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신앙생활 (빌1:1-11)
본문
본서 빌립보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을 때에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보 낸 편지입니다. 빌립보 지방은 로마의식민지로서 매우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남동 유럽 지역에서 바울에 의해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A.D 52년경 바울의 제 2차 전도 여행시에 자주 장사 루디아와 한 간수의 집안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빌립보 교회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갖힌 자로서 오히려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 이란 무었인지 구체적인 권면들을 주고 있습니다.
1.감사와 기쁨의 삶과 교제(1-8절). 바울은 누구에게 서신을 보내든지 빼놓지 않고 항상 기쁨과 감사를 표하 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본 서에서도 바울의 기쁨과 감사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수많은 역경과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감사한 이유가 무었이겠습니까 감옥에 갇힌 부자유스런 몸으로서 어떻게 감사하고 기뻐 할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능력과 감격이 있습니다.
1)빌립보 교인들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교제가 계속있어 왔음을 기뻐하였 습니다(4-5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뻐하면 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본문 5절 말씀처럼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 서 교제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첫날부터 이제까지"란 빌립보 교회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난 초기부터 극한 가난 속에서라 할지라도 바울에게 도움을 준 때를 거쳐서 (고후11:19,빌4:16) 10년 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을 받는 때까지(빌4:10)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어렵고 궁핍한 가운데서도 복음 전도자를 돕기 를 돕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또 그 노력은 그들이 처음 복음을 받은 날부터 10년이 지난 이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인간성이 뛰어나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빌립보 교인들의 삶이 '복음 안에서 교제' 가 지속된 결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 수있는 사실은 복음을 위해 물질과 기도와 마음 으로 도우며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할수 있 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선교사와 복음 전도자와 교역자들을 돕는 일이란 물질이 풍부하고 환경적으로 복된 가운데서 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깊이 교제되어지고 있 느냐에 좌우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복음 전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친교와 교제가 단순히 유흥이나 자신의 세상적인 조 건을 자랑하는 마당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 이 때에 이 말씀은 더욱 더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결국 복음 안에서 이루어 지는 올바른 교제야말로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만들어주며,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기쁨과 감사의 조건이 되는것 입니다.
2)빌립보 교인들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선한 역사와 인도를 기뻐하였습니다(6-8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궁극적으로 기뻐하였던 것은 '빌립보교인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 데'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기뻐한 내용을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 라는 것을 확신한 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그렇게 선 한 열래믈 맺고 어려운 가운데서 선한 일에 힘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성실성이나 노력 이전에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운 선하신 역사가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같은 사실을 먼저 목도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그것을 특별히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기뻐하였던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강 림의 그알까지 그 모든 일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성도들을 선한 길로 인도 하실 것을 알았기에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도의 견인 이러고 말합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굳건하게 만드시고 끈까지 인내하게 하 시는 선하신 섭리와 인도를 성도들에게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기에 기뻣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사도 바울의 최대의 기쁨은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과 섭리와 은혜로우신 인도를 목도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기쁨이 어떠한 성질의 기쁨이어야 할 것인지를 오늘 사도 바울의 기쁨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느끼는 신령한 즐거움인 것입니다. 오늘 내게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섬김과 복음을 위한 봉사로 인 한 신령한 은혜가 있습니까 아니면 끊임없이 나의 계획과 목적 달성 만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이 신령하고 엄청난 은혜의 세계를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나의 기도응답, 나의 목적 달성, 나의 성공 계획보다 더 중요하 고,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져야 할 것이 무었인지 아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목표 달성과 성공하는 자들은 많은데,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교제에서 나오는 기쁨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소유한 사람은 찾아 보기가 어려운 시절을 만났습니다. 신령한 기쁨과 은 혜를 위해서 내 목표, 내 성공을 실패시키며 포기하는 자들이 너무도 없습니다. 입에 생선을 물고서 물속에 비친 그 물 고기 마저 입에 물려다가 입 에 생선마저 놓쳐버린 이솝우화의 주인공들이 교회 안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과 제물과,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고자 하나 둘 다 잃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만을 사모하며 기뻐하는 바울의 심장을 닮아야 합니다.
