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그 큰 사랑 (엡2:3-5)
본문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 말 처럼 가슴이 설레이는 말 은 없을 것입니다. 험난한 인생행로에서 지치고 피곤한 심령들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 안에서 은혜와 축복과 감사가 풍 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사랑을 받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요한1서 4장8절에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 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신 성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적시며 이런 편 지를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깊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s:17)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게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에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시고 지금 이 자리에 와 계십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그 사랑을 부어 주십니다. 이 시간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높으며, 깊으며, 넓으며,길이가 얼마나 긴 것인가를 깨달아 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자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어진 사랑의 높이와 깆이 와, 길이와, 넓이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높이는 소망,이 =, 깊이는 겸손'이며, '길이는 인내'이고. 넓이는 용서U라고 하 였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소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높은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 의 자리에 두지 않으시고 높은 자리에 끌어 올린 사랑이올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현실쎄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저 높은 하늘 나라 까지 연결시켜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징계하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높은 사랑이 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걸어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 으시고 우리를 패로는 징계하시면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의한 길을 걷거나 또는 사명을 저버릴 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이사야 55장8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 생각은 너회 생각과다 르며. 내 길은 너회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내길 은 너회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회 생각보다 높으니라'하였 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의 생명을 일 찍 거두시기도 하고 땅 위에서 견디기 어려운 환난에 처하게도 하시고 때로는 우리의 꿈을 산산조각으로 부셔 버리기도 하십니다. 하니섬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높은 생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도록 내버려 두셨을까요여기에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높은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사랑이 아닙니다. 쉽게 헤아릴수 있는 인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에 가보아야 그 사랑을 진 정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견딜 수없는 시 험에서 건져 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땅 위에서 범사가 잘 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높은 하늘 나라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사랑 이올시다. 에베소서 2장4절에 보면 '긍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들로 하여금 하늘 나라에 앉히도록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그 높으신 사랑을 인간의 생각으로 측량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입니다. 인도의 유명한 성자 산다싱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고 있을 때 일입니다. 산 중턱에서부터 타오르는 산불을 끄고 있는 나뭇꾼들이 있었습니다. 산다싱이 가까이 갔을 때, 서너 사람이 불붙은 나무를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히 생각한 산다싱은 무엇을 보 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들은 나무 에 있는 어린 새들의 보금자리를 가리켰습니다. 새 둥지 위에 어미 새가 어껄 줄 모르며 둥지 위를 슬피 울며 빙빙 날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저 새들을 구원해야 할텐 데 불길이 맹렬해서 안타깝게 보고만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보금자리에도 불이 겨 붙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미 새 가 날아가 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날아가 버릴 줄 알았던 어미 새는 불타는 새끼들을 날개로 감싸고서 불에 함께 타 죽었습니다. 지켜 보던 나뭇꾼들은 조용히 눈물을 홀린 채 말이 없었습니다. 산다싱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읍니다. 그 사랑은 말할 수 없이니다. 한 마리 어미 새가 새키들 을 사랑하기에 불 가운데서 희생되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 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죄악 가운데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 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눈물을 홀리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 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시는 크신 사랑이 허물 많고 죄악 가운데 허덕이는 우리들을 하나하나 천국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들째, 하나님은 회생을 하여 사랑의 깊이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저 음부에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러 저 은 보좌를 버리시고 음부의 자리까지 낮아진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섬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 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으로 그 깊이를 나타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가 찔림을 받은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맞음으로 우리가나음을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우리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사5s:=-s)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곤욕을 당하셨고 십자가 상에서 피흘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고, 손과 발에 못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 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등을 상했던 모든 채찍은 하니첨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마를 껄렀던 모든 가시는 하나님의 심장 을 관통시켰읍퍼다. 