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닮는 생활 (엡4:30-5:2)
본문
아이들은 부모를 모방하면서 자랍니다. 부모의 하는 행동이나 태도를 그 아이에게서 흔히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얼굴 모습을 닮고, 타고난 품성 을 닮으며, 자라면서 그 부모의 성격을 닮기도 합니다. 또한 나이가 자라면 서 존경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를 닮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훌륭한 사람 이 살아온 과정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갈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 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좋은 점을 잘 가꾸고 다듬어서 인생의 지표로 삼아 목적하는데로 갈 수 있다면 잘 된 일일 것 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나쁜 것도 쉽게 닮아가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부모나 존경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잘못된 것들이 있음에도 아무 비판없이 그저 단순히 똑같아지려고 하는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나 존경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그들도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생의 지 표가 될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 이외에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 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 속에서 역사하시고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지표요 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에 게 여러가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에 순종하여 주 님을 닮는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특히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신 말씀을 따를 때 과연 그 말씀을 쉽게 순종 할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것과 같 다"고 하실만큼 그 비중이 큰데 이러한 일을 과연 우리가 쉽게 닮아갈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론'
1. 그러면 이러한 말씀들은 그저 우리의 귀에 기분좋게 들리라고 주신 말씀 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꼭 지키고 그대로 따라야 할 명령 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분명 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의 힘만으로 지켜 나갈 수 있을 까요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 입니다.
왜냐하면,
(1) 인간은 본래 육의 모 습이라서 육의 소욕대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18-20 에서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 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육의 소욕 대로 사는 타고난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인간은 어떤 동기에서도 육의 욕심에 따르기 쉽습니다. 절제없는 말이나, 인간으로하여금 타인들에게 해를 가하도록 음모를 꾸미게하는뿌리 깊은 분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오히려 상대방을 위로해주기 보다 비방하는 말을 더 잘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해주고 유익을 주기 보다는 내 욕심에 끌려서 나는 절대로 손해볼 수 없다는 식의 태도가 나 오기 쉽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육의 욕심에 끌려서 나 자신도 모 르는 사이에 나오는 말과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동기가 좋을 수는 있으나 본성이 육의 욕심에 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좋지않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내 혼자 힘으로 이를 지킬 수 없다고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아 도 되는 것일까요 그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 거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나올까 요
(1)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여기서 용 서함이란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잘못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인간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지 아니 하고는 참되게 남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은 혜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하는 심령을 지니게 되며, 그 풍성 하신 은혜가 그 사람 마음속에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의 근거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속에 살면서 우리의 모든 이웃을 용서하면 서 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가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 로 하나님께 드린 사랑. 스스로 그 몸을 바쳐 제물이 되신 주님의 사랑의 행위를 본받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하나밖 에 없는 생명을 남을 위해 내 놓은 사랑, 그것도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 면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 까지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시지 않으시면서 이렇게 죽어야만이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서 이를 받아들이기만하면 영생으로 바꾸어 주신 사랑. 이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웃을 위해 조그만 사랑을 주지 못한다면 주 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 때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3) 성령께서 우리를 구속의 날까지 인치셨으므로 성령을 근심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하나님께 속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죄를 범할 때 그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이 근심하시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구속의 완성의 날까지 성령은 신자 안에서 떠나지 않고 역사하시며 구원을 보존 성취시키시는 것 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성령이 그 사람 속에서 함께 하시면서 성결된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이제 성령은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결된 생활을 하게 하시므로 사랑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사랑하지 못할 때 근심하십니다. 내 힘으로 할 수는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거를 성령으로부터 얻어서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3.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타고난 품성과, 자라면서 그 성격을 닮고 자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므로" (요1:1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식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거룩해야 하 며, 하나님의 자비함 같이 자비해야 하며, 하나님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해 야 합니다.
(2) 그의 용서를 닮아야 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용서해주신 주님의 용서를 닮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35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주님의 용서를 닮아서 우리도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닮아서 우리도 모든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우리위해 주신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어 달으신 아버지의 사랑과 나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 신의 몸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한마디 변명이 없으셨던 주님의 사랑을 닮아 야 합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없대서야 말 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시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결론' 주님으로부터 우리는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을 받은 크신 은혜 를 통해서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간직한 성도님들의 사랑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합당한 생활 성경
본문:엡 1:4-16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 '부르심'이 란 그 자에가 우리에게 영광이자 복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울 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함은 우리가 특권을 부여받았음을 말하 고 있습니다. 결국 '부르심'이란 말속에는 축복,책임,의무,사명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 주님께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즉 하나되는 생활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형제,가정,부부,성도간에 하나가 되는 생활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분열은 다툼에서 일어납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교회와 당회 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 고'(2절). 5대 덕목이라 할 수 있는 '겸손,온유,오래 참음,사랑, 용납' 하는 것 이 하나되게 할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4절부터 6절가지의 말슴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 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했으며 보혜사 헝령의 역사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충만케 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 와 교사로 주셨으니. 하나님의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 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11-14절). 여러가지 직분을 주신 이유는,
첫째로 직분을 맡은 자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직분자는 끊임없는 자기훈련과 아울러 성도들에게 훈련 을 시켜야 합니다.
