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들의의무와상전들의의무 (엡6:5-9)
본문
본문은 당시 고정된 사회 질서의 하나였던 노예 제도 가운데서 당사자들 인 노예와 주인과의 관계에 대한 교훈입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노예 제도 란 있을 수 없는 제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당시의 악습이었던 노예 제도를 긍정하는 보수적인 사람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갈3:28절에서 '만민이 평등'하다 고 선언하고 있으므로 그같은 악습을 두둔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노예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무자비한 상전의 마음을 인간답게 변화시키고, 또한편으로는 자신의 인간적인 주체의식을 갖지 못 하고 비굴한 노예 근성으로 임시 변통적인 생활을 하는 노예들에게 인간으 로서 자기 확증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같은 노예 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져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 구체적인 대안으로 하나 하나씩 변화시켜 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회사의 고용주와 노동자들과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말씀 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종의 의무는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5-6절). 그리고 상전의 의무는 종들이 그에게 순종하고 선을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선 을 행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본론' 당시에 노예 제도는 가정 도덕상, 사회 윤리상 실로 문제가 많아습니다. 로마 제국 내에 노예의 총수는 6천만이나 되었는데 자유 시민의 4배나 되었습니다. 로마 시에서만 65만명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노예가 되는 원인은 첫째,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부채를 진 사람이 그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어 몸을 팔려는 경우이고
둘째는, 전쟁에서 진 백성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 노예 한 명당의 가격이 유대에서는 은 30세겔, 헬라 화폐로 120드라 크마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소 한 마리 값에 해당하는 값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싼 값의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처 럼 큰 노예 제도를 기독교가 공격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종 종 있습니다. 더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자녀로 평 등하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질서의 기독교가 왜 정면으로 노예 제도를 반 대하지 않았느냐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이 노예 제도에 관하여 결코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노예 출신인 오네시모를 말할 때 형제라고 말하였습니다. 몬 1:16-17절을 보면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 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의 동무를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 듯 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노예들의 실상은 참으로 처참하였습니다. 인격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가축과 같이 살아 있는 상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불복종하면 채찍질을 당하였고 심한 경우는 십자가에 달렸으며, 맹수에게 던져져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을 무렵에 로마에서 원로원 한 사람이 노예에게 피살당하였는데 그 형벌 로써 그의 노예 400명이 한꺼번에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죄악상에 어찌 기독교가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바울이 세운 교회 중 에베 소, 빌립보, 골로새, 고린도 교회에는 상당 수의 노예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들에서노예에 대한 이런 특 별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롬 16장의 인명에는 노예의 이름도 보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노예들의 인 격들도 똑같이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당시 교회가 이 노예 제도에 대하여 정면으로 폐지하라고 들고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노예 제도를 개선코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 것이 교회의 의지라기 보다 복음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의노예 오네시모를 자기의 아들 이라고까지 말하며 그를 영접하기를 나를 영접하는 것처럼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예의 상전들은 하늘의 참 상전이 있음을 기억하고 노예들을 억울하게 대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에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노예 제도의 모순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사랑과 정의와 평등의 정신을 고조하여 사회개선에 앞선 의식 구조를 개선코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혁명적 인 방법은 아니지만, 이러한 교회의 내적인 감화력이 주효하여 교회의 세 력이 확대되고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에 이러한 정신 이 법률에 반영되어 노예 제도의 폐지를 한 걸음씩 전진했던 것입니다. 19세기에 미국에서의 노예 제도 폐지도 큰 전쟁을 불러 일으켰거늘 하물 며 로마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노예 제도 폐지 문제를 정면으로 대 응하였다면 노예 해방은 커녕 교회 자신도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과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감화 력은 결국 노예 제도의 개선을 가져오게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의 그러한 상황에서 종과 상전의 하나님의 말씀이 무었입니까
첫째,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는 종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섬기는 자의 위 치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는 자는 올바른 섬김의 자세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선 최고의 상전인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앙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피차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삶은 결국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구리스도는 철저히 자기자신을 낮추사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 모두가 따라야할 삶의 자세입니다. 더구나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는는 자는 더욱더 이러한 자세로 섬길 때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선히 판단하 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온전한 보응을 주실 것입니다. 같은 인간의 성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는 경우나 자원하 여 봉사하는 경우를 막론하고 일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없으면 몹 시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비단 종의 위치에 있는 자들 뿐만 아니라, 상전의 신분에 있는 자들 까지도 남을 섬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모 든 성도들의 성심을 다해 서로 섬기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성심을 다해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수하에서 노동과 자유를 담보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사람 들에게 있어서 상사에 대한 복종은 절대적이고 필연적이라 할 수 있지만 더욱 절대적이요 임직일 수 없는 진리는 인간이 진정을 다해 복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진리를 알고서 종들은 상전에게 섬길 때에 주께 하듯이 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전들은 종들에게 공갈을 그치고 가혹한 처사를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참된 상전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 에서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한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것이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과 그 권위에 복종하면서 살아 왔는 지를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주인이며 고용주가 되었든지 종이며 피고용자가 되었든지 모두는 하나님 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주인이나 그 일꾼들이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꺼리낌이 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모든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어 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권자들은 일반적으로 그 종들에게 대한 상전의 불의하고 잔 혹한 처사에 대하여 묵인하고 그것에 대하여 벌을 내리지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인간들 처럼 묵인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종의 책임에 관 해 그렇게 엄격하고 철저히 묻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는 세상의 군왕들과 주관자들과 주인과 상전들을 호리라도 남김없이 그 부당함을 심판하시고 그 응분의 값을 치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릴 둘 아는 순종하는 참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예 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서는 무자비한 상전의 마음을 인간답게 변화시키고, 또한편으로는 자신의 인간적인 주체의식을 갖지 못 하고 비굴한 노예 근성으로 임시 변통적인 생활을 하는 노예들에게 인간으 로서 자기 확증을 갖도록 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같은 노예 제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 져야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그 구체적인 대안으로 하나 하나씩 변화시켜 나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회사의 고용주와 노동자들과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말씀 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종의 의무는 상전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5-6절). 