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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빌1:1-11)

본문

1,빌립보 사도 바울이 아시아의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았다. 그 환상은 어떤 사람이 한 해변에 서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였다. 그 것은 마치 어떤 부대가 전투중에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 구원병을 보내어 간절한 구원을 요청함과 같은 것이었다. 그 결과 아시아로 향할려고 했던 사도 바울의 일정이 바뀌어 마게도냐 지방을 향하여 전도 여행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유럽을 택하게 도히었고 그 첫 방문지가 바로 빌립보였던 것이다. 이 빌립보의 원래의 이름은 Krenides 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아마 그 곳에 샘물이 많아서 그렇게 불렀던 같으다. 그리고 이 지방은 동쪽 아시아에서 서쪽인 유럽에 이르는 사람은 반듯이 빌립보를 지나야만 하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B.C.356년에 마케도냐의 빌립이 트라키아인들로부터 탈취하여 자기 이름을 따라서 빌립보라고 개명을 햇던 것이다. 이 도시는 B.C.168년 로마가 페르샤를 격파한 후 로마제국에 편입을 시켰고 B.C.42년에는 공화주의자(Brutus, Cassius)와 제2회 삼두정치파 (Octavian, Antony, Lepidus) 사이의 격전장이 됨으로 그 명성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 B.C.31년 옥타비아느스가 승리하고 자신을 Augustus라 부르면서 빌립보의 지위가 승격되었다. 그 후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 당시 빌립보가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은 로마와 동등한 나라가 되었다는 말이다. 빌립보 시민은 로마인들이 가지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빌립보가 군사적 요충지이면서도 금과 은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기자인 눅가가 행16;12절에서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고 했었다. 여기서 첫 성이라는 것은 로마의 식민지를 강조하는 말로 생각된다. 빌립보가 가장 처음으로 이런 특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2,빌립보 교회 "
1),루디아를 만나다 - 이 빌립보 지방에 하나님의 교회가 서게 되었다. 행16;9-10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더라" 이 환상을 본 후에 사도 바울의 일행은 만사를 제쳐두고 마게도냐로 향햇던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해외 성교를 위한 넉넉한 자금이 마련되엇던 것도 아니다. 또 마게도냐를 위한 전도 계획을 평소에 햇던 것은 더욱 아니다. 또 마게도내 지방에 역고자들이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명령을 하시는 것이니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는 심정으 로 출발을 했을 뿐이다. 막상 마게도냐로 건너 오기는 했으나 여기에는 하나님께 에배를 드릴 회당이 없었다. 유대인들이 즉 유대인 남자 10명이면 저들은 의무적으로 회당을 지었다. 여기에 회당도 없었다함은 유대인들이 10명정도가 모여 살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래서 안식일날 에배는 드려야 하겟고해서 바울의 일행은 한적한 강가를 선택했다. 그 강이 Gangites 강이엇다. 물론 이것도 성령의 특별한 인도였다. 거기에 루디아라는 자주장사하는 여인이 몇몇 여인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이것이 행16;11-15절의 사건이다. 이 루디아는 유대교에 입교한 아시아계 이방인 출신이었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기꺼이 받고 세례를 받아 유럽의 첫 그리스도인이 되게 된 것이다. 루디아는 재산도 있었다. 집도 넉넉했다. 자기 집을 바울의 일행이 전도하는 전도의 처소로 제공을 했다. 바울의 일행이 여기에 얼마를 있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오래 머물렀던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인데 이때의 모든 비용을 루디아가 전담한 것 같으다. 이 결과로 첫 빌립보 교회가 루디아 집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2),점치는 여인을 만나다 - 빌립보에는 로마와 같이 접하는 여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 귀신들린 여종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녀의 점치는 일로 인하여 그의 주인집이 큰 부자가 되엇다.