둘째로, 직분자들은 교회에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직분자가 봉사 를 안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교회를 세운다는 말과 같습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지 못하면 분열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세상은 별의별 속임수와 유혹으로 방해를 할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신앙의 자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어린아이와 유혹에 빠져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명삼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사랑안에서 성령이 하나된 것을 힘써 지키고 훈련된 생활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어야 하고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있나 성경
본문:눅 2:41-52 흔히들 이 세상을 가르켜 고해라고 합니다.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많고 달콤한 일보다 쓰디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대한 자세도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사람은 염세주의적으로, 어떤 사람은 비관주의적으로 생을 밝게 살지 못하고 어둡게 살아갑니다. 밝은 세상거리로 활보하는 것보 다 구석진 그늘 길을 가기 좋아하고, 산중에 들어가기 좋아하고, 정적을 좋 아하며 세상을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의 생은 세상 을 보다 밝게, 보다 깨끗하게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삽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 끝날까지 항상우리 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가 고해 같은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된 일인지 말로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선 교사 리빙스톤(Livingston)은 그의 거실에 마태복음 28장 20절의 성구를 서 붙이고 항상 즐겨 읽으며 위로와 기쁨을 누렸다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녹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300년간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육신으로 유일하게 승천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2장 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했던 그의 육신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잃고 몹시 애태우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해 서 나는 예수님과 참으로 동행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I. 나혼자 인생길을 가면서 나는 주님과 동행한다는 잘못된 생활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12세 때 요셉과 마리아는 관례에 따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인 남자는 누구나 12세가 되면 의무적으로절 기를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 의 해방 기념일인데 유대력으로 정월 15일부터 한 주간 지키는 엄숙한 절기 로써 예루살렘으로부터 백리 이내에 사는 12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다 의 무적으로 참석토록 되어 있습니다. 이 절기를 잘 지키고 돌아오는 길에 하 룻 길을 간다음 저녁에 여관을 정하고보니 예수님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대 단히 놀랐습니다. 그후 3일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을 때까지 요셉 과 마리아는 그 얼마나 애를 태웠겠습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자기를 홀로 가면서 예수님이 함께 하시겠지 하는 착각을 했듯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우리 혼자 방황하기 쉽다는 사실이2밑니다. 이렇게 되면 요셉과 마리아처럼 무척 답답해 하며, 애태우게 되고, 전진도 못하고 오던 길로 후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과 함께 동행 해야 승리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지 주님없이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째서 예수님을 잃어 버렸는지 같이 생각해 봅시다.
1. 복잡하고 분주한 환경에 사로잡혀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유월절 절기에 참석하는 국내외 사람들은 300여만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얼마나 분주하고 복잡했겠습니까 여관이고, 거리고, 어디든지 복잡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환경이 복잡하고 일과에 쫓기다 보면 예수님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고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차려서 우리 생활 환경이 분주하고 복잡할수록 더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에 힘쓰고 주의 종을 가까이 하면서 교회 일에 깊 은 관심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2. 세상 재미에만 정신을 팔다가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유월절 이야 기에 꽃을 피우면서 예수님은 생각지도 않고 정신없이 오느라고 예수님이 없어진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 향락에 도취되면 주일 낮. 저녁예배,수요예배, 구역예배도 상관없이 지내게 되고 교회를 멀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 고모라에서 세상 향락에 도취된 나머지 하나님을 잃고 실패와 고통의 수난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바벨론 에 포로된 다니엘은 그 화려한 바벨론의 영화에도 도취되지 않고 들창문을 열고 예룻라렘을 향해 하루 세번씩 기도함으로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분주하고 복잡하고 세상 재미나는 일에 많으면 많을수록 말씀을 깊 이상고하고 더욱 열심을 내어 기도하며 교회를 가까이 하며 교회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시간과 정성을 바쳐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잃지 않습니다.
