 넘쳐서 잠이 안 오거나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아이가 감정에 굉장한 무엇이 없다고 해서 엄마 말을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 말을 철썩 같이 믿습니다. 이미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있고 신뢰가 있기에 자기의 감정을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는 첫 번째 잣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기억해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이 지점에서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또 하나의 공격-낙심 또 하나 이러한 감정을 통한 사탄의 공격중 중요한 것은 낙심입니다. 이 낙심케하는 사탄의 전형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송사 즉 고소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 이름 자체가 ‘고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고소하는 사탄의 전략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첫 번째는 사탄 자신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주인공인 기독교도가 천성을 향해 가는데 사탄을 만납니다. 사탄이 여러 가지로 공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도를 낙심케하는 공격이 있습니다. 사탄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불충성했다. 그러면서 네가 어떻게 천성을 향해 가겠다고 그러느냐. 네가 하나님의 상급을 받겠느냐. 네가 여행을 하면서 어디에서는 무슨 일을 했고 어디에서는 무슨 일을 했고 그런 네가 정말 천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사단이 아주 무서운 말로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탄이 거짓말도 하지만 진짜로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일일이 끄집어내면서 그 영혼을 공격해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보면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 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사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평생 동안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너 옛날에 이런 짓 했지않느냐고 끊임없이 괴롭히고 우리를 시험하고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인격을 파탄시키는 사탄의 공격이 바로 이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용납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제게 얘기했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교사를 하라고 하는데 나는 옛날에 너무 큰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도저히 교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당신의 그 옛 죄에 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다 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더니 믿는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더 이상 옛 죄를 생각하지 말고 주님께서 섬기라고 할 때 이제 섬깁시다.”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송사 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둘을 혼돈하면 안됩니다. 사탄은 증오심을 가지고 우리를 송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길로 나아오도록 하시고 사탄은 죄를 생각나게 하고 그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아 자포자기의 상태로 가도록 만들고 파멸로 몰고 가기 위해서 송사합니다.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사탄은 주로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어서 우리의 과거를 들춥니다. 사탄은 이 송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를 멀게 만들어 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옛 죄를 생각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끼어 있는 그 죄를 들어내 버리고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이 일을 행하십니다. 사탄의 송사는 우리를 절망케하고 좌절케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더 성숙한 삶, 온전한 인격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사탄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고 괴로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 평생 동안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너 옛날에 이런 짓 했지않느냐고 끊임없이 괴롭히고 우리를 시험하고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인격을 파탄 시키는 사탄의 공격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시는 것은 앞을 바라보게 만들고 소망을 갖게 합니다. 사탄의 송사와 하나님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은총 사이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극과 극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죄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올 때 이것이 내가 내 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할 씨름인지 아니면 사탄이 나를 괴롭혀서 물어뜯으려고 하는 씨름인지 잘 분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낙심케하고 감정을 뒤흔들어 우리를 약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공격 앞에서 사도 바울은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말합니다. 의의 흉배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두 가지 의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옮겨진 의요, 다른 하나는 나누어주신 의입니다. 옮겨진 의라고 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내게 주어진 의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없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왔던 분입니다. 이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를 씻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얻게 되는 의의 흉배입니다. 사탄이 나를 고소할 때, 내 자신이 흉배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면 그 흉배는 사탄의 화살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사탄의 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방패,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든 방패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그저 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 바로 사탄의 고소로 말미암아 죽음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 을 위해 친히 피 흘리고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바로 이 의의 흉배를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흉배를 여러분이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흉배를 가지지 못하신 분은 이 말씀 앞에서 마음을 열고 이 흉배를 자신의 것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3장 19절 이하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하심을 입은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의의 흉배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이 흉배 때문에 네가 옛날에 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느냐고 고소하는 사탄을 향해 “내가 옛날에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주심으로써 모든 죄가 깨끗함을 입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할 때 사탄이 더 이상 우리를 쏘지 못합니다. 