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하나 (엡4:3-6,13-6)
본문
그 영의 하나 교회의 하나란 무엇인가 에베소서 4장에서 우리에게 잘 말해주고 있다. "평안의 매는 줄로 그 영의 하나를 성실히 지키라 즉 그 몸이 하나요 그 영이 하나이니 너희가 또한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 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요 신앙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이며 여호와 하나님 곧 만유의 아버지도 하나이시니 그분은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 과하시고 만유 안에 계시도다" (3절-6절, 원문 참조) 교회의 하나는 삼일 하나님을 포함한 그 영의 하나이다. 여기 에베 소서 4장에서는 일곱 가지가 세 군(숙)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 군에 신격의 삼위(삼위)중 한 분이 계신다.
첫째 군에는 그 영이,
둘째 군 에는 주님이,
셋째 군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첫째 군에는 그 몸과 그 영과 소망이 있다.
둘째 군에서는 주님과 신앙과 침례를 보며, 마지막 세째 군에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담고 있다. 그 영과 함깨 그 몸과 소망이 있고 주님과 함깨 신앙과 침례가 있다. 이어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과하시며 만유 안에 계신 만유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삼위(삼위)안에 게신 신격이 그 영 안에서 깨달아 지는 우리의 하나(oneness)이다. 교회의 하나는 곧 삼일 하나님으로서, 그 몸을 형성하기 위하여 우리 안으로 분배되신, 세 위격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 영이 첫번째로, 주님이 두번째로, 아버지 하나님이 세번째 순으로 언급된 것을 주시해 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차례는 몸의 형성에 따른 것이지 신격의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니다. 삼위(삼위)인 신격의 순으 로 따르자면 아버지 하나님이 첫번째이고 주님이 두번째이며 그 다음 으로 그 영이 된다. 그러나 몸의 형성에 따르자면 우리의 체험에서 그 영이 처음이고 주님이 두번째이며 그 다음이 아버지 하나님이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이 근원이시고 주님이 과정이시며 그 영이 적용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 영의 적용 안에서 그 영의 적용을 가지 고 몸이 존재하게 된다. 그 영이 없이는 그 몸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영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에게로 인도되고, 우리가 주님 을 가질 때 우리는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갖는다. 이것이 교회의 하나이다. 그것이 바로 그 영 안에서 실제화되는 삼일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하나는 성령의 하나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 고,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 영은 지금 그 몸 안에 계 신다. 이 넷은 이제 하나 안에 있다. 이 넷은 곧 아버지, 아들, 그 영, 그 몸이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삼일 하나님이 그 몸과 하나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믿음과 침례에 의해서 가능하다. 믿음으로 주 안으로 들어가고, 침례로 우리의 모든 옛것은 끝난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데리고 가고 침례는 우리를 아담 으로부터 데리고 나온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믿고 침례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믿고 침례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그리 도로 옮겨진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출생하여 아담 안에 있었다. 그러나 믿고 침례받음으로써 우리는 아담에게서 나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우리는 믿을 때 그리스도 안으로 믿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침례로 장사될 때 그 묻힘은 우리의 옛 관계를 모두 끝내 버린다. 이 둘에 의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소망과 함께 삼일 하나님과 하나이다. 그 소망은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운명이 며 우리의 종착지이다. 그 소망은 오시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오 심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 즉 영광의 소망이시다(골1:27). 그분이 돌아오실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영화롭게 되어 그분의 영광으 로 돌아갈 것이다(빌3:21, 고전2:7, 벧전5:10). 이것이 하나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실지로 하나이다. 참 그리스도 인이라면 모두 동일하다. 이 일곱 가지 안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다. 이것이 우리의 하나이다. 이 하나는 그 영의 하나이다. 그 영이 이 하나의 실제이다. 신앙의 하나 이 하나는 또한 우리 모두가 믿는 신앙의 하나(oneness)이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된 신앙의 하나이다. 우리는 그 영 안에서 하나인 것 같이 신앙 안에서 또한 하나이다. 에베소서 4장 13절과 14절에서 우리는 신앙의 하나와 교훈의 풍조 를 볼 수 있다. 신앙과 교훈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앙은 우리가 그것 들을 믿으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테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속하는 역사가 그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들을 믿으면 우리는 구원받는다. 신앙은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 들은 신앙이요 교훈이 아니다. 교훈은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물에 잠겨 침례받는 데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약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물에 잠김이나 약세가 신앙에 속한 것인가 신앙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물에 잠김이나 약세는 그렇게 절 대적인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약세를 받고 다른 사람들은 물 에 잠긴다.
