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과 온유와 절제 (갈5:22-23)
본문
지난 두 주일에 걸쳐서 우리는 성령의 열매 아홉가지 중 여섯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세가지 열매인 사랑과 기쁨 그리고 화평은 그리스도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말합니다.
둘째, 세가지 열매인 인내와 자비 그리고 양선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 맺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오늘 생각하게 될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그리스도인 자신에 대해서 맺는 열매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입니다. 나무는 좋은데 열매가 나쁘다 하는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나무가 어떤 나무냐 하는 것은 그 열매를 보면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무엇으로 이것을 증명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 생활의 열매를 보아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입 니까" 라고 무을 때 그들에게 대답하신 말씀은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보아 서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너희가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보고 네가 무엇인지 판단하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 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일날 찬송과 성경책을 끼고 예배당에 나오면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맡았으면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가슴에 십자가를 달고 다 니면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닙니다. 제자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9절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 로서 화평케 하는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불합케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열매 아홉가 지 가운데 그 마지막 세가지 충성과 온유와 절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충성입니다. 성경에 보면 충성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충성이란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또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충성은 하나님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한 대로 꼭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아들 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땅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21:4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충성 혹은 미쁘심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는 그 품 격에 있어서 충성이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을 만한 것 과 같이 그 자녀된 우리도 다른 사람이 믿을 만한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입니다. 사실 사람에게 아무리 재주가 많고 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충성의 요소가 그 성격에서 결여된다고 할 것이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으로 볼 때 지식인과 기술자는 상당히 많이 양성이 되었 습니다. 물론 지식과 기숙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말로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실한 것입니다. 제가 듣는 대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나가서 많은 건설공사를 하고 또는 우리 국내에서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 가지고 외국에 수출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면 건설공사에도 하자가 생기고 물건을 만들어 흠이 생기고,
그런데 다른 선진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건축을 했다가 하자가 생 긴다든지 물건이 잘못된다든지 하면 다시 받아 가지고 물건을 바로 만들든지 건 축에 하자가 생기면 그 어디에 잘못되고 왜 그렇게 됐는지 상당한 시간과 경비 를 소비하면서 연구하고 뜯어 고치고 이유를 파악하느라고 노력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축공사를 해놓았는데 하자가 생기면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책임 자를 만나 가지고 뇌물을 주면서 좀 잘 봐 달라고 그래서 무바시킨다고요. 이것은 신실하자 못한 사람들의 생활 방법입니다. 이런 것은 반드시 고쳐야 세계 경 쟁에서 이길 수가 있지 무마시키거나 눈감아 달라는 것 가지고는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재능과 능력은 좀 부족해도 충성된 사람이 종래에는 축복을 받고 성공합니다. 이웃나라 일본 사람이 아주 참 약삭빠른 데가 있고 얄미운 데가 좀 솔직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세계적으로 앞장서서 나가는데 그 중 하나는 진실합니다. 무슨 일 맡겨 놓으면 누가 감독을 하던 안 하든 자기 할 일을 다 합니다. 잘못되면 고칠 것 다 고칩니다. 이번 2층에 와이드 비젼을 일본 사람들이 와서 설비했습니다마는 우리 기술자들이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 들 같으면 두 즐 있는 것 한 줄로 맞추면 그렇게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 수백개 되는 줄을 맞추고 또 맞추고 밤새도록 하는 일에 그만 감동을 했던 거예요. 세상에서 성공할려면 진실하면 성공합니다. 잔꾀 가지고는 얼마 못갑니다. 우리가 다 재능과 지식과 기술이 타고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삶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품 격은 누구나 다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충성된 남편,충성 된 아내, '충성된 부모,충성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충성된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느 사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믿어 줍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의 무슨 직분을 맡았다고 해서 명함 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선전을 해 믿게 만들어 놓고는 곧 돌아서서 사기를 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믿어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 책임이 세상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보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공부 좀 못 해도, 돈 좀 없어도, 집 이 좀 없어도 다른 건 없어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 이게 보람 아닙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충성된 자녀를 찾으시고 충성된 사람을 더러 쓰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충성의 열매를 알아 보실 수 있습니까 얼마를 맡았던지 충성 해야 합니다. 적든지 크든지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소위 달란트 비유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다섯 달란트 맡았던 사람, 두 달란트 맡았던 사람 이 갑절을 남겨 가지고 왔을 때 주인이 말하기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 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큰 것으로 네게 맡기라라' 말씀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라야 큰 곳에도 충성합니다. 어떤 사람은 요긴하게 맡아야 하고 큰일 맡겨야 한다고 하지 조그만한 일 맡기면 그까짓것 시시해서 안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큰 것 맡겨도 사실 제대로 못합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 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으면서도 종의 일에 충성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데 종살이 할 사람인줄 아 시요.' 그리고 그 일에 충성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불평하고 원망했을 겁니다.
