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예수의 그날까지 (빌1:3-8)

본문

신약성경 가운데 에베소서,빌립보서,골로새서,빌레몬서는 바울사도가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 기록했기 때문에 옥중 서신이라고 부릅니다.그 가운데 빌립보서는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본문 1:1-2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일반적인 문안을 한 후에 3절로 8절에서는 몇 가지 감사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3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평범한 인사말 속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 것이 크게 두 가지 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1.빌립보 교인들의 복음 안에서의 교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빌립보 교인들은 복음이 가르쳐 준 사상과 정신을 따라 성도의 교제를 했다는 것입니다.흔히 교제는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Koinonia)라고 하는데 문자적으로는 참석한다는 것이지만 사회적 의미로는 상호 교류한다는 뜻입니다.히브리어로는 하바르(Habar)라고 합니다.그 뜻은 매혹하다,얼을 빼다,결합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코이노니아 하바르의 뜻은 단순히 만났다가 헤어지는 평범한 교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어떤 일정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교류한다든지 상대편에 대하여 매력을 느끼고 결합하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그것을 바울은 복음의 교제라고 했습니다.다시 말하면 예수에게 매혹된 사람들이 예수 안에서 만나고 교류하는 것이 코이노니아라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교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들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1)신앙이 같아야 합니다. 신앙이 다르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교제가 성립되지 못합니다.극단의 경우에는 부부부자형제끼리도 동상 이몽에 빠지게 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집단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외곬으로 빠져 들어 정상적인 교제를 깨뜨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바람직한 코이노니아가 성립되려면 사는 목적,돈버는 목적,일하는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는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고 했습니다.그 뜻은 목적이 같지 않은 사람과 무엇을 같이 하다보면 결국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갈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두 마리의 소에 한 멍에를 씌워서 밭을 가는 풍습이 었었습니다.다행히 두 마리의 소가 배짱이 맞아서 같은 방향으로 가면 밭을 갈 수가 있겠지만 두 마리의 소가 서로 배짱이 맞질 않으면 밭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3)뜻이 같아야 합니다. 바울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했고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8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마음과 뜻과 생각이 같지 않으면 결국 만나긴 만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교회 나온 지 2년된 어느 평신도의 간증에 의하면 교회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친구들이 멀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술 친구라든지 이곳저곳 함께 들락거리던 친구들이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한때는 인간적인 고독을 느끼기도 했다는 것입니다.“내가 이러다가 무인 고도에 굴러 떨어지는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도 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이제 세상 친구들과 만남으로 얻을 수 없는 참 평안과 안정과 기쁨을 예수 안에서 찾았노라고 했습니다. 어떤 여자 교인 역시 예수 믿고난후부터 세상 친구들이 멀어져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즐기던 세상의 연락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주고 받던 속된 이야기들이 그렇게 천박하고 의미없는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난 후 그에게도 참 기쁨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찬된 코이노니아의 성립 조건을 “복음 안에서”라고 밝히고 있습니다.바울은 복음 때문에 빌립보 교회 교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빌립보 교인들은 복음 때문에 바울을 알고 만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이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바울을 감싸고 도와 준 것도 결국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이해 관계로 만난 사람들은 이익이 계속되는 동안은 그 관계와 교제가 계속될 수 있지만 이익이 변해서 자기에게 손해가 되기 시작하면 관계도 교제도 끊어지게 됩니다.그러나 예수 때문에 만난 사람들,예수 안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해 관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그 교제가 지속되는 것입니다.그것이 올바른 코이노니아인 것입니다. 손해나 불이익이나 감정이나 기분 때문에 등을 돌리고 돌아서는 것은 코이노니아가 아닙니다.교회는 코이노니아 공동체입니다. 세상에서 추구하는 이익이나 목적 때문에 모이고 예수 때문에 결합하고 예수에게 매혹당한 사람들이 예수를 중심으로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리켜 복음의 교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여러 가지 시련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복음의 교제를 지속하고 있음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코이노니아는 지연,인연,학연 따위들을 넘어서서 예수와 함께 만날때 성립되는 것입니다.