2.바울의 기도(9-11절).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자신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수단 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기도를 통 하여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풍성한 사랑을 기도하였습니다(9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 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가 같다 고 했습니다(고전13:1).
그러므로 우리는 무었보다도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하기를 특별히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첫째, 지식이 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막연한 값싼 동 정으로 말미암은 감정적인 사랑이어서는 안됩니다. 이 사랑의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총명이 있는 사랑 이어야 합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는 통찰력있는 눈으 로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야 하며, 그러한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셋째는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선을 추구하는 분별력을 가진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악에 대해서는 징계로 나타내는 분별력있는 사랑이었습니다.
2)진실하여 허물이 없기를 기도하였습니다(10절). 여기서 진실이란 빛에 비추어 보아 한 점 티끌이 없는 순수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새로운 부활체를 입기 전까지는 불완전합니다. 그렇 다고 허물을 방임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허물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인위적으 로 위장하여 위선자가 되지말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범죄하고 숲속에서 숨 어 자신을 위장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순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위장만 하지 않았더라면 회칠한 무덤이라는 책망을 듣 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가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날마다 자신의 세마포 를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 내놓고 더러운 죄를 빨고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3)의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11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열매를 매어야 하며, 포도나 무의 가지인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원둥치 되신 그리스도께 잘 붙어 있어 열매를 많이 맺어야 마땅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 안에 있으므로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힘써 충성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4)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11)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지고의 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었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 삶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와 고난에 순종하였습니다
'결론' 우리의 기쁨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열심이 무었에 달려 있 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사업에 동업자로 모시고자 기도 하십니까 그렇게 하는 저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절대 지시를 받고 항복하여 순종하기 위해 서 입니까 단지 이익을 분배하는 동업자로서입니까 하나님께는 그 이익 이 원래부터 당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익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슨 문제든지 해결되는 것에 있 지는 않습니까 만일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기뻐할 수 있겠 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단지 해결사로만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이제 진정한 기쁨과 기도를 이 바울의 기쁨과 기도를 통해서 새롭게 정립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감사와 기쁨의 삶과 교제(1-8절). 바울은 누구에게 서신을 보내든지 빼놓지 않고 항상 기쁨과 감사를 표하 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본 서에서도 바울의 기쁨과 감사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수많은 역경과 환란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감사한 이유가 무었이겠습니까 감옥에 갇힌 부자유스런 몸으로서 어떻게 감사하고 기뻐 할 수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능력과 감격이 있습니다.
1)빌립보 교인들의 복음으로 말미암은 교제가 계속있어 왔음을 기뻐하였 습니다(4-5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기뻐하면 서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본문 5절 말씀처럼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 서 교제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첫날부터 이제까지"란 빌립보 교회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난 초기부터 극한 가난 속에서라 할지라도 바울에게 도움을 준 때를 거쳐서 (고후11:19,빌4:16) 10년 뒤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을 받는 때까지(빌4:10)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인들은 어렵고 궁핍한 가운데서도 복음 전도자를 돕기 를 돕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또 그 노력은 그들이 처음 복음을 받은 날부터 10년이 지난 이때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인간성이 뛰어나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빌립보 교인들의 삶이 '복음 안에서 교제' 가 지속된 결과로 보았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 수있는 사실은 복음을 위해 물질과 기도와 마음 으로 도우며 참여하는 것이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일도 할수 있 도록 만들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선교사와 복음 전도자와 교역자들을 돕는 일이란 물질이 풍부하고 환경적으로 복된 가운데서 할 수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 깊이 교제되어지고 있 느냐에 좌우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교제의 궁극적인 목적이 복음 전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의 친교와 교제가 단순히 유흥이나 자신의 세상적인 조 건을 자랑하는 마당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은 이 때에 이 말씀은 더욱 더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결국 복음 안에서 이루어 지는 올바른 교제야말로 교회를 더욱 교회답게 만들어주며,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기쁨과 감사의 조건이 되는것 입니다.