그러므로 약세나 물에 잠김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은 물에 잠기든 물을 뿌리든 어느 것도 신 앙과 상관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물에 잠기든 물을 뿌리든 이단이 아니다. 이 둘은 교훈들이다. 이 둘 중 어느 것도 신앙에 속한 것이 아니다. 신앙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 있다. 만일 우리에게 신앙이 있다면 구원될 것이고, 신앙이 없다면 읾은 바 될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그러나 교훈은 무엇인가 교훈은 우리에게 유익하더라도 우리의 구원 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신앙을 위해 싸움 오늘날의 기독교에는 많은 교훈들이 있다.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 발을 씻는 것, 물에 잠김이나 물을 뿌림 등의 침례 방법 등 여러 가 지가 있다. 성경에서 따온 많은 교훈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신앙에 속 한 것이 아니다. 단지 교훈과 교리에 불과하고 우리의 구원에는 아무 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머리를 가리든 안 가리든, 발 씻기를 실행하 든, 안 하든, 침례를 물에 잠겨서 하든 물을 뿌려 하든, 신앙을 지키는 한 우리는 구원된다. 나는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유다서 3절을 인용하는 것을 들었다. " .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신앙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 .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가 신앙을 위하여 꼭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물에 잠기는 침례를 그들의 신앙으로 택하여 이것을 위해 싸 운다. 그러나 물에 잠기는 침례나 다른 많은 교리들은 신앙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리들일 따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을 위해 싸우 라고 했지 교리나 교훈을 위해 싸우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반드시 신앙 즉 구원하는 신앙을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에 아무 런 상관이 없는 교리들을 위하여 싸워서는 안 된다. 가령 어느 형제가 약세를 주장한다 하자.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물에 잠기는 침례가 더 낫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약세를 고집한다면 그대로 하게 두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이 약세를 주장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단신과 하나이다. 나는 약세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신앙 안에서, 그 몸 안에서 당신과 하나인 것이다. 나는 신앙 안에 있고 교회 안에 있는 당신과 그 어떤 교리에 의해서 도 나위어지고 싶지 않다. 우리는 어떤 교훈도 우리의 신앙의 일부로 만들어선 안 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들을 어떤 교리의 '교회' 로 만드는 격이 되고 그 교리의 분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물에 잠기는 방식이나 물 뿌리는 방식을 주장하여 그것을 우리의 신앙의 한 부분 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물 뿌리는 '교회' 나 물에 잠기는 '교회 ' 가 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참된 교회들이 아니요 분파들이다. 물 뿌 리는 법이나 물에 잠기는 법 중 어떤 것을 실행하든지 신앙과는 상관 이 없다. 우리가 다만 신앙을 지키는 한, 어떤 교훈도 우리의 신앙의 한 부분으로 만들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이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고, 교훈들에 의하여 우리는 분리된다. 신앙과 교훈의 차이 우리는 신앙과 교훈의 차이에 관하여 아주 분명해야 한다. 신앙은 유일한 하나이지만 교훈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연 합시키지만 교훈은 갈라놓는다. 신앙으로는 반드시 합일과 하나가 있 지만 교훈에는 분열의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교훈이든 관계 없이 분리시킬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교훈도 우리를 분열시키 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경계하여야 한다.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 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신앙이 아닌 교훈은 그것이 제일가는 교훈이라 해도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으로 택하는 것으로부터, 합당한 교회 생활로부터 우리를 채어가는 바람이 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 관한 주님 의 유일하신 목적에 주의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중심 목적으로부터 어떤 교리의 '풍조' 에 의해서 밀려 갈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꼭 붙들고 그분의 몸에 굳게 결합하여 그 영의 하 나 안에서 신앙의 하나를 지켜야 한다. 절대로 어떤 교훈의 바람에 의해 신앙의 하나롭터 떨어져서는 안 된다! 신앙의 하나가 우선이다. 우리는 어떤 교리도 아닌 신앙의 하나 편에 영원히 서야 한다. 어떤 교훈도 우리에게 '바람' 이 되게 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주님의 구 출하심과 주님의 보호가 진정으로 필요하다. 생명안에서의 성장이 필요함 신앙의 하나를 지키고 교훈의 풍조에 밀려가지 않으려면 생명 안에 서 자라남이 필요하다. 교훈들은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마치 장난감들과 같다. 어릴수록 더 장난감을 좋아한다. 당신응 아직도 교 훈들로 장난하고 있는가 나는 여러준이 주 안에서 더욱더 자람에 따 라 가르침의 장난감들을 여러분의 손에서 놓게 될 것을 확신한다.
