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에 편승하는 유혹 (고전13:1엡5:1)
본문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큰 아들을 둔 홀어머니가 작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 었습니다. 늙은 홀어머니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서, 남편과 큰 아들이 돌아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몇 년이 흘러도 배를 타고 나간 남편 과 큰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큰 바람이 일어나고, 파도가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센 폭풍이 일어난 것 입니다.
그런데 마침, 저멀리 수평선 가까운 곳에서 배 한 척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배를 구하기 위해서, 폭풍 우 속에 자신을 배를 바다에 띄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홀어머니의 하나 남은 작은 아들이 자신의 작은 배 를 띄워서, 표류하고 있는 배를 구하러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이 말에 홀어머니는 작은 아들까지 바다에서 잃을 수 없다면서, 절대로 안된다고 작 은 아들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누군가 도와주면 저 배를 구 할 수 있는데,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면서, 기어코 배를 타고, 폭풍 우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표류하고 있는 배 한척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는 동안, 작은 아들의 배는 표류선에 가까이 다가가는가 싶더니, 다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바닷가로 무사히 돌아왔 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돌아온 작은 아들의 배에는, 몇 년 전에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던 그의 아버지와 큰 형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생 끝에 겨우 고향을 향해 돌아오던 길에, 폭풍을 만나 표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작은 아들이 폭풍우 사이를 뚫고 그들에게 와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3장 5절에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자기 자신 보다 남 을 먼저 생각한 작은 아들의 마음이, 그의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과 영광 이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위한 생각 에 빠져 있으면, 거기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께 마음과 눈을 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우리의 생활 이 하나님과 멀게 느껴지고, 기도하지 않으며, 경배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는 죄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고 진단해 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그리스도 로 인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다른 사람 을 사랑할 수 있다고 의지적으로 고백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전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사고 방식 때문인지, 아직까지 우리는 어린 아이를 자기 가정에 입양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주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어린 아이들을 입양해서 친 자식 이상으로 정성스럽게 키우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입양해서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가 입양 되었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아이에게 무리없이 알려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입양아를 둔 부모들의 고민은, 입양한 그 자녀에게, 비록 그 아이가자신의 친 자녀는 아니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사랑과 권리를 똑같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키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부모 의 자녀가 아니지만, 인격적으로나 관계적으로는 부모의 자녀로 인정되는 상황,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과하늘 아버지와의 관계와 똑같은 상황이 아 니겠습니까 로마서 8장 15절과 1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 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을 증거하시나니.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버지 라 부른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전에는 죄에 속한 채 하나님과 아무 상관 없던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영의 양자로, 이제 그분을 아버지 라 부를 수 있는 자녀되는 특권 을 갖게 되었 다는 말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그 분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영원히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연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 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낯선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자신의 아이로 양자 삼는 것 이 그 부모의 의지적인 사랑의 행동이듯이,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 부를 수 있는 특권 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특권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향 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이 일을 가능케 하신 것과 이 일의 증거가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인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얼굴 시 91편/ 요 10:10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더라도, 그 얼굴에 기쁨의 표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사람의 얼굴은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그 표정에서 만족과 기쁨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표정 은 그 사람의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거울 이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 만 표정을 밝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남다른 데가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난히 표정이 밝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사람에 대해서 가지는 공통적인 첫 인상은, 아무 걱정 없이 자란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 니, 그 분이 그간 살아오면서 겪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게 생활하셨다는데, 그렇게 밝 은 표정일 수 있다는 것이 위선이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연극적인 삶을 살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 고통 가운데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 을 수 있겠느냐는 자연스러운 의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그분의 간증을 듣는 기회를 갖고, 그런 의문이 깨끗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시편 91편을 묵상했다고 하십니다. 시편 91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쉼터 인 것을 노래 하고(1-13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축복과 영화를 힘차게 묘사하고 있습니다(14-16절). 시편 91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 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나 면,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그분을 경험한 사람 이라면, 그분은 나의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든든한 요새 라고 진 심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그늘 아래 서 면, 생활이 가져다 주는 걱정이나 죄책감, 시기, 질투, 자기 연민이나 자만 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참으로 기쁨과 사랑을 나누며 생활할 수 있습니다. 위선이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 전능하신 것을 믿고, 그분 안에 사랑과 기쁨이 있는 것을 아는 생활, 이것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삶의 첫 걸음입니다.