3.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은 것은 예수님에 대한 무관심 때문입니다. 설마 어디엔가 따라 오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 주님이 나 버리려 고, 설마 용서 하겠지, 설마 함께. 그러면서 자기 관심에만 몰두하면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고 혼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없는 나그네 길 을 걸으면서도 주님과 나는 동행하며 살고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안하는 지요 교회 일에 무관심하면 절대 안됩니다. 구역일에 무관심해도 안되고 교회식구들에게 무관심해도 안됩니다. 무관심하면 양은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항상 깊은 관심을 갖고 양을 돌봐야 하며 양은 목자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관심의 죄를 짓지 맙시다. 내가 안해도 다른 집사가 하 겠지. 내가 없어도 학생회가 잘 되겠지. 내가 안해도 성가대가 잘 되겠지 하는 이런 무관심은 주님과 멀어지고, 결국엔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일한다는 것은 축복의 첫 걸음 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의 축복 받은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만나려고 애썼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죄를 고백하게 되었고,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 입니다. 또 38년간 반신불수가 되어 꼼짝 못하는 사람을 그의 믿음 좋은 치가구들 이 깊은 관심을 갖고 예수님 곁에 최선을 다해 데려다 줌으로써 함께 큰 축복 받은 사실을 압니다. 에녹이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동행함으로 큰 축복받은 사실을 우리는 잘압니다. 우리는 굉장한 관심 속에 모든 것을 주님께 묶어 바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돈독한 신앙으로 환경을 이 기며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 습니까
II. 잃은 예수님을 어떻게 어디서 찾았는지 살펴 봅시다.
1.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동행치 않고 없어진 사실을 안 즉시 찾았습니다. 찾되 애써 간절히 찾았습니다. 우리도 항상 내가 과연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잘 살피고 만일 그렇지 못함을 발견케 되면 즉시 미루지말 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즉시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을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회개도 즉시하고, 전도도 즉시하고, 교회봉 사도 즉시하고, 출석도 즉시하는 성도가 됩시다. 깨달은 신앙을 바로 행동 화 할 때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길이 명심합시다.
2. 44절 하반절을 보니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간절히 찾되 멀리가서 찾으려 하지말고 바로 가까이에서 찾 아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멀리가서 이방 사람만 구하려 고 하지 말고 가까운 이웃과 친척에게 먼저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며 또한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되고, 교회에 나올 때 일가친척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거리 감을 느낄 때 멀리서 간격을 좁히려 하지 말고 바로 가까이 자신의 잘못부터 찾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3.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과거 걸어온 길을 돌이켜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찾아 나아가서 예루살렘 성 전에서 주님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걸어온 길을 돌이켜 자세히 살펴 보아 야 되겠습니다. 또 주님은 항상 성전에 계심을 믿고 교회를 찾아 열심히 나 아가야 되겠습니다. 잃은 예수님은 거리에서도 못찾으며, 구경꾼들 중에서 도 찾지 못하며, 세상에서도 찾지 못하며, 복잡하고 소란을 피우는 곳에서 도 찾지 못하며, 오로지 고요하고 엄숙한 성전에서 찾는다는 사실을 명심합 시다.
III.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1. 뜻을 같이 해야 합니다. 최소한 방향만이라도 같아야(주님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뜻이 같지 않기 때문에 헤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고 로 내가 그 뜻에 굴복되어야 합니다. 아모스 3장 3절에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2. 성결해야 합니다(계3:4 참조) 에녹이란 뜻은 "성결하신 자" 란 뜻입니다. 사대교회를 보면 그 웃(성도의 옳은 행실)을 더럽히지 않는 자들에게만 주님이 함께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더러운 곳에 같이 하시기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3. 동행하는 서로 상호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만사에 부족한 저희 들이라도 믿고 귀한 사명들을 맡기십니다. 우리도 그를 절대 믿고 그 뜻만 따라야 되겠습니다.
4. 주님과 항상 같이 일한다는 생각을 갖고 생활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간에 주님 제외해 놓고는 하지 않는 생활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해 가는 나그네로서 든든한 동행자가 꼭 필요 합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합시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과 동행합시다. 우리는 한 걸 음 한 걸음 주님과 동행함으로 삶을 삽시다. 주님 뜻 안에서 성경
본문:롬 15:30-33
1. 오늘은 감사 주일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 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재물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영원하지 않기에 이 땅에서 가 장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러한 감사의 정신이 오늘의 유럽 문화 를 창출해 내었다고 한다. 외국인들 특히 서구인들은 고맙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감사하다고 하는 말에는 대단히 인색하다. 이러한 감사의 정신 뒤에는 신앙이라는 배경이 있다. 감사라는 말이 그리스어로는 은사 혹은 은혜라는 말과 좋은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은사를 체 험하고 그에 응답하는 것을 감사(感謝)라고 이해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감사의 신 앙을 가지고 늘 살았으며, 감사한 말을 강조하였다.(살전5:18)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발견하였고,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골3:17) 우리는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2. 이러한 감사의 모습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사는 그의 삶에서 발견하게 된다. 바울의 삶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사랑"(the Love of the Spirit)으로 권면하는 삶이다. 이는 단순히 사랑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히고, 예수의 정신으로 가 득한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목회자와 성도의 온전한 단결을 이룩한다. (골2:2) 이러한 사랑 안에서의 연합은 이 땅에 하나님의 질서를 이룬 참터를 향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영원한 이상(Vision)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존 웨슬리는 "천상 천하에 사랑보다 깊고 사랑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하였고 이는 또한 "모든 죄악 에 대한 구원의 방법이며, 생명의 양약이다."라고 하였다.
