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자녀처럼 (엡5:1-7)
본문
세살난 철이가 없어졌습니다. 철이 엄마는 큰소리로 불러보았습니다. 그 때,욕실에서 무슨 세미한 소리가 났습니다. 황급히 달려가 보았더니 철이가 의자에 걸터앉아 얼굴에 온통 비누칠을 하고 손에는 생일날 선물로 받은 장난감 면도기를 들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철이는 사랑스런 자녀로 아빠를 흉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철이의 가장 큰 꿈은 아빠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빠처럼 말도 해보고,걸음걸이를 흉내내기도 하며…, 철이에게 아빠는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철이는 언제가는 자기도 아빠처럼 키고 크고,힘도 세며,아는 것도 많고,가진 것도 많고, 턱수염도 갖게 되기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아빠 흉내를 내보는 것입니다. 온통 철이는 아빠처럼 되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느 책에서 읽은 엄마의 글이었습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 사랑의 신세를 진 자녀가 아버지에게 보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낳아주고 먹여주고 공부시켜주고…, 온통 사랑으로 키웁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자기를 꼭 닮아갈 때 말할 수 없는 희열이 가슴에 타오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본받아 닮아갈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처럼 되리라 소망하며 삽니다. “언젠가 나도 …, 하나님 같은 인품,지혜,능력을 가지리라” 온통 철이가 아빠처럼 되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혀있듯이,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하나님처럼 되리라” 하나님처럼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무엇이며, 않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식이 하나님같이 되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신자란 信者로서 머물지 말고 神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면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2절)그리스도께서 …하신 것 같이 …행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성육신(成肉身) 하신 분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하나님을 잘 보여주시는 그분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처럼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란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경건서적으로 애독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저자 토마스 아캠피스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진실로 빛 속에서 살기를 원하고 마음의 모든 흑암으로부터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가 걸으신 길을 본받아야 한다고 권고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참된 축복을 누리려면, 인생의 근심과 걱정,슬픔과 고통을 벗고 참된 기쁨과 평화와 안식을 얻으려면 하나님처럼 되기위하여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 μιμητη:모방자,흉내내는 자 철이가 부지런히 아빠를 흉내내듯이 우리는 하나님처럼 되려면, 그리스도를 모방해야 합니다. 흉내내야 합니다. 언젠가 베어라는 영화를 TV에서 본적이 있었습니다. 어미를 잃은 새끼곰이 혼자 돌아다니다가 사냥꾼의 총에 부상을 입고 사나와진 왕곰을 만나,사귀게 되어 그 왕곰을 따라다니며 강한 곰이 되어간다는 줄거리입니다. 왕곰이 일어서면 새끼곰도 일어서고… 한번은 새끼곰이 굶주린 범을 만나 절대 위기에 처했습니다. 꼼짝없이 잡아먹혀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새끼곰은 갑자기 두려워하던 태도를 바꾸어 왕곰이 했던 대로 입을 크게벌리고 앙1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범이 기겁을 하고 도망갔습니다. 새끼곰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았더니 새끼곰이 왕곰 흉내를 내었을 때, 뒤에는 실제로 왕곰이 다가와 포효했던 것입니다. 범이 놀라 도망간 것은 새끼곰의 소리가 아니라 왕곰의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며 살 때 하나님이 뒤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를 흉내내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안이숙 사모님 간증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모님은 87세나 되셨지만 도무지 나이와 상관없는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이 간증이 그토록 설득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제시대에 그 무서운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총과 칼,평양감옥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지킨 신앙심, 일본지도자들이 혀를 내두룰만한 신앙의 여자, 그는 사형집행 이틀을 앞두고 극적인 8.15해방으로 살아나서 그후 오늘까지 세계를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날 간증의 주제가 온유한 자였습니다. (마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대개 사람들은 온유하게 살면 땅→재물을 얻게 된다라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온유하게 살면 땅위 어느곳에 가도 두렵지 않고 자유한다는 해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옥에서 겪었던 일을 간증했습니다. 일제 말엽,미결수 까지 군복을 만드는 일에 동원되는 때, 주일을 쉬기 위한 결심, 형무소 소장과 간부들 앞에서, 아니 일본군국주의 천황 폐하의 권세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는 하나님의 딸로서 십계명을 지키며 명령에 죽고 산다라는 단호한 어조에 형무소장도 탄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고 두려워하여, 평양감옥에서 그 누구도 안이숙 사모님을 건드릴 수 없는 강자가 되었다는 체험을 듣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8-29) 온유를 배운다→흉내낸다, 모방한다 온유한 자는 겸손하지만 강합니다. 그 어떤 세상 권세도 꺾을 수 없습니다. 안이숙 사모님은 그 무서운 일제의 평양형무소에서도 예수님의 온유를 모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강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시대나 지금 시대나 사납고 두려운 세상, 음란하고 타락한 세상,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얼마나 두렵습니까 주일 성수만 제대로 지키려해도 얼마나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피해를 줄 때, 두렵게 할 때, 죄악이 유혹할 때, 갖가지 어려운 일로 마음이 무너질 때, 이때야 말로 그리스도 예수를 모방하며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같은 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안이숙 사모님 같은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자녀처럼, 그리스도를 모방하며 살아갑시다.