그런데 요십은 종이 되었을 땐 종으로 충성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이굽의 총리가 되어서 큰 직분 맡았습니다. 그는 총리가 되었어도 그 자레에서 충성했 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목장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있으면서 양 주인에게 충성 했습니다. 나중에는 온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몰입대두였고 그 왕 의 자리에서 충성되게 자기 책임을 담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 맡았으면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처음 얼마 동안은 충성되게 성실하게 일합니다. 처음 몇 해 동안 은 성실하게 일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충성하느냐 하는 겁니다. 어떤 때는, 학생 때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사회이이 되어서도 충성합니 까 어떤 분은 결혼 전에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결혼 후에도 충성합니까 어떤 분은 가나나할 때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돈 번 후에도 충성합니까 어떤 분 은 한가할 때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바쁠 때도 충성합니까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했습니다. 시종 여일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한 직장에서 20년, 30년 근속한 분을 왜 존경합니까 물론 옮길 기회도 있었겠지만은 자기가 맡은 일 끝까지 20년, 30년 일했으니 얼마나 충성된 일꾼입니까 더구나 충성은 어떤 환경에서도 충성해야 합니다. 평안할 때뿐 아니고, 잘 될 때뿐만 아니고, 칭찬 들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 잘 안되고 욕이 돌아오고 무시당할 때 충성하는게 참된 충성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에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을 볼 수 있고 가정이 어려울 때 어진 아내를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청지기입니다. 우리에게 재능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지식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지위가 있습니까 우리 에게 재물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위탁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관리인인 것뿐입니다. 관리인은 맡은 것이 자기 것은 아 니지만은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충성할 수 있습니까 디모데 전서 1: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의 충성에 대한 비결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능력을 주는 분도 그리스도 이고 나를 충성되다고 인정해 주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 속 에 감사와 감격이 있었습니다. 나는 능하기 못한데 내게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충성되지 못한데 충성 된다고 인정해 주어서 이런 귀한 직분 소중한 직분을 맡겨 주셨으니 내게 맡겨 주신 이 직분을 내가 어떻게 하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 안타 까운 마음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맡았던지 맡은 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만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온유입니다. 항상 주님 말씀한 가운데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 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절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로 오라 내가 너희는 쉬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2장에도 장 차 오실 메세아에 대해서 예언하신 가운데 장차 오실 분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이렇게 온유하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소개한 것은 양처럼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을 말씀했습니다. 양은 다른 짐승에게 손해를 입는 일은 있 어도 다른 짐승을 손해를 입히는 것이 없는 짐승입니다. 예수님은 양과 같이 온유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심령을 충만히 받게 되면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 를 닮아서 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이 우리의 성품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온유한 성품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겸손합니다. 혹 우리 가운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니 , 뭐 하나님께 대해서 교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 지 아니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께 대해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많고 또 겸손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시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내게 어떤 불행이나 어떤 고통, 어떤 실패나 어떤 슬 픔이 온다고 해도 온유한 사람은 불평하지 아니합니다.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나 하면서 원망하거나 반항하지 아니합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 서도 자포자기하지 아니합니다. 낙십하거나 좌절되지 아니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할 것이면 조용히 참고 견대는 것이 온유한 사람이 하시는 일이라고 할 것이면 조용히 참고 견대는 것이 온유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태도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그저 순종합니다. 보십시요. 