3. 또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유대에 있는 불신자들과 성도를 위한 봉사를 위해 기도한 넓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기도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기도는 바로 이러한 기도의 차 원을 가르쳐 준다.(눅22:42) 기도의 1차원이 아기와 같이 무조건 달라고 비는 것이라 면, 2차원은 기도 응답의 만족한 결과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3차원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한다. 또한 결과에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1942년 가을의 보스톤 축구팀의 패배와 구원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확신하게 된다. 또한 기도는 열린 신앙이 되게하며 편협한 이기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나게 한다. 웨슬리는 '편협한 신앙에 대한 경고'라는 설교에서 우리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위해 "오히 려 애쓰며 깨어서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함으로써 그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확증하라 "고 말씀하였다. 바로 이러한 기도가 주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 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쳤다.(딤전2:1)
4. 바울은 기쁨과 평화의 사도(Apostle of the Joy and the Peace)였다. 그는 어디에 서나 성도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여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롬15:13)과 함께 나누는 기쁨((빌2:4)어느 누구에게서도 얻을 수 없는 참된 평화를 선포하 였다. (살전1:6)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였다.(살전2:13,20)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바로 기쁜 마음으로 행할 때에 더욱 아름다운 성취를 이룬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총체적이며 전지구 적인 차원에서 전 생태계의 구원의 성취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그 분의 뜻을 온전히 순종 할 때에 이루어진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1)마땅한 믿음의 분량만큼 생각할 것,
2)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살 것,
3) 선으로 악을 이길 것을 강조하였다.(롬 12장) ♧ 주일 공동 기도 ♧ 부족한 인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시대의 징조를 꿈꾸면서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미의 예배를 드립니다. 한 해를 계획하며, 목표를 설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6주간이 흘러 연 말이 되어 주님께 결실의 열매를 드립니다. 그 동안 우리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아름답게 지난 일들을 정리하며, 영광스러운 주의 강림을 바라보는 이들이 되게 하시며, 가을비와 같이 칙칙한 어둠 속 에서 우리의 과거를 회개하는 시간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다사다난했던 올해의 어둠이 주님의 진리의 빛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희년을 맞이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히 받아 늘 성결과 봉사 그리고 사랑의 교제가 넘치는 삶이 되게 하 여 주시옵소서.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부요와 재물보다는 화평과 사랑이 넘치는 우리가 되도 록 도와주시고, 주의 언약을 지키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믿음이 가족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부정적 언어 교류분석이론의 대가 에릭 번(Eric Berne)은 인간의 부정적 삶의 행태는 자신이 성장 하면서 들은 부정적 메세지에 근거한다고 보면서 그 부정적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들 면서 그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1. 그만 둬라.(Don't be)
2. 성장하지 말아라.(Don't grow up)
3. 자각(自覺)하지 말아라.(Don't be yourself)
4. 제정신을 차리지 말라.(Don't be sane)
5. 친근해지지 말아라.(Don't be close) 첫번째 말은 인간으로써의 의욕을 스스로 상실하게 하는 태도이다. 어떠한일을 하다 가 실수해서 그 일에 대한 비판을 들어온 사람은 성장하는데 사람을기피하는 증세가 생기거나 소극적이 되게 하며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두번째 말은 인간의 성장을 제한하는 소리로 사람으로 창의력을 상실케 하고의존적 인 인간이 되게 하는 말이다. 이는 주로 보수적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자주 사용하는 말로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과 전통에 대항하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한다. 세번째 말은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고 새로운 독창적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을하나의 경쟁자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적당주의를 강요한다. 이러한 자기 몰이 해는 정한 목표가 없다. 네번째 말은 비판정신과 권위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의반발 등 을 두려워하여 사용하는 말이다. 건전한 의식이 상실되고 방탕한 삶을 방조하게 된다. 다섯번째는 친밀감이 생기면 비밀이 없어지고, 항상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당할 가능 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깊은 사귐과 친교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나쁜 것도 쉽게 닮아가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합니다. 부모나 존경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잘못된 것들이 있음에도 아무 비판없이 그저 단순히 똑같아지려고 하는 태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나 존경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그들도 모두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생의 지 표가 될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는 것 이외에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아 야 합니다. 모든 인간들 속에서 역사하시고 살아계신 주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지표요 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에 게 여러가지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에 순종하여 주 님을 닮는다고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특히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하신 말씀을 따를 때 과연 그 말씀을 쉽게 순종 할 수 있을까요 "서로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다 지키는 것과 같 다"고 하실만큼 그 비중이 큰데 이러한 일을 과연 우리가 쉽게 닮아갈 수 있을까 하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론'
1. 그러면 이러한 말씀들은 그저 우리의 귀에 기분좋게 들리라고 주신 말씀 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은 꼭 지키고 그대로 따라야 할 명령 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분명 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우리의 힘만으로 지켜 나갈 수 있을 까요 그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 입니다.