에베소서 4장과 14절-15절은, 우리가 모든 것 안에서 그리스도에까 지 자라나지 못하였을 때 교훈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밝히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어린아이인 한 교활한 대적은 우리에게 어떤 특정 한 교훈들을 사용하여 우리를 속여 합당한 교회 생활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쉬 빗나가게 한다. 이것은 마치 바람이 우리를 본래의 합당한 진로로부터 이탈시키는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들은 장 난감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교훈들은 장난감과 똑 같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교훈의 모든 장난감으로부터 구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구출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생명의 성장으로 말 미암은 구출이어야 한다.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장난감도 고집해서는 안 딘다.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시며,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성육신되셨으며,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음을 성도들이 믿는 한, 우리는 반드시 그들과 하나여야 한다. 주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 심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신앙만을 가짐 나는 미국에서 몇 군데를 방문하는 동안 한번 이상 침례받는 것이 성서적이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 안에서 성장한다면 우리는 교리적인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하는 전부는 신앙과 하나뿐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매들의 머리에 수건을 쓰는 실행을 못마땅히 여겼다. 그것은 크게 보아 의견에 관한 문제이다. 자매가 수건을 써야겠 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한 그것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수건을 쓰는 것을 형식적인 것으로 정하여 지키 도록 한다. 이것은 또다른 극단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로 말씀 읽기를 반대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큰 소리로 찬양함을 비난한다. 그것은 모두 불필요한, 분쟁하는 의견들 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찬양하는 한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하든 반대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반대한다 면 그것은 지나친 것이다. 또한편으로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고 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면 이것 또한 다른 쪽으로 너무 지 나친 것이다. 교회의 하나를 본 우리는 어떤 것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오직 신 앙만을 지켜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이것이 신앙 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 자매가 수건을 써야 할 필 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녀는 이 문제를 그녀의 느낌에 따라 행할 수 있다. 이것이 교회생활이고 하나를 지키는 것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문제에 관한 로마서 14장 1절-6절에 있는 사도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그 몸의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자유롭 고 관대한 태도를 취하라고 하셨다.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에게는 목적이 분명하고 길도 뚜렷하다. 우리에게는 하나 외에는 선택할 것이 없다. 우리는 하나 외에 아무 것 에도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한 몸, 한 영, 한 소망이 있다. 거기에는 한 주(주), 한 신앙, 한 침례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하나님이신 만유의 아버지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 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처럼 넓고 만유를 다 포함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신앙 외의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 신앙의 하나에 도달함 생명의 성장으로 우리가 하나를 지키도록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각종 교리들과 교훈들의 장난감들을 떨치고 신앙의 하나에 도달하도록(엡4:13, 헬라어 참조) 생명 안에서 자라 고 또 자라야 한다.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모두 신앙의 하나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 후 어린아이 같은 미숙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차츰 여러 가지 다른 교 리들이나 교훈들을 주워 의도적으로나 무심코 갈라지게 디었다. 생명 안에서 성장한다면 우리는 자연히 의견을 달리하는 가르침을 차츰차 츰 떨치게 될 것이다. 주 안에서 더 성장하면 우리는 그 교리적인 장 난감들을 더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보다도 더 많이 성장하면 우리는 교훈들에 대해 별로 흥미를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생명 안에 서의 성장과 성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신앙의 하나에 도달할 것이다 그럴 때 미성숙한 사람들이 지키는 교훈들의 장난감들은 모두 사라지 게 될 것이다. 오, 우리는 의견을 달리하는 교훈들과 교리들로부터 신앙의 하나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랜 시간을 '교 훈의 풍조' 에 밀려다녔다. 이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이다. 이것은 주님을 향한 참된 돌아섬과 생명 안에서의 성장을 요구한다. 교회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신앙의 하나로 돌아와야 한다. 교회의 하 나를 위하여 우리는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분열적인 교리들로부터 돌 아와야 한다. 참된 몸의 생활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에게는 참된 하나 즉 그 영의 하나와 신앙의 하나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 모든 분열적 인 교리들은 반드시 물러가야 하며 오로지 그 영과 신앙만이 남아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를 바란다!
첫째 군에는 그 영이,
둘째 군 에는 주님이,
셋째 군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계신다.
첫째 군에는 그 몸과 그 영과 소망이 있다.