1.용서를 모방합시다(4:31-32). 에베소교회의 AD 1세기의 시대나 현대의 시대나 인간사회의 공통점은 인간이 인간을 미워하며 싸우고 죽이는 일입니다. 인종간의 갈등,인간관계의 고통,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 흑인과 백인의 갈등, 한국인과 일본인의 갈등, 남한과 북한과의 갈등. 부모자식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교우간에… 신문,TV에 날마다 끊이지 전해지는 소식은 살인,강간,폭행,사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승리자로 살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그러나 이 일은 예수님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원수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용서를 빌었고 용서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용서하시므로 원수를 이겼습니다. 용서를 모방합시다. “나는 할 수 없는데 예수님처럼 살려니 당신을 용서한다” 라는 마음으로 삽시다. 당신에게 피해주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합시다. 대개 우리들은 먼저 용서하면 내가지는 일인 줄 압니다. 용서는 이기는 일입니다. 용서는 강한 자가 하는 것입니다. (ex: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살인마 수용소 소장 ‘아몬 괴트’에게 이르는 쉰들러의 권고-진짜 강한 왕은 죄인을 용서합니다) 하나님은 최고 강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 강자였기에 원수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사랑은 강자가 하는 것입니다. 강자는 용서합니다. 4:31)은 약자의 누추한 모습입니다. 4:32)은 강자의 당당한 모습입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예수님을 흉내냅시다. 모방합시다. 용서할 수 없는 당신의 그 사람을 위하여 용서를 선포하고 행동합시다. 강자가 되고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2.희생을 모방합시다
(2). 아귀다툼을 해도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 아닙니까 인구는 많고 땅은 좁고, 너도나도 이기주의로 살아갑니다. 지난 여름휴가 때 다녀온 내 고향 안동 땅은 소위 개발 침체 지역입니다. 넓은 땅에 인구가 겨우 10만,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인심이 얼마나 후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경기도 수원,송탄만해도 얼마나 복작거리며 살아야 합니까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당신 도시에 세워진 교회의 환경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곳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야 살게 되어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피흘린 소와 양으로 몸을 희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희생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들을 사랑하는 어느 어머니는 철길에 뛰어들어 자신을 버리고 아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자기 자식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자기 자식이니까. 그러나 의성군 경애교회 오동희 목사님은, 급류에 빠져 익사 직전의 두명 구조한 뒤 탈진…투병 12일만에 사망했습니다. (‘9
3.9)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2)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세상은 자기를 위하여 남을 버리지만, 예수 사랑은 남을 위하여 자기를 버립니다. 우리는 내 것을 남을 위해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흉내내 봅시다. 내시간,정력,돈을 형제를 사랑하므로 손해를 봅시다. 손해보는데서 생명은 얻게 됩니다. (전도:내시간, 물질을 손해 보아야 전도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위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교도소에 가보십시오. 온통 그런 사람들입니다. 대천 어린이 유괴살인사건의 범인은 어디에 있던지 坐不安席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자기가 손해 보는 사람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하는 사람이 승자요, 강자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누가 가장 희생이 큽니까 어머니 아닙니까 생쥐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쥐처럼 잇속이 있으면 쏙 나왔다가 손해 볼 것 같으면 쏙 들어가 버리는 눈만 말똥말똥 주위를 살펴보는 신자를 말합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희생하며 살아갑시다.