그리스도의 손발에 박힌 모든 쇠못은 하나님의 가슴을 못질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신음케 했던 모든 슬픔은 하나님 의 심장을 찢어 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는 그의 겸손으로 나타났습니다. 깊 이 있는 사랑은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종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 으러 온 것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깊이 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유대 땅을 거니시며 사회에 서 버림받은 인간들, 가난한자들, 병든 자들, 불쌍한 과부, 고아,죄인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맞아 주셨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자기 회생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중셰의 어떤 유명한 수도사가 아침 미사를 마치고 광고하기를 오늘 저녁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노라고 하 였습니다. 그날 저녁 이 설교를 들으러 수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모 여 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졌을 때 이 늙은 수도사는 촛불을 켜들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상 다가섰습니다. 프 리고 그리스도의 발에 찍힌 못자국에 그 촛불을 비추어 보였습니다. 그 다음은 옆구리, 손 등으로 그는 촛불을 비추었습니다.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는 마지막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의 이마에 불및을 비추 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설교의 전부였습니다. 그곳에 모인 신도들은 말 없이 침묵 가운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보여 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에 눈물이 을 가릴뿐입니다. 머리와 손발 보오니 큰.자비 나타나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이 죄인 위해 쓰셨네.
셋째, 하나님은 사랑의 넓이를 무한한 용서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넓이에 있어서 전 우주를 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넓은 사랑을 주십니다. 유명한 말틴 루터 킹목사가 워싱턴 광장에서 100만의 흑인들에게 연설한 내용 가운데 나는 꿈꾸노라'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는 꿈꾸노라. 언제인가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의 색깔이 아닌 그 인격의 내용에 따라 평가되는 나라에서 사는 날이 올 것을 나는 꿈꾸노라. 나는 꿈꾸노라. 언제인가 흑인의 소년 소녀가 백인의 소년 소녀를 손잡고 형제와 자매로서 같이 지내는 날이 을 것을.- 그의 넓은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꿈꾸는 감격어린 연설에 흑인이나 백인이나 모두 통곡하며 울엇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너무 좁습니다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인종 차별이 없으며 국경이 가로막지 않으며, 남녀 노소의 차별이 없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과 환경의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 두 사랑합니다. 어떤 흑인이 백인들만 모이는 교회에 들어가니 예배를 드리려다 못들어오게 저지를 당하자 계단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너, 왜 우느냐. 물으시더랍니다. 혹인 은 대답하기를 '제가 흑인이라 해서 못들어 가게 하므로 슬퍼서 웁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 교회 못들어 왔다고 슬퍼하지 말라 사실은 나도 아직 이 교회에 못들어 갔노라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은 사람들이 인종과 지방색과 교파와 신학과 종교 써클 을 통하여 자기들끼리 나누는 편애된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 누고 있습니다. 유명한 시인 헬렌 스타니나라이스 시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심이여 놀랍고도 오묘하나 그토록 참된 사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이해하시나니 그대와 나 모두를-하나님 은혜는 한 없이 풍성하시나니 젊은이와 늙은이, 외로운 이와 겁 많은 이, 성급한 이와 담대한 이 누구에게나-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된 이 없으니 그대 거기서 제외되었다 여기지 마오. 무얼하든. 그 누구이거나 그대 이름 거기 있다오_ 우리 모즙 아무리 누추해도 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한결같이 사랑해 주신다오. 태초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오 ! 언제까지나 사랑하시리 ! 하나님의 사랑은 넓은 사랑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버리지 않으 지고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어거스틴 )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 마리 어린 양을 잃어 버린 목자가 춥고 어두 운 밤에 들에 나가 험한 가시밭길 헤매며 찾고있는 사랑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회개하는 강도를 용납한 사랑입니다. 또한 잃어버린 아들, 멀리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지난 날의 과오를 보시 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맞이하여 잔치를 베푸시는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을 찾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한 소년이 자기 형에게 H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치 않으니까요.' 그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4네 말은 틀렸다. 네가 내 아들이니 나는 널 사랑할 수밖에 없 어. 얘야, 난 네가 좋을 때도 사랑하지만, 나쁠 때도 사랑한단 말 야. 네가 좋을 때는 기뻐서 사랑하고, 나쁠 때는 마음 아파서 사랑 한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넓은 사랑을 하니의 사랑은 넓은 사랑입퍼다. 받고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게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럼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기분 좋을 때만 사랑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길이에 끝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 ls:8)사랑으로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계는 처음에는 사랑으로 지작하였으나 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 지 사랑하십니다.