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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엡4: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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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TV 인기드라마 '당신이 그리워 질 때'를 보면 거기 3세대가 함께 사는 모습이 나옵니다. 중간 세대인 시어머니 되는 사람이 홍콩 여행에서 사다놓은 수영복을 한번 입어 보아야 하겠는데 좀처럼 기회가 나지 않아 영감인 남편에게 우리도 피서차 해수욕이라도 가자고 졸라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남편되는 영감이 하는 말이 '사람이 늙었으면 늙은이 답게 굴어야지 자기가 뭐 이팔청춘이라고 그 몸매에다 어딜 수영복을 입고 다녀' .그러니까 그 아내의 대답이 '내가 뭐 어때서요 내 몸매가 어때서요 당신은 한평생 아내의 기분도 모르고 구닥다리 식으로 살아왔으니 그러지 요즘 세상이 얼마나 바뀌어 졌는지 알기나 해요'라고 하니까, 남편되는 영감이 '쯔쯔쯔 꼴불견이야!' 라며 못마땅해 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그 대화속에서 진리의 교훈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꼴불견'이 되었어는 안되겠다는 말입니다.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를 먹은 것 답게 그의 연륜과 함께 있어야 겉모습과 내면의 세계에서 품격을 갖추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꼴불견'이라고 합니까 그 사람의 언행에서 봐줄 수 없을 때 하는 말인줄 압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위장 되었을 때, 그리고 없으면서도 있는 척하고, 모르면서도 아는척할때, 그것을 꼴불견이라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분수를 모르고 있을 경우입니다. 즉 앉을 자리 설 자리를 모르고 함부로 여기저기 참견할 때, 그럴 때 '꼴불견'이라고 합니다. 또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쓰고 있다든가 정당한 노력과 공적이 없이 받는 상패들, 이 모든 것이 다 '꼴불견'에 해당 합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는가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13절에 보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했습니다. 즉 무슨 말인고 하면, 예수 믿는일에도 온전한 사람으로 믿어야지 꼴불견으로 믿어서는 안되겠다는 말입니다. 요즘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볼사냥 없이 손가락질 당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겉으로 '믿는다는 것' 그 하나만 강조하는 나머지 인간적으로 경원시 당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믿어도 꼴불견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이 일찌기 너희가 선생이 되어야 마 땅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젓이나 먹는 어린아이들 처럼 행한다고 책망했던 일을 기억하면서 교회 나온 지 10,20,30년이 넘어서도 아직도 장부의 신앙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에서 꼴불견이 어떤 경우에 나타납니까
1. 어린아이가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14a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서 어린 아이가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즉 예수 믿은지는 오래 되었는데 믿음은 어린애 믿음이라면, 그것이 꼴불견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어린이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자기 밖에 모릅니다. 자기만을 위해 달라고 합니다. 자기만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신앙 생활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면 그것이 꼴불견입니다. 자기가 항상 제일이요, 다른 사람은 다 자기 보다 못하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만 칭찬해 주면 정말로 제일인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남이야 상처를 받건말건 제생각 대로 함부로 말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꼴불견이겠습니까 초대교회에서도 보면 이런 경우의 사람들이 있었던 같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에서 이런 사람들, 예컨대 구리장색 '알렉산더' 같은자나, '디오드레베' 같은자는 자기만을 위해 달라고 했던자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뜻이 이루어 지지 않았을 때, 바울과 그 일행에 대하여 몹시 망녕된 말로 폄론했다고 하였습니다. 요즘도 이런 신자들이 없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있는 중에는 꼴불견의 교인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만을 위해 달라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도무지 그런 것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나이는 많았어도 어린애같이 행동하는 그런 경우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교회는 바로 엡4:13절을 교회의 궁극적 목표로 세우고 있는 교회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나가자고 교회 목표를 이 말씀위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우리가 말씀대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나아가고 있습니까 벌써 신앙의 장부가 되어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젓이나 먹고 있는 단계는 아닌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요즘 솔직히 우리들의 신앙을 보면, 달라는 것 뿐입니다. 달라는 것 만 가르치고, 달라는 것 만 배우는 단계라면, 그것이 어린아이의 신 앙이란 것입니다. 그만큼 주었으면 이제는 하나님을 위하여 어떻게 그것을 사용할까 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건강,지식,기술,돈,명예,지위,재능,배경그리고 친구,사랑,가정,자녀,직장,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할까 를 생각해 보았는가 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년수가 이제는 좀 어른이 되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이런 신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꼴불견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성장과 함께 성숙해야 합니다. 말못하는 자연만물, 초목들도 한창 성장하고 꽃이 피었다가 성숙의 계절로 접어 들어갑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이 살아온 세월만큼 성숙한 신앙을 못 가지고 아직도 자기만을 위해 달라고만 하고 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꼴불견이겠습니까 달라고 해도 자기밖에 모르는 식으로 달라고 하지 말고, 좀 거창한 목적을 세우고 구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기껏 돈 몇푼 더 벌게 해주고, 직장이나 옮겨 주고, 좋은 대학이나 붙게 해 달라고 하는 것 보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하나밖에 없는 이 목숨을 다해 투자할 수 있는 그런 좀 큰 것을 위해 구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겠다고 했으니 좀 크게 놀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어떤 경우에 신앙 생활에서 꼴불견이겠습니까