그런데 그 귀신들렸던 여인이 사도 바울을 만나서 온전한 사람이 되는 하나님의 이적이 있었다. 이 귀신들렸던 여인이 온전한 사람으로 돌아옮으로 말미암아 그녀를 데리고 부자가 된 사람의 핍박을 받게 되었다. 그 부자는 바울이 로마의 풍습에도 맞지 않는 종교를 전함으로 민시믈 요란케 한다고 관가에 고발하여 흥분한 주민과 관원들에 의하여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둘겨 맞고 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3),옥사장을 만나다 인정사정 없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두둘겨 맞은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엇으나 저들의 마음엔 괴로움 대신 앞픔대신 고통 대신 감사의 기도와 찬송이 넘쳐나고 있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다 들었다. 찬송을 부를때에 옥터가 흔들리고 저들을 채웠던 척고가 저절로 풀렸다. 또 저들을 단단히 가두고 잠그었던 옥문이 열렸다. 이 놀라운 역사속에 옥사장의 온 가족이 에수를 영접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게서 하시고 계시는 놀라운 역사를 다시 한 번 경험한다. 첫번째 여인 루디아는 아시아 계통의 이방인 이었다. 두번째 여인은 종의 신분으로 나면서부터 헬라인이었다. 세번째 사람은 간수장으로 나면서부터 전통적 로마인이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처음부터 국경의 차별이 업고 인종의 차별이 없고 사람의 신분의 차별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3,빌립보서 바울의 첫 전도 열매로 세워진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다. 어렵게 어렵게 첫번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이름하여 개척교회인 것이다. 이 빌립보 교회에게 사도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필을 들어 서신을 보낸 것이 바로 우리들이 이제부터 생각하면서 은헤를 받고자 하는 빌립보서인 것이다. 바울의 옥중 서신은 빌립보서를 포함하여 모두 네권이 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그리고 빌립보서이다. 이중에 에베소서는 교회론은 다루엇고 골로새서는 그리스도론을 다룬 공적인 면이 있는반면에 이 빌립보서는 전적으로 사적인 바울의 신앙경력서라고 함이 옳을 것 같다. 오늘은 결론적으로 바울이 왜 빌립보 교회에 이런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고자 한다. 그리고 빌립보서엔 교회의 허물을 말한적이 없고 또 교회를 책망한 적도 없다. 빌립보서의 목적은
첫째는 빌립보 교회에게 보내는 사도 바울의 감사의 편지이다. 한마디로 빌립보 교회는 주는 교회였다. 빌립보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는 일에도 제일 많은 헌금을 한 교회이다. 바울의 전도사업을 제일 많이 도운 교회도 역시 빌립보 교회이다. 바울이 옥에 갇혀 있을 대에도 계속해서 헌금하여 바울을 끝까지 도왔던 교회가 빌립보 교회였다. 특별히 거기에는 첫 열매인 루디아가 있는 교회였다. 루디아의 개인적인 헌신은 말로다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옥중이지만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감사의 편지를 썼던 것이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심어 주고 싶어서였다. 이 빌립보서는 불과 4장밖에 않되지만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찬 책이다. 무려 빌립보서 1장에만도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 17번이나 등장할 정도이다. 빌립보서 전체에 "예수" 또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주" 라는 표현이 51회나 사용되었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가장 고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째는 성도들의 교제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어의 "코이노니아"란 말이 많이 나오는 서신이다. 이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교제를 말하는 것이다. 성경전체에 6번이나 나오는데 우리들의 성경에는 모두가 각기 다른 말로 번역이 되어서 찾기가 어렵다. 끝으로 기쁨을 주기 위해서이다. 빌립보서는 4장에 104절뿐인데 이 안에 "기쁨"이란 말이 무려 16번이나 나온다. 명사형으로 네번 동사형으로 11번이 나온다. 그것도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요 사도 바울 자신이 경험한 그리스도의 기쁨인 것이다. 빌립보서는 감사와 그리스도와 또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주어지는 기쁨으로 층만한 서신이다. 이제부터 이 빌립보서신을 열심이 읽고 열심히 듣고 생각하면서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한 감사와 기쁨이 날마다 충만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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