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해방의 기쁨이 있는가 ? (롬8:1-2)
본문
1945년 8월15일 우리나라는 36년간의 일본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54년 전 8월15일 이 땅에는 해방의 자유와 기쁨 속에서 온 국민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거리로 나와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보기만 해도 흉측했던 일장기는 사라졌고 서슬이 퍼렇던 일본 순사와 헌병들의 모습도 사라졌다. 거리에 일본어 간판들도 모두 사라졌다. 36년간이라는 참으로 긴 고통을 우리 민족은 겪었다. 그 고통이 너무나도 컸기에 8.15의 해방의 자유와 기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54년이 지난 지금 이 민족은 과연 그 해방의 자유와 기쁨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요 잊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본 문화가 물밀듯이 이 땅에 들어오고 있다. 일본 노래와 만화가 판을 치더니 이제 영화까지 이 땅에 들어오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본 제품 수입 개방으로 전자 제품 상가에 일본 제품을 사겠다는 사람들로 북대고 있다 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영적 세계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의 마귀의 종이 되어 살아왔다. 그러나
2,000년 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시므로 인류에게 해방과 자유와 기쁨을 주셨다. 우리 민족이 8.15의 해방의 기쁨을 맞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원수 마귀로부터 영적 해방을 얻은 자들이다.
그런데 이 기쁨과 감격이 지금 우리에게 과연 있습니까 이 민족이 일본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잊어버리고 사단의 것을 다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8.15 광복 주일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영적 해방의 기쁨을 기억하고 이 자유와 해방을 절대로 놓치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죄에서 해방되었다. = 2절
이 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에덴 동산에 부터 시작되었다. 누가 죄를 가져 왔는가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만들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인간은 테어나면서 부터 원죄를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이 죄를 해방시켜주시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죄 =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다. 해방 = 완전한 자유를 뜻한다. 이 죄를 인간 스스로 벗어버리고 해방을 얻을 수 있는가 인간 스스로는 이 죄의 사슬을 끓을 수 없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나라가 스스로 일본을 이겨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 운동 하다가 붙잡혀 죽었다. 그러나 미국이 여기에 개입해서 히로시마에다가 원자폭탄 하나 떨어뜨리니까 일본이 단번에 항복하였다. 성도 여러분 ! 우리 힘으로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려고 하면 할 수록 우리는 더욱 사단의 올무에 잡히고 만다.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속에 있는 이 죄악의 법을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끓을 수 없다. 사도 바울도 (롬7:21-24)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우리도 이 죄 앞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할 수밖에 없는 자다. 이 죄의 문제만 혜결되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떳떳히 설 수 있겠습니까 " 아버지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 "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송구함으로 죄스러운 마음으로 나와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이 땅에 해방의 자유와 기쁨이 찾아 왔는데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모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일장기를 무서워하고 일본 사람들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인가 ! 우리가 영적으로 그런 꼴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었는데도 우리가 아직도 이 죄악에 매여서 사단에게 눌림을 받고 있다면 예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워 하겠는가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외치신 소리는 인류에게 죄의 해방의 소식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죄의 해방의 기쁨이 없는 것입니까 피 뿌림의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사함이 없느니라 " (요6:5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십자가 밑에서 우리의 죄가 온전히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죄의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어떤 죄라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죄를 해방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죄의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다시는 식민지 국가로 삼을 수 없듯이 사단의 권세도 그 어떤 죄악도 나를 죄의 포로로 다시 삼을 수 없다.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해방을 선언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 안에 살아가는 자는 자유인이다. (눅4:18)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해방과 자유를 주었는데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누가 잘못 된 것입니까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예수 외에 그 어떤 누구도 나의 죄로 인해서 정죄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성도 여러분! 죄의 종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죄의 종은 곧 사단의 종이다. 죄에서 해방된 자는 이제 의의 종으로 살아야 된다. (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6:19)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죄에 해방의 기쁨을 깨달을 자는 의의 종으로 살아간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참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죄의 해방의 기쁨이 주님 오시는 그 순간까지 계속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사망에서 해방되었다. = 2절
