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X인의 생활과 하나됨 (엡4:1-6)
본문
바울은 에베소서 3장까지로 교리적인 내용을 끝내고 이제 4장부터는 실천 적인 내용을 말씀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교회 성도들이 맺어야 할 합당한 열매 가 무었이며, 어떻게 살아야 그러한 열매들을 맺힐 수 있는지에 대하여 언 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향하여 문을 힘차게 열고 그 속에 서 실제적으로 살아야 할 삶의 구체적인 지침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삶입니다(1-2절).
1)겸손하게 사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2절a). 이 겸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중요한 마음가짐입니다. 성도로서 풍성한 삶을 원한다면 그 초석이 되는 자세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 이 겸손은 자만하는 마음,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가지기 어려운 자세입니다. 이 겸손은 자신이 연약함과 무지와 한계성을 가진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 실을 올바로 자각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오직, 주님 만을 의지하고 주 안 에서 부름받았다는 무한한 은혜와 영광을 동시에 깨닫는 마음에서 우러 나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거 유의해야 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스스 로를 겸손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교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 졌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벌써 겸손을 잃 어버리는 순간일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소중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미6:8).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그 모범을 보여주 셨기 때문입니다(마11:29). 그리고 이 겸손은 은혜받는 길이요(벧전5:6), 지혜를 얻는 길이요(잠11:2),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길인 것입니다(약4:1)
2)온유하게 사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삶입니다(2a절). 이 온유한 마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사람을 향해서도 원수를 갚으려거나, 강퍅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 온유함은 어떠한 고난 앞에서도 그것을 수용하며,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온유의 중요함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는 선행으로 말미 암아 지혜와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3:!
3)고 하였습니다. 여 기서 선행은 지혜와 온유함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 잡아줄 때에도 온유한 심정으로 해야 상대방이 받아들입니다(갈6:1). 성경 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을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마5:5).
3)오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2b절). 성도의 교제가 지속적으로 계속되려면 상대방의 실수를 용납함으로써 되어집니다. 이 세상에 허물과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죄를 지어도 괜챦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잘못이 생겼을 때에 서로 바로 잡아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서로 '서로 용납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오래참는 것입니다. 참지 않으면, 그것도 오래참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오래 참되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아야 합니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2.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하나 되는 삶(3-6절).
1)분열은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눅21:17절에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며 나뉘고 다투는 결과는 필연적으로 패망과 자멸입니다. 이 원리는 개인에게도, 집안에도, 나라에 도, 또한 신앙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분열과 나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분열과 나뉨은 불신앙에서 비롯되는 죄악 된 행위입니다. 어떤 것을 이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행동이 각각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상을 동조하는 사람들 끼리 그리고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들 끼리 모이고 당파를 짓고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과 의식에 집착하고 자신들이 확립한 전통을 버리려 하지 않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께 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편견과 아집과 이해관계 가 진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외식적인 율법주의에 매달려서 목소리 크게 내기와 명분 싸움 에 집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진리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당파 적인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명색이 교리싸움이라고 하여 교회를 사분오열시키고 나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하며 나아가 세상 불신자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불신 케 만들고 많은 선량한 신자들을 낙망시키는 등의 엄청난 악을 초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열과 나뉨은 죄악입니다. 믿음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입니다. 내 가슴 속에 분열의 씨가 잠재되어 있지는 않는지 가슴 깊이 살펴보아 통회하고 회개함으로 깨 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2)성도는 부르심의 한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4절). 본문 4절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우리가 받은 부름의 소망은 모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축복들로서 우리가 같은 목표와 상급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같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한 가족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3)교회 성도들의 일치와 하나 됨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요17:11절에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었일까요 그것은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따르는 실천적 사랑을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따르는 실천적 사랑을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무었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빌2:5-8).
그러므로 이제 완악함을 버리고 우리는 일치와 하나됨을 명령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결론'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교회 출석이나 이름만 등록시켰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 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인내와 희생과 섬김과 용납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래참기를 싫어하는 이 좁은 마음을 옛사람과 함께 장사지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받은 새사람으로 날마다 거듭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삶입니다(1-2절).