그런데 마침, 저멀리 수평선 가까운 곳에서 배 한 척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 배를 구하기 위해서, 폭풍 우 속에 자신을 배를 바다에 띄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홀어머니의 하나 남은 작은 아들이 자신의 작은 배 를 띄워서, 표류하고 있는 배를 구하러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이 말에 홀어머니는 작은 아들까지 바다에서 잃을 수 없다면서, 절대로 안된다고 작 은 아들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누군가 도와주면 저 배를 구 할 수 있는데,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면서, 기어코 배를 타고, 폭풍 우 속에서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표류하고 있는 배 한척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는 동안, 작은 아들의 배는 표류선에 가까이 다가가는가 싶더니, 다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바닷가로 무사히 돌아왔 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돌아온 작은 아들의 배에는, 몇 년 전에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던 그의 아버지와 큰 형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생 끝에 겨우 고향을 향해 돌아오던 길에, 폭풍을 만나 표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작은 아들이 폭풍우 사이를 뚫고 그들에게 와 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3장 5절에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자기 자신 보다 남 을 먼저 생각한 작은 아들의 마음이, 그의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과 영광 이 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을 위한 생각 에 빠져 있으면, 거기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하나님께 마음과 눈을 모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우리의 생활 이 하나님과 멀게 느껴지고, 기도하지 않으며, 경배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는 죄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고 진단해 도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그리스도 로 인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다른 사람 을 사랑할 수 있다고 의지적으로 고백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전통과 가문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사고 방식 때문인지, 아직까지 우리는 어린 아이를 자기 가정에 입양하는 것에 대해서 관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주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어린 아이들을 입양해서 친 자식 이상으로 정성스럽게 키우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입양해서 기르는 부모들이 아이가 입양 되었다는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아이에게 무리없이 알려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입양아를 둔 부모들의 고민은, 입양한 그 자녀에게, 비록 그 아이가자신의 친 자녀는 아니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사랑과 권리를 똑같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시키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혈통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부모 의 자녀가 아니지만, 인격적으로나 관계적으로는 부모의 자녀로 인정되는 상황,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과하늘 아버지와의 관계와 똑같은 상황이 아 니겠습니까 로마서 8장 15절과 1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 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 을 증거하시나니.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버지 라 부른다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전에는 죄에 속한 채 하나님과 아무 상관 없던 자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영의 양자로, 이제 그분을 아버지 라 부를 수 있는 자녀되는 특권 을 갖게 되었 다는 말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그 분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영원히 그분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시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연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 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낯선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자신의 아이로 양자 삼는 것 이 그 부모의 의지적인 사랑의 행동이듯이,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 부를 수 있는 특권 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가 되는 특권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향 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되는 이 일을 가능케 하신 것과 이 일의 증거가 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인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얼굴 시 91편/ 요 10:10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더라도, 그 얼굴에 기쁨의 표정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사람의 얼굴은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이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라, 그 표정에서 만족과 기쁨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표정 은 그 사람의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는 거울 이라고 생각합니다. 밝은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 만 표정을 밝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나 고통스러운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남다른 데가 있다고 봅니다.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유난히 표정이 밝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그 사람에 대해서 가지는 공통적인 첫 인상은, 아무 걱정 없이 자란 온실 속의 화초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 니, 그 분이 그간 살아오면서 겪은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게 생활하셨다는데, 그렇게 밝 은 표정일 수 있다는 것이 위선이 아닌가 생각도 했습니다. 연극적인 삶을 살지 않는 다음에야, 어떻게 고통 가운데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 을 수 있겠느냐는 자연스러운 의문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우연히 그분의 간증을 듣는 기회를 갖고, 그런 의문이 깨끗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시편 91편을 묵상했다고 하십니다. 시편 91편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쉼터 인 것을 노래 하고(1-13절),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축복과 영화를 힘차게 묘사하고 있습니다(14-16절). 시편 91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 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나 면, 우리는 우리를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우리를 지키시는 그분을 경험한 사람 이라면, 그분은 나의 피난처일 뿐만 아니라 내 삶의 든든한 요새 라고 진 심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그늘 아래 서 면, 생활이 가져다 주는 걱정이나 죄책감, 시기, 질투, 자기 연민이나 자만 심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서 참으로 기쁨과 사랑을 나누며 생활할 수 있습니다. 위선이 아니고 말입니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 전능하신 것을 믿고, 그분 안에 사랑과 기쁨이 있는 것을 아는 생활, 이것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삶의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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