다른 어떤 방패를 갖다 대도 사탄이 계속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뚫어내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흉배가 내게 있다. 그렇게 사탄을 대적할 때 사탄이 우리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의가 바로 우리에게 옮겨진 의입니다. 우리에게 원래 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덧입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나누어주시는 의’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이제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이 내것이 이 흉배 때문에 네가 옛날에 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느냐고 고소하는 사탄을 향해 “내가 옛날에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주심으로써 모든 죄가 깨끗함을 입었다.” 되고 내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영혼 전체를 맑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삶전체를 의로운 삶으로 바꾸는 이 의를 ‘나누어주시는 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투는 하나님의 의가 내 속에 들어와서 그것이 하나님의 것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 것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격이 내 인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내가 말로만 하나고 아직도 둘인 것 같고 하나님 생각 따로 내 생각 따로 이렇게 삽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처음부터 하나님과 딱 하나가 되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 더 온전한 방패가 되도록 우리를 막아 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신 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또 범죄하고 또 실수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탄이 또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내 속에 있고 그의 의가 내 속에 있음으로 그것이 내 삶 전체를 주관하게 되고 내 삶 전체를 사로잡게 됨으로 말미암아 어떤 경우에도 사탄이 뚫지 못하는 완전한 흉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는 분들 속에도 성령께서 이 아침에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과 더불어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가져도 연약해서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의를 우리에게 온전히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바라보십시다. 사탄이 어떤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해 와도 하나님이 주신 이 의를 가지고 두려움 없는 생을 살리라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Ω
그런데 한번은 학교에서 4, 5, 6학년만 영화 구경을 가는 날이 있었습니다. 줄을 서서 극장으로 쭉 가는데 제 동생이 자기도 가겠다고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어찌 그리 창피한지 너는 못 가니까 빨리 집에 가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도 이 녀석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기어이 간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실랑이에도 말을 듣지 않아서 어찌 화가 나던지 한 대 탁 때렸는데 어디를 맞았는지 아이가 그냥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길바닥에 앉아서 서럽게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좀 붙들어 일으키고 싶었지만 여러 사람이 보고 있고 창피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내 내버려두고 가 버렸습니다. 영화도 잘 봤습니다. 집에 돌아오니까 멀쩡하게 놀고 있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일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일년쯤 후에 그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그 동생이 길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던 그 모습이 오랜 세월 동안 제게 고통이 되었습니다. 제 형님이 교통사고로 죽은 동생의 시체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던 장면과 제가 그 아이를 때려서 길바닥에 눕혔던 그 두 장면이 오랜 세월 동안 제게 너무 큰 고통이 되었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함을 받는다는 말씀을 제가 받지 못했다면 이 일과 더불어 수 없이 계속해서 제 영혼에 얹혀지는 온갖 죄의 무게 때문에 아마 인격이 파탄되었을 것이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을 제가 그 자그마한 사건을 통해서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고통들 가운데 죄책감과 그 죄책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낙심, 영혼의 침체 같은 것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부담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런 것쯤은 아무리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시간이 가면 해결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가 참 이상한 것이 기억해야 할 것은 잘 잊어버리고 잊어버려도 좋을 것은 잊어버리지를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현대인의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지식수준이 얼마나 더 나아지든 현대인에게 가장 큰 고통이 되는 것은 죄책감과 죽음에 대한 공포다”라고 말한 어떤 심리학자의 말을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라 사도 바울은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고 세상이 우리를 괴롭힐 때 의의 흉배를 붙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흉배는 가슴에 붙이는 방패라는 뜻입니다. 목 아래 부분부터 시작해서 이 허벅다리 윗 부분까지 가슴과 배 전체를 완전히 가려 주는 방어용 무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화살이 날아올 때 그 화살이 가슴을 뚫지 못하게 만들고 상처를 입지 않도록 보호합니다. 심장, 폐, 위, 콩팥 등의 중요한 기관들이 이 흉배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심장, 위 등의 이런 기관들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들을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은 의학 지식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어서 우리는 가슴을 열고 들여다보지 않아도 무엇이 들어 있고 이 기관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꽤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위장이 어떤 역할을 하며 간이 어떤 역할을 하며 그게 나빠지면 어떤 병이 생기고 하는 지식들이 전혀 없던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그 시대 사람들은 이 내부의 기관들이 사람들의 감정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도 그 시대 사람들의 그러한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무슨 권능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이라고 말하는데 여기 긍휼이라고 하는 단어가 사실은 ‘창자’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창자가 너희에게 있거든’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긍휼이 네게 있다는 뜻으로 쓰인 말입니다. 