2. 사람의 궤술과 유혹에 넘어갈때 입니다.(14b절) 어떤 경우에 궤술과 유혹에 빠집니까 욕심으로 눈이 멀었을 때 입니다. 대부분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을 보면,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한 일 하나를 소개 합니다. 어느날 고속 버스를 타고 광주를 가는데 휴게소에 잠깐 정차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무얼 한장씩 나누어 주기에 받아보니 숫자번호를 적은 종이쪽지 였습니다. 그리고는 또한 사람이 앞에 서서 카메라를 소개하는데 그럴듯하게 소개 하면서 고급카메라를 선전 기간에 시중에서는 30만원이지만 이 자리에서는 두 사람에게 무료로 드리겠다고 하드니 자기들이 번호를 발표 하는데 제 번호를 짚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여기 있다고 하니까, 축하 합니다. 횡재 했습니다. 그러더니 카메라를 주면서 하는 말이 선전비와 팜프렛 제작비 조로 30.000원만 수수료를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함정이었는데 그때 나는 30만원 짜리 카메라에만 눈이 멀어 아무런 아쉬움도 없이 내 주어고 버스는 떠나고 그들은 쏜살같이 내려 버렸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 벌써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나 처럼 이렇게 멀쩡한 잘생긴 사람도 욕심으로 눈이 어두워 지면 꼴불견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소유욕이란 본능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탐욕으로 변하면 꼴불견이 됩니다. 명예욕, 재물욕, 권세욕, 모두 지나치면 쉽게 유혹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을 속이려는 그럴듯한 궤술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옛날에는 먹을 것이 없어 살이 좀 퉁퉁하게 쪄야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고 했는데 요즘에는 살을 빼지 못해 야단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살빼는 약이라는 것 보면, 모두 그럴듯한 궤술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치명적인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날씬해 보겠다는 몸매에 눈이 어두워 사람의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몸을 망치는 경우도 있었음을 보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교회의 여집사님 있었습니다. 지금은 벌써 고인이 되어 없지만, 어쩌다 남편이 돈을 좀 벌어 재력이 있다보니 한창 눈 쌍꺼풀 수술이 유행이던 때, 눈 수술을 하고 아까운 얼굴을 버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집사님의 얼굴형은 위 보다 아래가 더 넓게 펴져 '파카잉크 병'이라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눈 두덩은 또 얼마나 두꺼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마 당신은 평생 쌍꺼풀이 그렇게 소원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잘 안되어 정말 못 보아주도록 얼굴을 버려 놓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람에게 제일 볼사냥 없는 것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욕심입니다. 나이가 들었으면 그 나이에 어울리도록 옷도 입고 행동하고 말을 해야지. 아무리 젊음이 좋다고 해도 정도껏 해야지 지나치면 그처럼 꼴불견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일 수록 쉽게 유혹에 빠지고, 쉽게 속아 넘어 갑니다.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 가지입니다. 어지간이 신앙 연륜이 들었으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삭여서 들여야지.귀가 너무 커서 이말 저말 다 듣고, 이리 저리 밀려 다닌다면, 얼마나 꼴불견이겠습니까 14절에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론적으로 그러면서 무엇이라고 강조 합니까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 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나가는 길은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행하는 길 뿐입니다. 얼마나 사랑 안에서 행하느냐 에 우리의 신앙의 성숙도는 평가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온전한 사람으로서의 성숙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가끔 무엇인가를 제 나름대로 열심히 하느라고 하지만, 제 고집대로, 제 주장대로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디도서에 보면, '감독은 하나님의 청직이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성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 한답시고 꼴불견 처럼 행동한 일이 없지 않은지.자신들을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고 했는데, 다투며 시기와 불신 가운데 한 일은 없지 아니한지 우리 모두가 자기를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에 까지 이르는 '온전한 사람' 이 될러면, 아직도 멀었구나.하는 사실을 절감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이것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면, 그 사람이야 말로 꼴불견이란 말입니다. 믿음! 믿음! 하지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으로 하지 않는 믿음이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꼴불견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거짓과, 가식과, 체면과, 허위를 떨쳐 버리고 있는 그대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으로 하여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나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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