3.성결을 모방합시다(2-6).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요지는 성적이 추행,음란에 대해서입니다. 영적인 타락→도덕적인 타락→성적인 타락으로 진행됩니다. 성적인 타락은 시대의 암 3기 현상입니다. 에베소를 비롯한 당시 세상은 온통 우상숭배가 지배했습니다. 특히 다이아나 여신을 숭배했습니다. 예배 자체가 음란행위입니다. 여사제와 성교하는 행위가 예배였습니다. 성전의 여사제는 합법적인 창녀였습니다. 당시 딸들은 의무적으로 성전에 나가 여사제노릇을 일정기간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음란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던 세상입니까 이런 옛생활에 젖은 이방인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바로 사랑을 입은 자녀처럼 사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모방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도 점점 음란과 퇴폐의 사회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뉴월에 호박썩어가듯이… 50년대 영화→키스 씬도 그림자로 처리, 1994년도 영화→임마뉴엘부인 상영(포르노그라피), 미란다(여배우가 나체로 10분이상 출연함/경찰의 수사,검찰의 재수사 압력) 앞으로 몇년 안가서 이런 규제는 다 폐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니까요. 하나님을 외면한 사람들의 삶의 대표적인 현상은 음란을 추구하는 삶이란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음란하고 더럽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 수록 더 음란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무식한 자나 박사나 하나님을 외면한 자의 삶은 음란하고 더럽습니다. 모두 부부관계 외에 다른 여자,남자와 성행위를 가져보려고 애쓰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잡지,음란한 영화,음란한 비디오,음란한 TV광고,음란 관광, 음란한 해수욕장,음란한 여자들의 옷,음란한 에어로빅,음란한 술집,여관,호텔, 섹시하다라는 말이 얼마나 현대인들을 사로잡습니까 왜 다이어트 합니까 섹시할려고… 요즈음 인기 남자 텔렌트가 차인표라고 합니다. 저는 아무리 이해할려해도 모르겠어요. 왜 저 남자에게 여자들이 오금을 못펴는지. 섹시하기 때문입니다 마릴린 몬로가 언제사람인데 아직도 그녀의 사진이 남자들에게 인기 있을까요 섹시하기 때문입니다. “섹시하다”→섹스를 하고 싶다란 말입니다. 물가에 아이를 방치한 심정,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심정입니다. 이 소음과 고모라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을 모방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성결하신 분입니다. 음란의 아비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내게 절하라 만국의 영광을 내게 주리라→사탄아 물러가라 사랑은 자신을 성결하게 합니다.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는 자신을 깨끗이 합니다. 더러운 마음과 행위를 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드렸습니다. 향기로운 제물→성결한 그의 생애를 말합니다. 살전 4:7)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살전 4: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1.음란한 마음도 갖지 맙시다(3절) “음행,온갖 더러운 것,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그런데 눈으로 보는 것이야 얼마나 마음을 자극하겠습니까 (음란 영화,비데오)
2.음란한 말도 하지 맙시다(4절) 누추한 말:부끄럽고 추잡한 난잡한 말 어리석은 말:술취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희롱의 말:저속한 농담,외설스러운 농담,남에게 상처를 주는 농담, 저속한 개그 음란한 말,농담,음담패설은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음란한 입)→(음란한 마음)→(음란한 행위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모여서 어리석고 무익한 음란한 농담이나 낄낄대며 뇌까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하고,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언어 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는 지옥에 들어갑니다. 음행하는 자,더러운 자,탐하는 자→ 우상숭배자(현대인의 우상 섹스,돈,권력) →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할 자 '영혼을 깨끗이, 마음을 깨끗이, 몸을 깨끗이' 고전 3: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2)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예수님처럼 성결합시다. 예수님처럼 깨끗함을 모방합시다.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여기서 더 한발자국 나가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흉내냅시다. 결언:μιμητη:(모방자,흉내내는 자)란 원형을 구별하기 어려운 복사라는 또 하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처음과 나중을 보십시오. 바울의 처음과 나중을 보십시오. 우리들의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이제 점점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살므로 하나님 같이 되었다라는 평가가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자녀처럼 예수님을 모방하다가 예수님 같은 훌륭한 인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용서해 봅시다. 희생해 봅시다. 성결해 봅시다. 그래서 하나님 같은 강자가 되어봅시다. 마귀가 두려워 떠는 성도가 되어봅시다. 신앙인을 보려면 벧엘동산교회로 가보라 라는 말이 세상에 돌아다니도록 해봅시다. 