전에 요셉이 그처럼 억울하게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에 가게되고 거 기서 종살이를 하고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 금도 불평을 하거나 누구를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한번도 하나님을 원망 하거나 형들에 대한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한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 나 형들에 대한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곳에서 순종하고 자기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전혀 그의 책임이 아닌데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갑자가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하루 아침에 귀한 자녀 10남매가 몰사하는 비보가 접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시고 여호와께서 거두시니 오직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반항하지 아니하고 낙 심하지 아니하고 참고 견대어서 모든 일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무엇이 든지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온유한 성품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시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쓴 자를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온유한 사람은 사람에게도 온유합니다. 구약 잠언에 보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려오는 말이란 " 툭 해서 다르고 탁 해서 다르다. 혹은 아 해서 다르고 어해서 다르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말을 해 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건드리고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 버리고 사람의 마음 을 빡빡긁어 내리는 말을 골라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아십 니까 마음이 온유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을 보는데도 눈은 같은 눈인데 다정한 눈길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눈인데 눈에서 칼이 나는 것처럼 무섭게, 날카롭게, 독살스럽게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드럽게 대합니다.따라서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압니다. 에베소서 4:2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다른 사람을 책망하고 비난하기에만 급급하고 위로하기에는 인색한 것이 현대인의 특색입니다. 그러나 온유와 관용 그리고 용서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디도서 3:2에도 "아무도 훼방 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부터보고 장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평생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흠만 자꾸 쫓아다니면 찾아 보십시오. 세상에 그거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점, 훌륭 한 점을 자꾸 찾아 보십시오. 이거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 혹시 누 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에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주님께서부터 얼마나 큰 죄를 용서 받았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큰 죄를 용서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진 죄라야 거기에다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용 서 못해서 우리가 얼마나 속이 상하고 그럽니까. 주님은 온유하셔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신 것을 꼭 기억하시고 주님의 온유를 본받으십니다. 끝으로 절제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 아홉가지 중 지막 열매입니다.우리가 인생을 동조하는데 있어서 승리할려고 할 것이면 절제가 꼭 필요합니다. 고린 도 전서 9:25절에도 "모든 일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한다" 했습니다. 가령, 운동 경기를 하는 선수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절제를 합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하 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그러면 운동선수 되질 못합니다. 절제를 하여 훈련을 받아야 운동선수가 됩니다. 썩을 세상에 면류관을 얻게 위해서도 이렇게 훈련을 하고 절제를 해야 하는데 하물며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절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몸도 쳐서 복종케 한다고 오늘 본문에 말씀했습니다. 이것 말하자면 절제를 의미합니다. 내 몸을 쳐서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했습니다. 절제라는 말은 영어로는 'Self Control'이라는 말을 씁니다. 자기 자신을 조종하고,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관리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 몸안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본능이 있습니다. 이 욕망과 본능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절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육신 을 근거로 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이 일어날 때 이것을 잘 이겨 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의 품격을 열거할 때도 믿음에 덕을,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더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옛날 헬라 사람들이 아데네에 있는 청년들에게 늘 권한 말이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한가지는 네 자신을 알라 하는 말이고 다른 한가지는 네 자신을 다스 리라 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전에 플라톤은 인간의 말과 생활이란 검은 말과 흰 말이 끄는 수레와 같다고 하면서 흰 말은 우리 인간의 이성을 의미하는 것 이고, 검은 말은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인생의 수레가 넘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잘 가려고 할 것이면 이성인 희 말이 수레를 끌고 나갈 때 나가야지 검은 말, 육신의 정력과 모든 본능에 맡 기게 되면 그만 수레가 외딴곳으로 가다가 떨어져서 부서져 버리고 만다. 그랬습니다. 우리 동양의 유명한 성년 가운데 공자 선생님도 '군자유삼기'라는 말을 했습니다. 군자가 세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고 가르쳐습니다.
