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을 뛰어넘자 (시18:1-3)
본문
동독과 서독을 가로지르는 베를린 장벽이 있었습니다. 담은 높지 않지만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이 담을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담은 온 세계의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장벽을 해결하려고 양 세계 진영들이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결국 이 장벽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담을 넘다가 희생당했는지 모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서독 쪽으로 넘어오다가 동독 쪽에서 쏜 총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서로가 넘지 못하던 장벽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지게 되었을 때 온 독일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망치를 들고 와서 이 장벽을 깨뜨렸습니다. 장벽은 비록 시멘트로 쌓아올렸던 담이었지만 지금은 부서진 그 시멘트 조각 하나하나가 값진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지금 나라가 하나 되어 장벽을 깨뜨린 기쁨을 가지고 번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동쪽 끝에서부터 서쪽 끝까지 155마일 휴전선에 철조망이 쳐져 있습니다. 철조망 때문에 우리도 갈 수 없거니와 저들도 또한 올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아프리카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하지만 북한 보다는 낫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여유가 있고 노래가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서로 오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사도 할 수 없거니와 친척집에 가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대로 오갈 수가 없습니다. 여행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부 중국에 보리쌀 한 가마니를 팔아서 옥수수 몇 가마니로 바꾸어 강냉이죽을 먹고 삽니다. 배가 고파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두만강, 압록강을 하도 많이 건너니까 이제는 무조건 총을 쏘아 죽인다고 합니다. 이제는 북한 소식이 먼 소식이 아닙니다. 중국을 거쳐서 듣기 때문에 우리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려분 북한의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들의 가정과 우리의 가정은 똑같은 가정이지만 저들에게는 우리의 가정처럼 사랑과 화목이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감시하고 아내는 남편을 감시합니다. 사상적으로 혹시 잘못되지 않았나 아버지와 아들도 서로 감시합니다. 북한은 모든 인간 관계를 끊어 놓고, 사랑의 관계를 끊어 놓고, 대립과 투쟁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관계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웃는 웃음을 저들은 웃을 수 없습니다. 기계처럼 이를 드러내고 당 지도부에서 만든 웃음을 웃습니다. 웃으면 다 웃어야 되고, 손뼉치면 다 손뼉쳐야 되고, 한 사람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건지기 위해서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이 장벽, 철조망을 속히 제거해야 됩니다.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담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벽과 철조망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보이는 담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담도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보이는 담과 철조망은 없지만 저들에게도 엄청난 고민이 있습니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흑백 문제, 마약 문제, 범죄 문제, 자살 문제 등 보이지 않는 담이 많이 있습니다. 1년에 20세 이하의 소녀들이 낳는 아이만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그 아이들은 반항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성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잘못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사회 문제입니다. 장벽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나라는 계속 발전하는 것이고, 거기에 머물면 퇴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민족이 갖고 있는 개인이나 가정이 갖고 있는 모든 어려운 문제의 담들을 넘어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담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다윗에게도 있었고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담 앞에 서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시대에 또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다윗은 어려서부터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목동으로서 넘어야 하는 멸시와 천대의 담이 있었습니다. 양들과 함께 지내면서 짐승들로 인한 담이 많았습니다. 골리앗이라고 하는 커다란 담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하면서 넘어섰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모든 담을 뛰어넘었습니다. 골리앗이 마지막 담인 줄 알았는데 장인 되는 사울이 죽이려고 합니다. 3천명이나 되는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13년 동안 하루도 집에서 평안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 동굴 저 동굴 옮겨 다니며 광야에서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려분, 다윗은 그런 생활을 13년이나 견뎌냈습니다. 13년 동안 사울은 오직 다윗만 죽이려고 늘 뒤쫓았습니다. 이러한 담들을 만날 때에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담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셔서 모든 담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후에 또 다른 장벽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넘어섰습니다. 끝까지 넘어섰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많은 담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뛰어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담이 있습니다. 특히 사업하는 분에게 큰 담이 있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십니까 부인들은 사업하는 남편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잘 도와주어야 됩니다. 시작은 쉽지만