사망이 왜 우리에게 찾아 왔습니까 죄 때문에 인간에게 사망이 찾아왔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롬6:23) 그러나 이 사망 권세가 예수로 인해 완전히 깨트려졌다. 누구든지 예수로 인해 사망의 해방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망 = 육의 호흡이 끝나는 곧 죽음을 뜻한다 인간의 가장 큰 공포는 죽음이다. 이 죽음 앞에 어느 누구도 자유함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얻은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느 누가 이 사망 권세 앞에서 의연해 질 수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 굴복하게 된다. 세상에 권세자도 천하 장사도 죽음 앞에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예수 또한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위대한 성인들과 다르게 사망 권세 이기시고 성경에 예언대로 3일 만에 무덤을 깨뜨리시고 부활 하셨다.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 사단의 사망 권세는 이미 십자가에서 무너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 권세가 확실하게 무너졌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예수 안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다. 성도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직도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한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가 해방되었다는 이 비밀을 깨닫는 자는 사망이 두렵지 않다. 우리에게는 사망이 두 가지가 있다. 육신이 죽는 사망과 영혼이 죽는 사망이 있다. 영혼의 사망은 사람의 영혼이 지옥에 가는 것을 말한다.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사단의 사망 권세는 우리의 육은 죽일지 몰라도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죽이지 못한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사도 바울은 이미 이 비밀을 깨닫는 자였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바울은 소리 칠 수 있었다. (고전15:55) 사망아 !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다시 말해서 사망의 권세야 와 보라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사를 보더라도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은 조금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거나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안했다 . 우리는 주기철 목사님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 장남 주영진 전도사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주영진 전도사도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 못지않게 신사참배를 반대했다. 주기철 목사가 해방을 1년 앞두고 순교하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평양 긴재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북한을 접수한 공산당은 모든 교회에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를 걸도록 강요했다. 이 말을 들은 주 전도사는 오히려 사진을 들고 온 보안 서원을 혼쭐을 내서 쫓아 보냈다. 또한번은 인민 공화국 위원 선거일이 46년11월3일 주일 날이었는데 주 전도사는 주일 성수를 지켜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투표를 못하게 했다. 형사가 찾아와서 갖은 협박을 다 했지만 주 전도사는 굽히지 안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선거가 아닙니다. 거룩한 주일을 다른 일로 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형사가 "그러면 저녁 예배까지 본 뒤 투표를 하시오 " 주 전도사는 "밤이나 낮이나 주일은 주일입니다 " 거절했다. 1950년 6월24일 북한 공산당은 당에 비협조적인 인사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도들로부터 피할 것을 권유받은 주영진 전도사는 "나만 살겠다고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생사는 주님이 주관하십니다." 이 소식이 주기철 목사 사모 오정모 사모에게 전해졌다. 이때 오정모 사모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주기철목사를 순교의 제물로 받으시더니 이제는 그 아들까지 허락하시려고 합니까 한없는 영광을 드립니다. 다만 아들에게 어떠한 환경에도 변치않는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 지금 살아계시는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님은 이런 말을 했다 "형님은 참으로 의연하고 신앙이 곧은 형님이었습니다 " 32세의 젊은 나이로 공산당의 총탄에 순교한 주영진 전도사 그 분은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사망의 해방의 비밀은 안 자였다 성도 여러분 ! 왜 우리가 죽음이 두렵고 죽음 앞에서 비겁해집니까 육신의 생각이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의 생각을 하면 오히려 평강이 임하고 진실로 귀한 생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의연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내세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주님 나라는 사암이 없고 눈물과 애통이 없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가 정말 믿고있다면 우리도 바울 처럼 사망아 오너라 ! 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사망의 해방 비밀은 아는 자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갈 곳이 어디인지 아는 자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오늘 죽어도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자는 죽음 앞에서 비굴해 지지 않는다. 목사들 애기만 했는데 우리는 성경에서 평범한 집사 한 사람이 멋있게 순교 한 것을 본다. 그것도 초대 교회 때 첫 순교자의 영광을 차지한 집사 바로 스데반이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는 의연하게 죽어갔다. 무수한 돌들이 그의 얼굴를 터트리고 온 몸에 날라들 때 스데반 집사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행전7:60 끝에 보면 놀라운 말씀이 있다.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이 죽은게 아니라 잔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단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라도 사망의 해방 비밀을 아는 자는 죽은게 아니라 잠을 자는 것이다. 사망의 해방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해방의 비밀과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 사망의 권세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망의 해방의 비밀과 기쁨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의연한 자들이 될 수 있다.