둘째 군에서는 주님과 신앙과 침례를 보며, 마지막 세째 군에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담고 있다. 그 영과 함깨 그 몸과 소망이 있고 주님과 함깨 신앙과 침례가 있다. 이어서,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과하시며 만유 안에 계신 만유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삼위(삼위)안에 게신 신격이 그 영 안에서 깨달아 지는 우리의 하나(oneness)이다. 교회의 하나는 곧 삼일 하나님으로서, 그 몸을 형성하기 위하여 우리 안으로 분배되신, 세 위격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그 영이 첫번째로, 주님이 두번째로, 아버지 하나님이 세번째 순으로 언급된 것을 주시해 보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차례는 몸의 형성에 따른 것이지 신격의 순서에 따른 것이 아니다. 삼위(삼위)인 신격의 순으 로 따르자면 아버지 하나님이 첫번째이고 주님이 두번째이며 그 다음 으로 그 영이 된다. 그러나 몸의 형성에 따르자면 우리의 체험에서 그 영이 처음이고 주님이 두번째이며 그 다음이 아버지 하나님이다. 그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이 근원이시고 주님이 과정이시며 그 영이 적용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 영의 적용 안에서 그 영의 적용을 가지 고 몸이 존재하게 된다. 그 영이 없이는 그 몸이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그 영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에게로 인도되고, 우리가 주님 을 가질 때 우리는 근원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갖는다. 이것이 교회의 하나이다. 그것이 바로 그 영 안에서 실제화되는 삼일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하나는 성령의 하나이다.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시 고, 아들은 그 영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 영은 지금 그 몸 안에 계 신다. 이 넷은 이제 하나 안에 있다. 이 넷은 곧 아버지, 아들, 그 영, 그 몸이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어떻게 삼일 하나님이 그 몸과 하나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믿음과 침례에 의해서 가능하다. 믿음으로 주 안으로 들어가고, 침례로 우리의 모든 옛것은 끝난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데리고 가고 침례는 우리를 아담 으로부터 데리고 나온다. 이것이 우리가 반드시 믿고 침례받아야 하는 이유이다. 믿고 침례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그리 도로 옮겨진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출생하여 아담 안에 있었다. 그러나 믿고 침례받음으로써 우리는 아담에게서 나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우리는 믿을 때 그리스도 안으로 믿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침례로 장사될 때 그 묻힘은 우리의 옛 관계를 모두 끝내 버린다. 이 둘에 의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소망과 함께 삼일 하나님과 하나이다. 그 소망은 우리의 미래이고 우리의 운명이 며 우리의 종착지이다. 그 소망은 오시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오 심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 즉 영광의 소망이시다(골1:27). 그분이 돌아오실때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영화롭게 되어 그분의 영광으 로 돌아갈 것이다(빌3:21, 고전2:7, 벧전5:10). 이것이 하나이다. 이 안에서 우리는 실지로 하나이다. 참 그리스도 인이라면 모두 동일하다. 이 일곱 가지 안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다. 이것이 우리의 하나이다. 이 하나는 그 영의 하나이다. 그 영이 이 하나의 실제이다. 신앙의 하나 이 하나는 또한 우리 모두가 믿는 신앙의 하나(oneness)이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된 신앙의 하나이다. 우리는 그 영 안에서 하나인 것 같이 신앙 안에서 또한 하나이다. 에베소서 4장 13절과 14절에서 우리는 신앙의 하나와 교훈의 풍조 를 볼 수 있다. 신앙과 교훈의 차이는 무엇인가 신앙은 우리가 그것 들을 믿으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테면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속하는 역사가 그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것들을 믿으면 우리는 구원받는다. 신앙은 그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 들은 신앙이요 교훈이 아니다. 교훈은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물에 잠겨 침례받는 데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약세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물에 잠김이나 약세가 신앙에 속한 것인가 신앙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물에 잠김이나 약세는 그렇게 절 대적인 것은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약세를 받고 다른 사람들은 물 에 잠긴다.
