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교회를 사랑합시다 (엡5:29-33)
본문
교회란 큰 건물도 필요하고 교인도 많이 모여야 하고 예산도 많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뜻에 맞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청년부는 신앙 과 사랑과 봉사와 실천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고 끼치는 청년부가 되는 것이 이상이고 소망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온 회원이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청년부를 사랑하는 사람이 청년부회원 입니다. 운동 경기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운동장을 놓고 생각해 봅시다. 운동장에는 달리고 뛰는 선수가 있고 스탠드에는 관중들이 있습니다. 스탠드의 관중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A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고,
둘째는 B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고, 세째는 게임 자체를 구경하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A팀이나 B팀을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수나 된 것처럼 고함을 지르 고 손을 흔들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되풀이 하면서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그냥 구경차 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열을 내지 않습니다. 이유는 자기들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 우리 나라 사학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연세대와 고려대가 매년 치르고 있는 연고전(고연전)은 유명한 대전입니다. 양교의 경기나 응원전은 흥미 진진한 큰 행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큰 딸이 연세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 습니다. 그 전에는 고대가 이기건 연대가 이기건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만 이제는 연세대 응원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둘째 아이가 고려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면 한쪽팔은 연세 대학을 응원하고 한쪽팔은 고려 대학을 응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겐 소속감과 관계가 중 요한 것입니다. 청년부회원이라는소속감, 나는 청년부회원이고 주인이라는 소속감이 있어야 응원 석에서 손을 흔들며 응원도 하고 뛰어들어 달리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가를 찾아보아야 하겠 습니다.
1)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고회는 그의 몸이며 우리는 그의 지체라는 것이 바울의 교회관입니다. 바울에게는 젊은 시절에 잊지 못할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 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유대교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 난 기독교의 뿌리를 조절하기 위해 박해의 선봉장이 되어 다메섹으로 데려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정오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사울아 사 울아! 그를 부르는 소리에 그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뜰 수 없는 강한 빛 때문에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 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했지 예수를 핍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가 여기서 발견한 진리는 교회를 핍박하는 행위는 곧 예수를 핍박하는 행위이며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행위는 곧 예수를 섬기고 사랑하는 행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교회는 한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흔히 예수는 믿고 사랑한다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제도를 부인하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를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예수와 교회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이며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을 사랑하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이 교회를 보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양은 보호하고 기르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보호하시고 지키 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 자신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세웠기 때문입니다. 일 반 빌딩은 돈만 있으면 짓지만 교회는 예수의 피로 세우는 것입니다. 어미 닭이 혼자서 모이를 줍고 있을 때는 약하기 이를데 없지만 병아리를 품고 있을 때는 강한 힘을 발휘하여 새깨를 보호합니다. 하물며 피로 사서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은 교회를 내버려 두시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해치못하 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보양하시는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주님과 맺은 사랑의 관계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문 31절로 33절에서 교회와 주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 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교회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내로 비 유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비유했습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쳐 사랑을 쏟 아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신랑에게 복종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신약의 교훈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없는 남녀의 만남은 고깃덩어리와 고 깃덩어리의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청년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님과의 참만남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어떻게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까
1) 몸과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헌신을 의미하고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을 의미 합니다. 시골 교회의 종치기 장로라는 별명을 가진 장로님이 계셨씁니다. 자녀는 6남매였고 학벌은 국졸이지만 생활은 염려없는 부농이었고 신앙과 행실이 모 범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30년 동안 교회 종을 쳤씁니다. 그 분이 교회 종을 치게 된 것은 교회 장로가 되면서 부터 였습니다. 배운 것이 없어서 주일 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노래를 못하니 찬양대도 할 수 없지만, 종은 힘만 있으면 칠 수 있으니 종을 쳐야겠다고 시작한 것이 30년간 계속된 것입니다. 그는 매일 새벽, 수요일 저녁, 주일낮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이나 겨울도 가리지 않고 종치기를 계속했습니다. 75세 되던 어느날 새벽, 그날도 종을 친뒤 기도회에 참석하고 돌 아오더니 뒷복이 뻣뻣하다면서 자리에 우운 채 한 시간만에 세상을 떠났씁니다. 그는 운명전 30년간 자신이 울리던 종을 스물 네번만 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왜 스물 네번을 치라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24장로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스물 네번의 종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 저 뵈는 본향 집 날마다 가까와"라는 찬송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장로님이 세상 떠나게 되었다는 급보를 받고 장로님댁으로 달려오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그 장로님이 운명하시는 그 순간 두 줄기 강한 빛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평소 교회를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던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교회 사랑은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 교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물질을 바치는 사람과 몸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2)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때문에 덕보고 이익보려는 사람이 있고 교회 때문에 내가 손해 보려는 사람 이 있습니다. 교회 때문에 이익보려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일 수가 없 습니다. 자기집 커튼을 빨면 고회 커튼 생각이 나는 사람, 자기집 페인트를 바 르면 교회 페인트 바르는 일이 생각나는 사람, 내가 손해보고 효회에 유익을 주 려고 하는 사람들이 효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교회를 위하여 눈물 흘 려 기도하고 이 교회를 내 교회로 알고 섬기는 사람이 교횔띵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이 지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완전한 교회를 찾 아 이곳 저곳을 다니는 사람들은 그 어는 솟에서도 완전 무렬한 교회를 찾지 못 할 것입니다. 완전한 교회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교가 회에 화장지를 납품하는 사람이 있었씁니다. 그는 늘 원가에서 10원을 더 싸게 납품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납품하면서 이익을 남길수는 없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 마음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첫째는 A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고,
둘째는 B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고, 세째는 게임 자체를 구경하기 위해 앉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A팀이나 B팀을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선수나 된 것처럼 고함을 지르 고 손을 흔들고 일어섰다 앉았다를 되풀이 하면서 열을 올립니다. 그러나 그냥 구경차 나온 사람들은 그렇게 열을 내지 않습니다. 이유는 자기들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 우리 나라 사학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연세대와 고려대가 매년 치르고 있는 연고전(고연전)은 유명한 대전입니다. 양교의 경기나 응원전은 흥미 진진한 큰 행사입니다.
