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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믿음, 구원 (엡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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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히 '기독교인'이라고 하면 어느 교회에 등록을 했거나 적을 두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다 기독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읍니 사도행전 9장 2절을 보면 초대교회의 교인들이 한 곳에 모여 예배를다. 드렸는데 그들을 가르켜 '그 도를 쫓는 사람들U이라고 불렀습니다. 역 시 사도행전 11장 26절을 보면 안디옥 지방에서 전도하는 예수의 제자 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인이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란 뜻이기 보다는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디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또 그 사실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의 구원 문제를 생각하기 전에 우리 자신들의 문제 즉 인생 문제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증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돈입니까 직장입니까 학교입니까 결흔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증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래서 성서도 우리의 생명은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했습니다. 즉 '온 천하 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우린 한 생명을 위하여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한 생명 ! 길어 봤댔자 7o-80년인 이 한 생명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공부를 하고 직장을 갖고 결혼하여 가정을 갖고 집을 사고 자녀 를 키우고 지위와 명예를 얻습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죽습니다. 돈이 있어도 죽고 명예가 있어도 죽고 처자가 있어도 죽고 없어도 죽습니다. 몽고 대륙을 쓸었던 징기스칸이나 알프스를 넘었던 나폴 옹도 죽고 극치의 미를 자랑했던 클레오파트라도 죽고 세기의 발명 왕 천재 과학자 에디슨도 죽고 '노병은 죽지 않는다'던 군인 맥아더도 죽었습니다. 인생은 죽음 앞에서 모두가 단독자가 됩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 하면 삶이 허무하고 고독해집니다. 그리고 인생이 갑자기 겨울철의 벌판처럼 삭막해지고 쓸쓸해집니다.
여러분 ! 기분 나쁜 소리겠지만 그 어느날엔가 아름다운 아내를 남겨두고, 믿음직한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샛별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자식들을 남 겨두고 호화로운 아파트와 고급 가구들과 저금통장을 고스란히 남겨두 고, 그리고 정든 친구들과 이웃들을 남겨둔 채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밤마다 눈을 감으면 밀어닥치는 죽음의 공포 때문에 길고 긴 밤들을 뜬 눈으로 지새다가 견디지 못하여 스스로 자 신의 목숨을 끊으면서 하얀 백지에다가 연필글씨로 이떻게 남겨놓았 습니다. '인생이란 고독 ! 불안 ! 절망 ! 죽음 !  뿐이니라'고. 또 어떤 철학자는 '인생 속에서 희망을 찾느니 차라러 돼지우리에 서 진주를 찾는 편이 횔씬 쉬울 것이라'고 독백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인생이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고 희망을 발견 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 일까요 그떻지 않습니다. 여기 새로운 뉴스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을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절망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도처에서 주님을 말씀하시기 를 '나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다 "병든 자에게라야 의사가 필요한 것처 럼 나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 "나는 잃어버빈 사람들 ! 생 명을 잃어버리고, 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보람과 가치를 잃어버리 고. 웃음을 ! 행복을 ! 희망을 잃어버리고, 양심과 윤퍼를 잃어버러 고 사는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뉴스. 더 위대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소식이야 말로 아파트가 당첨됐다는 소식보다, 비가 온다는 소 식보다, 사업이 잘 된다는 소식보다 더 크고 귀한 소식이 아니겠읍니 까 왜 생명을 찾을 수 있다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본문 말씀 에베소서 2장 1절부터 10절 말씀은 구원에 관한 도리를 기록한 말씀입니다. l-3절까지는 인간이 어떤 상태에 있 었을까요 즉 예수님을 믿기전 나는 지금까지 어떤 처지에 있었는가 를 설명해 주고 4-10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도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바울 선생은 1절에서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 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난 상태 ! 즉 예수를 구주로 알고 믿기 이전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은 사람입니다. 왜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살면 그가 아무리 도덕적 으로 순결하고 철학적으로 고매한 삶을 산다고 해도 그 영은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비록 엄청난 죄를 저질러 왔고 지금도 죄 가운데 빠져 산다고 해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본문에서(2 ' 8-9) 바울은 은를 인하여 믿음으 로 구원을 얻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I98년 6월 9일 오후 7시 40분 전북 전주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전주 원산중학 교사인 김금자 씨(43세)가 수영 양(I0) 인정 양(8) 칠석 군
(5) 3남매를 데리고 친정어머니 제사를 지내러 가 기 위해 택시를 타고 친정엘 향하고 있었습니다. 철도 건널목을 건너가는데 택시 엔진이 꺼졌습니다. 택시의 시동이 꺼지고 차가 멈추어 있는 그 찰라 서울을 떠나 여수로 내려가는 화물 열차가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김금자 씨는 순간적으로 택시 안에 있는 3남매를 모두 차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나오려는 순간 화물열차가 드 러닥쳐 3남매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었습니다. 3남매를 구해낸 그 갸륵한 어머니는 살아나지 못하고 숨지고 말았 습니다.