왜냐하면,
(1) 인간은 본래 육의 모 습이라서 육의 소욕대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18-20 에서는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 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인간이라면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마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미 육의 소욕 대로 사는 타고난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인간은 어떤 동기에서도 육의 욕심에 따르기 쉽습니다. 절제없는 말이나, 인간으로하여금 타인들에게 해를 가하도록 음모를 꾸미게하는뿌리 깊은 분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오히려 상대방을 위로해주기 보다 비방하는 말을 더 잘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해주고 유익을 주기 보다는 내 욕심에 끌려서 나는 절대로 손해볼 수 없다는 식의 태도가 나 오기 쉽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육의 욕심에 끌려서 나 자신도 모 르는 사이에 나오는 말과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동기가 좋을 수는 있으나 본성이 육의 욕심에 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좋지않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내 혼자 힘으로 이를 지킬 수 없다고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아 도 되는 것일까요 그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 거는 무엇이 되겠습니까 누구나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어디로부터 나올까 요
(1)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여기서 용 서함이란 "은혜를 베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가 잘못한 모든 것을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외에는 인간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지 아니 하고는 참되게 남을 용서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풍성하신 은 혜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은 사람은 용서하는 심령을 지니게 되며, 그 풍성 하신 은혜가 그 사람 마음속에 있으므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처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용서할 수 있는 힘의 근거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속에 살면서 우리의 모든 이웃을 용서하면 서 살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그리스도가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 로 하나님께 드린 사랑. 스스로 그 몸을 바쳐 제물이 되신 주님의 사랑의 행위를 본받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하나밖 에 없는 생명을 남을 위해 내 놓은 사랑, 그것도 십자가의 희생 제물이 되 면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 까지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시지 않으시면서 이렇게 죽어야만이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서 이를 받아들이기만하면 영생으로 바꾸어 주신 사랑. 이렇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웃을 위해 조그만 사랑을 주지 못한다면 주 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 때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음을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3) 성령께서 우리를 구속의 날까지 인치셨으므로 성령을 근심되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하나님께 속 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죄를 범할 때 그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이 근심하시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구속의 완성의 날까지 성령은 신자 안에서 떠나지 않고 역사하시며 구원을 보존 성취시키시는 것 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에 성령이 그 사람 속에서 함께 하시면서 성결된 생활을 하게 하십니다. 이제 성령은 우리 속에 계셔서 우리로 하여금 성결된 생활을 하게 하시므로 사랑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사랑하지 못할 때 근심하십니다. 내 힘으로 할 수는 없지만 사랑할 수 있는 힘의 근거를 성령으로부터 얻어서 우리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3.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자식은 부모를 닮습니다. 타고난 품성과, 자라면서 그 성격을 닮고 자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므로" (요1:12)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식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같이 거룩해야 하 며, 하나님의 자비함 같이 자비해야 하며, 하나님의 완전하심 같이 완전해 야 합니다.
(2) 그의 용서를 닮아야 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을 용서해주신 주님의 용서를 닮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35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주님의 용서를 닮아서 우리도 남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면 우리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죄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닮아서 우리도 모든 사람의 잘못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그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우리위해 주신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어 달으신 아버지의 사랑과 나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 신의 몸을 십자가에 매달면서 한마디 변명이 없으셨던 주님의 사랑을 닮아 야 합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없대서야 말 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계시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미워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닮아야 합니다.
'결론' 주님으로부터 우리는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을 받은 크신 은혜 를 통해서만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간직한 성도님들의 사랑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축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합당한 생활 성경
본문:엡 1:4-16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4:1) '부르심'이 란 그 자에가 우리에게 영광이자 복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울 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함은 우리가 특권을 부여받았음을 말하 고 있습니다. 결국 '부르심'이란 말속에는 축복,책임,의무,사명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 주님께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즉 하나되는 생활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형제,가정,부부,성도간에 하나가 되는 생활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분열은 다툼에서 일어납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교회와 당회 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 고'(2절). 5대 덕목이라 할 수 있는 '겸손,온유,오래 참음,사랑, 용납' 하는 것 이 하나되게 할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4절부터 6절가지의 말슴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 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했으며 보혜사 헝령의 역사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충만케 될 수 있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 와 교사로 주셨으니. 하나님의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 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11-14절). 여러가지 직분을 주신 이유는,
첫째로 직분을 맡은 자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직분자는 끊임없는 자기훈련과 아울러 성도들에게 훈련 을 시켜야 합니다.
