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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자녀를 얻자 (갈4:19)

본문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다.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는 분명히 다른 삶의 가 치를 가지고 살아 가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품성이 있다. 이것을 일반 적으로 영성이라고 한다. 사람이 가진 영성 중에 도덕성이 있다. 다른 피조물들은 부끄러움이나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이 없다. 고양이가 부끄러워서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 를 들어 본적이 없고 소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가 없다. 사람은 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힘이 삶에 대단히 큰 영 향력을 가지고 있다. 또 사람의 영성 중에는 주권적 영성이 있다. 이것은 사람에게는 창조 적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다른 피조물들은 본능적인 재능을 가지고 살아 가지만 사람은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산의 토끼는 늘 힘이 센 짐 승들에게 잡혀 죽으면서도 자기를 방어할 무기를 개발할 능력이 없고 거북 이는 늘 느린 걸음을 못 면하면서도 자전거나 차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사람만이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창조적 능력이 있다. 추우면 따뜻한 옷을 만들어 입고 더우면 선풍기를 만 들어서 시원하게 사는 것이 인생이다. 또 사람의 영성중에는 종교적 영성이 있다. 사람은 신을 찾고 예배하고 어렵고 힘들 때에 하나님의 도움을 기원하는 종교성이 있다. 어느 민족이 든지 그 민족을 지배하는 힘은 종교에 있다.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종교 적 배경이 민족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른 피조물에 게 결코 있을 수 없는 종교적 품성이 인생에게는 있는 것이다. 사람은 이렇게 영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 을 창조하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영적인 가치를 따라 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기 보다는 불순종의 삶을 살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잊어 버리고 짐승의 형상을 따라 살아 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새해 첫 주일을 맞이 하면서 먼저 금년 한해는 우리의 영성이 회 복되는 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우리가 영성이 회복되므로 금년에 영적 자녀를 얻는 한해가 되어야 하겠다.
1. 해산하는 수고 한 영혼을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일을 성경은 해산하는 수고로 묘사 를 하고 있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해산의 수 고를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이처럼 한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본인도 출생의 아픔을 겪게 되지마는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 도하는 전도자는 해산의 수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시대마다 아픔을 그 몸으로 겪은 사람들을 보면 전도자들이였다. 전도하는 자마다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초대 교회 역사에 사 도들이 받은 고난도 전도자 였기 때문에 받은 고난이며 초대 성도들이 받 은 고난 역시 전도자로써 받은 고난이였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로써 한 평생을 산 자신의 일생을 말하면서 고난의 삶이였음을 고백했다.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온갖 고난을 받았음을 고백한 적이 있다. 강도의 위험, 강의 위험, 배고픔, 추위, 매맞음, 헐벗 음, 다 복음을 전하기 위한 고난이였다. 전도자는 이 땅에 영의 자녀를 탄생시키는 해산의 아픔을 겪는다. 이 땅 에 모든 성도는 전도자의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탄생된 생명들이다. 내가 핍박을 받지 않고 예수를 믿을려고 하면 전도자가 되지 않으면 된다. 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오네시모라는 한 노예를 만나게 되었다. 그 오네 시모는 바울의 전도로 어두운 과거를 벗고 예수 안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되 었다. 바울 사도는 오네시모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갖힌 중 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간구하노니 했다. 이 말씀에서 보여주는 중요한 사상은 전도자는 영적으로 보면 성숙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를 얻는다는 것은 바로 성숙했다는 증거이다. 전도자 가 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의미가 있다. 전 도는 신앙의 열매이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바로 성장했다는 증거다. 비록 어린아이라고 해도 전도할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영적으로는 성숙 한 신앙인이다.
2.양육하는 사랑 바울은 성도들에 대해서 자신의 심정을 말하기를 아버지 같이 훈계를 하 고 어머니 같이 사랑하면서 성도들을 양육했다고 말씀했다. 육신의 자녀를 키우는 일도 낳았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양육을 해야 한다.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철저히 부모의 책임하에 성장하는 것이다. 초신자들을 만나보면 영적으로 갖난아이와 같다는 것을 느낀다. 초 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책임은 이미 믿는 성도들의 책임이다. 그래서 주님은 소자를 실족케 말라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낳다고 했다. 양육은 먹여야 한다.-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셨고 주님도 사람이 떡으로 만 사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셨다. 양육은 보호해야 한다.-사탄은 어린신자를 넘어 뜨릴려고 한다.
3.유업을 계승시키는 믿음 부모는 자녀에게 유업을 물려주고 간다. 자녀는 부모의 유업을 물려 받 을 권리와 책임이 있다. 영의 부모는 믿음을 유업으로 물려 주는 사람을 말한다. 재산을 아무리 많이 물려 주어도 믿음을 물려주지 못하면 영의 부모가 되지 못한다.-부자 와 나사로 다윗-솔로몬에게 사명을 물려주었다. 리빙스턴-내 몸속에 왕의 피가 흐르지 않고 재벌의 피도 없으나 신앙의 뜨거운 피가 흐른다고 했다.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12 제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아니하셨다. 하나의 건물도, 한권의 책도, 한점의 혈육도, 어떤 조직도 남기지 아니하 셨다. 심지어 무덤조차도 남기지 아니하셨다. 진실로 남에게 충성을 물려주는 성도가 영적 부모가 된 사람이다. 성도는 이 땅에서 남에게나 자녀에게나 믿음 물려주고 충성 물려주는 성도가 되어야 이 땅을 떠날 때에 기꺼이 눈을 감을 수 있다. 성경에 한 인생이 이 세상에 태어 났다가 자녀가 없이 죽었더라 하는 것 이 저주였다. 이것은 육신의 자녀가 없다는 것 보다는 자신의 믿음을 물려 주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 저주요 자신의 충성을 물려 주지 못하고 죽었 다는 것이 저주요 자신의 직분을 물려 주지 못한 것이 저주요 자신의 축복을 물려 주지 못한 것이 저주라는 말이다. 성도는 이 땅에 믿음을 받았으니 믿음을 물려 주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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