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후회하시렵니까? (호2:2-13)
본문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필리핀 말을 하나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와람히야"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까 이 말 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장 수치를 느끼게 하는 욕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자 다시 한 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따라해 보겠습니다. "와람히야" 이 말의 뜻은 "은혜를 갚지 못하고도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개만도 못한 놈 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한자로 표현을 한다면 배은망덕한 놈 이라고 표현을 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삶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배은망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또 본의 아니게 우리 스스로 배은망 덕한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기도 합니다. 전래 동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나그네가 길을 가고 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큰 웅덩이에 빠져 서 살려달라고 호소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그네는 그 호랑이가 안스러워 온힘을 다해 그 호랑이를 살려줍니다. 그랬더니 적반하장으로 자신이 웅덩이에서 며칠을 굶었으니 이 나그네를 잡아먹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황한 이 나그네는 기왕 죽을 바엔 재판이나 받고 죽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재판이 벌어졌습니다. 먼저 1심에서 까마귀 가 판결을 하기를 호랑이가 나그네를 잡아먹어도 된다는 판결을 내립니다. 2심에서 여우도 역시 같은 판결을 내립니다. 3심을 맡은 토끼는 자신은 그냥 판결을 내릴 수 없고 현장 검증을 해 보아야 하겠으니다시 그 웅덩이로 들어가 보라고 합니다. 이에 호랑이는 웅덩이로 들어갔고 그사이 토끼는 그 나그네를 도망치게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배은 망덕한 인간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이 호랑이는 제가 될 수도 있고 여러분들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은 사실 웅덩이에 빠진 호랑이와 같은 신세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망의 웅덩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주님은 건져 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들 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구원을 입은 자로서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 받은 은혜를 갚기에 힘을 기울이는 여러분 들이십니까 아니면 은혜를 저버린 여러분들은 혹 아니십니까 혹 우리들 가운데 천사들로부터 "와람히야"하는 욕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이제 이 시간 오늘 본문을 통해 과연 나는 어떠한가 나에게는 배은 망덕한 요소가 없는가를 함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묻어 두었던 호세아 우리는 지난 시간에 호세아가 자신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말씀 중에 호세아를 가장 당황스럽 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런 하나님의 요구에 모든 당황스러움을 가슴에 묻어두고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이 고멜이라는 여인은 잠 시 즐길 수 있는 상대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결혼 상대자로는 부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예식에 있어서 누가 감격하겠습니 까 그렇습니다. 고멜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다 덮어 둔 채 자신의 인생에 새 길을 열어준 이 호세아가 너무나 고맙 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새로운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얼 마간은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과 같이 고멜 은 다시 음란한 길로 가기를 시작을 합니다. 고멜이 누구누구와 가깝게 지낸다더라는 소문이 들리기를 시작합니다. 호세아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수군데고 지나갑니다. 가족들도 이 일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 때 호세아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와람히야 라는 욕설이 그의 입에서 나올만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상황이 이런 호세아의 경험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쟁론하라 쟁론하라 2절은 이런 호세아의 격앙된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무엇이라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너희 어 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미와 변론해 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도 되는 지 한 번 이야기 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어미를 빈 털털이로 있을 때 아무도 혼인 상대로 생각지 않을 때 버 려진 인생을 살아갈 때 나의 신부로 맞이하고 정성을 다했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가 얼 마나 화가 났던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다. 나 또한 저의 남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호세아의 외 침은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외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스라엘 백성들의 처지 역시 고멜과 같은 처 지였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처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그 나던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 날 어떠했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벌거벗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를 에스겔 16장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겔 16:4-5]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 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 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었었느니라 처량한 신세 이 구절들이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는 어떠합니까 배꼽 줄을 잘라 줄 사람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물로 씻어 정결케 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소금을, 여기서 말하는 소금은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당시 속독을 위해서 소 금을 뿌렸는데 그 일을 해 줄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보십시다. 강보에 쌓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저가 태어날 때 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 나 태어났던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진 일이 있다 하더라 도 아이에게는 온정이 베풀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달랐습니다. 아무런 온정도 베풀어지지 않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문제는 여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다. 들에 버려졌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이가 탯줄도 제대로 잘려지지 않은 채 목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강보에 쌓이 지도 못한 채 버려진 이 모습,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 아이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이 없는 이 처량한 모습,
