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한 가정생활 (엡5:16-21)
본문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개인 구원과 전도와 은사에 집착하여 왔기에 개 인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은혜 받을 것에 주로 관심을 가져왔던 것은 누구나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불신자의 가정 이나 우리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 심각한 일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 정은 온 식구들의 삶의 보금자리로써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복된 곳이 되어야 하는데 가정이 제 구실을 못하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좀더 심한 표현을 쓰자하면 가정이 파괴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마치 방향을 잃고 정처없이 떠다니는 좌초 직전의 배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요즘의 우리 가정의 위기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우리 가정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진단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회복시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흔히 성령충만한 삶이 내 개인이 뜨거운 은혜체험 을하여 방언을 한다든지, 입신을 한다든지, 예언은 한다든지, 무엇인가 내 가슴이 뜨거워져서 견딜 수 없는 은혜가 넘쳤을 때 성령충만한 모습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옳은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순간순간 하나님과 나와의 영적인 충만한 만남이 있어야 하고, 초대 교회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성령충만한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내 자신은 예수를 믿고, 성령충만한 삶이라고 생각되어 지는데 왜 우리 가정에는 풍파가 있는 것입니까 근심과 걱정이 가득합 니까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되십니까 오늘 본문 에배소서를 읽어보시면 성령충만한 모습을 가지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 성령충만 삶을 사는 사는 사람은 "때를 아는 사람입니다" 즉 세월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또한 시와 찬송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삶을 살 게 됩니다. 또한 성령충만한 사람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신앙생활 속에 과연 본문 속에서 말씀하시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성령충만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은혜체험 만 했다고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란 영적으로 이 시 기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돌리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요,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요 에배소서를 읽어보시면 성령충만한 모습이 우리 가정 속에서 나타나야 될 것을 바울 사도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정 이란 하나님이 주신 최소한의 영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장소요, 영적 인 작은 천국이기에 세상 어떤 장소보다도 귀중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가정이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작은 천국"이 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가정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식구들 간의 주안에서의 사랑이 있어야 진정 성령충만한 성도의 가정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결론적으로 성령충만한 성도의 생활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3가지를 강조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의 중요성, 부모관계의 중요성, 부자 관계의 중요성을 교훈하 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으면 진정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인생의 패배자이며 인생의 귀중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를 파괴하는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가정의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3가지 부부관계, 부모관계, 부자관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을 회복하는데 영적인 준비의 시간이 되셔서 여러분의 가정이 이때까지 누 리지 못했던 작은 천국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성령충만한 가정은 부부관계가 주안에서 아름다움을 간직하 게 됩니다. 예배소라는 지역은 바울 사도가 활동하던 시대에 오늘의 터어키 지역에 위치한 상업과 공업이 발달한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전통 적으로 인종차별과 계급적 차별이 있었으며 특별히 성적인 차별이 심각 한 도시였습니다. 이 당시 여자들의 위치는 극히 천한 인간대접을 받으며 살수밖에 없었 습니다. 여자들은 인구를 조사하는데 조차 들 수 없을 정도였으며, 특히 결혼한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소속된 도구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 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22절에 먼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개혁 성경에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 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성경과 표준 새번역 성경에서는 좀 부드 러운 언어를 사용해서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복종한다는 표현은 한 사람은 명령하고, 한 사람은 따라 가는 관계를 말합니다. 주로 군대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상급자에게 절대적으로 따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때까지 우리나라는 유교권에 영향을 받아서 생긴 말이 "여필종부", "부부 유별", "일부종사"라는 식으로 여자는 남편에게 무조건 따르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들은 자기 부인들을 무슨 종 취급하고, 심한 경우에는 짐승처럼 학대하고, 짓밞고, 무시하고, 여성들 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헬라 성경의 원문에는 "서로 순응한다"(justment another) 즉 환경에 맞추어서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즉 남편과 조화를 맞추어서 잘 살아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아내들은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자들에게도 여자들이 남편 을 대할 때 주님께 대하듯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여자 들에게는 혁명적인 외침이었습니다. 깜작 놀랄만한 사건이요. 참으로 여 성들의 지위를 찾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힘으로 아내들을 지배하 고, 욕하고, 윽박지르고, 아내들을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도전 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내들은 권위를 인정하고 주안에서 순종하는 모습을 회복하시기 를 바랍니다. 