2.빌립보 교인들의 착한 일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 바울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주경가 마이어(Meyer)는 본문에서 말한 착한 일은 바울의 복음전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말한다고 해석했고,칼빈(Calvin)은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된 것을 말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두 가지 해석을 종합하는 것이 바람직한 해석이 된다고 봅니다. 복음을 받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복음 전도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들이 바울의 복음 사업에 참여한 몇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1)믿음으로 참여했습니다. 바울의 마음속에 늘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있었고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속엔 늘 바울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마음먹기 따라서 행동이 결정됩니다.독하고 악한 마음을 품으면 눈빛도 얼굴 표정도 그리고 말도 독하게 변합니다.그러나 사모하는 마음과 착한 마음을 품으면 눈빛도 말도 순하고 부드럽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동파이프라도 수도관으로 사용하면 수십년을 써도 썩거나 바스러지지 않지만 연탄 아궁이에 연결시켜 굴뚝으로 사용하면 일년도 못가서 바스러지고 썩어 버리게 됩니다. 같은 마음이지만 독한 마음을 항상 품고 살면서 남을 욕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면 마치 연탄 아궁이처럼 그 독기 때문에 썩고 바스러지게 됩니다.같은 입이지만 항상 남의 험담이나 늘어놓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나 퍼붓는다면 그 독기 때문에 입이 더러워지고 말 것입니다.같은 눈이지만 그 눈으로 추한 것을 탐하고 남의 허물이나 약점만을 살피고 들추다 보면 마치 그 눈빛이 사냥개나 표범의 눈처럼 잔인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2:5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2)기도로 참여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주고 받는 가장 귀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슬픔이나 고난을 당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값비싼 부조가 있다면 그것도 기도인 것입니다.그리고 주의 종들을 위해 베풀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우정이 있다면 그것도 기도입니다. 바울은 “나를 위해 기도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저 역시 뿌듯한 감동과 감격을 갖게 될 때가 있다면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람들을 만날 때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은 바울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라고 인정했다는 것이며,바울을 사모했다는 증거이며,바울의 사업이 성공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습니다. 젖먹이 어린아기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엄마 품에 안긴 채 엄마의 기도소리를 듣는 순간일 것입니다.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드라이브를 하고 여행을 즐기고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시간이 아니라,함께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함께 두 손을 잡고 기도하는 시간일 것입니다.목회자에게 가장 벅차고 행복한 시간들이 있다면 그것은 교인들이 기도해 주는 일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3)물질로 참여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을 보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 사업을 위해 수시로 헌금을 모아 인편으로 보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15을 보면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는 아무도 없었느니라”고 했고 4:18을 보면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정성을 쏟고 사랑을 베푼 교회가 빌립보 교회만은 아니었습니다.그러나 바울의 전도 사업에 물질로 참여한 교회는 빌립보 교회뿐이었습니다.그렇다고 해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다른 도시에 있었던 교회보다 더 잘살았다든지 돈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10월 대구에 계시는 모 권사님이 제 방송을 들었노라면서 서울에 올라오는 사람편에 일금 백 만원을 보내 주었습니다.선교 사업에 써 달라는 것이었습니다.방송을 듣고 감동받아서 보내준 돈이기에 방송국에 보내 주었습니다.방송을 듣고 선뜻 백 만원 정도를 보내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돈이 아주 많은 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전 대구에 내려가 그 권사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그리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그 분은 두 평 될까말까한 낡은 방에서 홀로 살고 계시는 80이 지난 할머니였고 오랜 지병으로 세상 떠날 날을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었습니다.여기저기 쓰실 곳이 많을텐데 왜 그리 큰 돈을 몽땅 헌금하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금방 하나님 나라에 갈텐데 제가 무슨 돈이 필요합니까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들은 얘기입니다만 사람이 죽어서 관 속에 들어간 다음에 만원권 지폐를 다발로 만들어 관 속의 빈칸을 채웠더니 2700만원이 들어가더라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죽은 다음에 고작 관 속에 넣어서 가져갈 수 있는 돈은 2700만원 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18에서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인정이 메말라가는 추운 계절입니다.각 가정별로 선한 일을 한 가지 이상씩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복음 사업과 선교 사업을 위해 물질로 참여합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때 가져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관 속에 넣어간다고 한들 그것을 가지고 가서 뭐하겠습니까 오늘 여기서 주님과 그의 역사를 위해 물질로도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의 날”에 주께서 이루실 것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예수의 날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5:31은 그 사실을 좀더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따라서 “내가 목마를 때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 25:42-43)는 말씀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는 말씀은 우리의 사랑의 실천을 강권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각박하고 정이 시들고 메말라 버린 찬바람 부는 계절에 우리 모두 사랑의 실천자가 됩시다. 그리하면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모두에게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4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