그렇다면 이 아이의 앞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는 일과 죽는 일일 것입니다. 그 야말로 죽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버려져 죽음을 기다리는 이 가련한 신세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세였습니다. 우리들도 그러나 이것은 저들만의 신세가 아니였습니다. 사실 우리들도 이런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우리들의 허물로 말미암 아 버려진 신세였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갖고 살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마치 버려진 아이처럼 세상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들의 영혼을 책임질 수 없었으며 다른 여느 사람들도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서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사망을 향해 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지에 선명한 광채가 비취기 시작합니다. [겔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 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 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자 여기에 비춰진 광채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네가 살라 비록 피투성이일 지라도 살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비록 네가 지금은 보잘 것이 없 고 가련하지만 내가 개입하기만 하면 너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지 가 가련한 인생을 뒤바꾸고 맙니다. 이 하나님의 의지가 모든 소망을 끊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버려진 아이에게 머물 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사실입니다. 우리들도 영원한 멸망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었습니다. 이 멸망이라는 열차를 누구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제 모두 포기한 채 죽을 일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지 가 개입하기 시작을 하더니 열차가 멈추어지고 드디어는 곳곳에서 이제는 살았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을 합니다. 바 로 이것이 우리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계속 에스겔서의 말씀을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겔 16:7] 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 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띄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 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14] 네 화려 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 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단순히 살아나는 일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생기고 입을 것이 생깁니다. 부귀와 영화가 생깁니다. 드디어는 드디어는 왕후의 지위에 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을 것입니다. 버려진 아이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죽어 가는 멸시받는 인생에서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여자의 운명은 남자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간혹 남편을 잘 만나서 출세하는 여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들은 행운을 잡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행운을 잡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과 혼인을 맺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행운으로 여겨지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으로 여겨지십니 까
그렇다면 한 번 여쭈어 보십시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바로 이 에스겔에서 말하고 있는 이 행운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이 시대의 가장 큰 행운을 얻은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행운을 잡은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어쩌다 일확천금을 주은 사람도 아니고 든든한 배경이 있어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행운을 잡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이런 자격을 얻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행운아들인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그런데 15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어떻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러나라는 말에서 뭔가 문제가 있음이 감지되어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겔 16:15] 그러나 네가 네 화려 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 다 자기도취에 빠진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잘나서 모든 것들이 이렇게 된 줄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 신의 남편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을 다 주어버리고 맙니다. [겔 16:16]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 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17]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18] 또 네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19]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보십시오. 이 여인이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신랑에게 있 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랑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다 보니 실증이 나고만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오늘 본문 5절은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다. "" 5절을 보면 저가 이르기를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서의 저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입고 행운을 잡은 여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오. 그가 무엇이라 말합니까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겠노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나를 연애하던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신랑일까요 아닙니다. 신랑이 모든 사랑으로 이 여인을 가꾸고 나니 아름 다워졌습니다. 그랬더니 주변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을 합니다. 