둘째로, 직분자들은 교회에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직분자가 봉사 를 안하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교회를 세운다는 말과 같습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어야 합니다. 교인들이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지 못하면 분열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세상은 별의별 속임수와 유혹으로 방해를 할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신앙의 자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어린아이와 유혹에 빠져 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명삼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사랑안에서 성령이 하나된 것을 힘써 지키고 훈련된 생활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되어야 하고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장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있나 성경
본문:눅 2:41-52 흔히들 이 세상을 가르켜 고해라고 합니다.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많고 달콤한 일보다 쓰디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 대한 자세도 가지각색입니다. 어떤 사람은 염세주의적으로, 어떤 사람은 비관주의적으로 생을 밝게 살지 못하고 어둡게 살아갑니다. 밝은 세상거리로 활보하는 것보 다 구석진 그늘 길을 가기 좋아하고, 산중에 들어가기 좋아하고, 정적을 좋 아하며 세상을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의 생은 세상 을 보다 밝게, 보다 깨끗하게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삽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28장 20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세상 끝날까지 항상우리 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가 고해 같은 세상에서 주님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된 일인지 말로다 형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선 교사 리빙스톤(Livingston)은 그의 거실에 마태복음 28장 20절의 성구를 서 붙이고 항상 즐겨 읽으며 위로와 기쁨을 누렸다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녹은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300년간 동행하다가 죽지 않고 육신으로 유일하게 승천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누가복음 2장 에서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했던 그의 육신의 부모들이 예수님을 잃고 몹시 애태우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해 서 나는 예수님과 참으로 동행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I. 나혼자 인생길을 가면서 나는 주님과 동행한다는 잘못된 생활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12세 때 요셉과 마리아는 관례에 따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유대인 남자는 누구나 12세가 되면 의무적으로절 기를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이스라엘 의 해방 기념일인데 유대력으로 정월 15일부터 한 주간 지키는 엄숙한 절기 로써 예루살렘으로부터 백리 이내에 사는 12세 이상의 유대인 남자는 다 의 무적으로 참석토록 되어 있습니다. 이 절기를 잘 지키고 돌아오는 길에 하 룻 길을 간다음 저녁에 여관을 정하고보니 예수님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대 단히 놀랐습니다. 그후 3일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찾을 때까지 요셉 과 마리아는 그 얼마나 애를 태웠겠습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자기를 홀로 가면서 예수님이 함께 하시겠지 하는 착각을 했듯이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우리 혼자 방황하기 쉽다는 사실이2밑니다. 이렇게 되면 요셉과 마리아처럼 무척 답답해 하며, 애태우게 되고, 전진도 못하고 오던 길로 후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과 함께 동행 해야 승리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지 주님없이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어째서 예수님을 잃어 버렸는지 같이 생각해 봅시다.
1. 복잡하고 분주한 환경에 사로잡혀 잃어버렸습니다. 당시 유월절 절기에 참석하는 국내외 사람들은 300여만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고로 얼마나 분주하고 복잡했겠습니까 여관이고, 거리고, 어디든지 복잡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한 환경이 복잡하고 일과에 쫓기다 보면 예수님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고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차려서 우리 생활 환경이 분주하고 복잡할수록 더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에 힘쓰고 주의 종을 가까이 하면서 교회 일에 깊 은 관심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2. 세상 재미에만 정신을 팔다가 예수를 잃어버렸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유월절 이야 기에 꽃을 피우면서 예수님은 생각지도 않고 정신없이 오느라고 예수님이 없어진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 향락에 도취되면 주일 낮. 저녁예배,수요예배, 구역예배도 상관없이 지내게 되고 교회를 멀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 고모라에서 세상 향락에 도취된 나머지 하나님을 잃고 실패와 고통의 수난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바벨론 에 포로된 다니엘은 그 화려한 바벨론의 영화에도 도취되지 않고 들창문을 열고 예룻라렘을 향해 하루 세번씩 기도함으로 사탄을 이기고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분주하고 복잡하고 세상 재미나는 일에 많으면 많을수록 말씀을 깊 이상고하고 더욱 열심을 내어 기도하며 교회를 가까이 하며 교회 일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시간과 정성을 바쳐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잃지 않습니다.