신체의 기관을 가지고 사람의 감정이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런 예가 많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사람들이 쓰는 언어 표현에도 이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에 병이 있다’고 하면 요즘은 아 그래서 얼굴이 저렇게 누렇고 건강에 문제가 있구나라고 이해하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는 뜻으로 이 말을 썼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지금 흉배를 붙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해석한다면 바로 이 기관들과 연관되어 있는 인간의 감정, 정신 상태, 인간의 마음의 상태 등을 잘 보호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사탄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고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감정에 의지하도록 만듭니다. 특히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것은 사탄이 우리로 하여금 감정이나 느낌을 아주 의지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감정은 사람에게 대단히 소중한 것입니다. 기쁘다, 화가 난다, 기분이 않좋다 등등의 감정이 표출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것이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감정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자신에게 일어난 그 엄청난 사건과 진리 앞에서 마음에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바로 이 부분을 교묘하게 공격을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삶에서 감정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사탄이 압니다. 그리고 그 중요성을 과장합니다. 감정을 강조하고 마침내는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심지어는 우리의 구원의 확신과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사실 같은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들마저도 내가 감정적으로 느끼면 그것이 진리이고 느끼지 못하면 진리가 아닌 것처럼 보이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지금 흉배를 붙여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해석한다면 바로 이 기관들과 연관되어 있는 인간의 감정, 정신 상태, 인간의 마음의 상태 등을 잘 보호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사탄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고 세상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게 만듭니다. 내 감정을 우선 순위 일 번에 갖다 놓고 객관적인 진리는 저 뒤로 갖다 놓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혼란케하고 낙심케하고 좌절케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저녁에 자기 전에 “엄마 나 내일 아침 돈 만원 학교에 가져가야 되요.” “그래, 내일 아침에 학교갈 때 줄테니 들어가서 자거라.” 이 말을 듣고 그 아이가 감격에 넘쳐서 잠이 안 오거나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아이가 감정에 굉장한 무엇이 없다고 해서 엄마 말을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 말을 철썩 같이 믿습니다. 이미 어머니에 대한 믿음이 있고 신뢰가 있기에 자기의 감정을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는 첫 번째 잣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기억해야 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이 지점에서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또 하나의 공격-낙심 또 하나 이러한 감정을 통한 사탄의 공격중 중요한 것은 낙심입니다. 이 낙심케하는 사탄의 전형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송사 즉 고소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 이름 자체가 ‘고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고소하는 사탄의 전략은 여러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첫 번째는 사탄 자신이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입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 보면 주인공인 기독교도가 천성을 향해 가는데 사탄을 만납니다. 사탄이 여러 가지로 공격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성도를 낙심케하는 공격이 있습니다. 사탄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불충성했다. 그러면서 네가 어떻게 천성을 향해 가겠다고 그러느냐. 네가 하나님의 상급을 받겠느냐. 네가 여행을 하면서 어디에서는 무슨 일을 했고 어디에서는 무슨 일을 했고 그런 네가 정말 천성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사단이 아주 무서운 말로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탄이 거짓말도 하지만 진짜로 그 사람이 잘못한 것을 일일이 끄집어내면서 그 영혼을 공격해대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에 보면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 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게 바로 사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평생 동안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너 옛날에 이런 짓 했지않느냐고 끊임없이 괴롭히고 우리를 시험하고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인격을 파탄시키는 사탄의 공격이 바로 이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용납할 수 없도록 만듭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제게 얘기했습니다. “교회에서 저에게 교사를 하라고 하는데 나는 옛날에 너무 큰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도저히 교사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당신의 그 옛 죄에 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다 사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믿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더니 믿는다는 것입니다. “