결혼의 원조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담과 하와 의 가정은 무공해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몸(One Flesh)을 이루라고 축복해 주신 가정 아닙니까 최초의 아담의 가정은 그러나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범 죄한 이후 아담과 하와 부부는 서로의 탓으로 돌렸고, 서로를 원망하다 가 마침내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들 가정에서는 최초의 살인 사건까지 벌어지는 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비극은 무엇보다도 부부간의 신뢰관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결혼 생활이란 서로 다른 사람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관계이기에 완전하지 못하기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부부간의 문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의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다 보니 불화가 있 고,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도 남편을 지긋지굿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남편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우리 부부는 왜 함께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부간의 사랑도 없고, 흥미도 잃고 자식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산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성도들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부부간에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간에 원망 하고, 책임을 전가시키기만 하면 문제는 복잡해지고 맙니다. 마치 이런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의 비극만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내를 불신하고 있는 마음과 아내를 학대하고, 인정 하지 아니했던 마음의 쓴 뿌리를 뽑아 내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을 미워 하고, 증오했던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쓴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상처를 입고 있다고 해서 괴로워 할 것만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사랑으로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 관계는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 니라 서로 간에 동등한 관계요, 평등관계요, 피차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까지도 끝까지 우리들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셨던 것처럼 이 시간 우리 성도님들도 부부관계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성령충만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성령충만한 가정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효도가 있는 것입니다.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부모를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바울 사도는 강조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자식의 마땅한 도 리라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선을 볼 때 확인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장남인가, 시부모가 살아 계시거나, 부양을 해야 한 다든지, 여러 가지들을 물어 보는 이유는 어른들을 모시지 않겠다는 것 입니다. 점점 세상은 각박해 지는 것 같습니다. 장유유서가 옛날이야기처 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노인들의 설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신대 상담학을 가르치는 심상권 교수님께서 "상담소"를 운영하 시는데 우울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또한 정신병으로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 온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부모 에게 불효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더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가르쳐 준 그대로 입니다. 부모를 효도하고, 공경하는 자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 대로 부모를 학대하고, 멸시하고, 모시지 않고 버리는 자식들은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기 부모님을 등한히 여기거나, 멸시하거나,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님과 불화했던 분들 계십니까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멀리했던 분들은 이제부터 찾아가 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성령충만한 가정은 자식과의 관계가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자식들은 나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의 인격 체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폴틸리라는 신학자는 가정이란 "서로 돌보고 희생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부모님들의 잘못된 것이 있다면 어른들의 소리만을 내고, 어른들만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자식들이 무엇을 생각하 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명령하며 따라 오 라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큰 문제인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수용하고, 진지하게 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청소년 들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가득합니다. 가출하고, 자살하고, 탈선하는 청 소년들 가정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 가운데 보면 자식들을 어렸을 때부터 상습적으로 매 질했습니다. 좀 참을 수 있고, 타이르면 될 것인데 격려하기보s다는 늘 야 단치고, 체벌하기만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 지만 그러나 자식이 성장하면서 반항하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것을 지 옥에 있는 것처럼 여기더니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자식이 고등학교도 졸업못하고, 퇴학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아버지 원망을 합니다. 어른이 된 그분은 내가 잘못한 것도 있겠으나 아 버지께서 어렸을 때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격려해 주셨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인데 하면서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아버지 밑 에서 자란 이분도 지금은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도 아버지 밑에서 자란 쓴 뿌리가 남어 있으니까 자식을 대하는 것도 아버지와 비 슷하기에 그 분의 자식도 툭하면 가출하고, 사고치고 가정이 온전치 못 하고, 혼란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식들이 자기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들이여 여러분들의 가정속에 성령충만한 모습을 회 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부부관계를 아름답게 만듭시다. 