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요2:1-11)
본문
당신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왜 인생에게 행복이 없는가 인생이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누리는 그것이 행복인 것처럼 보이나 그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후일에 받을 멸망의 고통을 모르고 순간에 즐기는 쾌락일 뿐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잠깐 즐기는 쾌락 때문에 영원한 내세를 망각하고 산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당신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부자가 음부의 고통 중에서 부르짖기를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누가복음 16:24)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간구는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에부르짖기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누가복음 16:27-28)고 했습니다. 당신이 기도할 수 있는 기회도 이생뿐입니다. 그러나 이젠 내게 다른 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나는 분명히 예수를 구주로 믿습니다.
그런데 왜 내게는 행복이 없습니까 이것은 당신만의 고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민입니다.
저는 오늘 여기에 대한 해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밖에 있는 세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젠 당신의 모든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갈라디아서 2:20) 꼭 같은 문제이지만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염려할 수도 있고,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로마서 12:3).
그러므로 슬기롭게 살아가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기도를 통하여 영감으로 주어집니다(야고보서 1:5).
그러므로 이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못합니다(히브리서 11:5). 앞서간 선진들이 믿음으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히브리서 11장).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잔치가 한창 흥겨운 때에 포도주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포도주는 유대인에게 주된 음식으로서 특별히 잔치집에서는 기쁨과 행복의 상징입니다. 혼인 잔치는 한 가정의 출발입니다. 출발부터 한 가정의 행복이 깨어지는 어두움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유대 사회를 지배하는 유대교의 비극을 폭로하는 하나의 실극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온 인류의 비극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깨어진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하면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 행복이 깨어진 한 가정을 온전히 세움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이루신 것입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당신도 예수 안에 있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첫째:당신의 중심에 주님이 계시면 모자람이 없습니다. 읽을말씀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1-3) 요즈음 자라나는 세대가 이 비유를 이해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날의 결혼 풍습은 너무도 편리합니다. 그렇게 많은 정성을 드리지 않아도 예식장에서 다 알아서 합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음식점에서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내용과 점촉점을 찾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세대들은 이와 유사한 접촉점이 있었습니다. 잔치는 인륜의 대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래전부터 혼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잔칫날은 그야말로 온 동네가 즐기는 축제입니다. 잔칫집에는 주된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떡국이나 막걸리 같은 것입니다. 주된 음식이 모자라면 집안의 어른들은 대노를 합니다. 잔치를 치르는 것을 보면 그 가정과 그 가문의 품위가 드러납니다.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찬치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릎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생활에 필수 실료품입니다. 특별히 잔치집에서는 주된 음료입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그 잔치집에 기쁨과 즐거움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불행한 잔치집입니다. 오늘로서 한 가정이 시작되는데 이 가정은 실로 불행한 가정입니다. 그 장래와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감도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단순히 한 가정의 불행한 사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구원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유대사회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당시 생명력을 잃어버린 유대교의 실상입니다. 외적으로는 화련한 잔치가 벌여졌으나 내적으로는 포도주가 떨어져 아무런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잔치집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는가 주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에 기쁨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당신의 가정과 사역의 일터와 산업에 포도주가 떨어져 어두운 그림자가 감돌고 있을 때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기쁨을 안겨 줄 것입니다.
