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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사망 선고 (엡2:1-3)

본문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열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인간의 영혼은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치료가 필요합니다. 이제 위대한 영혼의 치료자가 되시는 주님이, 당신의 영혼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당신에게 주십니다. 당신의 영혼이 치료받기 위해서는 그 약 을 당신 스스로 삼켜야 합니다. 맞습니까 많은 경우, 우리는, 인간의 죄 악된 상태를 가리켜 병에 걸린 것 으로 비유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 로 엄밀히 말하면, 이 비유는 정확한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병에 걸린 상태 정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이미 죽은 상태 입니다. 영적으로 이미 죽은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약이 무슨 소용이 있습 니까 약은, 아픈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살 려낼 수는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로 3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 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 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인해, 우리는 이미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병을 치료하 셨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려 내셨다는 뜻입니다. 무덤에 있던 우리의 영혼을 건져내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고,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기워지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열심으로도, 또는 그 어떤 노력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그 사람의 영혼을 죽음 상태에서 구원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직 구원받지 못한 가까운 친구나, 가족에 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소개하기 원한다면, 먼저 간절히 기도 하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영적 인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세상을 향해 능력있게 복음을 증거하며 사는 축복된 하루가 되 길 기도합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 엡 2:4-10 어느 크리스챤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결혼하고 몇 년이나 지났는 데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부부 어느 쪽에도 별 이상이 없다는 결과 가 나왔지만, 그 뒤로 한참이 지나도, 이들은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기도원에 열심히 찾아다니고, 가족과 이웃이 권하는 좋다는 약을 써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녀를 원하는 젊은 부부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이들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서 로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주님을 향해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알고, 그분을 향한 믿음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결혼하고 팔년이 지났을 때, 이 부부는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임 신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남편과 아내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그분의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감사의 기도가 끝났을 때, 아내는 남편에게 만일 우리 아이가 딸이라면, 우리 아이 이름을 은혜 로 하자 고 말했습니다.
물론, 남편은 쾌히 아내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아이를 갖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어린 딸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에 턱없 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런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 가 얼마나 큰 선물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과 5절, 그리고 8절과 9절을 보십시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 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긍휼과 사랑과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믿음 뿐입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 어디에 구원받을 만 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긍 휼, 은혜)으로 인해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를 모두 합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성도는 온전히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인해 우리의 구원이 있는 것과, 우리 삶에 허락하신 은혜의 선물(은사)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허물어진 벽 엡 2:11-22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한 나라를 형성하고 살았습니다. 몇 사람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이방인 사이에는 큰 벽이 생겨났습니다. 유대인들 은 이방인을 멸시했고, 이방인들도 유대인을 향해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공공연히 이방인을 개 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상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핏줄을 가지고 있지만 타 민족과 섞였다는 이유로, 사마리아인까지도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 이방인 들은 그들이 유대인에게서 받은 수모 못지 않게, 유대인을 욕하고 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사역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은 허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분 의 축복의 약속을 유대인에게만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신 새 언약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 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은, 타고난 혈연에 의해서 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똑같이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 이에 증오의 담을 허무신 것은, 동서독을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허 물어진 것보다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12절과 13절, 19 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 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 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그 렇습니다.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경배드리는 때가 올 것 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까지도 이 방인들이 유대인과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될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과 21절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 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도록 부르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행동의 강력한 동인 시 14:1 언젠가 우연히 서점에서 한 철학자와 신학자가 만나서 논쟁을 벌이는 내용 의 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논쟁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철학자 의 입장은 성경에서 말하는 도덕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 유는, 성경의 가르침이 "착한 일을 하면 상이 있을 것이고 죄를 지으면 벌 을 받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단순하고 유치하다는 것입니다. 철학자의 말 을 들은 신학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인간 행동을 가 져오는 요인으로 보상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 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 한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선한 일을 행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어떤 보상'을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그 일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악 때문에, 우리의 선행은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선한 것도 아닙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약속된 하늘에서의 큰 보상이, 선행의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늘에서의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도 덕적입니다. 죄가 되지 않습니다. 부모를 보십시오.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또 어떤 행동에 대해서 벌을 줌으로써, 자녀들 이 행동을 선택하는데 동기를 부여합니다. 또 교육 현장에서도 선생님은 학생이 그들 자신의 노력과 수고를 기울여 얼마 만큼교육 목표에 도달했는 지를 표시한 성적을 알려줍니다. 그러면 학생은 자신이 받은 성적으로 자 기 노력을 반성하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어떻게 하실 꺼 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님도 그분을 위해 행한 우리들의 헌신과 섬김 에 대해 보상하심으로써 우리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십니다. 자녀들이 부모 를 기쁘게 했을 때, 부모는 자녀에게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할 수 있다 면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합니다. 