3,4년 지나면 점점 어려워집니다. 은행 마감 시간이 되면 불안에 떱니다. 직원들 관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여러분,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업하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얼마나 수고했느냐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왜 늦게 오느냐, 어디 갔다 오느냐고 하면 안됩니다. 사업하는 분은 늦게 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집안에서도 고생이 많지만 사업하는 분에 비하면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담을 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마다 담이 있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담이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담이 있습니다. 요사이는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살면 어른들도 고생스럽고 자부는 자부대로 속상한 일이 많고 서로 힘들다고 합니다. 질병의 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생활이 어려울 수 있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집이 넘어가고 화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강도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교통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언제나 주을 의지하여 뛰어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물론 내 힘은 약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권력을 의지하여도 못 넘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못 넘는 담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넘어설 수 없는 담들을 만날 때 좌절합니다. 포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지 못할 담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우리를 잡아주시므로 어떠한 담이든지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택복음 9장을 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그 병을 넘어설 수 없었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병에서 놓입니다. 그리고 8장에서는 문둥병자가 주님을 붙잡고 넘어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붙잡고 세계적인 사도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붙잡고 넘어섭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두 제자가 풍랑을 넘어섭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넘어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헬렌 켈러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듣는 사람보다도 더 큰 일을 하고, 보는 사람보다도 더 큰일을 하고, 말하는 사람보다도 더 크게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요새십니다. 여러분, 담을 넘을 때 그냥 넘는 것하고 무엇을 잡고 넘는 것은 다릅니다. 높이뛰기를 해보십시오. 얼마 못 뛰어오릅니다. 그러나 작은 막대기라도 하나 잡고 해보십시오. 장대높이뛰기는 장대를 잡고 뛰기 때문에 높은 것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의지하고 뛰어넘으려고 하면 큰 것은 못 넘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붙잡고 넘으면 이 세상의 어떠한 담이라도 넘어설 줄 믿습니다. 모세는 넘어섰습니다. 다윗은 넘어섰습니다. 여호수아는 끝까지 잘 넘어섰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야곱도 넘어섰습니다. 히스기야도 넘어섰습니다. 나의 능력이 되시고, 나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만을 붙잡을 때 나는 영원히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담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링컨은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대통령 되기까지 계속 넘어섰습니다. 끝까지 넘어섰습니다. 카터 전대통령도 땅콩 장사하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어섰습니다. 위성턴도 넘어섰습니다. 베토벤도 나중에 귀가 먹어 들을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어섰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믿음 안에서 주와 함께 살아가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어떤 담이 있습니까 어떤 위험이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정입니까 사업입니까 지금 없을지라도 앞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금년에는 없지만 내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붙잡으면 주님의 은혜로 넘어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이 앞을 가로막습니까 예수님은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돕기 원하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담을 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넘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십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넘지 못하는 것을 넘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가난한 여러분을 넘게 하여 부유하게 합니다. 병든 여러분을 넘게 하여 건강하게 합니다. 불행을 넘어서게 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줄 믿습니다. 죄인인 여러분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교회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넘게 하십니다.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넘게 합니다. 예배 시간은 우리를 넘어서게 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는 늘 넘어섭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이기고 모든 담을 뛰어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떠한 담일지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스턴 처칠은 교회학교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담이 있습니까 담을 크게 보지 마십시오. 담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낙심이 된다 할지라도 분명히 담을 넘어서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더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1517년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에 일개 신부로서 로마 교황청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다 썩어빠진 로마 교황청을 향해 95개 논제를 가지고 정면으로 항의할 때 교황청의 그 어마어마한 힘이 루터를 짓눌렀습니다. 루터는 낙심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방안에 누워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하며 좌절했습니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의 아내가 밖에서 검은 상복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했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무슨 일이오 누가 죽었소”하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여보 하나님이 돌아가셨대요, 하나님이 돌아가셨대요”라고 합니다. 루터는 어떻게 하나님이 돌아가실 수 있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는 줄 알면서 왜 그렇게 낙심하고 누워 있어요” 우리도 루터 부인 같은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있으면 오늘 가셔서 루터 부인처럼 한번 해보십시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줄 믿습니다. 강하고 능하신 주님의 손이 머리털 하나 상함이 없도록 여러분을 도우셔서 담을 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담은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여 담을 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찬송가 342 장). 여러분, 저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의지할 것이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갈수록 이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주님만이 확실하게 도와주십니다. 할렐루야. 일생을 목회하신 한 어른께서 좋은 경험담을 들려주셨습니다.