둘째:당신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3-8) 저와 여러분은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릎에 포도주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당장에 대취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인이나 연회장이나 손님 중에서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하인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 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실 때는 예수가 메시야시라는 것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이 낳은 기적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먼저 마리아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와 함께 삼십년을 있으면서 그가 메시야라는 증거를 너무도 많이 체험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할 때 성령님으로 잉태함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1:18). 그가 탄생할 때 천군 천사들의 찬송을 잊을 수 없습니다(누가복음 2:13-14). 그는 성장하면서도 강하고 지혜롭고 은혜롭게 자랐습니다(누가복음 2:40) 그가 열두살 때 예루살렘에 가서 선생들과 함께 앉아 변론하는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누가복음 2:49).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가 친히 이 잔치에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인들에게 기적을 위한 순종을 부탁한 것입니다. 다음은 하인들의 순종은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 순종했는가 그들은 주종 관계의 신분을 떠나서 메시야로 믿는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물을 길러 오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결례통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손님의 수족을 씻기 위한 물통이므로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곳입니다. 이젠 잔치가 맞쳐질 무릎인데 여섯 항아리까지 필요 없는데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달라는데 물을 떠서 갖다 주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순종의 사역이 일어킨 복음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은 값싼 허드레물을 값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율법은 결례를 위한 수족을 씻는 의식의 종교이나 복음은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인간 연회장을 중심으로 하여 베푼 잔치집에는 항상 모자람이 있으나 주님이 계신 곳에는 넘치는 풍성함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당신이 섬기는 자로 있을 떄 감격이 있습니다. 읽을말씀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9-11) 여기에 숨은 또 하나의 복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 떠온 하인은 알더라”라는 것입니다. 물 떠온 하인이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가 전보다 더 맛 좋은 포도주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비밀을 깨닫았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이나 연회장들도 어찌할 수 없는 잔칫집의 어두운 그림자를 새로운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유대 전민족이 고대하고 사모하는 메시야를 아무도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 하인들은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은 어떠한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은 섬기는 하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섬김을 받는 연회장이 되겠습니까 연회장은 맛 좋은 포도주를 먹으면서도 포도주를 주신 메시야를 만나지 못한 불행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인은 그 시대에 버림받은 종입니다. 그는 섬기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섬기는 사역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은 물을 나르면서 포도주로 변화된 사건을 체험한 체험적인 신앙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젠 그들에게는 포도주를 맛보는 순간에 감탄하는 연회장이 즐기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항상 기쁨을 잃지 않는 메시야를 말음속에 모셨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섬기는 종교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하인의 신분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된 자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친히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면 모든 범사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당신의 삶이 어떠하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당신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허드레 인생이 값진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맹물 인생이 맛 좋은 포도주 인생이 됩니다. 당신도 하인으로 섬기는 자리에서 수고하면 연회장이 얻지 못하는 기쁨을 얻습니다. 연회장은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에 얻는 기쁨을 가졌지만 하인은 가슴에 기쁨의 샘인 주님을 모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내게는 행복이 없습니까 이것은 당신만의 고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민입니다.
저는 오늘 여기에 대한 해답을 드리고자 합니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밖에 있는 세인들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젠 당신의 모든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갈라디아서 2:20) 꼭 같은 문제이지만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염려할 수도 있고,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로마서 12:3).
그러므로 슬기롭게 살아가는 영적인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기도를 통하여 영감으로 주어집니다(야고보서 1:5).
그러므로 이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못합니다(히브리서 11:5). 앞서간 선진들이 믿음으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히브리서 11장).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잔치가 한창 흥겨운 때에 포도주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포도주는 유대인에게 주된 음식으로서 특별히 잔치집에서는 기쁨과 행복의 상징입니다. 혼인 잔치는 한 가정의 출발입니다. 출발부터 한 가정의 행복이 깨어지는 어두움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당시의 유대 사회를 지배하는 유대교의 비극을 폭로하는 하나의 실극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것은 온 인류의 비극입니다. 에덴동산에서 깨어진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구원 사역을 시작하면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 행복이 깨어진 한 가정을 온전히 세움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는 사역을 이루신 것입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도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행복합니다. 당신도 예수 안에 있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첫째:당신의 중심에 주님이 계시면 모자람이 없습니다. 읽을말씀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1-3) 요즈음 자라나는 세대가 이 비유를 이해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날의 결혼 풍습은 너무도 편리합니다. 그렇게 많은 정성을 드리지 않아도 예식장에서 다 알아서 합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음식점에서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내용과 점촉점을 찾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세대들은 이와 유사한 접촉점이 있었습니다. 잔치는 인륜의 대사입니다.