2)빌립보 교인들 속에 행하신 하나님의 선한 역사와 인도를 기뻐하였습니다(6-8절).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궁극적으로 기뻐하였던 것은 '빌립보교인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 데'있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기뻐한 내용을 두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빌립보 교인들 가운데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 라는 것을 확신한 데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그렇게 선 한 열래믈 맺고 어려운 가운데서 선한 일에 힘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성실성이나 노력 이전에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운 선하신 역사가 먼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같은 사실을 먼저 목도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그것을 특별히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기뻐하였던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강 림의 그알까지 그 모든 일들을 이루시기 위하여 성도들을 선한 길로 인도 하실 것을 알았기에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성도의 견인 이러고 말합니다. 성도들로 하여금 굳건하게 만드시고 끈까지 인내하게 하 시는 선하신 섭리와 인도를 성도들에게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기에 기뻣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사도 바울의 최대의 기쁨은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과 섭리와 은혜로우신 인도를 목도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기쁨이 어떠한 성질의 기쁨이어야 할 것인지를 오늘 사도 바울의 기쁨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느끼는 신령한 즐거움인 것입니다. 오늘 내게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기도와 섬김과 복음을 위한 봉사로 인 한 신령한 은혜가 있습니까 아니면 끊임없이 나의 계획과 목적 달성 만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이 신령하고 엄청난 은혜의 세계를 도외시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나의 기도응답, 나의 목적 달성, 나의 성공 계획보다 더 중요하 고, 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져야 할 것이 무었인지 아시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목표 달성과 성공하는 자들은 많은데,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교제에서 나오는 기쁨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사를 소유한 사람은 찾아 보기가 어려운 시절을 만났습니다. 신령한 기쁨과 은 혜를 위해서 내 목표, 내 성공을 실패시키며 포기하는 자들이 너무도 없습니다. 입에 생선을 물고서 물속에 비친 그 물 고기 마저 입에 물려다가 입 에 생선마저 놓쳐버린 이솝우화의 주인공들이 교회 안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하나님과 제물과,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고자 하나 둘 다 잃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만을 사모하며 기뻐하는 바울의 심장을 닮아야 합니다.
2.바울의 기도(9-11절).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자신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이기적인 수단 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바울의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기도를 통 하여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풍성한 사랑을 기도하였습니다(9절).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 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가 같다 고 했습니다(고전13:1).
그러므로 우리는 무었보다도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풍성하기를 특별히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첫째, 지식이 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막연한 값싼 동 정으로 말미암은 감정적인 사랑이어서는 안됩니다. 이 사랑의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총명이 있는 사랑 이어야 합니다. 통찰력이 있는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는 통찰력있는 눈으 로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야 하며, 그러한 사랑을 소유해야 합니다.
셋째는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선을 추구하는 분별력을 가진 사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악에 대해서는 징계로 나타내는 분별력있는 사랑이었습니다.
2)진실하여 허물이 없기를 기도하였습니다(10절). 여기서 진실이란 빛에 비추어 보아 한 점 티끌이 없는 순수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누구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새로운 부활체를 입기 전까지는 불완전합니다. 그렇 다고 허물을 방임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허물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인위적으 로 위장하여 위선자가 되지말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범죄하고 숲속에서 숨 어 자신을 위장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순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위장만 하지 않았더라면 회칠한 무덤이라는 책망을 듣 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가 세속에 물들지 않도록 날마다 자신의 세마포 를 그리스도의 보혈 앞에 내놓고 더러운 죄를 빨고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3)의의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11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열매를 매어야 하며, 포도나 무의 가지인 우리 성도들은 마땅히 원둥치 되신 그리스도께 잘 붙어 있어 열매를 많이 맺어야 마땅합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그 안에 있으므로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힘써 충성 헌신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4)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11)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지고의 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었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 삶의 표준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와 고난에 순종하였습니다
'결론' 우리의 기쁨이 어디에 있으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열심이 무었에 달려 있 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사업에 동업자로 모시고자 기도 하십니까 그렇게 하는 저의가 어디에 있습니까 절대 지시를 받고 항복하여 순종하기 위해 서 입니까 단지 이익을 분배하는 동업자로서입니까 하나님께는 그 이익 이 원래부터 당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익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의 기쁨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무슨 문제든지 해결되는 것에 있 지는 않습니까 만일 문제가 해결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기뻐할 수 있겠 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단지 해결사로만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을 받으시지 않습니다. 이제 진정한 기쁨과 기도를 이 바울의 기쁨과 기도를 통해서 새롭게 정립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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