연애하기를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제 의를 합니다. 당신의 남편을 버려라 그는 너를 더 이상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에게는 지금까지 네가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가지고있다. 자 내가 이제부터 너를 입혀주고 먹여주고 호강을 시켜 줄 것이다. 참 멋진 제안입니다. 바로 우리들이 읽고 있는 5절이 그런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런 재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사님 이상한 것을 물어 보시네요. 저는 절대로 따 라가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부귀영화는 좀 탐이 나지만 도의상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 게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아마 여러분 같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 일은 도의 상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만 그 길로 따라나서고 맙니다. 자신에게 주어졌던 은혜를 일순간에 다 잊어버리고 쫓아가기 시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닌 세상이 저들을 향해 미소를 던지고 다가올 때 저들을 뿌리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만 거기에 매력을 느끼고 세상을 따라나서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대하면서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세상은 끊임없이 달콤한 속삭임으로 유혹을 합니다. 예수를 믿어봤자 뭐가 좋으냐 아무개 집 사를 봐라 예수 믿고 좋아진게 뭐 있느냐 너도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다 한번 나를 따라나서 봐라 네 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주겠다. 자 따라나서라 나서라고 속삭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아마 지난 한 주 동안에도 수 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 을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반응은 어떠하셨습니까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셨습니까 예, 일언지하에 거절을 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참 잘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심을 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이 일에 있어서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나를 유혹하는 일에 있어서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달려듭니다. 여러분 사단의 철학이 무엇 인줄 아십니까 열번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라 가 아닙니다. 넘어 갈 때 까지 찍 겠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10번은 고사하고 100번 1000번 수없이 찍어됩니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숨을 쉬면 어느 틈엔가 미소를 뛰면서 내 옆에서 유혹을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넘어지지 않습니까 아마 이 중에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수 없이 넘어진 경험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온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좀 전에 혹 여러분들에게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유혹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대부분의 분 들은 그럴 수 없지요 하고 대답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 의 영적인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럴 수 없는 그 일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들을 유혹할 때 왜 단호하게 거절을 하지 못하십니까 얼마간의 재물이 탐 이 나서 입니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두려워서 입니까
그렇다면 한번 여쭈어 보십시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것들보다 더 귀하단 말입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여겨지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제가 말린다고 될 일입니까 세상이 좋은 목사가 아무리 쫓아가서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 겠지요. 아마 그럴 땐 목사도 귀찮을 것입니다. 아니 목사는 고사하고 주님이 찾아가고 귀찮을 것입니다. 그저 세상 만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의 심방도 귀찮고 전화도 귀찮습니다. 간혹 아이들이 선물을 사 들고 들어가 선물을 감춘 채 아이들을 불러모습니다. 그러면 어떤 줄 아십니까 혹 지들 이 재미있는 놀이나 일들을 하고 있었을 량이면 귀찮고 싫습니다. 그래서 짜증스러운 얼굴로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응 합니다. 얼마나 우습습니까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일 밖에 보지 못하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혹 요 즘 여러분들의 모습도 바로 이와 같지 않습니까 삶의 순간 순간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찾아가셔서 여러분들을 부르시 면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귀찮고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엔 처방 약이 따로 없습니다. 어 쩔 수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고 보는 수 밖에는요. 하나님의 막아서심
그런데 여러분 6절을 보십시다.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막아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연애하는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서시기 시작 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서시기 시작을 합니다. 또 8-9절을 보십시다.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도로 찾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인에게 준 것을 다 도로 찾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벌거숭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다 남편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다. .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예, 처음과 같이되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의 처음이 어떠했는가 다시 한 번 상기해 볼까요 [겔 16:4-5]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었었느니라 자 다시 이렇게 버려진 처량한 신세로 돌아갈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0절을 보십시다. .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수치를 드러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또 11절을 보십시다. 명절을 없앨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즉, 기쁨을 없앨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2절은 황무하게 될 것 이라 말씀하십니다. 13절은 벌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처량한 신세가 된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주시 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에는 크게 두가 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것들입니다. 