아름다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므로 하나님같이 삽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자기를 꼭 닮아갈 때 말할 수 없는 희열이 가슴에 타오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본받아 닮아갈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아름다운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처럼 되리라 소망하며 삽니다. “언젠가 나도 …, 하나님 같은 인품,지혜,능력을 가지리라” 온통 철이가 아빠처럼 되고싶은 욕망에 사로잡혀있듯이,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언젠가는 나도…, 하나님처럼 되리라” 하나님처럼 되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무엇이며, 않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식이 하나님같이 되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습니까 신자란 信者로서 머물지 말고 神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되려면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2절)그리스도께서 …하신 것 같이 …행하라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성육신(成肉身) 하신 분입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하나님을 잘 보여주시는 그분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처럼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란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경건서적으로 애독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저자 토마스 아캠피스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진실로 빛 속에서 살기를 원하고 마음의 모든 흑암으로부터 구원받기를 바란다면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가 걸으신 길을 본받아야 한다고 권고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참된 축복을 누리려면, 인생의 근심과 걱정,슬픔과 고통을 벗고 참된 기쁨과 평화와 안식을 얻으려면 하나님처럼 되기위하여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본받는 자→ μιμητη:모방자,흉내내는 자 철이가 부지런히 아빠를 흉내내듯이 우리는 하나님처럼 되려면, 그리스도를 모방해야 합니다. 흉내내야 합니다. 언젠가 베어라는 영화를 TV에서 본적이 있었습니다. 어미를 잃은 새끼곰이 혼자 돌아다니다가 사냥꾼의 총에 부상을 입고 사나와진 왕곰을 만나,사귀게 되어 그 왕곰을 따라다니며 강한 곰이 되어간다는 줄거리입니다. 왕곰이 일어서면 새끼곰도 일어서고… 한번은 새끼곰이 굶주린 범을 만나 절대 위기에 처했습니다. 꼼짝없이 잡아먹혀야 할 판입니다.
그런데 새끼곰은 갑자기 두려워하던 태도를 바꾸어 왕곰이 했던 대로 입을 크게벌리고 앙1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범이 기겁을 하고 도망갔습니다. 새끼곰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았더니 새끼곰이 왕곰 흉내를 내었을 때, 뒤에는 실제로 왕곰이 다가와 포효했던 것입니다. 범이 놀라 도망간 것은 새끼곰의 소리가 아니라 왕곰의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모방하며 살 때 하나님이 뒤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를 흉내내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안이숙 사모님 간증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모님은 87세나 되셨지만 도무지 나이와 상관없는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분이 간증이 그토록 설득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온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제시대에 그 무서운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총과 칼,평양감옥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지킨 신앙심, 일본지도자들이 혀를 내두룰만한 신앙의 여자, 그는 사형집행 이틀을 앞두고 극적인 8.15해방으로 살아나서 그후 오늘까지 세계를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날 간증의 주제가 온유한 자였습니다. (마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대개 사람들은 온유하게 살면 땅→재물을 얻게 된다라고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온유하게 살면 땅위 어느곳에 가도 두렵지 않고 자유한다는 해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감옥에서 겪었던 일을 간증했습니다. 일제 말엽,미결수 까지 군복을 만드는 일에 동원되는 때, 주일을 쉬기 위한 결심, 형무소 소장과 간부들 앞에서, 아니 일본군국주의 천황 폐하의 권세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는 하나님의 딸로서 십계명을 지키며 명령에 죽고 산다라는 단호한 어조에 형무소장도 탄복하고 모든 사람들이 혀를 내두르고 두려워하여, 평양감옥에서 그 누구도 안이숙 사모님을 건드릴 수 없는 강자가 되었다는 체험을 듣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와서 내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28-29) 온유를 배운다→흉내낸다, 모방한다 온유한 자는 겸손하지만 강합니다. 그 어떤 세상 권세도 꺾을 수 없습니다. 안이숙 사모님은 그 무서운 일제의 평양형무소에서도 예수님의 온유를 모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강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시대나 지금 시대나 사납고 두려운 세상, 음란하고 타락한 세상,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우리는 신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얼마나 두렵습니까 주일 성수만 제대로 지키려해도 얼마나 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까 사람들이 나에게 피해를 줄 때, 두렵게 할 때, 죄악이 유혹할 때, 갖가지 어려운 일로 마음이 무너질 때, 이때야 말로 그리스도 예수를 모방하며 살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같은 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안이숙 사모님 같은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자녀처럼, 그리스도를 모방하며 살아갑시다.