첫째는 젊어서 혈기가 미정할 때는 색에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장년이 되어 혈기가 강하게 되면 싸우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셋째 나이 들어 혈기가 쇠한 때는 욕심이 많아지니 노욕을 경계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절제를 해야 인생을 승리로 끝마칠 수가 있다는 결론이 됩니다. 여러 가지 절제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 식욕을 절제해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 하와가 시험에 빠진 것이 바로 식욕 때문에 아닙니까 마귀의 유 혹을 받아서 너 조금 먹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된다 그러니까 그걸 듣는 순간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만 같으니까 제 손으로 가서 따 먹었습니다. 자기만 따 먹을 뿐만 아니라 남편 아담에게 따서 주어서 먹게 만들었습니다 먹는 것을 통해서 시험이 들어옵니다.
둘째 아담되시는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기도하실 때 마귀가 나타나서 가지고 제일 먼저 시험한 것이 무엇인줄 아 십니까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먹지 못할 것 먹게 만들 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시험 아닙니까 옛날 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도 마 찬가지입니다. 이 사회에 부정과 부패가 왜 생깁니까 안 먹을 것 먹어서 생기는 것이 부정부패가 아닙니까 에서는 그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본을 팔아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정신이 들어서 후회했지마는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오늘도 팥죽 한 그릇 때문에 돈 몇 백만원 몇 천만 때문에 자기의 인격을 팔고, 양심을 팔고, 명예를 팔고, 친구의 의리르 팔고, 나라와 민족을 파는 에서 같은 사람이 얼마 나 많습니까 먹는 것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안 먹어도 될 것은 안 먹어야 됩니다. 뭐 가끔 잊어버릴만 하면 제가 말씀합니다마는 술 담배는 안 먹어도 살 수 있습니다. 안 먹어도 될 건 안 먹는게 절제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본능은 성욕입니다. 우리가 이것 또한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식욕 자체가 죄가 아닌 것처럼 성욕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쓰므로 말미암아 다스릴 줄을 몰라서 죄가 들어 여러분 삼손을 기억하지요. 그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으로 얼마나 힘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감히 삼손에게 달려 들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 사람에게 그만 붙잡혔 습니다. 손과 발이 밧줄에 꽁꽁 묶였습니다. 두 눈이 뽑혀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에 놀랍던 힘이 다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연자맷돌이나 돌리는 초라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엇에 패했습니까 정력을 다스리는데 패했습니다. 드릴라라는 블레셋 여자 간섭에게 원수에게 매혹이 되어서 정력 을 다스리지 못해서 결국 블레셋 사람에게 결박을 당하고 참혹한 최후를 마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삼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력을 다스리지 못하면 오늘 누군나가 그렇게 됩니다. 예배당에 다닌다고 안 그런 줄 압니까 내 듣는 대로 예배당 그렇게 열심히 잘 다니면서도 정력에 매어서 나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는 것을 내가 들었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무서운 적을 이기고 다스릴 수 있습니까 성령이 힘밖에 없습니다. 결심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힘으로도 몸으로도 못합니다. 어떤 분은 자 기 부인 앞에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고 회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닙니다. 성령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성령 충만히 받아서 사랑과 기쁨과 화평, 인내와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 닮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축원합니다.
아멘 .
첫째, 세가지 열매인 사랑과 기쁨 그리고 화평은 그리스도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말합니다.