(요1= .l) 예레미야 선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 하였다'(렘sI:s) 고 하였습니다. 하니님의 사랑은 길이 참으십니다. 어떤 분은 세상 종말이 이렇게 더디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베 드로후서 2장9절에 있는 말씀대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 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H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 길이 참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구원을 받고 있으며 오늘도 여러분들을 참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노아 흥수 때에도 참아 기다리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주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사랑을 거절할 때 멸망할 수 밖헤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길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긴 사랑을 가지고 오래오래 참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할 기회를 얻 고 있는 것이며 죄인들이 다시 구원받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번 씩 이나 부인하였으나 참아 주시고 사명을 저버리고 옛날로 돌아간 생 명의 현장에서 그물 던지는 베드로를 찾아서 다시 목자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러 다니던 사울을 참아 기 다리시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사로잡아 위대한 바울로 변화시켜 복음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중에 방탕아 어거스틴을 부르시고 기독교 역사에 및나는 성자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인간 건달 김 익두를 불러서 한국 민족 복음화에 귀한 종으로 들 어 쓰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참으시는 사랑이 우리 모두를 용 납하시며 오늘의 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높고 깆고 넓고 긴 사랑을 받았는데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으리요. 무한한 축복에 감격할 뿐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 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않겠느냐.' (롬8:s2사실 그떻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 험이나 칼이나 그 무엇도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감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 만이 하나님 을 사랑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내가 무엇 을 드리기 전에 하나님의 베푸신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복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까지 아끼지 않고 주시면서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 전능하심과 전지하심과 크신 능력의 하나님 께서 좋으신 분으로 이 시간도 우리는 믿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장ls절온 복음의 핵심이요, 성경 중에서 가장 대한 귀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사랑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큰 사랑을 십자가에서 발견하여야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또한 사랑을받아야합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사랑을 받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자녀는 행복한 자녀입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는 행복한 아내입니다. 교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목사는 행복한 목사입니다. 직장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직원은 행복한 직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모두가 상대적이고 절대적일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에도 절대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시간과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 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넓고 길며 높고 깊고 크신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소망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높은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천국으로 이끌어 주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인 의 자리에 두지 않으시고 높은 자리에 끌어 올린 사랑이올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현실쎄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저 높은 하늘 나라 까지 연결시켜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징계하심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높은 사랑이 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걸어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 으시고 우리를 패로는 징계하시면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의한 길을 걷거나 또는 사명을 저버릴 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이사야 55장8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 생각은 너회 생각과다 르며. 내 길은 너회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내길 은 너회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회 생각보다 높으니라'하였 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의 생명을 일 찍 거두시기도 하고 땅 위에서 견디기 어려운 환난에 처하게도 하시고 때로는 우리의 꿈을 산산조각으로 부셔 버리기도 하십니다. 하니섬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높은 생각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왜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도록 내버려 두셨을까요여기에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높은 사랑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낮은 사랑이 아닙니다. 쉽게 헤아릴수 있는 인간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하늘 나라에 가보아야 그 사랑을 진 정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견딜 수없는 시 험에서 건져 주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로 하여금 이 땅 위에서 범사가 잘 되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높은 하늘 나라에 이르도록 이끄시는 사랑 이올시다. 