세 번째:사단에게서 해방되었다. (엡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靈)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사단에게 잡혀서 마귀의 자녀로 살아왔다. 사단은 어떻게 하던지 하나님을 못 믿게 하고 예수를 못 믿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제 1 목표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한 생각을 사단을 믿지 못하게끔 교묘히 다른 것들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믿고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사단에게서 해방 된 자들이다.
사단 = (히) 대적하는 자, 반대하는자 마귀 = (헬) 디아볼로스 = 훼방자, 중상자. 사단이나 마귀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사단은 원래 하늘의 천사장이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었던 이 천사장 루시퍼가 어느 날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하늘에서 쫓겨난 것이다. (겔28: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 (사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에덴동산에서 부터 인류를 얽어맨 사단의 억압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사단의 머리는 박살이 났다. 이 일은 이미 에덴 동산에서부터 예언된 일이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사단의 힘은 아주 나약하지만 우리가 조금이라도 세상 적으로 살아가면 아직도 이 사단은 막강한 힘으로 우리를 넘어뜨리고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사단에게서 해방 받은 자이다. 조금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마귀를 피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약4:7)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그렇다고 마귀를 내 힘으로 물리치라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한다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마귀의 공격을 막는 방패는 곧 믿음이다.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
그러므로 우리기 믿음이 약하면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믿음으로 공격을 막았다 할지라도 마귀와 싸울 수 있는 무기인 말씀이 없다면 또 안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사단에게서 해방된 자들이다. 사단에게서 해방되지 못한 자는 지금도 사단의 조종에 따르고 산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된 자이기 때문에 사단의 조종은 받지 아니해도 끓임 없이 공격은 받게 되는 것이다. 사단에게서 우리가 해방을 얻은 자들이지만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싸워야 할 적은 바로 이 마귀 세력들이다. (엡6: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이 사단이 언제 지음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단에게도 인격이 있고 지적, 정적, 의지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주 지적으로 교묘하게 우리를 미혹하고 또 정적으로 우리에게 분노를 하고 거짓된 사랑으로 우리게 다가와 우리를 혼미 시키고 타락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강한 의지로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노리고 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예수의 능력으로 사단에게서 해방은 얻었다고 안심하고 살아서는 안된다. (딤전4:1) "그러나 성령님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 말세에 한 징조로서 마귀는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했다. (마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 사단에게서 해방을 얻은 자는 이제사단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사단의 세력과 싸우는 자들이다. 사단의 해방을 얻은 자는 이제사단의 무력함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더욱 사단을 무력하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패망하고 우리가 해방을 얻었을 때 우리는 일본군에게 무장 해제를 시켰다. 무장 해제 당한 일본군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예수로 인해 사단은 무장 해제가 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곳곳에서 날뛰는 마귀 세력을 예수 이름으로 묶어 버려야 할 것이다. (요일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또한 마귀의 일을 멸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해방을 얻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 해방의 자유와 기쁨을 마귀에게 눌리며 사는 자들에게 얼려주고 그들과 함께 해방의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다. (눅4:18)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 사단에게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그리스도를 높이 찬양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 36년 동안 일본에게 억압받아 온 이 민족은 참으로 자유가 무엇이고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해방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그러나 이 기쁨은 불과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동족 간에 피비린내 나는 6.25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의 억압속에서 해방되던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격과 기쁨으로 애굽의 손길을 벗어나서 해방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그 해방의 기쁨은 몇 일이 가지 못하고 원망으로 변해 버렸다. 