둘째, 세가지 열매인 인내와 자비 그리고 양선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 맺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오늘 생각하게 될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그리스도인 자신에 대해서 맺는 열매입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나무가 좋으면 열매도 좋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식입니다. 나무는 좋은데 열매가 나쁘다 하는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나무가 어떤 나무냐 하는 것은 그 열매를 보면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무엇으로 이것을 증명할 수가 있습니까 우리 생활의 열매를 보아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입 니까" 라고 무을 때 그들에게 대답하신 말씀은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보아 서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너희가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을 보고 네가 무엇인지 판단하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 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실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일날 찬송과 성경책을 끼고 예배당에 나오면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교회에서 무슨 직분을 맡았으면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가슴에 십자가를 달고 다 니면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아닙니다. 제자로서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9절에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 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 로서 화평케 하는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불합케 하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열매 아홉가 지 가운데 그 마지막 세가지 충성과 온유와 절제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충성입니다. 성경에 보면 충성에 대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충성이란 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또 반드시 맺어야 할 열매 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충성은 하나님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미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말씀한 대로 꼭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아들 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땅을 주셨습니다. 여호수아 21:4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충성 혹은 미쁘심은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는 그 품 격에 있어서 충성이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을 만한 것 과 같이 그 자녀된 우리도 다른 사람이 믿을 만한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입니다. 사실 사람에게 아무리 재주가 많고 지식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 충성의 요소가 그 성격에서 결여된다고 할 것이면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으로 볼 때 지식인과 기술자는 상당히 많이 양성이 되었 습니다. 물론 지식과 기숙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은 말로 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신실한 것입니다. 제가 듣는 대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에 나가서 많은 건설공사를 하고 또는 우리 국내에서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 가지고 외국에 수출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면 건설공사에도 하자가 생기고 물건을 만들어 흠이 생기고,
그런데 다른 선진국 사람들은 자기들이 건축을 했다가 하자가 생 긴다든지 물건이 잘못된다든지 하면 다시 받아 가지고 물건을 바로 만들든지 건 축에 하자가 생기면 그 어디에 잘못되고 왜 그렇게 됐는지 상당한 시간과 경비 를 소비하면서 연구하고 뜯어 고치고 이유를 파악하느라고 노력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건축공사를 해놓았는데 하자가 생기면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책임 자를 만나 가지고 뇌물을 주면서 좀 잘 봐 달라고 그래서 무바시킨다고요. 이것은 신실하자 못한 사람들의 생활 방법입니다. 이런 것은 반드시 고쳐야 세계 경 쟁에서 이길 수가 있지 무마시키거나 눈감아 달라는 것 가지고는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재능과 능력은 좀 부족해도 충성된 사람이 종래에는 축복을 받고 성공합니다. 이웃나라 일본 사람이 아주 참 약삭빠른 데가 있고 얄미운 데가 좀 솔직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들이 세계적으로 앞장서서 나가는데 그 중 하나는 진실합니다. 무슨 일 맡겨 놓으면 누가 감독을 하던 안 하든 자기 할 일을 다 합니다. 잘못되면 고칠 것 다 고칩니다. 이번 2층에 와이드 비젼을 일본 사람들이 와서 설비했습니다마는 우리 기술자들이 보고 감탄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자기 들 같으면 두 즐 있는 것 한 줄로 맞추면 그렇게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 수백개 되는 줄을 맞추고 또 맞추고 밤새도록 하는 일에 그만 감동을 했던 거예요. 세상에서 성공할려면 진실하면 성공합니다. 잔꾀 가지고는 얼마 못갑니다. 우리가 다 재능과 지식과 기술이 타고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삶이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할 품 격은 누구나 다 믿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충성된 남편,충성 된 아내, '충성된 부모,충성된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충성된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느 사회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믿어 줍니까 어떤 사람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의 무슨 직분을 맡았다고 해서 명함 까지 가지고 다니면서 선전을 해 믿게 만들어 놓고는 곧 돌아서서 사기를 칩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믿어주지 않는다고 하면 그 책임이 세상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믿는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닙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보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공부 좀 못 해도, 돈 좀 없어도, 집 이 좀 없어도 다른 건 없어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 이게 보람 아닙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충성된 자녀를 찾으시고 충성된 사람을 더러 쓰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충성의 열매를 알아 보실 수 있습니까 얼마를 맡았던지 충성 해야 합니다. 적든지 크든지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소위 달란트 비유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다섯 달란트 맡았던 사람, 두 달란트 맡았던 사람 이 갑절을 남겨 가지고 왔을 때 주인이 말하기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 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큰 것으로 네게 맡기라라' 말씀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라야 큰 곳에도 충성합니다. 어떤 사람은 요긴하게 맡아야 하고 큰일 맡겨야 한다고 하지 조그만한 일 맡기면 그까짓것 시시해서 안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큰 것 맡겨도 사실 제대로 못합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 가서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있으면서도 종의 일에 충성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내가 어떤 사람인데 종살이 할 사람인줄 아 시요.' 그리고 그 일에 충성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불평하고 원망했을 겁니다.