그러므로 약세나 물에 잠김 그 어느 것도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것은 물에 잠기든 물을 뿌리든 어느 것도 신 앙과 상관되지 않음을 증명해준다. 물에 잠기든 물을 뿌리든 이단이 아니다. 이 둘은 교훈들이다. 이 둘 중 어느 것도 신앙에 속한 것이 아니다. 신앙은 우리의 구원과 관련 있다. 만일 우리에게 신앙이 있다면 구원될 것이고, 신앙이 없다면 읾은 바 될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그러나 교훈은 무엇인가 교훈은 우리에게 유익하더라도 우리의 구원 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신앙을 위해 싸움 오늘날의 기독교에는 많은 교훈들이 있다.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 발을 씻는 것, 물에 잠김이나 물을 뿌림 등의 침례 방법 등 여러 가 지가 있다. 성경에서 따온 많은 교훈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신앙에 속 한 것이 아니다. 단지 교훈과 교리에 불과하고 우리의 구원에는 아무 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머리를 가리든 안 가리든, 발 씻기를 실행하 든, 안 하든, 침례를 물에 잠겨서 하든 물을 뿌려 하든, 신앙을 지키는 한 우리는 구원된다. 나는 과거에 많은 사람들이 유다서 3절을 인용하는 것을 들었다. " .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신앙을 위하여 힘써 싸우라" .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가 신앙을 위하여 꼭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물에 잠기는 침례를 그들의 신앙으로 택하여 이것을 위해 싸 운다. 그러나 물에 잠기는 침례나 다른 많은 교리들은 신앙에 속한 것이 아니라 교리들일 따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신앙을 위해 싸우 라고 했지 교리나 교훈을 위해 싸우라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반드시 신앙 즉 구원하는 신앙을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에 아무 런 상관이 없는 교리들을 위하여 싸워서는 안 된다. 가령 어느 형제가 약세를 주장한다 하자.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물에 잠기는 침례가 더 낫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약세를 고집한다면 그대로 하게 두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으로 충분하다. 당신이 약세를 주장한다 해도 나는 여전히 단신과 하나이다. 나는 약세를 지지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신앙 안에서, 그 몸 안에서 당신과 하나인 것이다. 나는 신앙 안에 있고 교회 안에 있는 당신과 그 어떤 교리에 의해서 도 나위어지고 싶지 않다. 우리는 어떤 교훈도 우리의 신앙의 일부로 만들어선 안 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우리는 우리들을 어떤 교리의 '교회' 로 만드는 격이 되고 그 교리의 분파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물에 잠기는 방식이나 물 뿌리는 방식을 주장하여 그것을 우리의 신앙의 한 부분 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물 뿌리는 '교회' 나 물에 잠기는 '교회 ' 가 되는 것이다. 이것들은 참된 교회들이 아니요 분파들이다. 물 뿌 리는 법이나 물에 잠기는 법 중 어떤 것을 실행하든지 신앙과는 상관 이 없다. 우리가 다만 신앙을 지키는 한, 어떤 교훈도 우리의 신앙의 한 부분으로 만들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이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고, 교훈들에 의하여 우리는 분리된다. 신앙과 교훈의 차이 우리는 신앙과 교훈의 차이에 관하여 아주 분명해야 한다. 신앙은 유일한 하나이지만 교훈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은 연 합시키지만 교훈은 갈라놓는다. 신앙으로는 반드시 합일과 하나가 있 지만 교훈에는 분열의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교훈이든 관계 없이 분리시킬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 교훈도 우리를 분열시키 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경계하여야 한다.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 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신앙이 아닌 교훈은 그것이 제일가는 교훈이라 해도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으로 택하는 것으로부터, 합당한 교회 생활로부터 우리를 채어가는 바람이 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교회에 관한 주님 의 유일하신 목적에 주의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중심 목적으로부터 어떤 교리의 '풍조' 에 의해서 밀려 갈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꼭 붙들고 그분의 몸에 굳게 결합하여 그 영의 하 나 안에서 신앙의 하나를 지켜야 한다. 절대로 어떤 교훈의 바람에 의해 신앙의 하나롭터 떨어져서는 안 된다! 신앙의 하나가 우선이다. 우리는 어떤 교리도 아닌 신앙의 하나 편에 영원히 서야 한다. 어떤 교훈도 우리에게 '바람' 이 되게 하지 말자! 우리에게는 주님의 구 출하심과 주님의 보호가 진정으로 필요하다. 생명안에서의 성장이 필요함 신앙의 하나를 지키고 교훈의 풍조에 밀려가지 않으려면 생명 안에 서 자라남이 필요하다. 교훈들은 좋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마치 장난감들과 같다. 어릴수록 더 장난감을 좋아한다. 당신응 아직도 교 훈들로 장난하고 있는가 나는 여러준이 주 안에서 더욱더 자람에 따 라 가르침의 장난감들을 여러분의 손에서 놓게 될 것을 확신한다.