그러므로 오래전부터 혼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잔칫날은 그야말로 온 동네가 즐기는 축제입니다. 잔칫집에는 주된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떡국이나 막걸리 같은 것입니다. 주된 음식이 모자라면 집안의 어른들은 대노를 합니다. 잔치를 치르는 것을 보면 그 가정과 그 가문의 품위가 드러납니다.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습니다. 찬치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릎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생활에 필수 실료품입니다. 특별히 잔치집에서는 주된 음료입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그 잔치집에 기쁨과 즐거움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불행한 잔치집입니다. 오늘로서 한 가정이 시작되는데 이 가정은 실로 불행한 가정입니다. 그 장래와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가 감도는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복음서에 기록된 것은 단순히 한 가정의 불행한 사건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구원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사건은 당시 유대사회를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당시 생명력을 잃어버린 유대교의 실상입니다. 외적으로는 화련한 잔치가 벌여졌으나 내적으로는 포도주가 떨어져 아무런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잔치집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는가 주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에 기쁨을 주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당신의 가정과 사역의 일터와 산업에 포도주가 떨어져 어두운 그림자가 감돌고 있을 때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기쁨을 안겨 줄 것입니다.
둘째:당신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3-8) 저와 여러분은 어두움을 밝히는 빛의 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잔치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릎에 포도주가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것은 당장에 대취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인이나 연회장이나 손님 중에서도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때 마리아가 하인들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 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실 때는 예수가 메시야시라는 것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종이 낳은 기적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먼저 마리아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와 함께 삼십년을 있으면서 그가 메시야라는 증거를 너무도 많이 체험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할 때 성령님으로 잉태함을 받았습니다(마태복음 1:18). 그가 탄생할 때 천군 천사들의 찬송을 잊을 수 없습니다(누가복음 2:13-14). 그는 성장하면서도 강하고 지혜롭고 은혜롭게 자랐습니다(누가복음 2:40) 그가 열두살 때 예루살렘에 가서 선생들과 함께 앉아 변론하는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누가복음 2:49).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가 친히 이 잔치에 잃어버린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분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인들에게 기적을 위한 순종을 부탁한 것입니다. 다음은 하인들의 순종은 놀라운 믿음입니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 순종했는가 그들은 주종 관계의 신분을 떠나서 메시야로 믿는 믿음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물을 길러 오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결례통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손님의 수족을 씻기 위한 물통이므로 포도주를 담을 수 없는 곳입니다. 이젠 잔치가 맞쳐질 무릎인데 여섯 항아리까지 필요 없는데 아구까지 채웠습니다. 그리고 포도주를 달라는데 물을 떠서 갖다 주는 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순종을 통해서 역사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순종의 사역이 일어킨 복음의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은 값싼 허드레물을 값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율법은 결례를 위한 수족을 씻는 의식의 종교이나 복음은 사람의 마음에 기쁨을 주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인간 연회장을 중심으로 하여 베푼 잔치집에는 항상 모자람이 있으나 주님이 계신 곳에는 넘치는 풍성함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당신이 섬기는 자로 있을 떄 감격이 있습니다. 읽을말씀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9-11) 여기에 숨은 또 하나의 복음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 떠온 하인은 알더라”라는 것입니다. 물 떠온 하인이 무엇을 알았다는 것인가 전보다 더 맛 좋은 포도주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이 있는 비밀을 깨닫았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이나 연회장들도 어찌할 수 없는 잔칫집의 어두운 그림자를 새로운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유대 전민족이 고대하고 사모하는 메시야를 아무도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 하인들은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제 당신은 어떠한 사람이 되겠는가 당신은 섬기는 하인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섬김을 받는 연회장이 되겠습니까 연회장은 맛 좋은 포도주를 먹으면서도 포도주를 주신 메시야를 만나지 못한 불행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인은 그 시대에 버림받은 종입니다. 그는 섬기는 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섬기는 사역을 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은 물을 나르면서 포도주로 변화된 사건을 체험한 체험적인 신앙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젠 그들에게는 포도주를 맛보는 순간에 감탄하는 연회장이 즐기는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항상 기쁨을 잃지 않는 메시야를 말음속에 모셨던 것입니다. 기독교는 섬기는 종교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하인의 신분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고 했습니다. 그래서 스승된 자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친히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살면 모든 범사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당신의 삶이 어떠하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당신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허드레 인생이 값진 포도주로 변화됩니다. 맹물 인생이 맛 좋은 포도주 인생이 됩니다. 당신도 하인으로 섬기는 자리에서 수고하면 연회장이 얻지 못하는 기쁨을 얻습니다. 연회장은 포도주를 마시는 순간에 얻는 기쁨을 가졌지만 하인은 가슴에 기쁨의 샘인 주님을 모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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