그런데 요십은 종이 되었을 땐 종으로 충성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이굽의 총리가 되어서 큰 직분 맡았습니다. 그는 총리가 되었어도 그 자레에서 충성했 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목장에서 양치는 목동으로 있으면서 양 주인에게 충성 했습니다. 나중에는 온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서 몰입대두였고 그 왕 의 자리에서 충성되게 자기 책임을 담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일 맡았으면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 바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처음 얼마 동안은 충성되게 성실하게 일합니다. 처음 몇 해 동안 은 성실하게 일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충성하느냐 하는 겁니다. 어떤 때는, 학생 때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사회이이 되어서도 충성합니 까 어떤 분은 결혼 전에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결혼 후에도 충성합니까 어떤 분은 가나나할 때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돈 번 후에도 충성합니까 어떤 분 은 한가할 때는 충성했다고 하는데 바쁠 때도 충성합니까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했습니다. 시종 여일하게 충성해야 합니다. 한 직장에서 20년, 30년 근속한 분을 왜 존경합니까 물론 옮길 기회도 있었겠지만은 자기가 맡은 일 끝까지 20년, 30년 일했으니 얼마나 충성된 일꾼입니까 더구나 충성은 어떤 환경에서도 충성해야 합니다. 평안할 때뿐 아니고, 잘 될 때뿐만 아니고, 칭찬 들을 때뿐만 아니라 어려울 때 잘 안되고 욕이 돌아오고 무시당할 때 충성하는게 참된 충성입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에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을 볼 수 있고 가정이 어려울 때 어진 아내를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맡은 청지기입니다. 우리에게 재능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지식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지위가 있습니까 우리 에게 재물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위탁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관리인인 것뿐입니다. 관리인은 맡은 것이 자기 것은 아 니지만은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충성할 수 있습니까 디모데 전서 1:12절에 보면 사도 바울의 충성에 대한 비결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능력을 주는 분도 그리스도 이고 나를 충성되다고 인정해 주는 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 속 에 감사와 감격이 있었습니다. 나는 능하기 못한데 내게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충성되지 못한데 충성 된다고 인정해 주어서 이런 귀한 직분 소중한 직분을 맡겨 주셨으니 내게 맡겨 주신 이 직분을 내가 어떻게 하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 안타 까운 마음이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일을 맡았던지 맡은 일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만 충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온유입니다. 항상 주님 말씀한 가운데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 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하는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절 이하에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 로 오라 내가 너희는 쉬게 하리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2장에도 장 차 오실 메세아에 대해서 예언하신 가운데 장차 오실 분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이렇게 온유하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을 어린양이라고 소개한 것은 양처럼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인 것을 말씀했습니다. 양은 다른 짐승에게 손해를 입는 일은 있 어도 다른 짐승을 손해를 입히는 것이 없는 짐승입니다. 예수님은 양과 같이 온유하신 분이었습니다. 우리가 심령을 충만히 받게 되면 자연히 예수 그리스도 를 닮아서 그리스도의 온유한 성품이 우리의 성품 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온유한 성품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하여 겸손합니다. 혹 우리 가운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아니 , 뭐 하나님께 대해서 교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 지 아니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하나님께 대해서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 많고 또 겸손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시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내게 어떤 불행이나 어떤 고통, 어떤 실패나 어떤 슬 픔이 온다고 해도 온유한 사람은 불평하지 아니합니다. 왜 내게 이런 어려움을 당하게 하시나 하면서 원망하거나 반항하지 아니합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 속에 서도 자포자기하지 아니합니다. 낙십하거나 좌절되지 아니합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할 것이면 조용히 참고 견대는 것이 온유한 사람이 하시는 일이라고 할 것이면 조용히 참고 견대는 것이 온유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태도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그저 순종합니다. 보십시요. 