우리 주님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 할수록, 주님은 더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 삶에 동기를 부여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죄악에 있는 보응 살후1:6-10 세상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인에게 이렇게 항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도 "죄 많은 사람은 언젠가 그 죄 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 지만 기독교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이 '죄' 때문에 '영원히'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만일 당신의 하나님이 정말 그렇 게 하신다면, 그분은 당신이 말하는 그런 '사랑의 하나님'이 아닐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장은, 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의 입장에 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얼마나 가 혹한 벌을 내릴 것인가에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이 죄를 범하는 인간에게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가져오는가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때문에 성경은 인간의 죄를, 생명의 문제가 걸린 심각한 문제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시고 공평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온전함 을 요구하십니다. 조그만 죄를 하나라도 범하는 것은 온전함을 깨뜨리는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영원한 벌을 받을 만한 죄악이 되는 것 입니다. 바울 사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지옥은 하나님에 대적한 사람들이 받아야 할 보응입니다. 로마서 2장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 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 한대로 보응하시되. " 그렇습니다.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 진 아이들이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게 되는 것처럼, 죄악에 뒤따를 보응 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앞에 서있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비웃는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그들은 그들의 죄악이 마땅히 보응받을만하며 또 보응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었을 때, 죄악은 마땅히 보응받아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의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보응이 있을 것이라는 진실을 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고초 당하신 이 유가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 하시는 의로우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를 위해 친히 고초 당하신 그분을 묵상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선한 일을 행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상 눅 19:11-27 그리스도인은 나름대로의 열심히 선한 일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의 선행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인이 단지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선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율법주의적인 의무감 때문에 선을 행하는 것을 원하 시지 않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그 행동에 대한 보상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인간은 누구나 칭찬과 같은 긍 정적인 보상, 또는 벌과 같은 부정적인 보상이 행동의 동기가 됩니다. 인간 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은 그에게 있을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면면을 이해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땅에서 있을 보상 뿐 만 아니라 영원한 곳에서 있을 보상을 약속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본성이 완전 히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속성이 갑자기 사라 지는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있을 보상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위해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로부터 받을 상(賞)이 있 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과 24절을 보십시 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그렇습니다.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하여 행하는 일에 대해서 주님은 상을 주십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 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분이 우리에게 명하신 일을 행한다면, 그 일은 곧 주님께는 기쁨이요, 행하는 우리에게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신실하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을 기쁘게 여기시고, 신실하게 그를 도우시는 주님을 경험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에 대한 하늘에서의 상 마 6:1-18 많은 사람들이 "'지극히 작은 일'로도 주님께 영광돌릴 수 있다"는 그리스도인의 신앙 원리를 너무 쉽게 간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작은 일'이라는 것은 하찮은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반복적인 일을 말합니다. 사실 주님은, 우리 생각처럼 겉으로 화려하고 대단하게 보이는 일에 큰 상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의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같지 않습니다. 주님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영적인 훈련을 통해 꾸준히 거듭되는 일에 가장 커다란 상을 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울리는 단 한 번의 기도 소리 보 다는, 매일 매일의 생활 가운데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또, 단 한 번 들은 멋진 설교에 감동받은 어떤 이의 가슴 보 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성경 읽기'를 통해 주님과 깊은 교제 를 나누는 우리의 가슴을, 주님은 더욱 아끼십니다.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6장 3절과 4절 말씀입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 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6절 말씀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 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리고 17 절과 18절에서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 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그렇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그 분의 경륜에 의하면, 성공적인 믿음 생활은 순간 반짝하는 열정에 의해서 가 아니라 그분을 향한 그리스도인의 성실과 충성에 의해 좌우됩니다. 반 복되는 일상 생활 가운데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는 영혼에게 주시는 주님의 상이 가장 커다랗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나중에 언젠가 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주님을 위해 근사한 일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매일 주님을 만나는 기회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오늘 우리의 순종과 충성을 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침없이, 변함없 이 계속되는 우리의 성실한 순종을 기쁘게 받으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길 요일 3:2-34 처음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리고 주님에 대해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진실을 하나씩 배워나갈 때, 그 때의 감격은 얼마나 커다란 것이었 습니까 우리가 진실하게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주님의 성품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그분의 사랑에 대해서, 그분의 은혜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심판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님을 경험하고 주님을 알아갈수록,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도 날로 더해갑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주님과의 교제를 통해 누리고 있는 이 기쁨은, 천국에 서 있을 그날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 유명한 산상 설교 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 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구원받은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상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새 하늘과 새 땅 이 열릴 때, 지금 이곳에서 느끼는 이 놀라운 감사와 기쁨을 그곳에서 주 님과 영원히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주님 을 만날 것입니다. 그분의 얼굴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손을 잡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처럼, 가까운 친구처럼, 우리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우리 생활에 찬양과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까 천국에서는 그 찬양과 감사가 영원히 계속될 것 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고 있습니까 천국에서는 우리의 모든 선택이 그분의 뜻에 합당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사단의 방해가 사라지지 않은 죄악된 세상에서, 우리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괴로워하고 있지만, 그러나 지금도 우리가 주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 시고 천국의 소망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의 경험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신실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모하는 자, 그 에게 있는 축복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축복이 있다 면, 그리스도의 영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 실일 것입니다. 오늘도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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