즉,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믿는 자들만 특별하 게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제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저희 교우들 중에 새롭게 개업을 하신 분들도 있고 또 개업을 하려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업을 하실 때면 저를 불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 르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개업 예배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꼭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는 것도 저의 솔직한 고민입니다. 여러분 왜 개업 예배를 드리는지 좀 가르쳐 주시겠습 니까 아니 개업 예배 뿐 아니라 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시고 기도를 요청하기도 하고 예배를 요청하기도 합니까 그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뭣때문입니까 제 생각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자 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맞는 이 야기입니까
그렇다면 은혜를 입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와주신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요.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지요.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저는 무엇이라 기도해야 할까요 이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무엇이라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목회자 가 되었다면 무엇이라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분 부탁입니다. 제 고민 좀 들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좀 더 풍성 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좀 해 주십시오.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은 은혜를 잊어버렸습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저들의 길을 막아서십니다. 그리고 저들을 깨 닫게 하십니다.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여인의 반응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습니까 예, 예전이 더 좋 았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것은 참 괜찮은 일입니다. 모든 것들을 다 잃었어도 돌아왔으니까요 우리 성경 한 절을 볼까요 히 12:8절 말씀입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다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자 이 구절은 그래도 징계 가 있는 것이 더 행복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어떻다고요 그렇습니다. 사생자고 참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대도 잘 되더라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저주도 그런 저주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지요 그렇습니다. 사생아니까 그런 것입니다. 혹 여러분 요즘 여러분들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잘 되면 심각하게 여러분들의 문제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내가 참 아들인가 아닌가를요. 참 아들이라면 징계를 하실 것입니다. 막아서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말하게 하 실 것입니다.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도 이런 후회를 하시렵니까 은혜를 저버린 삶은 세상과 짝하는 삶은 언젠가는 이렇게 후 회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해야 하는 대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돌아서십시오. 돌아서는 것도 기회가 늦어져 버리면 송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장 원통 하고 비통한 눈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부모가 자식을 잃고 우는 눈물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원통하고 비통한 눈 물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면 고개를 흔드시면서 난 자넬 모르겠는 걸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은 사실 웅덩이에 빠진 호랑이와 같은 신세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사망의 웅덩이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들을 주님은 건져 주셨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들 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구원을 입은 자로서 은혜를 입은 자로서 그 받은 은혜를 갚기에 힘을 기울이는 여러분 들이십니까 아니면 은혜를 저버린 여러분들은 혹 아니십니까 혹 우리들 가운데 천사들로부터 "와람히야"하는 욕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이제 이 시간 오늘 본문을 통해 과연 나는 어떠한가 나에게는 배은 망덕한 요소가 없는가를 함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슴에 묻어 두었던 호세아 우리는 지난 시간에 호세아가 자신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수많은 질문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말씀 중에 호세아를 가장 당황스럽 게 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런 하나님의 요구에 모든 당황스러움을 가슴에 묻어두고 고멜이라는 음란한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이 고멜이라는 여인은 잠 시 즐길 수 있는 상대는 될 수 있었을지언정 결혼 상대자로는 부적합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예식에 있어서 누가 감격하겠습니 까 그렇습니다. 고멜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다 덮어 둔 채 자신의 인생에 새 길을 열어준 이 호세아가 너무나 고맙 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새로운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리라는 다짐을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얼 마간은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과 같이 고멜 은 다시 음란한 길로 가기를 시작을 합니다. 고멜이 누구누구와 가깝게 지낸다더라는 소문이 들리기를 시작합니다. 호세아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수군데고 지나갑니다. 가족들도 이 일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 때 호세아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와람히야 라는 욕설이 그의 입에서 나올만 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상황이 이런 호세아의 경험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쟁론하라 쟁론하라 2절은 이런 호세아의 격앙된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무엇이라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너희 어 미와 쟁론하고 쟁론하라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미와 변론해 보라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해도 되는 지 한 번 이야기 해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어미를 빈 털털이로 있을 때 아무도 혼인 상대로 생각지 않을 때 버 려진 인생을 살아갈 때 나의 신부로 맞이하고 정성을 다했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가 얼 마나 화가 났던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내 아내가 아니다. 