전에 요셉이 그처럼 억울하게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에 가게되고 거 기서 종살이를 하고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술 맡은 관원장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 금도 불평을 하거나 누구를 시비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한번도 하나님을 원망 하거나 형들에 대한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한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 나 형들에 대한 원한을 품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곳에서 순종하고 자기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전혀 그의 책임이 아닌데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갑자가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하루 아침에 귀한 자녀 10남매가 몰사하는 비보가 접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시고 여호와께서 거두시니 오직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반항하지 아니하고 낙 심하지 아니하고 참고 견대어서 모든 일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무엇이 든지 순종하는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온유한 성품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게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아버지시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쓴 자를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그러나 내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온유한 사람은 사람에게도 온유합니다. 구약 잠언에 보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한다"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려오는 말이란 " 툭 해서 다르고 탁 해서 다르다. 혹은 아 해서 다르고 어해서 다르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말을 해 도 다른 사람의 기분을 건드리고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 버리고 사람의 마음 을 빡빡긁어 내리는 말을 골라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거 왜 그런지 아십 니까 마음이 온유하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을 보는데도 눈은 같은 눈인데 다정한 눈길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눈인데 눈에서 칼이 나는 것처럼 무섭게, 날카롭게, 독살스럽게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드럽게 대합니다.따라서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압니다. 에베소서 4:2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다른 사람을 책망하고 비난하기에만 급급하고 위로하기에는 인색한 것이 현대인의 특색입니다. 그러나 온유와 관용 그리고 용서는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디도서 3:2에도 "아무도 훼방 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부터보고 장점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평생 행복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흠만 자꾸 쫓아다니면 찾아 보십시오. 세상에 그거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점, 훌륭 한 점을 자꾸 찾아 보십시오. 이거 말하자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 혹시 누 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에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성경은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주님께서부터 얼마나 큰 죄를 용서 받았습니까 죽을 수밖에 없는 큰 죄를 용서 받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진 죄라야 거기에다 비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걸 용 서 못해서 우리가 얼마나 속이 상하고 그럽니까. 주님은 온유하셔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신 것을 꼭 기억하시고 주님의 온유를 본받으십니다. 끝으로 절제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 아홉가지 중 지막 열매입니다.우리가 인생을 동조하는데 있어서 승리할려고 할 것이면 절제가 꼭 필요합니다. 고린 도 전서 9:25절에도 "모든 일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한다" 했습니다. 가령, 운동 경기를 하는 선수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절제를 합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하 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그러면 운동선수 되질 못합니다. 절제를 하여 훈련을 받아야 운동선수가 됩니다. 썩을 세상에 면류관을 얻게 위해서도 이렇게 훈련을 하고 절제를 해야 하는데 하물며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절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몸도 쳐서 복종케 한다고 오늘 본문에 말씀했습니다. 이것 말하자면 절제를 의미합니다. 내 몸을 쳐서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했습니다. 절제라는 말은 영어로는 'Self Control'이라는 말을 씁니다. 자기 자신을 조종하고, 자기 자신을 다스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관리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이 몸안에는 여러 가지 욕망과 본능이 있습니다. 이 욕망과 본능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절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육신 을 근거로 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유혹과 시험이 일어날 때 이것을 잘 이겨 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의 품격을 열거할 때도 믿음에 덕을,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더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옛날 헬라 사람들이 아데네에 있는 청년들에게 늘 권한 말이 두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한가지는 네 자신을 알라 하는 말이고 다른 한가지는 네 자신을 다스 리라 하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전에 플라톤은 인간의 말과 생활이란 검은 말과 흰 말이 끄는 수레와 같다고 하면서 흰 말은 우리 인간의 이성을 의미하는 것 이고, 검은 말은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인생의 수레가 넘어지지 아니하고 바로 잘 가려고 할 것이면 이성인 희 말이 수레를 끌고 나갈 때 나가야지 검은 말, 육신의 정력과 모든 본능에 맡 기게 되면 그만 수레가 외딴곳으로 가다가 떨어져서 부서져 버리고 만다. 그랬습니다. 우리 동양의 유명한 성년 가운데 공자 선생님도 '군자유삼기'라는 말을 했습니다. 군자가 세가지 경계할 것이 있다고 가르쳐습니다.