3.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은 것은 예수님에 대한 무관심 때문입니다. 설마 어디엔가 따라 오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설마 주님이 나 버리려 고, 설마 용서 하겠지, 설마 함께. 그러면서 자기 관심에만 몰두하면 예수님은 온데간데 없고 혼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 없는 나그네 길 을 걸으면서도 주님과 나는 동행하며 살고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안하는 지요 교회 일에 무관심하면 절대 안됩니다. 구역일에 무관심해도 안되고 교회식구들에게 무관심해도 안됩니다. 무관심하면 양은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항상 깊은 관심을 갖고 양을 돌봐야 하며 양은 목자를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관심의 죄를 짓지 맙시다. 내가 안해도 다른 집사가 하 겠지. 내가 없어도 학생회가 잘 되겠지. 내가 안해도 성가대가 잘 되겠지 하는 이런 무관심은 주님과 멀어지고, 결국엔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일한다는 것은 축복의 첫 걸음 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삭개오의 축복 받은 이야기를 잘 압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 만나려고 애썼기 때문에 주님을 만나게 되었고 죄를 고백하게 되었고, 주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 입니다. 또 38년간 반신불수가 되어 꼼짝 못하는 사람을 그의 믿음 좋은 치가구들 이 깊은 관심을 갖고 예수님 곁에 최선을 다해 데려다 줌으로써 함께 큰 축복 받은 사실을 압니다. 에녹이 항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동행함으로 큰 축복받은 사실을 우리는 잘압니다. 우리는 굉장한 관심 속에 모든 것을 주님께 묶어 바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돈독한 신앙으로 환경을 이 기며 하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오늘 나는 예수님과 동행하고 있 습니까
II. 잃은 예수님을 어떻게 어디서 찾았는지 살펴 봅시다.
1.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동행치 않고 없어진 사실을 안 즉시 찾았습니다. 찾되 애써 간절히 찾았습니다. 우리도 항상 내가 과연 주님과 동행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잘 살피고 만일 그렇지 못함을 발견케 되면 즉시 미루지말 고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즉시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참으로 복 받을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회개도 즉시하고, 전도도 즉시하고, 교회봉 사도 즉시하고, 출석도 즉시하는 성도가 됩시다. 깨달은 신앙을 바로 행동 화 할 때 복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길이 명심합시다.
2. 44절 하반절을 보니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간절히 찾되 멀리가서 찾으려 하지말고 바로 가까이에서 찾 아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멀리가서 이방 사람만 구하려 고 하지 말고 가까운 이웃과 친척에게 먼저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하며 또한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되고, 교회에 나올 때 일가친척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과 거리 감을 느낄 때 멀리서 간격을 좁히려 하지 말고 바로 가까이 자신의 잘못부터 찾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3.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과거 걸어온 길을 돌이켜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찾아 나아가서 예루살렘 성 전에서 주님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걸어온 길을 돌이켜 자세히 살펴 보아 야 되겠습니다. 또 주님은 항상 성전에 계심을 믿고 교회를 찾아 열심히 나 아가야 되겠습니다. 잃은 예수님은 거리에서도 못찾으며, 구경꾼들 중에서 도 찾지 못하며, 세상에서도 찾지 못하며, 복잡하고 소란을 피우는 곳에서 도 찾지 못하며, 오로지 고요하고 엄숙한 성전에서 찾는다는 사실을 명심합 시다.
III.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1. 뜻을 같이 해야 합니다. 최소한 방향만이라도 같아야(주님과)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뜻이 같지 않기 때문에 헤어졌습니다. 우리 주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십니다. 고 로 내가 그 뜻에 굴복되어야 합니다. 아모스 3장 3절에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라고 했습니다.
2. 성결해야 합니다(계3:4 참조) 에녹이란 뜻은 "성결하신 자" 란 뜻입니다. 사대교회를 보면 그 웃(성도의 옳은 행실)을 더럽히지 않는 자들에게만 주님이 함께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더러운 곳에 같이 하시기를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3. 동행하는 서로 상호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만사에 부족한 저희 들이라도 믿고 귀한 사명들을 맡기십니다. 우리도 그를 절대 믿고 그 뜻만 따라야 되겠습니다.
4. 주님과 항상 같이 일한다는 생각을 갖고 생활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간에 주님 제외해 놓고는 하지 않는 생활을 살아야 되겠습니다.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해 가는 나그네로서 든든한 동행자가 꼭 필요 합니다. 매일 주님과 동행합시다. 무슨 일이든지 주님과 동행합시다. 우리는 한 걸 음 한 걸음 주님과 동행함으로 삶을 삽시다. 주님 뜻 안에서 성경
본문:롬 15:30-33
1. 오늘은 감사 주일이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돈 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재물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영원하지 않기에 이 땅에서 가 장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이러한 감사의 정신이 오늘의 유럽 문화 를 창출해 내었다고 한다. 외국인들 특히 서구인들은 고맙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감사하다고 하는 말에는 대단히 인색하다. 이러한 감사의 정신 뒤에는 신앙이라는 배경이 있다. 감사라는 말이 그리스어로는 은사 혹은 은혜라는 말과 좋은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은사를 체 험하고 그에 응답하는 것을 감사(感謝)라고 이해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감사의 신 앙을 가지고 늘 살았으며, 감사한 말을 강조하였다.(살전5:18)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발견하였고,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다. (골3:17) 우리는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2. 이러한 감사의 모습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사는 그의 삶에서 발견하게 된다. 바울의 삶의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사랑"(the Love of the Spirit)으로 권면하는 삶이다. 이는 단순히 사랑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히고, 예수의 정신으로 가 득한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목회자와 성도의 온전한 단결을 이룩한다. (골2:2) 이러한 사랑 안에서의 연합은 이 땅에 하나님의 질서를 이룬 참터를 향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영원한 이상(Vision)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 존 웨슬리는 "천상 천하에 사랑보다 깊고 사랑보다 좋은 것은 없다." 하였고 이는 또한 "모든 죄악 에 대한 구원의 방법이며, 생명의 양약이다."라고 하였다.