부모님을 주 안에서 공경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아름 답게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들은 우리 가정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진단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으로 회복시켜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서는 흔히 성령충만한 삶이 내 개인이 뜨거운 은혜체험 을하여 방언을 한다든지, 입신을 한다든지, 예언은 한다든지, 무엇인가 내 가슴이 뜨거워져서 견딜 수 없는 은혜가 넘쳤을 때 성령충만한 모습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옳은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순간순간 하나님과 나와의 영적인 충만한 만남이 있어야 하고, 초대 교회 우리 믿음의 선배들처럼 성령충만한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내 자신은 예수를 믿고, 성령충만한 삶이라고 생각되어 지는데 왜 우리 가정에는 풍파가 있는 것입니까 근심과 걱정이 가득합 니까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되십니까 오늘 본문 에배소서를 읽어보시면 성령충만한 모습을 가지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 성령충만 삶을 사는 사는 사람은 "때를 아는 사람입니다" 즉 세월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또한 시와 찬송으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과 감사를 돌리는 삶을 살 게 됩니다. 또한 성령충만한 사람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의 개인적인 신앙생활 속에 과연 본문 속에서 말씀하시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성령충만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은혜체험 만 했다고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이란 영적으로 이 시 기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돌리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요,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요 에배소서를 읽어보시면 성령충만한 모습이 우리 가정 속에서 나타나야 될 것을 바울 사도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정 이란 하나님이 주신 최소한의 영적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장소요, 영적 인 작은 천국이기에 세상 어떤 장소보다도 귀중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가정이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작은 천국"이 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 가정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식구들 간의 주안에서의 사랑이 있어야 진정 성령충만한 성도의 가정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결론적으로 성령충만한 성도의 생활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3가지를 강조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부부 관계의 중요성, 부모관계의 중요성, 부자 관계의 중요성을 교훈하 고 있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문제가 있으면 진정 성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인생의 패배자이며 인생의 귀중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를 파괴하는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가정의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3가지 부부관계, 부모관계, 부자관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을 회복하는데 영적인 준비의 시간이 되셔서 여러분의 가정이 이때까지 누 리지 못했던 작은 천국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성령충만한 가정은 부부관계가 주안에서 아름다움을 간직하 게 됩니다. 예배소라는 지역은 바울 사도가 활동하던 시대에 오늘의 터어키 지역에 위치한 상업과 공업이 발달한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전통 적으로 인종차별과 계급적 차별이 있었으며 특별히 성적인 차별이 심각 한 도시였습니다. 이 당시 여자들의 위치는 극히 천한 인간대접을 받으며 살수밖에 없었 습니다. 여자들은 인구를 조사하는데 조차 들 수 없을 정도였으며, 특히 결혼한 여성들은 남자들에게 소속된 도구와 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 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22절에 먼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개혁 성경에는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 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성경과 표준 새번역 성경에서는 좀 부드 러운 언어를 사용해서 "순종"하라고 말씀합니다. 복종한다는 표현은 한 사람은 명령하고, 한 사람은 따라 가는 관계를 말합니다. 주로 군대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상급자에게 절대적으로 따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때까지 우리나라는 유교권에 영향을 받아서 생긴 말이 "여필종부", "부부 유별", "일부종사"라는 식으로 여자는 남편에게 무조건 따르고 순종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들은 자기 부인들을 무슨 종 취급하고, 심한 경우에는 짐승처럼 학대하고, 짓밞고, 무시하고, 여성들 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헬라 성경의 원문에는 "서로 순응한다"(justment another) 즉 환경에 맞추어서 잘 따른다는 것입니다. 즉 남편과 조화를 맞추어서 잘 살아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아내들은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자들에게도 여자들이 남편 을 대할 때 주님께 대하듯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여자 들에게는 혁명적인 외침이었습니다. 깜작 놀랄만한 사건이요. 참으로 여 성들의 지위를 찾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말씀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처럼"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힘으로 아내들을 지배하 고, 욕하고, 윽박지르고, 아내들을 학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도전 행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내들은 권위를 인정하고 주안에서 순종하는 모습을 회복하시기 를 바랍니다. 결혼의 원조는 아담과 하와의 가정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담과 하와 의 가정은 무공해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몸(One Flesh)을 이루라고 축복해 주신 가정 아닙니까 최초의 아담의 가정은 그러나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으로 범 죄한 이후 아담과 하와 부부는 서로의 탓으로 돌렸고, 서로를 원망하다 가 마침내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그들 가정에서는 최초의 살인 사건까지 벌어지는 비극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의 비극은 무엇보다도 부부간의 신뢰관계가 깨어지고 있습니다. 