애굽의 바로 왕이 군대를 이끌고 뒤를 쫓아오는 것을 보고 또 앞에는 시퍼런 홍해 바다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감격의 해방의 기쁨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바벨론 나라에 70년 동안 주권을 잃고 억압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해방을 얻어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해방의 감격과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다시 헬라 제국의 식민지 국가 되어 버린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잘 보고 있다. 우리가 일제의 억압 속에서 해방되었을 때 이 민족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꿈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함석현 선생님은 "이 해방은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라고 했다. 지금 이 민족이 이 해방의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를 마귀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온 인류에게 영적 해방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십니까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예수로 인해 영적의 해방을 누릴 때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습니까 그 감격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감격은 먼 옛날에 추억처럼 잊어버리고 다시 죄의 사슬에 매여 죄의 종노릇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망에 해방을 잊어버리고 죽음의 두려움에 매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마귀를 아비로 삼고 살았던 우리들은 마귀의 손에서 빼내어 하나님의 자녀의 기쁨을 주었던 그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귀에게 다시 미혹되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다 잊어버리고 힘없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해방의 감격과 기쁨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해방의 자유를 누려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해방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도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이 해방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이 해방의 감격을 잊어서는 안된다.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해방의 감격을 잊고 산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해방의 자유와 기쁨을 충만히 누려서 이 감격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자들에게 영적 해방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2,000년 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온 몸의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시므로 인류에게 해방과 자유와 기쁨을 주셨다. 우리 민족이 8.15의 해방의 기쁨을 맞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원수 마귀로부터 영적 해방을 얻은 자들이다.
그런데 이 기쁨과 감격이 지금 우리에게 과연 있습니까 이 민족이 일본 것을 다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잊어버리고 사단의 것을 다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8.15 광복 주일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영적 해방의 기쁨을 기억하고 이 자유와 해방을 절대로 놓치지 말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죄에서 해방되었다. = 2절
이 죄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에덴 동산에 부터 시작되었다. 누가 죄를 가져 왔는가 사단이 아담과 하와를 범죄케 만들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인간은 테어나면서 부터 원죄를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이 죄를 해방시켜주시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죄 =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 죄다. 해방 = 완전한 자유를 뜻한다. 이 죄를 인간 스스로 벗어버리고 해방을 얻을 수 있는가 인간 스스로는 이 죄의 사슬을 끓을 수 없다. 오직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나라가 스스로 일본을 이겨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 운동 하다가 붙잡혀 죽었다. 그러나 미국이 여기에 개입해서 히로시마에다가 원자폭탄 하나 떨어뜨리니까 일본이 단번에 항복하였다. 성도 여러분 ! 우리 힘으로 죄에서 자유함을 누리려고 하면 할 수록 우리는 더욱 사단의 올무에 잡히고 만다.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속에 있는 이 죄악의 법을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끓을 수 없다. 