그런데 그 택시의 운전수는 흔자 뛰어내려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신문를 읽으면서 3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불완전한 자동차를 타고 있는 불안한 인생의 모습, 택시 운 전수의 무책임, 무능력입니다. 이 사람은 승객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줄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험이 닥쳤을 때 자기만 살기 위해 뛰어 네 렸습니다. 이 사람은 돌아가는 미터 요금을 따라서 사람을 태워다 주는 역할 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차에 타고 있는 손님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물건가치, 화폐가치, 돈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인간이 돈의 수단가치 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비문화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고장난 자동차에다가 나의 인생, 나의 생명을 맡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나의 생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고장난 현대 문명, 시동이 꺼져버린 현대라는 자동차에 우리의 생 명을 맡기면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불행의 열 차, 죽음의 시커먼 화물 열차에 치이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둘째는 죽음으로 자식들을 구한 모성애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 사랑리 그림자입니다 그 리고 축소판입니다. 그래서 이런말이 있습니다. H하나님은 어머니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사랑의 지점을 만들어 두 었다고. 자동차의 시동이 커지고 기차가 달라드는 그 순간 43세의 김금자 어머니는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고 머리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사랑의 폭탄이 터지는 것과 동 시에 자식들을 차 밖으로 내 던졌습니다. 나는 이 어머니를 위대하고 훌륭한 분이라고 말합니다. 왜 자신 의 생명을 버려 자 시들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 주님의 사랑이 놀라운 사랑일카요 당신이 친히 죽으심으 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김금자 어머니가 자식들을 사랑한 나머지 입으로만 뛰어내리 라고 했다고 합시다. 어내 리라는데 뛰어 내리는 훈련이 되질 않아 서 뛰어내리질 않습니다. 그래서 뛰어내릴 때는 이렇게 뛰어내려야하 고 지금처럼 기차가 달려을 때는 위험한 법이니 제일은 자기가 알아 서 처리해야 하는 자럽 자주정신을 살려서 각자가 뛰어내려 보라고 교 육을 시키고 있었다고 합시다. 네 식구는 모조리 죽고 말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랑은 실천적 사랑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탁상 공론, 언어의 유희, 성현의 교훈 설법, 강연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이 몸을 내 던져 죽으시고 우리를 살려주신 사 땅의 종교이며 사실의 종교이며 실천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합니다(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세째 죽음에서 구원받은 3남매의 생활입니다. lo살 8살 5살이니까 아직 철이 없습니다. 어쩌면 이 아이들의 젊은 아빠가 새장가를 들어서 새엄마가 집에 들어올런지도 모릅니다. 자기네들의 어머니가 병으로 죽었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와 어머니 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은 3남매의 마음을 갈래로 찢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자기들을 살리기 위해 살려주고 자기네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만일 이 아이들이 날 철이 들고 세상을 살아 나가면서 철로 컨널 목에서 화물열차에 치어 죽어간 어머니의 그 피와 그 모습을 잃어버 리고 산다면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 그 아이들이 성년이 되고 노인이 된 후에라도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격이 떠나지 않아 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죄 가운데서 살려 내 주셨습니다. 우린 날마다 그 사랑 을 생각하고 그 사랑에 감격해야 합니다. 그 은혜 그 사랑을 망각한다면 사람이 아닙니다. 우린 이 은혜 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L래 서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더욱 값 없이 주신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설교를 준비할 때 사용하는 만년필은 흥콩에 갔을 때 그 곳에서 살고 기살고 있는 젊은 농부가 선물로 준 것입니다. 그 값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그들의 정성과 사랑이 고마와서 소증히 간직하고 애용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이라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믿음이 없으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받 아도 불안하고 개운치 않습니다. 흑 뇌물이나 아닌가 무슨 뜻인까 아.니면 시한폭탄이나 장치되 어있지 않을까 한때 구라파에 있는 이스라엘 대사관에 선물꾸러미를 가장한 아랍 게릴라들의 폭탄이 우송되고 있다는 정보 때문에 이스라엘 대사관 직 원들이 공포에 떤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인 구원을 받는 조건은 믿음입니다. '주여 믿습니다. 나는 마음을 놓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구원하신 것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의 구원과 사랑을 믿습니다.' 이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주님을 모셔드럽시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 셨으니라고 했고, 로마서 l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주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이 시간에 영접 합시다. 편견과 의심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열고 지금 주를 영접합시 다 ! 이 시간이 곧 구원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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