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엡4:22-24)
본문
“새롭다”는 말은 언제나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새로움은 긴강되는 기대와 함께 우리의 삶 깊이에 찾아오는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쁨은 또다른 기쁨을 가져오고 가슴을 열고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용기를 일구게도 합니다. 새로움의 사건은
그러므로 변화의 동기이면서 또한 그것의 결과 이며, 그것은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아껴둔 새신을 신고 신바람이 나서 뛰어다니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새로움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힘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살림의 힘입니다. 이것은 부속 몇개를 슬쩍 갈아 끼우고, 여기 저기에 페인트나 칠하여 흠이난 부분을 감추는 눈가림이 아니란 것을 우린알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서는 어떤 것도 새롭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로와 지지도 않습니다. “새로움”이란 어떠한 근본적인 것의 철저한 변화를 가져왔을 때 붙여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움을 말할 때는 언제나 “끊어버림”,“벗어버림”,“돌아섬”이라는 말을 함께 하게됩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와 진다는 것은 그 이전 것을 더이상 기웃거리지 아니하는 철저한 “바뀜”입니다. 새로움의 마당에는 단단하고 여문 결심이 중심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흐트러 지거나 되돌아 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움을 “살벌한 추위를 떨치고 일어선 푸른 생명력”과 곧잘 비유하기도 합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새로움의 사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옛 생활을 따르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근복적으로 살리는 일이며 언제까지라고 변함없는 새로움으로 용기롭게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기만적인 역사 속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새로움의 사건을 앞당기신 것을 깊게 묵상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생각을 이어받아 살아감으로 이루어 지게될 거룩함을 우리에게서 보아야 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움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눈가림이나 하는 수리작업이 아니라, 푸른 생명력을 닮은 흐트러짐 없는 하나님의 의로운 생각을 따르는 것이며, 이것을 내용으로 하는 변화이며, 그것을 가능케하는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변화의 동기이면서 또한 그것의 결과 이며, 그것은 무엇으로도 규정지을 수 없는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아껴둔 새신을 신고 신바람이 나서 뛰어다니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새로움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힘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살림의 힘입니다. 이것은 부속 몇개를 슬쩍 갈아 끼우고, 여기 저기에 페인트나 칠하여 흠이난 부분을 감추는 눈가림이 아니란 것을 우린알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서는 어떤 것도 새롭게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새로와 지지도 않습니다. “새로움”이란 어떠한 근본적인 것의 철저한 변화를 가져왔을 때 붙여지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움을 말할 때는 언제나 “끊어버림”,“벗어버림”,“돌아섬”이라는 말을 함께 하게됩니다. 그렇습니다. 새로와 진다는 것은 그 이전 것을 더이상 기웃거리지 아니하는 철저한 “바뀜”입니다. 새로움의 마당에는 단단하고 여문 결심이 중심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쉽사리 흐트러 지거나 되돌아 가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움을 “살벌한 추위를 떨치고 일어선 푸른 생명력”과 곧잘 비유하기도 합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새로움의 사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옛 생활을 따르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근복적으로 살리는 일이며 언제까지라고 변함없는 새로움으로 용기롭게 나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기만적인 역사 속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새로움의 사건을 앞당기신 것을 깊게 묵상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생각을 이어받아 살아감으로 이루어 지게될 거룩함을 우리에게서 보아야 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움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눈가림이나 하는 수리작업이 아니라, 푸른 생명력을 닮은 흐트러짐 없는 하나님의 의로운 생각을 따르는 것이며, 이것을 내용으로 하는 변화이며, 그것을 가능케하는 “함께하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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