사도 바울도 (롬7:21-24)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우리도 이 죄 앞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할 수밖에 없는 자다. 이 죄의 문제만 혜결되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떳떳히 설 수 있겠습니까 " 아버지여 제가 여기 있나이다 ! "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오늘도 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송구함으로 죄스러운 마음으로 나와서 주여- 주여-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이 땅에 해방의 자유와 기쁨이 찾아 왔는데 이 사실을 믿지 아니하고 모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일장기를 무서워하고 일본 사람들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인가 ! 우리가 영적으로 그런 꼴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었는데도 우리가 아직도 이 죄악에 매여서 사단에게 눌림을 받고 있다면 예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워 하겠는가 !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외치신 소리는 인류에게 죄의 해방의 소식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죄의 해방의 기쁨이 없는 것입니까 피 뿌림의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사함이 없느니라 " (요6:53)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십자가 밑에서 우리의 죄가 온전히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죄의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어떤 죄라도 예수가 십자가에서 죄를 해방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죄를 고백한다면 우리는 죄의 해방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일본이 우리 나라를 다시는 식민지 국가로 삼을 수 없듯이 사단의 권세도 그 어떤 죄악도 나를 죄의 포로로 다시 삼을 수 없다.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해방을 선언하셨기 때문에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 안에 살아가는 자는 자유인이다. (눅4:18)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해방과 자유를 주었는데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누가 잘못 된 것입니까 (요8: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예수 외에 그 어떤 누구도 나의 죄로 인해서 정죄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성도 여러분! 죄의 종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죄의 종은 곧 사단의 종이다. 죄에서 해방된 자는 이제 의의 종으로 살아야 된다. (롬6:18)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롬6:19)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죄에 해방의 기쁨을 깨달을 자는 의의 종으로 살아간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참 해방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죄의 해방의 기쁨이 주님 오시는 그 순간까지 계속 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사망에서 해방되었다. = 2절
사망이 왜 우리에게 찾아 왔습니까 죄 때문에 인간에게 사망이 찾아왔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롬6:23) 그러나 이 사망 권세가 예수로 인해 완전히 깨트려졌다. 누구든지 예수로 인해 사망의 해방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사망 = 육의 호흡이 끝나는 곧 죽음을 뜻한다 인간의 가장 큰 공포는 죽음이다. 이 죽음 앞에 어느 누구도 자유함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이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얻은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느 누가 이 사망 권세 앞에서 의연해 질 수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 굴복하게 된다. 세상에 권세자도 천하 장사도 죽음 앞에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지 못하셨다면 예수 또한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는 다른 위대한 성인들과 다르게 사망 권세 이기시고 성경에 예언대로 3일 만에 무덤을 깨뜨리시고 부활 하셨다.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 사단의 사망 권세는 이미 십자가에서 무너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사망 권세가 확실하게 무너졌음을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예수 안에서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영원히 사는 것이다. 성도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아직도 사망의 권세에서 완전한 해방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가 해방되었다는 이 비밀을 깨닫는 자는 사망이 두렵지 않다. 우리에게는 사망이 두 가지가 있다. 육신이 죽는 사망과 영혼이 죽는 사망이 있다. 영혼의 사망은 사람의 영혼이 지옥에 가는 것을 말한다.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사단의 사망 권세는 우리의 육은 죽일지 몰라도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죽이지 못한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 사도 바울은 이미 이 비밀을 깨닫는 자였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바울은 소리 칠 수 있었다. (고전15:55) 사망아 !