그렇다면 더 이상 옛 죄를 생각하지 말고 주님께서 섬기라고 할 때 이제 섬깁시다.”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사탄이 우리를 송사 하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둘을 혼돈하면 안됩니다. 사탄은 증오심을 가지고 우리를 송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생명의 길로 나아오도록 하시고 사탄은 죄를 생각나게 하고 그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아 자포자기의 상태로 가도록 만들고 파멸로 몰고 가기 위해서 송사합니다. 하나님은 주로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사탄은 주로 우리의 감정을 뒤흔들어서 우리의 과거를 들춥니다. 사탄은 이 송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를 멀게 만들어 버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옛 죄를 생각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끼어 있는 그 죄를 들어내 버리고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만들기 위해 이 일을 행하십니다. 사탄의 송사는 우리를 절망케하고 좌절케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더 성숙한 삶, 온전한 인격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사탄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고 괴로워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 평생 동안 우리를 따라다닙니다. 너 옛날에 이런 짓 했지않느냐고 끊임없이 괴롭히고 우리를 시험하고 온갖 방법으로 우리의 인격을 파탄 시키는 사탄의 공격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시는 것은 앞을 바라보게 만들고 소망을 갖게 합니다. 사탄의 송사와 하나님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은총 사이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극과 극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죄가 우리를 향해 돌진해 올 때 이것이 내가 내 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할 씨름인지 아니면 사탄이 나를 괴롭혀서 물어뜯으려고 하는 씨름인지 잘 분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낙심케하고 감정을 뒤흔들어 우리를 약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공격 앞에서 사도 바울은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말합니다. 의의 흉배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두 가지 의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옮겨진 의요, 다른 하나는 나누어주신 의입니다. 옮겨진 의라고 하는 것은 믿음을 통해 내게 주어진 의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없는 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왔던 분입니다. 이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 자신을 제물로 바침으로 말미암아 그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죄를 씻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얻게 되는 의의 흉배입니다. 사탄이 나를 고소할 때, 내 자신이 흉배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면 그 흉배는 사탄의 화살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사탄의 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방패,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든 방패라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그분이 그저 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라 바로 사탄의 고소로 말미암아 죽음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 을 위해 친히 피 흘리고 돌아가신 분이라는 것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바로 이 의의 흉배를 갖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흉배를 여러분이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흉배를 가지지 못하신 분은 이 말씀 앞에서 마음을 열고 이 흉배를 자신의 것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3장 19절 이하에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 앞에 의롭다 하심을 입은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자신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의의 흉배를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이 흉배 때문에 네가 옛날에 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느냐고 고소하는 사탄을 향해 “내가 옛날에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주심으로써 모든 죄가 깨끗함을 입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할 때 사탄이 더 이상 우리를 쏘지 못합니다. 다른 어떤 방패를 갖다 대도 사탄이 계속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고 뚫어내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사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흉배가 내게 있다. 그렇게 사탄을 대적할 때 사탄이 우리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의가 바로 우리에게 옮겨진 의입니다. 우리에게 원래 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덧입혀진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나누어주시는 의’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이제 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것이 내것이 이 흉배 때문에 네가 옛날에 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느냐고 고소하는 사탄을 향해 “내가 옛날에 그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주심으로써 모든 죄가 깨끗함을 입었다.” 되고 내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영혼 전체를 맑게 하고 깨끗하게 하고 우리의 삶전체를 의로운 삶으로 바꾸는 이 의를 ‘나누어주시는 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전투는 하나님의 의가 내 속에 들어와서 그것이 하나님의 것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 것이 되는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격이 내 인격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내가 말로만 하나고 아직도 둘인 것 같고 하나님 생각 따로 내 생각 따로 이렇게 삽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처음부터 하나님과 딱 하나가 되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나님과 내가 하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이 우리를 공격할 때 더 온전한 방패가 되도록 우리를 막아 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주신 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또 범죄하고 또 실수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탄이 또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이 내 속에 있고 그의 의가 내 속에 있음으로 그것이 내 삶 전체를 주관하게 되고 내 삶 전체를 사로잡게 됨으로 말미암아 어떤 경우에도 사탄이 뚫지 못하는 완전한 흉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하는 분들 속에도 성령께서 이 아침에 당신의 마음 문을 두드리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과 더불어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가져도 연약해서 또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우리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 의를 우리에게 온전히 나누어주시기 위해서 일하고 계시는 것을 바라보십시다. 사탄이 어떤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해 와도 하나님이 주신 이 의를 가지고 두려움 없는 생을 살리라는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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