첫째는 젊어서 혈기가 미정할 때는 색에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둘째 장년이 되어 혈기가 강하게 되면 싸우는 것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셋째 나이 들어 혈기가 쇠한 때는 욕심이 많아지니 노욕을 경계하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죽을 때까지 절제를 해야 인생을 승리로 끝마칠 수가 있다는 결론이 됩니다. 여러 가지 절제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만 식욕을 절제해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 하와가 시험에 빠진 것이 바로 식욕 때문에 아닙니까 마귀의 유 혹을 받아서 너 조금 먹기만 하면 하나님처럼 된다 그러니까 그걸 듣는 순간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것만 같으니까 제 손으로 가서 따 먹었습니다. 자기만 따 먹을 뿐만 아니라 남편 아담에게 따서 주어서 먹게 만들었습니다 먹는 것을 통해서 시험이 들어옵니다.
둘째 아담되시는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기도하실 때 마귀가 나타나서 가지고 제일 먼저 시험한 것이 무엇인줄 아 십니까 돌을 가지고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먹지 못할 것 먹게 만들 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시험 아닙니까 옛날 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오늘날도 마 찬가지입니다. 이 사회에 부정과 부패가 왜 생깁니까 안 먹을 것 먹어서 생기는 것이 부정부패가 아닙니까 에서는 그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본을 팔아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정신이 들어서 후회했지마는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오늘도 팥죽 한 그릇 때문에 돈 몇 백만원 몇 천만 때문에 자기의 인격을 팔고, 양심을 팔고, 명예를 팔고, 친구의 의리르 팔고, 나라와 민족을 파는 에서 같은 사람이 얼마 나 많습니까 먹는 것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구나 안 먹어도 될 것은 안 먹어야 됩니다. 뭐 가끔 잊어버릴만 하면 제가 말씀합니다마는 술 담배는 안 먹어도 살 수 있습니다. 안 먹어도 될 건 안 먹는게 절제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본능은 성욕입니다. 우리가 이것 또한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식욕 자체가 죄가 아닌 것처럼 성욕 그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을 잘못 쓰므로 말미암아 다스릴 줄을 몰라서 죄가 들어 여러분 삼손을 기억하지요. 그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으로 얼마나 힘이 센 사람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감히 삼손에게 달려 들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 사람에게 그만 붙잡혔 습니다. 손과 발이 밧줄에 꽁꽁 묶였습니다. 두 눈이 뽑혀서 소경이 되었습니다. 그에 놀랍던 힘이 다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연자맷돌이나 돌리는 초라한 사람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엇에 패했습니까 정력을 다스리는데 패했습니다. 드릴라라는 블레셋 여자 간섭에게 원수에게 매혹이 되어서 정력 을 다스리지 못해서 결국 블레셋 사람에게 결박을 당하고 참혹한 최후를 마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삼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력을 다스리지 못하면 오늘 누군나가 그렇게 됩니다. 예배당에 다닌다고 안 그런 줄 압니까 내 듣는 대로 예배당 그렇게 열심히 잘 다니면서도 정력에 매어서 나쁜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는 것을 내가 들었습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 마지막은 사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무서운 적을 이기고 다스릴 수 있습니까 성령이 힘밖에 없습니다. 결심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힘으로도 몸으로도 못합니다. 어떤 분은 자 기 부인 앞에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고 회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닙니다. 성령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성령 충만히 받아서 사랑과 기쁨과 화평, 인내와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 닮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도록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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