결혼 생활이란 서로 다른 사람의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 관계이기에 완전하지 못하기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부부간의 문제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기의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하다 보니 불화가 있 고,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도 남편을 지긋지굿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남편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무서운 말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우리 부부는 왜 함께 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부간의 사랑도 없고, 흥미도 잃고 자식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산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성도들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부부간에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서로간에 원망 하고, 책임을 전가시키기만 하면 문제는 복잡해지고 맙니다. 마치 이런 가정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의 비극만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아내를 불신하고 있는 마음과 아내를 학대하고, 인정 하지 아니했던 마음의 쓴 뿌리를 뽑아 내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을 미워 하고, 증오했던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쓴 뿌리를 뽑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상처를 입고 있다고 해서 괴로워 할 것만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사랑으로 찾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부부 관계는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 니라 서로 간에 동등한 관계요, 평등관계요, 피차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까지도 끝까지 우리들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셨던 것처럼 이 시간 우리 성도님들도 부부관계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 대화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성령충만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성령충만한 가정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효도가 있는 것입니다.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부모를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바울 사도는 강조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자식의 마땅한 도 리라는 것임을 가르칩니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선을 볼 때 확인하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장남인가, 시부모가 살아 계시거나, 부양을 해야 한 다든지, 여러 가지들을 물어 보는 이유는 어른들을 모시지 않겠다는 것 입니다. 점점 세상은 각박해 지는 것 같습니다. 장유유서가 옛날이야기처 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노인들의 설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신대 상담학을 가르치는 심상권 교수님께서 "상담소"를 운영하 시는데 우울증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또한 정신병으로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 온 사람들을 상담하다 보니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부모 에게 불효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더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이 가르쳐 준 그대로 입니다. 부모를 효도하고, 공경하는 자들은 분명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이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 대로 부모를 학대하고, 멸시하고, 모시지 않고 버리는 자식들은 잘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기 부모님을 등한히 여기거나, 멸시하거나,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가운데 부모님과 불화했던 분들 계십니까 찾아가서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멀리했던 분들은 이제부터 찾아가 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성령충만한 가정은 자식과의 관계가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부모 여러분! 자식들은 나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의 인격 체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엡6:4)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 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폴틸리라는 신학자는 가정이란 "서로 돌보고 희생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 부모님들의 잘못된 것이 있다면 어른들의 소리만을 내고, 어른들만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의 자식들이 무엇을 생각하 고,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명령하며 따라 오 라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큰 문제인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수용하고, 진지하게 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청소년 들의 문제가 우리 사회에 가득합니다. 가출하고, 자살하고, 탈선하는 청 소년들 가정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 가운데 보면 자식들을 어렸을 때부터 상습적으로 매 질했습니다. 좀 참을 수 있고, 타이르면 될 것인데 격려하기보s다는 늘 야 단치고, 체벌하기만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괜찮은 것처럼 보였 지만 그러나 자식이 성장하면서 반항하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것을 지 옥에 있는 것처럼 여기더니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자식이 고등학교도 졸업못하고, 퇴학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아버지 원망을 합니다. 어른이 된 그분은 내가 잘못한 것도 있겠으나 아 버지께서 어렸을 때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격려해 주셨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인데 하면서 원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뚤어진 아버지 밑 에서 자란 이분도 지금은 가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도 아버지 밑에서 자란 쓴 뿌리가 남어 있으니까 자식을 대하는 것도 아버지와 비 슷하기에 그 분의 자식도 툭하면 가출하고, 사고치고 가정이 온전치 못 하고, 혼란한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 자녀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식들이 자기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들이여 여러분들의 가정속에 성령충만한 모습을 회 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부부관계를 아름답게 만듭시다. 부모님을 주 안에서 공경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아름 답게 양육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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