그리고 상전의 의무는 종들이 그에게 순종하고 선을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선 을 행하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본론' 당시에 노예 제도는 가정 도덕상, 사회 윤리상 실로 문제가 많아습니다. 로마 제국 내에 노예의 총수는 6천만이나 되었는데 자유 시민의 4배나 되었습니다. 로마 시에서만 65만명의 노예가 있었습니다. 노예가 되는 원인은 첫째, 빈부의 격차로 인하여 부채를 진 사람이 그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어 몸을 팔려는 경우이고
둘째는, 전쟁에서 진 백성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 노예 한 명당의 가격이 유대에서는 은 30세겔, 헬라 화폐로 120드라 크마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소 한 마리 값에 해당하는 값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싼 값의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처 럼 큰 노예 제도를 기독교가 공격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종 종 있습니다. 더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이 다 하나님의 자녀로 평 등하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질서의 기독교가 왜 정면으로 노예 제도를 반 대하지 않았느냐고 이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이 노예 제도에 관하여 결코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노예 출신인 오네시모를 말할 때 형제라고 말하였습니다. 몬 1:16-17절을 보면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 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의 동무를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 듯 하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노예들의 실상은 참으로 처참하였습니다. 인격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가축과 같이 살아 있는 상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불복종하면 채찍질을 당하였고 심한 경우는 십자가에 달렸으며, 맹수에게 던져져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을 무렵에 로마에서 원로원 한 사람이 노예에게 피살당하였는데 그 형벌 로써 그의 노예 400명이 한꺼번에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죄악상에 어찌 기독교가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바울이 세운 교회 중 에베 소, 빌립보, 골로새, 고린도 교회에는 상당 수의 노예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교회들에게 보내는 서신들에서노예에 대한 이런 특 별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롬 16장의 인명에는 노예의 이름도 보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노예들의 인 격들도 똑같이 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당시 교회가 이 노예 제도에 대하여 정면으로 폐지하라고 들고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노예 제도를 개선코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 것이 교회의 의지라기 보다 복음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의노예 오네시모를 자기의 아들 이라고까지 말하며 그를 영접하기를 나를 영접하는 것처럼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예의 상전들은 하늘의 참 상전이 있음을 기억하고 노예들을 억울하게 대 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에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는 노예 제도의 모순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사랑과 정의와 평등의 정신을 고조하여 사회개선에 앞선 의식 구조를 개선코자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혁명적 인 방법은 아니지만, 이러한 교회의 내적인 감화력이 주효하여 교회의 세 력이 확대되고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이후에 이러한 정신 이 법률에 반영되어 노예 제도의 폐지를 한 걸음씩 전진했던 것입니다. 19세기에 미국에서의 노예 제도 폐지도 큰 전쟁을 불러 일으켰거늘 하물 며 로마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노예 제도 폐지 문제를 정면으로 대 응하였다면 노예 해방은 커녕 교회 자신도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과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감화 력은 결국 노예 제도의 개선을 가져오게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당시의 그러한 상황에서 종과 상전의 하나님의 말씀이 무었입니까
첫째,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는 종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섬기는 자의 위 치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의무를 다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는 자는 올바른 섬김의 자세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선 최고의 상전인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신앙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피차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와같은 삶은 결국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구리스도는 철저히 자기자신을 낮추사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 모두가 따라야할 삶의 자세입니다. 더구나 섬기는 자의 위치에 있는는 자는 더욱더 이러한 자세로 섬길 때에 공의의 하나님께서 선히 판단하 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온전한 보응을 주실 것입니다. 같은 인간의 성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는 경우나 자원하 여 봉사하는 경우를 막론하고 일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없으면 몹 시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비단 종의 위치에 있는 자들 뿐만 아니라, 상전의 신분에 있는 자들 까지도 남을 섬기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모 든 성도들의 성심을 다해 서로 섬기는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성심을 다해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수하에서 노동과 자유를 담보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사람 들에게 있어서 상사에 대한 복종은 절대적이고 필연적이라 할 수 있지만 더욱 절대적이요 임직일 수 없는 진리는 인간이 진정을 다해 복종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진리를 알고서 종들은 상전에게 섬길 때에 주께 하듯이 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태도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전들은 종들에게 공갈을 그치고 가혹한 처사를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참된 상전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 에서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한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것이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과 그 권위에 복종하면서 살아 왔는 지를 심판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주인이며 고용주가 되었든지 종이며 피고용자가 되었든지 모두는 하나님 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주인이나 그 일꾼들이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꺼리낌이 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모든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되어 질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권자들은 일반적으로 그 종들에게 대한 상전의 불의하고 잔 혹한 처사에 대하여 묵인하고 그것에 대하여 벌을 내리지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인간들 처럼 묵인하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종의 책임에 관 해 그렇게 엄격하고 철저히 묻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는 세상의 군왕들과 주관자들과 주인과 상전들을 호리라도 남김없이 그 부당함을 심판하시고 그 응분의 값을 치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릴 둘 아는 순종하는 참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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