나 또한 저의 남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호세아의 외 침은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외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스라엘 백성들의 처지 역시 고멜과 같은 처 지였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의 처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 습니다. 그 나던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 날 어떠했다고 말합니까 그렇습니다. 벌거벗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를 에스겔 16장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겔 16:4-5]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 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 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었었느니라 처량한 신세 이 구절들이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는 어떠합니까 배꼽 줄을 잘라 줄 사람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물로 씻어 정결케 해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소금을, 여기서 말하는 소금은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당시 속독을 위해서 소 금을 뿌렸는데 그 일을 해 줄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또 보십시다. 강보에 쌓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저가 태어날 때 저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 나 태어났던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진 일이 있다 하더라 도 아이에게는 온정이 베풀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달랐습니다. 아무런 온정도 베풀어지지 않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문제는 여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5절을 보십시다. 들에 버려졌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이가 탯줄도 제대로 잘려지지 않은 채 목욕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강보에 쌓이 지도 못한 채 버려진 이 모습,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 아이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이 없는 이 처량한 모습,
그렇다면 이 아이의 앞길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는 일과 죽는 일일 것입니다. 그 야말로 죽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버려져 죽음을 기다리는 이 가련한 신세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세였습니다. 우리들도 그러나 이것은 저들만의 신세가 아니였습니다. 사실 우리들도 이런 처량한 신세였습니다. 우리들의 허물로 말미암 아 버려진 신세였습니다. 우리들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갖고 살피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마치 버려진 아이처럼 세상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들의 영혼을 책임질 수 없었으며 다른 여느 사람들도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서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사망을 향해 가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지에 선명한 광채가 비취기 시작합니다. [겔 16:6] 내가 네 곁으로 지나 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 도 살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고 자 여기에 비춰진 광채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네가 살라 비록 피투성이일 지라도 살라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비록 네가 지금은 보잘 것이 없 고 가련하지만 내가 개입하기만 하면 너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지 가 가련한 인생을 뒤바꾸고 맙니다. 이 하나님의 의지가 모든 소망을 끊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버려진 아이에게 머물 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사실입니다. 우리들도 영원한 멸망을 향해 달음질하고 있었습니다. 이 멸망이라는 열차를 누구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제 모두 포기한 채 죽을 일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지 가 개입하기 시작을 하더니 열차가 멈추어지고 드디어는 곳곳에서 이제는 살았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을 합니다. 바 로 이것이 우리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계속 에스겔서의 말씀을 살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겔 16:7] 내가 너로 들의 풀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오 히려 벌거벗은 적신이더라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며 네게 기름을 바르고 [10]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띄우고 명주로 덧입히고 [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드리우고 [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 를 귀에 달고 화려한 면류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명주와 수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나아갔느니라 [14] 네 화려 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 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단순히 살아나는 일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살아날 뿐만 아니라 먹을 것이 생기고 입을 것이 생깁니다. 부귀와 영화가 생깁니다. 드디어는 드디어는 왕후의 지위에 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을 것입니다. 버려진 아이에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죽어 가는 멸시받는 인생에서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처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여자의 운명은 남자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간혹 남편을 잘 만나서 출세하는 여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들은 행운을 잡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행운을 잡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과 혼인을 맺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행운으로 여겨지십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행운으로 여겨지십니 까
그렇다면 한 번 여쭈어 보십시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바로 이 에스겔에서 말하고 있는 이 행운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한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이 시대의 가장 큰 행운을 얻은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행운을 잡은 사람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어쩌다 일확천금을 주은 사람도 아니고 든든한 배경이 있어서 출세의 가도를 달리는 사람도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행운을 잡은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이런 자격을 얻은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엄청난 행운아들인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이스라엘