1.용서를 모방합시다(4:31-32). 에베소교회의 AD 1세기의 시대나 현대의 시대나 인간사회의 공통점은 인간이 인간을 미워하며 싸우고 죽이는 일입니다. 인종간의 갈등,인간관계의 고통, 유대인과 이방인의 갈등, 흑인과 백인의 갈등, 한국인과 일본인의 갈등, 남한과 북한과의 갈등. 부모자식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교우간에… 신문,TV에 날마다 끊이지 전해지는 소식은 살인,강간,폭행,사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승리자로 살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그러나 이 일은 예수님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원수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용서를 빌었고 용서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용서하시므로 원수를 이겼습니다. 용서를 모방합시다. “나는 할 수 없는데 예수님처럼 살려니 당신을 용서한다” 라는 마음으로 삽시다. 당신에게 피해주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합시다. 대개 우리들은 먼저 용서하면 내가지는 일인 줄 압니다. 용서는 이기는 일입니다. 용서는 강한 자가 하는 것입니다. (ex: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살인마 수용소 소장 ‘아몬 괴트’에게 이르는 쉰들러의 권고-진짜 강한 왕은 죄인을 용서합니다) 하나님은 최고 강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 강자였기에 원수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사랑은 강자가 하는 것입니다. 강자는 용서합니다. 4:31)은 약자의 누추한 모습입니다. 4:32)은 강자의 당당한 모습입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예수님을 흉내냅시다. 모방합시다. 용서할 수 없는 당신의 그 사람을 위하여 용서를 선포하고 행동합시다. 강자가 되고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2.희생을 모방합시다
(2). 아귀다툼을 해도 먹고살기 어려운 세상이 아닙니까 인구는 많고 땅은 좁고, 너도나도 이기주의로 살아갑니다. 지난 여름휴가 때 다녀온 내 고향 안동 땅은 소위 개발 침체 지역입니다. 넓은 땅에 인구가 겨우 10만,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인심이 얼마나 후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경기도 수원,송탄만해도 얼마나 복작거리며 살아야 합니까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당신 도시에 세워진 교회의 환경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많은 곳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어야 살게 되어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남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을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피흘린 소와 양으로 몸을 희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희생하지 않으셨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들을 사랑하는 어느 어머니는 철길에 뛰어들어 자신을 버리고 아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자기 자식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자기 자식이니까. 그러나 의성군 경애교회 오동희 목사님은, 급류에 빠져 익사 직전의 두명 구조한 뒤 탈진…투병 12일만에 사망했습니다. (‘9
3.9)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2)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세상은 자기를 위하여 남을 버리지만, 예수 사랑은 남을 위하여 자기를 버립니다. 우리는 내 것을 남을 위해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흉내내 봅시다. 내시간,정력,돈을 형제를 사랑하므로 손해를 봅시다. 손해보는데서 생명은 얻게 됩니다. (전도:내시간, 물질을 손해 보아야 전도가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위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교도소에 가보십시오. 온통 그런 사람들입니다. 대천 어린이 유괴살인사건의 범인은 어디에 있던지 坐不安席일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자기가 손해 보는 사람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하는 사람이 승자요, 강자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누가 가장 희생이 큽니까 어머니 아닙니까 생쥐신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생쥐처럼 잇속이 있으면 쏙 나왔다가 손해 볼 것 같으면 쏙 들어가 버리는 눈만 말똥말똥 주위를 살펴보는 신자를 말합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희생하며 살아갑시다.