그런데 우리 큰 딸이 연세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 습니다. 그 전에는 고대가 이기건 연대가 이기건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만 이제는 연세대 응원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일
둘째 아이가 고려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면 한쪽팔은 연세 대학을 응원하고 한쪽팔은 고려 대학을 응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겐 소속감과 관계가 중 요한 것입니다. 청년부회원이라는소속감, 나는 청년부회원이고 주인이라는 소속감이 있어야 응원 석에서 손을 흔들며 응원도 하고 뛰어들어 달리기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1.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왜 우리가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가를 찾아보아야 하겠 습니다.
1)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며 고회는 그의 몸이며 우리는 그의 지체라는 것이 바울의 교회관입니다. 바울에게는 젊은 시절에 잊지 못할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 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유대교에 심취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 난 기독교의 뿌리를 조절하기 위해 박해의 선봉장이 되어 다메섹으로 데려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다메섹으로 내려가던 정오 무렵의 일이었습니다. 사울아 사 울아! 그를 부르는 소리에 그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뜰 수 없는 강한 빛 때문에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음 성이 들렸습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했지 예수를 핍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가 여기서 발견한 진리는 교회를 핍박하는 행위는 곧 예수를 핍박하는 행위이며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행위는 곧 예수를 섬기고 사랑하는 행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교회는 한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흔히 예수는 믿고 사랑한다면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제도를 부인하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교회를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예수와 교회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이며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을 사랑하는 것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2) 주님이 교회를 보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9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양은 보호하고 기르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보호하시고 지키 십니다. 그 이유는 주님 자신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고 세웠기 때문입니다. 일 반 빌딩은 돈만 있으면 짓지만 교회는 예수의 피로 세우는 것입니다. 어미 닭이 혼자서 모이를 줍고 있을 때는 약하기 이를데 없지만 병아리를 품고 있을 때는 강한 힘을 발휘하여 새깨를 보호합니다. 하물며 피로 사서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은 교회를 내버려 두시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해치못하 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토록 보양하시는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주님과 맺은 사랑의 관계 때문입니다. 바울은 본문 31절로 33절에서 교회와 주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 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교회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내로 비 유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비유했습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그의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목숨까지 바쳐 사랑을 쏟 아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신랑에게 복종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신약의 교훈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없는 남녀의 만남은 고깃덩어리와 고 깃덩어리의 만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청년부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주님과의 참만남의 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어떻게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까
1) 몸과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헌신을 의미하고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관심을 의미 합니다. 시골 교회의 종치기 장로라는 별명을 가진 장로님이 계셨씁니다. 자녀는 6남매였고 학벌은 국졸이지만 생활은 염려없는 부농이었고 신앙과 행실이 모 범적이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듣는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30년 동안 교회 종을 쳤씁니다. 그 분이 교회 종을 치게 된 것은 교회 장로가 되면서 부터 였습니다. 배운 것이 없어서 주일 학교 아이들을 가르칠 수도 없고 노래를 못하니 찬양대도 할 수 없지만, 종은 힘만 있으면 칠 수 있으니 종을 쳐야겠다고 시작한 것이 30년간 계속된 것입니다. 그는 매일 새벽, 수요일 저녁, 주일낮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여름이나 겨울도 가리지 않고 종치기를 계속했습니다. 75세 되던 어느날 새벽, 그날도 종을 친뒤 기도회에 참석하고 돌 아오더니 뒷복이 뻣뻣하다면서 자리에 우운 채 한 시간만에 세상을 떠났씁니다. 그는 운명전 30년간 자신이 울리던 종을 스물 네번만 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왜 스물 네번을 치라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그는 24장로의 반열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스물 네번의 종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 저 뵈는 본향 집 날마다 가까와"라는 찬송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두 눈을 감았습니다. 장로님이 세상 떠나게 되었다는 급보를 받고 장로님댁으로 달려오고 있던 사람들 가운데 그 장로님이 운명하시는 그 순간 두 줄기 강한 빛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평소 교회를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던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교회 사랑은 몸과 마음을 기울이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 교회에 관심을 기울이고 물질을 바치는 사람과 몸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2)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 때문에 덕보고 이익보려는 사람이 있고 교회 때문에 내가 손해 보려는 사람 이 있습니다. 교회 때문에 이익보려는 사람은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일 수가 없 습니다. 자기집 커튼을 빨면 고회 커튼 생각이 나는 사람, 자기집 페인트를 바 르면 교회 페인트 바르는 일이 생각나는 사람, 내가 손해보고 효회에 유익을 주 려고 하는 사람들이 효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교회를 위하여 눈물 흘 려 기도하고 이 교회를 내 교회로 알고 섬기는 사람이 교횔띵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이 지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완전한 교회를 찾 아 이곳 저곳을 다니는 사람들은 그 어는 솟에서도 완전 무렬한 교회를 찾지 못 할 것입니다. 완전한 교회란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교가 회에 화장지를 납품하는 사람이 있었씁니다. 그는 늘 원가에서 10원을 더 싸게 납품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납품하면서 이익을 남길수는 없기 때문이었 습니다. 그 마음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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