1)겸손하게 사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2절a). 이 겸손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으로 중요한 마음가짐입니다. 성도로서 풍성한 삶을 원한다면 그 초석이 되는 자세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 이 겸손은 자만하는 마음, 자존심이나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이 가지기 어려운 자세입니다. 이 겸손은 자신이 연약함과 무지와 한계성을 가진 의존적인 존재라는 사 실을 올바로 자각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오직, 주님 만을 의지하고 주 안 에서 부름받았다는 무한한 은혜와 영광을 동시에 깨닫는 마음에서 우러 나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거 유의해야 할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스스 로를 겸손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교만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가 졌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벌써 겸손을 잃 어버리는 순간일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이 신앙 생활에 있어서 소중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바라시기 때문입니다(미6:8).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친히 그 모범을 보여주 셨기 때문입니다(마11:29). 그리고 이 겸손은 은혜받는 길이요(벧전5:6), 지혜를 얻는 길이요(잠11:2), 교회를 하나되게 하는 길인 것입니다(약4:1)
2)온유하게 사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삶입니다(2a절). 이 온유한 마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사람을 향해서도 원수를 갚으려거나, 강퍅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 온유함은 어떠한 고난 앞에서도 그것을 수용하며,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 온유의 중요함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는 선행으로 말미 암아 지혜와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약3:!
3)고 하였습니다. 여 기서 선행은 지혜와 온유함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 잡아줄 때에도 온유한 심정으로 해야 상대방이 받아들입니다(갈6:1). 성경 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을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마5:5).
3)오래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는 것이 부르심에 합당한 삶입니다(2b절). 성도의 교제가 지속적으로 계속되려면 상대방의 실수를 용납함으로써 되어집니다. 이 세상에 허물과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이것이 죄를 지어도 괜챦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잘못이 생겼을 때에 서로 바로 잡아주고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서로 '서로 용납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사실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오래참는 것입니다. 참지 않으면, 그것도 오래참지 않으면 용납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오래 참되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아야 합니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2.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하나 되는 삶(3-6절).
1)분열은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눅21:17절에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며 나뉘고 다투는 결과는 필연적으로 패망과 자멸입니다. 이 원리는 개인에게도, 집안에도, 나라에 도, 또한 신앙 안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분열과 나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분열과 나뉨은 불신앙에서 비롯되는 죄악 된 행위입니다. 어떤 것을 이식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그 행동이 각각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상을 동조하는 사람들 끼리 그리고 이해관계가 같은 사람들 끼리 모이고 당파를 짓고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과 의식에 집착하고 자신들이 확립한 전통을 버리려 하지 않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께 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편견과 아집과 이해관계 가 진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외식적인 율법주의에 매달려서 목소리 크게 내기와 명분 싸움 에 집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진리에 관한 교리가 아니라. 당파 적인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명색이 교리싸움이라고 하여 교회를 사분오열시키고 나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하며 나아가 세상 불신자들로 하여금 기독교를 불신 케 만들고 많은 선량한 신자들을 낙망시키는 등의 엄청난 악을 초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열과 나뉨은 죄악입니다. 믿음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입니다. 내 가슴 속에 분열의 씨가 잠재되어 있지는 않는지 가슴 깊이 살펴보아 통회하고 회개함으로 깨 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2)성도는 부르심의 한 소망을 가진 자입니다(4절). 본문 4절에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우리가 받은 부름의 소망은 모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축복들로서 우리가 같은 목표와 상급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같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한 가족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3)교회 성도들의 일치와 하나 됨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요17:11절에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하나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무었일까요 그것은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따르는 실천적 사랑을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희생이 따르는 실천적 사랑을 행치 않기 때문입니다. 무었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빌2:5-8).
그러므로 이제 완악함을 버리고 우리는 일치와 하나됨을 명령하시는 주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결론'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교회 출석이나 이름만 등록시켰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성품을 본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 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인내와 희생과 섬김과 용납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래참기를 싫어하는 이 좁은 마음을 옛사람과 함께 장사지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변화받은 새사람으로 날마다 거듭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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