에베소서 4장과 14절-15절은, 우리가 모든 것 안에서 그리스도에까 지 자라나지 못하였을 때 교훈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밝히 보여 주고 있다. 우리가 어린아이인 한 교활한 대적은 우리에게 어떤 특정 한 교훈들을 사용하여 우리를 속여 합당한 교회 생활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쉬 빗나가게 한다. 이것은 마치 바람이 우리를 본래의 합당한 진로로부터 이탈시키는 것과 같다. 왜 그런가 하면 어린아이들은 장 난감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교훈들은 장난감과 똑 같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교훈의 모든 장난감으로부터 구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외적인 구출이 되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생명의 성장으로 말 미암은 구출이어야 한다.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성장하는 동안 우리는 어떤 장난감도 고집해서는 안 딘다.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시며, 사람이 되시기 위하여 성육신되셨으며, 우리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음을 성도들이 믿는 한, 우리는 반드시 그들과 하나여야 한다. 주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 심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신앙만을 가짐 나는 미국에서 몇 군데를 방문하는 동안 한번 이상 침례받는 것이 성서적이냐는 질문을 몇 번 받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주 안에서 성장한다면 우리는 교리적인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하는 전부는 신앙과 하나뿐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매들의 머리에 수건을 쓰는 실행을 못마땅히 여겼다. 그것은 크게 보아 의견에 관한 문제이다. 자매가 수건을 써야겠 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한 그것을 반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수건을 쓰는 것을 형식적인 것으로 정하여 지키 도록 한다. 이것은 또다른 극단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로 말씀 읽기를 반대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큰 소리로 찬양함을 비난한다. 그것은 모두 불필요한, 분쟁하는 의견들 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찬양하는 한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하든 반대해서는 안 된다. 만일 우리가 반대한다 면 그것은 지나친 것이다. 또한편으로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고 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한다면 이것 또한 다른 쪽으로 너무 지 나친 것이다. 교회의 하나를 본 우리는 어떤 것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오직 신 앙만을 지켜야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이것이 신앙 을 위하여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 자매가 수건을 써야 할 필 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녀는 이 문제를 그녀의 느낌에 따라 행할 수 있다. 이것이 교회생활이고 하나를 지키는 것이다. 의견을 달리하는 문제에 관한 로마서 14장 1절-6절에 있는 사도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그 몸의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서로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자유롭 고 관대한 태도를 취하라고 하셨다. 주님을 찬양하자! 우리에게는 목적이 분명하고 길도 뚜렷하다. 우리에게는 하나 외에는 선택할 것이 없다. 우리는 하나 외에 아무 것 에도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한 몸, 한 영, 한 소망이 있다. 거기에는 한 주(주), 한 신앙, 한 침례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하나님이신 만유의 아버지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 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처럼 넓고 만유를 다 포함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신앙 외의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다. 신앙의 하나에 도달함 생명의 성장으로 우리가 하나를 지키도록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각종 교리들과 교훈들의 장난감들을 떨치고 신앙의 하나에 도달하도록(엡4:13, 헬라어 참조) 생명 안에서 자라 고 또 자라야 한다. 구원받았을 때 우리는 모두 신앙의 하나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 후 어린아이 같은 미숙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차츰 여러 가지 다른 교 리들이나 교훈들을 주워 의도적으로나 무심코 갈라지게 디었다. 생명 안에서 성장한다면 우리는 자연히 의견을 달리하는 가르침을 차츰차 츰 떨치게 될 것이다. 주 안에서 더 성장하면 우리는 그 교리적인 장 난감들을 더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보다도 더 많이 성장하면 우리는 교훈들에 대해 별로 흥미를 갖지 않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생명 안에 서의 성장과 성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신앙의 하나에 도달할 것이다 그럴 때 미성숙한 사람들이 지키는 교훈들의 장난감들은 모두 사라지 게 될 것이다. 오, 우리는 의견을 달리하는 교훈들과 교리들로부터 신앙의 하나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중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랜 시간을 '교 훈의 풍조' 에 밀려다녔다. 이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때이다. 이것은 주님을 향한 참된 돌아섬과 생명 안에서의 성장을 요구한다. 교회생활을 위하여 우리는 신앙의 하나로 돌아와야 한다. 교회의 하 나를 위하여 우리는 의견을 달리하는 모든 분열적인 교리들로부터 돌 아와야 한다. 참된 몸의 생활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에게는 참된 하나 즉 그 영의 하나와 신앙의 하나 이 둘이 모두 필요하다. 모든 분열적 인 교리들은 반드시 물러가야 하며 오로지 그 영과 신앙만이 남아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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