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다시 말해서 사망의 권세야 와 보라는 것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사를 보더라도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은 조금도 죽음 앞에서 두려워 떨거나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안했다 . 우리는 주기철 목사님을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주기철 목사님 장남 주영진 전도사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주영진 전도사도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 못지않게 신사참배를 반대했다. 주기철 목사가 해방을 1년 앞두고 순교하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회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평양 긴재 교회에서 목회를 할 때 북한을 접수한 공산당은 모든 교회에 스탈린과 김일성 초상화를 걸도록 강요했다. 이 말을 들은 주 전도사는 오히려 사진을 들고 온 보안 서원을 혼쭐을 내서 쫓아 보냈다. 또한번은 인민 공화국 위원 선거일이 46년11월3일 주일 날이었는데 주 전도사는 주일 성수를 지켜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투표를 못하게 했다. 형사가 찾아와서 갖은 협박을 다 했지만 주 전도사는 굽히지 안했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선거가 아닙니다. 거룩한 주일을 다른 일로 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형사가 "그러면 저녁 예배까지 본 뒤 투표를 하시오 " 주 전도사는 "밤이나 낮이나 주일은 주일입니다 " 거절했다. 1950년 6월24일 북한 공산당은 당에 비협조적인 인사들을 모두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성도들로부터 피할 것을 권유받은 주영진 전도사는 "나만 살겠다고 도망가지 않겠습니다. 생사는 주님이 주관하십니다." 이 소식이 주기철 목사 사모 오정모 사모에게 전해졌다. 이때 오정모 사모는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사랑하시는 주기철목사를 순교의 제물로 받으시더니 이제는 그 아들까지 허락하시려고 합니까 한없는 영광을 드립니다. 다만 아들에게 어떠한 환경에도 변치않는 담대한 믿음을 주옵소서 " 지금 살아계시는 주기철 목사의 막내아들 주광조 장로님은 이런 말을 했다 "형님은 참으로 의연하고 신앙이 곧은 형님이었습니다 " 32세의 젊은 나이로 공산당의 총탄에 순교한 주영진 전도사 그 분은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사망의 해방의 비밀은 안 자였다 성도 여러분 ! 왜 우리가 죽음이 두렵고 죽음 앞에서 비겁해집니까 육신의 생각이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롬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의 생각을 하면 오히려 평강이 임하고 진실로 귀한 생명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의연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곧 내세를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닙니까 주님 나라는 사암이 없고 눈물과 애통이 없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가 정말 믿고있다면 우리도 바울 처럼 사망아 오너라 ! 소리칠 수 있는 것이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사망의 해방 비밀은 아는 자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갈 곳이 어디인지 아는 자는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오늘 죽어도 주님 앞에 설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자는 죽음 앞에서 비굴해 지지 않는다. 목사들 애기만 했는데 우리는 성경에서 평범한 집사 한 사람이 멋있게 순교 한 것을 본다. 그것도 초대 교회 때 첫 순교자의 영광을 차지한 집사 바로 스데반이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는 의연하게 죽어갔다. 무수한 돌들이 그의 얼굴를 터트리고 온 몸에 날라들 때 스데반 집사는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행전7:60 끝에 보면 놀라운 말씀이 있다.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이 죽은게 아니라 잔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단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라도 사망의 해방 비밀을 아는 자는 죽은게 아니라 잠을 자는 것이다. 사망의 해방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해방의 비밀과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 사망의 권세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망의 해방의 비밀과 기쁨을 놓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의연한 자들이 될 수 있다.
세 번째:사단에게서 해방되었다. (엡2:1-5)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靈)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사단에게 잡혀서 마귀의 자녀로 살아왔다. 사단은 어떻게 하던지 하나님을 못 믿게 하고 예수를 못 믿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제 1 목표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한 생각을 사단을 믿지 못하게끔 교묘히 다른 것들을 믿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믿고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사단에게서 해방 된 자들이다.