에베소서 2장4절에 보면 '긍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우리들로 하여금 하늘 나라에 앉히도록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그 높으신 사랑을 인간의 생각으로 측량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 입니다. 인도의 유명한 성자 산다싱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고 있을 때 일입니다. 산 중턱에서부터 타오르는 산불을 끄고 있는 나뭇꾼들이 있었습니다. 산다싱이 가까이 갔을 때, 서너 사람이 불붙은 나무를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히 생각한 산다싱은 무엇을 보 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들은 나무 에 있는 어린 새들의 보금자리를 가리켰습니다. 새 둥지 위에 어미 새가 어껄 줄 모르며 둥지 위를 슬피 울며 빙빙 날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저 새들을 구원해야 할텐 데 불길이 맹렬해서 안타깝게 보고만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드디어 보금자리에도 불이 겨 붙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미 새 가 날아가 버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날아가 버릴 줄 알았던 어미 새는 불타는 새끼들을 날개로 감싸고서 불에 함께 타 죽었습니다. 지켜 보던 나뭇꾼들은 조용히 눈물을 홀린 채 말이 없었습니다. 산다싱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읍니다. 그 사랑은 말할 수 없이니다. 한 마리 어미 새가 새키들 을 사랑하기에 불 가운데서 희생되듯이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 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죄악 가운데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 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눈물을 홀리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 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시는 크신 사랑이 허물 많고 죄악 가운데 허덕이는 우리들을 하나하나 천국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들째, 하나님은 회생을 하여 사랑의 깊이를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저 음부에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러 저 은 보좌를 버리시고 음부의 자리까지 낮아진 사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섬과 동등됨을 취할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로마서 5장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 증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으로 그 깊이를 나타내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그가 찔림을 받은 것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맞음으로 우리가나음을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우리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사5s:=-s)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곤욕을 당하셨고 십자가 상에서 피흘리셨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셨고, 손과 발에 못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 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등을 상했던 모든 채찍은 하니첨의 심장을 찔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마를 껄렀던 모든 가시는 하나님의 심장 을 관통시켰읍퍼다. 그리스도의 손발에 박힌 모든 쇠못은 하나님의 가슴을 못질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신음케 했던 모든 슬픔은 하나님 의 심장을 찢어 놓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는 그의 겸손으로 나타났습니다. 깊 이 있는 사랑은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종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 으러 온 것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 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깊이 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 주셨습니다. 유대 땅을 거니시며 사회에 서 버림받은 인간들, 가난한자들, 병든 자들, 불쌍한 과부, 고아,죄인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맞아 주셨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자기 회생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중셰의 어떤 유명한 수도사가 아침 미사를 마치고 광고하기를 오늘 저녁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겠노라고 하 였습니다. 그날 저녁 이 설교를 들으러 수 많은 사람들이 성당에 모 여 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졌을 때 이 늙은 수도사는 촛불을 켜들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상 다가섰습니다. 프 리고 그리스도의 발에 찍힌 못자국에 그 촛불을 비추어 보였습니다. 그 다음은 옆구리, 손 등으로 그는 촛불을 비추었습니다. 한마디의 말도 없이 그는 마지막 가시관을 쓴 그리스도의 이마에 불및을 비추 었습니다. 이것이 그의 설교의 전부였습니다. 그곳에 모인 신도들은 말 없이 침묵 가운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보여 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에 눈물이 을 가릴뿐입니다. 머리와 손발 보오니 큰.자비 나타나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이 죄인 위해 쓰셨네.
셋째, 하나님은 사랑의 넓이를 무한한 용서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넓이에 있어서 전 우주를 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넓은 사랑을 주십니다. 유명한 말틴 루터 킹목사가 워싱턴 광장에서 100만의 흑인들에게 연설한 내용 가운데 나는 꿈꾸노라'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는 꿈꾸노라. 언제인가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의 색깔이 아닌 그 인격의 내용에 따라 평가되는 나라에서 사는 날이 올 것을 나는 꿈꾸노라. 나는 꿈꾸노라. 언제인가 흑인의 소년 소녀가 백인의 소년 소녀를 손잡고 형제와 자매로서 같이 지내는 날이 을 것을.- 그의 넓은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사회가 실현되기를 꿈꾸는 감격어린 연설에 흑인이나 백인이나 모두 통곡하며 울엇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너무 좁습니다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인종 차별이 없으며 국경이 가로막지 않으며, 남녀 노소의 차별이 없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과 환경의 빈부를 가리지 않고 모 두 사랑합니다. 어떤 흑인이 백인들만 모이는 교회에 들어가니 예배를 드리려다 못들어오게 저지를 당하자 계단에서 울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서 '너, 왜 우느냐. 물으시더랍니다. 혹인 은 대답하기를 '제가 흑인이라 해서 못들어 가게 하므로 슬퍼서 웁니다.' 그랬더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너 교회 못들어 왔다고 슬퍼하지 말라 사실은 나도 아직 이 교회에 못들어 갔노라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오늘날 은 사람들이 인종과 지방색과 교파와 신학과 종교 써클 을 통하여 자기들끼리 나누는 편애된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 누고 있습니다. 