3. 또한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유대에 있는 불신자들과 성도를 위한 봉사를 위해 기도한 넓은 마음의 소유자였다. 기도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결단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기도는 바로 이러한 기도의 차 원을 가르쳐 준다.(눅22:42) 기도의 1차원이 아기와 같이 무조건 달라고 비는 것이라 면, 2차원은 기도 응답의 만족한 결과에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3차원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순종한다. 또한 결과에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1942년 가을의 보스톤 축구팀의 패배와 구원이라는 이야기 속에서 확신하게 된다. 또한 기도는 열린 신앙이 되게하며 편협한 이기주의적 신앙에서 벗어나게 한다. 웨슬리는 '편협한 신앙에 대한 경고'라는 설교에서 우리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위해 "오히 려 애쓰며 깨어서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함으로써 그를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확증하라 "고 말씀하였다. 바로 이러한 기도가 주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 에게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쳤다.(딤전2:1)
4. 바울은 기쁨과 평화의 사도(Apostle of the Joy and the Peace)였다. 그는 어디에 서나 성도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여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롬15:13)과 함께 나누는 기쁨((빌2:4)어느 누구에게서도 얻을 수 없는 참된 평화를 선포하 였다. (살전1:6) 특별히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복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였다.(살전2:13,20)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은 바로 기쁜 마음으로 행할 때에 더욱 아름다운 성취를 이룬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총체적이며 전지구 적인 차원에서 전 생태계의 구원의 성취가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성취는 그 분의 뜻을 온전히 순종 할 때에 이루어진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1)마땅한 믿음의 분량만큼 생각할 것,
2)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살 것,
3) 선으로 악을 이길 것을 강조하였다.(롬 12장) ♧ 주일 공동 기도 ♧ 부족한 인생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새로운 시대의 징조를 꿈꾸면서 우리들은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미의 예배를 드립니다. 한 해를 계획하며, 목표를 설정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6주간이 흘러 연 말이 되어 주님께 결실의 열매를 드립니다. 그 동안 우리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며 아름답게 지난 일들을 정리하며, 영광스러운 주의 강림을 바라보는 이들이 되게 하시며, 가을비와 같이 칙칙한 어둠 속 에서 우리의 과거를 회개하는 시간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다사다난했던 올해의 어둠이 주님의 진리의 빛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영광스러운 희년을 맞이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히 받아 늘 성결과 봉사 그리고 사랑의 교제가 넘치는 삶이 되게 하 여 주시옵소서.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부요와 재물보다는 화평과 사랑이 넘치는 우리가 되도 록 도와주시고, 주의 언약을 지키는 데에 부족함이 없는 믿음이 가족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명상의 시간:부정적 언어 교류분석이론의 대가 에릭 번(Eric Berne)은 인간의 부정적 삶의 행태는 자신이 성장 하면서 들은 부정적 메세지에 근거한다고 보면서 그 부정적 메세지를 다음과 같이 들 면서 그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1. 그만 둬라.(Don't be)
2. 성장하지 말아라.(Don't grow up)
3. 자각(自覺)하지 말아라.(Don't be yourself)
4. 제정신을 차리지 말라.(Don't be sane)
5. 친근해지지 말아라.(Don't be close) 첫번째 말은 인간으로써의 의욕을 스스로 상실하게 하는 태도이다. 어떠한일을 하다 가 실수해서 그 일에 대한 비판을 들어온 사람은 성장하는데 사람을기피하는 증세가 생기거나 소극적이 되게 하며 삶의 의욕을 잃게 된다. 두번째 말은 인간의 성장을 제한하는 소리로 사람으로 창의력을 상실케 하고의존적 인 인간이 되게 하는 말이다. 이는 주로 보수적인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자주 사용하는 말로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과 전통에 대항하는 것을 이해 하지 못한다. 세번째 말은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고 새로운 독창적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을하나의 경쟁자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적당주의를 강요한다. 이러한 자기 몰이 해는 정한 목표가 없다. 네번째 말은 비판정신과 권위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의반발 등 을 두려워하여 사용하는 말이다. 건전한 의식이 상실되고 방탕한 삶을 방조하게 된다. 다섯번째는 친밀감이 생기면 비밀이 없어지고, 항상 프라이버시의 침해를 당할 가능 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깊은 사귐과 친교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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