3.성결을 모방합시다(2-6).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요지는 성적이 추행,음란에 대해서입니다. 영적인 타락→도덕적인 타락→성적인 타락으로 진행됩니다. 성적인 타락은 시대의 암 3기 현상입니다. 에베소를 비롯한 당시 세상은 온통 우상숭배가 지배했습니다. 특히 다이아나 여신을 숭배했습니다. 예배 자체가 음란행위입니다. 여사제와 성교하는 행위가 예배였습니다. 성전의 여사제는 합법적인 창녀였습니다. 당시 딸들은 의무적으로 성전에 나가 여사제노릇을 일정기간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음란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던 세상입니까 이런 옛생활에 젖은 이방인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바로 사랑을 입은 자녀처럼 사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예수님처럼 모방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 사회도 점점 음란과 퇴폐의 사회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마치 오뉴월에 호박썩어가듯이… 50년대 영화→키스 씬도 그림자로 처리, 1994년도 영화→임마뉴엘부인 상영(포르노그라피), 미란다(여배우가 나체로 10분이상 출연함/경찰의 수사,검찰의 재수사 압력) 앞으로 몇년 안가서 이런 규제는 다 폐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니까요. 하나님을 외면한 사람들의 삶의 대표적인 현상은 음란을 추구하는 삶이란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음란하고 더럽습니다. 문명이 발달한 나라일 수록 더 음란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무식한 자나 박사나 하나님을 외면한 자의 삶은 음란하고 더럽습니다. 모두 부부관계 외에 다른 여자,남자와 성행위를 가져보려고 애쓰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음란한 잡지,음란한 영화,음란한 비디오,음란한 TV광고,음란 관광, 음란한 해수욕장,음란한 여자들의 옷,음란한 에어로빅,음란한 술집,여관,호텔, 섹시하다라는 말이 얼마나 현대인들을 사로잡습니까 왜 다이어트 합니까 섹시할려고… 요즈음 인기 남자 텔렌트가 차인표라고 합니다. 저는 아무리 이해할려해도 모르겠어요. 왜 저 남자에게 여자들이 오금을 못펴는지. 섹시하기 때문입니다 마릴린 몬로가 언제사람인데 아직도 그녀의 사진이 남자들에게 인기 있을까요 섹시하기 때문입니다. “섹시하다”→섹스를 하고 싶다란 말입니다. 물가에 아이를 방치한 심정,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심정입니다. 이 소음과 고모라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님을 모방하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성결하신 분입니다. 음란의 아비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내게 절하라 만국의 영광을 내게 주리라→사탄아 물러가라 사랑은 자신을 성결하게 합니다.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는 자신을 깨끗이 합니다. 더러운 마음과 행위를 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드렸습니다. 향기로운 제물→성결한 그의 생애를 말합니다. 살전 4:7)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살전 4: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1.음란한 마음도 갖지 맙시다(3절) “음행,온갖 더러운 것,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그런데 눈으로 보는 것이야 얼마나 마음을 자극하겠습니까 (음란 영화,비데오)
2.음란한 말도 하지 맙시다(4절) 누추한 말:부끄럽고 추잡한 난잡한 말 어리석은 말:술취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 희롱의 말:저속한 농담,외설스러운 농담,남에게 상처를 주는 농담, 저속한 개그 음란한 말,농담,음담패설은 성도의 마땅한 바가 아닙니다. (음란한 입)→(음란한 마음)→(음란한 행위에 빠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모여서 어리석고 무익한 음란한 농담이나 낄낄대며 뇌까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는 말하고,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언어 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3.음란한 행위를 하는 자는 지옥에 들어갑니다. 음행하는 자,더러운 자,탐하는 자→ 우상숭배자(현대인의 우상 섹스,돈,권력) →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할 자 '영혼을 깨끗이, 마음을 깨끗이, 몸을 깨끗이' 고전 3: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17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2)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예수님처럼 성결합시다. 예수님처럼 깨끗함을 모방합시다.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 여기서 더 한발자국 나가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흉내냅시다. 결언:μιμητη:(모방자,흉내내는 자)란 원형을 구별하기 어려운 복사라는 또 하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처음과 나중을 보십시오. 바울의 처음과 나중을 보십시오. 우리들의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이제 점점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살므로 하나님 같이 되었다라는 평가가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자녀처럼 예수님을 모방하다가 예수님 같은 훌륭한 인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용서해 봅시다. 희생해 봅시다. 성결해 봅시다. 그래서 하나님 같은 강자가 되어봅시다. 마귀가 두려워 떠는 성도가 되어봅시다. 신앙인을 보려면 벧엘동산교회로 가보라 라는 말이 세상에 돌아다니도록 해봅시다. 아름다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므로 하나님같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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