유명한 시인 헬렌 스타니나라이스 시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심이여 놀랍고도 오묘하나 그토록 참된 사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고 이해하시나니 그대와 나 모두를-하나님 은혜는 한 없이 풍성하시나니 젊은이와 늙은이, 외로운 이와 겁 많은 이, 성급한 이와 담대한 이 누구에게나-하나님의 사랑에서 제외된 이 없으니 그대 거기서 제외되었다 여기지 마오. 무얼하든. 그 누구이거나 그대 이름 거기 있다오_ 우리 모즙 아무리 누추해도 이 높으신 하나님께서 한결같이 사랑해 주신다오. 태초로부터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오 ! 언제까지나 사랑하시리 ! 하나님의 사랑은 넓은 사랑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버리지 않으 지고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처럼 (어거스틴 )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 마리 어린 양을 잃어 버린 목자가 춥고 어두 운 밤에 들에 나가 험한 가시밭길 헤매며 찾고있는 사랑입니다. 십자가 상에서 회개하는 강도를 용납한 사랑입니다. 또한 잃어버린 아들, 멀리 집을 떠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지난 날의 과오를 보시 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맞이하여 잔치를 베푸시는 어버이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죄인을 찾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한 소년이 자기 형에게 H우리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해요.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치 않으니까요.' 그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4네 말은 틀렸다. 네가 내 아들이니 나는 널 사랑할 수밖에 없 어. 얘야, 난 네가 좋을 때도 사랑하지만, 나쁠 때도 사랑한단 말 야. 네가 좋을 때는 기뻐서 사랑하고, 나쁠 때는 마음 아파서 사랑 한단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넓은 사랑을 하니의 사랑은 넓은 사랑입퍼다. 받고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게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럼은 우리를 일시적으로 기분 좋을 때만 사랑해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길이에 끝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히 ls:8)사랑으로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인간 세계는 처음에는 사랑으로 지작하였으나 미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 지 사랑하십니다.(요1= .l) 예레미야 선지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 하였다'(렘sI:s) 고 하였습니다. 하니님의 사랑은 길이 참으십니다. 어떤 분은 세상 종말이 이렇게 더디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베 드로후서 2장9절에 있는 말씀대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 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H 하신 말씀처럼 주님께서 길이 참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들은 구원을 받고 있으며 오늘도 여러분들을 참아 기다리고 계십니다. 노아 흥수 때에도 참아 기다리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에도 주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사랑을 거절할 때 멸망할 수 밖헤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은 하나님 사랑의 길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긴 사랑을 가지고 오래오래 참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회개할 기회를 얻 고 있는 것이며 죄인들이 다시 구원받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번 씩 이나 부인하였으나 참아 주시고 사명을 저버리고 옛날로 돌아간 생 명의 현장에서 그물 던지는 베드로를 찾아서 다시 목자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러 다니던 사울을 참아 기 다리시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사로잡아 위대한 바울로 변화시켜 복음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중에 방탕아 어거스틴을 부르시고 기독교 역사에 및나는 성자로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인간 건달 김 익두를 불러서 한국 민족 복음화에 귀한 종으로 들 어 쓰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참으시는 사랑이 우리 모두를 용 납하시며 오늘의 나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그 높고 깆고 넓고 긴 사랑을 받았는데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으리요. 무한한 축복에 감격할 뿐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 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않겠느냐.' (롬8:s2사실 그떻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 험이나 칼이나 그 무엇도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감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 만이 하나님 을 사랑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내가 무엇 을 드리기 전에 하나님의 베푸신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복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까지 아끼지 않고 주시면서 사랑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 전능하심과 전지하심과 크신 능력의 하나님 께서 좋으신 분으로 이 시간도 우리는 믿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장ls절온 복음의 핵심이요, 성경 중에서 가장 대한 귀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크신사랑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큰 사랑을 십자가에서 발견하여야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또한 사랑을받아야합니다. 인간의 행복이란 사랑을 받는 데서 이루어집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자녀는 행복한 자녀입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는 행복한 아내입니다. 교인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목사는 행복한 목사입니다. 직장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직원은 행복한 직원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모두가 상대적이고 절대적일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에도 절대적으로 나를 사랑하고 시간과공간을 초월하여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당신을 사랑하 십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넓고 길며 높고 깊고 크신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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