사단 = (히) 대적하는 자, 반대하는자 마귀 = (헬) 디아볼로스 = 훼방자, 중상자. 사단이나 마귀나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사단은 원래 하늘의 천사장이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었던 이 천사장 루시퍼가 어느 날 교만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하늘에서 쫓겨난 것이다. (겔28: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 (사14: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에덴동산에서 부터 인류를 얽어맨 사단의 억압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사단의 머리는 박살이 났다. 이 일은 이미 에덴 동산에서부터 예언된 일이었다.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우리가 예수 안에 있을 때는 사단의 힘은 아주 나약하지만 우리가 조금이라도 세상 적으로 살아가면 아직도 이 사단은 막강한 힘으로 우리를 넘어뜨리고 미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사단에게서 해방 받은 자이다. 조금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마귀를 피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약4:7) "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그렇다고 마귀를 내 힘으로 물리치라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한다 (엡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님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 마귀의 공격을 막는 방패는 곧 믿음이다. (엡6: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
그러므로 우리기 믿음이 약하면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믿음으로 공격을 막았다 할지라도 마귀와 싸울 수 있는 무기인 말씀이 없다면 또 안될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사단에게서 해방된 자들이다. 사단에게서 해방되지 못한 자는 지금도 사단의 조종에 따르고 산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된 자이기 때문에 사단의 조종은 받지 아니해도 끓임 없이 공격은 받게 되는 것이다. 사단에게서 우리가 해방을 얻은 자들이지만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싸워야 할 적은 바로 이 마귀 세력들이다. (엡6: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는 이 사단이 언제 지음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단에게도 인격이 있고 지적, 정적, 의지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주 지적으로 교묘하게 우리를 미혹하고 또 정적으로 우리에게 분노를 하고 거짓된 사랑으로 우리게 다가와 우리를 혼미 시키고 타락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강한 의지로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노리고 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예수의 능력으로 사단에게서 해방은 얻었다고 안심하고 살아서는 안된다. (딤전4:1) "그러나 성령님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 말세에 한 징조로서 마귀는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고 했다. (마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 사단에게서 해방을 얻은 자는 이제사단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사단의 세력과 싸우는 자들이다. 사단의 해방을 얻은 자는 이제사단의 무력함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더욱 사단을 무력하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패망하고 우리가 해방을 얻었을 때 우리는 일본군에게 무장 해제를 시켰다. 무장 해제 당한 일본군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예수로 인해 사단은 무장 해제가 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곳곳에서 날뛰는 마귀 세력을 예수 이름으로 묶어 버려야 할 것이다. (요일3:8)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또한 마귀의 일을 멸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해방을 얻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 해방의 자유와 기쁨을 마귀에게 눌리며 사는 자들에게 얼려주고 그들과 함께 해방의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다. (눅4:18)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 사단에게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그리스도를 높이 찬양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 36년 동안 일본에게 억압받아 온 이 민족은 참으로 자유가 무엇이고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해방의 기쁨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다. 그러나 이 기쁨은 불과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동족 간에 피비린내 나는 6.25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의 억압속에서 해방되던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격과 기쁨으로 애굽의 손길을 벗어나서 해방의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그 해방의 기쁨은 몇 일이 가지 못하고 원망으로 변해 버렸다. 애굽의 바로 왕이 군대를 이끌고 뒤를 쫓아오는 것을 보고 또 앞에는 시퍼런 홍해 바다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감격의 해방의 기쁨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바벨론 나라에 70년 동안 주권을 잃고 억압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해방을 얻어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그 해방의 감격과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다시 헬라 제국의 식민지 국가 되어 버린 것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잘 보고 있다. 우리가 일제의 억압 속에서 해방되었을 때 이 민족이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꿈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함석현 선생님은 "이 해방은 하나님의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라고 했다. 지금 이 민족이 이 해방의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를 마귀에서 해방시켜 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온 인류에게 영적 해방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십니까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예수로 인해 영적의 해방을 누릴 때 얼마나 기쁘고 감격했습니까 그 감격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감격은 먼 옛날에 추억처럼 잊어버리고 다시 죄의 사슬에 매여 죄의 종노릇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사망에 해방을 잊어버리고 죽음의 두려움에 매여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마귀를 아비로 삼고 살았던 우리들은 마귀의 손에서 빼내어 하나님의 자녀의 기쁨을 주었던 그 감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귀에게 다시 미혹되어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다 잊어버리고 힘없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우리가 해방의 감격과 기쁨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 해방의 자유를 누려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해방의 기쁨이 우리에게 주어졌는데도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이제 우리는 이 해방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이 해방의 감격을 잊어서는 안된다.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해방의 감격을 잊고 산다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해방의 자유와 기쁨을 충만히 누려서 이 감격을 아직도 모르고 있는 자들에게 영적 해방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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