그런데 15절의 말씀을 보십시다. 어떻게 시작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 그러나라는 말에서 뭔가 문제가 있음이 감지되어집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겔 16:15] 그러나 네가 네 화려 함을 믿고 네 명성을 인하여 행음하되 무릇 지나가는 자면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 다 자기도취에 빠진 것입니다. 마치 자신이 잘나서 모든 것들이 이렇게 된 줄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 신의 남편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들을 다 주어버리고 맙니다. [겔 16:16] 네가 네 의복을 취하여 색스러운 산당을 너 를 위하여 만들고 거기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17] 네가 또 나의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18] 또 네 수놓은 옷으로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으로 그 앞에 베풀며 [19]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보십시오. 이 여인이 이렇게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신랑에게 있 었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랑의 사랑을 끊임없이 받다 보니 실증이 나고만 것입니다. 이 모습을 오늘 본문 5절은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다. "" 5절을 보면 저가 이르기를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저는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서의 저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입고 행운을 잡은 여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오. 그가 무엇이라 말합니까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겠노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나를 연애하던 자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신랑일까요 아닙니다. 신랑이 모든 사랑으로 이 여인을 가꾸고 나니 아름 다워졌습니다. 그랬더니 주변의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을 합니다. 연애하기를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는 이런 제 의를 합니다. 당신의 남편을 버려라 그는 너를 더 이상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나를 따라오너라 나에게는 지금까지 네가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가지고있다. 자 내가 이제부터 너를 입혀주고 먹여주고 호강을 시켜 줄 것이다. 참 멋진 제안입니다. 바로 우리들이 읽고 있는 5절이 그런 제안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이런 재안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목사님 이상한 것을 물어 보시네요. 저는 절대로 따 라가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부귀영화는 좀 탐이 나지만 도의상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 게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아마 여러분 같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그 일은 도의 상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만 그 길로 따라나서고 맙니다. 자신에게 주어졌던 은혜를 일순간에 다 잊어버리고 쫓아가기 시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닌 세상이 저들을 향해 미소를 던지고 다가올 때 저들을 뿌리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만 거기에 매력을 느끼고 세상을 따라나서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대하면서 대단히 외람된 말씀이지만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세상은 끊임없이 달콤한 속삭임으로 유혹을 합니다. 예수를 믿어봤자 뭐가 좋으냐 아무개 집 사를 봐라 예수 믿고 좋아진게 뭐 있느냐 너도 예수를 믿으면 그렇게 밖에 될 수 없다 한번 나를 따라나서 봐라 네 가 지금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주겠다. 자 따라나서라 나서라고 속삭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이런 이야기들을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아마 지난 한 주 동안에도 수 없이 이런 이야기를 들었 을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들의 반응은 어떠하셨습니까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셨습니까 예, 일언지하에 거절을 한 분도 계실 것입니다. 참 잘 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안심을 하지 마십시오. 사단은 이 일에 있어서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나를 유혹하는 일에 있어서는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달려듭니다. 여러분 사단의 철학이 무엇 인줄 아십니까 열번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라 가 아닙니다. 넘어 갈 때 까지 찍 겠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10번은 고사하고 100번 1000번 수없이 찍어됩니다. 이제는 괜찮겠지 하고 숨을 쉬면 어느 틈엔가 미소를 뛰면서 내 옆에서 유혹을 합니다. 이럴 때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십니까 넘어지지 않습니까 아마 이 중에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수 없이 넘어진 경험들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온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좀 전에 혹 여러분들에게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유혹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노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대부분의 분 들은 그럴 수 없지요 하고 대답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 의 영적인 모습은 어떠하십니까 은혜를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럴 수 없는 그 일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들을 유혹할 때 왜 단호하게 거절을 하지 못하십니까 얼마간의 재물이 탐 이 나서 입니까 사람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두려워서 입니까
그렇다면 한번 여쭈어 보십시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베푸신 것들보다 더 귀하단 말입니까 좋습니다. 그렇게 여겨지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제가 말린다고 될 일입니까 세상이 좋은 목사가 아무리 쫓아가서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 겠지요. 아마 그럴 땐 목사도 귀찮을 것입니다. 아니 목사는 고사하고 주님이 찾아가고 귀찮을 것입니다. 그저 세상 만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의 심방도 귀찮고 전화도 귀찮습니다. 간혹 아이들이 선물을 사 들고 들어가 선물을 감춘 채 아이들을 불러모습니다. 그러면 어떤 줄 아십니까 혹 지들 이 재미있는 놀이나 일들을 하고 있었을 량이면 귀찮고 싫습니다. 그래서 짜증스러운 얼굴로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응 합니다. 얼마나 우습습니까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일 밖에 보지 못하는 이 아이들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혹 요 즘 여러분들의 모습도 바로 이와 같지 않습니까 삶의 순간 순간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찾아가셔서 여러분들을 부르시 면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귀찮고 부담스럽지 않습니까 여기엔 처방 약이 따로 없습니다. 어 쩔 수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두고 보는 수 밖에는요. 하나님의 막아서심
그런데 여러분 6절을 보십시다.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막아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연애하는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나서시기 시작 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서시기 시작을 합니다. 또 8-9절을 보십시다.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도로 찾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여인에게 준 것을 다 도로 찾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벌거숭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들은 다 남편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십시다. .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예, 처음과 같이되게 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여인의 처음이 어떠했는가 다시 한 번 상기해 볼까요 [겔 16:4-5] 너의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케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너를 돌아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긍휼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네가 들에 버리었었느니라 자 다시 이렇게 버려진 처량한 신세로 돌아갈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10절을 보십시다. .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수치를 드러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또 11절을 보십시다. 명절을 없앨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즉, 기쁨을 없앨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2절은 황무하게 될 것 이라 말씀하십니다. 13절은 벌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처량한 신세가 된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일입니다. 사실 우리들에게 있는 것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주시 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에는 크게 두가 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것들입니다. 즉,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믿는 자들만 특별하 게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 빼앗아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즘 제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저희 교우들 중에 새롭게 개업을 하신 분들도 있고 또 개업을 하려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개업을 하실 때면 저를 불러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 르겠습니다. 따라서 이런 개업 예배 설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꼭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는 것도 저의 솔직한 고민입니다. 여러분 왜 개업 예배를 드리는지 좀 가르쳐 주시겠습 니까 아니 개업 예배 뿐 아니라 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를 부르시고 기도를 요청하기도 하고 예배를 요청하기도 합니까 그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뭣때문입니까 제 생각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자 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맞는 이 야기입니까
그렇다면 은혜를 입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와주신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렇지요.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지요.
그런데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저는 무엇이라 기도해야 할까요 이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무엇이라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목회자 가 되었다면 무엇이라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분 부탁입니다. 제 고민 좀 들어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이 좀 더 풍성 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좀 해 주십시오.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은 은혜를 잊어버렸습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저들의 길을 막아서십니다. 그리고 저들을 깨 닫게 하십니다.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 여인의 반응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습니까 예, 예전이 더 좋 았다는 것입니다. 과거가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것은 참 괜찮은 일입니다. 모든 것들을 다 잃었어도 돌아왔으니까요 우리 성경 한 절을 볼까요 히 12:8절 말씀입니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다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자 이 구절은 그래도 징계 가 있는 것이 더 행복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에게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어떻다고요 그렇습니다. 사생자고 참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대도 잘 되더라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저주도 그런 저주가 있을 수 없습니다. 왜지요 그렇습니다. 사생아니까 그런 것입니다. 혹 여러분 요즘 여러분들이 은혜를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데도 잘 되면 심각하게 여러분들의 문제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내가 참 아들인가 아닌가를요. 참 아들이라면 징계를 하실 것입니다. 막아서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렇게 말하게 하 실 것입니다.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도 이런 후회를 하시렵니까 은혜를 저버린 삶은 세상과 짝하는 삶은 언젠가는 이렇게 후 회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들은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해야 하는 대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으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돌아서십시오. 돌아서는 것도 기회가 늦어져 버리면 송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장 원통 하고 비통한 눈물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부모가 자식을 잃고 우는 눈물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원통하고 비통한 눈 물은 내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면 고개를 흔드시면서 난 자넬 모르겠는 걸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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