“여러분, 나는 일생 동안 그분의 도움을 꼭 받을 줄 알았는데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꼭 도와주리라고 믿었던 분이 도와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정치를 보십시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십시오. 언제나 도움을 주어야 할 분들이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분들 때문에 화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도와줄 것 같습니까 병들었을 때 자식이 도와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친척이 도와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담을 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주님만 의지하여 최후의 담, 죽음의 담까지 넘어서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장벽을 해결하려고 양 세계 진영들이 오랜 시간 노력한 끝에 결국 이 장벽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담을 넘다가 희생당했는지 모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서독 쪽으로 넘어오다가 동독 쪽에서 쏜 총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서로가 넘지 못하던 장벽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무너지게 되었을 때 온 독일 국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망치를 들고 와서 이 장벽을 깨뜨렸습니다. 장벽은 비록 시멘트로 쌓아올렸던 담이었지만 지금은 부서진 그 시멘트 조각 하나하나가 값진 재산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지금 나라가 하나 되어 장벽을 깨뜨린 기쁨을 가지고 번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동쪽 끝에서부터 서쪽 끝까지 155마일 휴전선에 철조망이 쳐져 있습니다. 철조망 때문에 우리도 갈 수 없거니와 저들도 또한 올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아프리카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하지만 북한 보다는 낫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자유가 있습니다. 여유가 있고 노래가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서로 오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이사도 할 수 없거니와 친척집에 가는 것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대로 오갈 수가 없습니다. 여행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경제적으로도 어렵습니다. 이미 몇 년 전부부 중국에 보리쌀 한 가마니를 팔아서 옥수수 몇 가마니로 바꾸어 강냉이죽을 먹고 삽니다. 배가 고파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두만강, 압록강을 하도 많이 건너니까 이제는 무조건 총을 쏘아 죽인다고 합니다. 이제는 북한 소식이 먼 소식이 아닙니다. 중국을 거쳐서 듣기 때문에 우리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려분 북한의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들의 가정과 우리의 가정은 똑같은 가정이지만 저들에게는 우리의 가정처럼 사랑과 화목이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감시하고 아내는 남편을 감시합니다. 사상적으로 혹시 잘못되지 않았나 아버지와 아들도 서로 감시합니다. 북한은 모든 인간 관계를 끊어 놓고, 사랑의 관계를 끊어 놓고, 대립과 투쟁으로 서로를 감시하는 관계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웃는 웃음을 저들은 웃을 수 없습니다. 기계처럼 이를 드러내고 당 지도부에서 만든 웃음을 웃습니다. 웃으면 다 웃어야 되고, 손뼉치면 다 손뼉쳐야 되고, 한 사람도 그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쌍한 우리 동포들을 건지기 위해서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이 장벽, 철조망을 속히 제거해야 됩니다.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담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벽과 철조망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보이는 담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담도 있습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보이는 담과 철조망은 없지만 저들에게도 엄청난 고민이 있습니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흑백 문제, 마약 문제, 범죄 문제, 자살 문제 등 보이지 않는 담이 많이 있습니다. 1년에 20세 이하의 소녀들이 낳는 아이만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그 아이들은 반항적으로 자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성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은 잘못되기 쉽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사회 문제입니다. 장벽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나라는 계속 발전하는 것이고, 거기에 머물면 퇴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민족이 갖고 있는 개인이나 가정이 갖고 있는 모든 어려운 문제의 담들을 넘어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담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다윗에게도 있었고 오늘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담 앞에 서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시대에 또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다윗은 어려서부터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목동으로서 넘어야 하는 멸시와 천대의 담이 있었습니다. 양들과 함께 지내면서 짐승들로 인한 담이 많았습니다. 골리앗이라고 하는 커다란 담도 만났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하면서 넘어섰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모든 담을 뛰어넘었습니다. 골리앗이 마지막 담인 줄 알았는데 장인 되는 사울이 죽이려고 합니다. 3천명이나 되는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13년 동안 하루도 집에서 평안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 동굴 저 동굴 옮겨 다니며 광야에서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려분, 다윗은 그런 생활을 13년이나 견뎌냈습니다. 13년 동안 사울은 오직 다윗만 죽이려고 늘 뒤쫓았습니다. 이러한 담들을 만날 때에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담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의지할 때 주님께서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셔서 모든 담을 뛰어넘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후에 또 다른 장벽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쿠테타를 일으키고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넘어섰습니다. 끝까지 넘어섰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많은 담을 하나님을 의지하고 뛰어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늘 담이 있습니다. 특히 사업하는 분에게 큰 담이 있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십니까 부인들은 사업하는 남편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잘 도와주어야 됩니다. 시작은 쉽지만
3,4년 지나면 점점 어려워집니다. 은행 마감 시간이 되면 불안에 떱니다. 직원들 관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여러분,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업하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얼마나 수고했느냐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왜 늦게 오느냐, 어디 갔다 오느냐고 하면 안됩니다. 사업하는 분은 늦게 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집안에서도 고생이 많지만 사업하는 분에 비하면 비교가 안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담을 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여러분의 가정마다 담이 있습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담이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담이 있습니다. 요사이는 결혼한 자녀와 함께 살면 어른들도 고생스럽고 자부는 자부대로 속상한 일이 많고 서로 힘들다고 합니다. 질병의 담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생활이 어려울 수 있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사업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집이 넘어가고 화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강도가 들어오기도 합니다. 교통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좌절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언제나 주을 의지하여 뛰어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물론 내 힘은 약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권력을 의지하여도 못 넘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못 넘는 담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넘어설 수 없는 담들을 만날 때 좌절합니다. 포기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지 못할 담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우리를 잡아주시므로 어떠한 담이든지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택복음 9장을 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그 병을 넘어설 수 없었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 병에서 놓입니다. 그리고 8장에서는 문둥병자가 주님을 붙잡고 넘어섭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붙잡고 세계적인 사도가 됩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붙잡고 넘어섭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열두 제자가 풍랑을 넘어섭니다. 주님과 함께하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넘어설 수 있는 줄 믿습니다. 헬렌 켈러는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듣는 사람보다도 더 큰 일을 하고, 보는 사람보다도 더 큰일을 하고, 말하는 사람보다도 더 크게 주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넘어설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오, 나의 요새십니다. 여러분, 담을 넘을 때 그냥 넘는 것하고 무엇을 잡고 넘는 것은 다릅니다. 높이뛰기를 해보십시오. 얼마 못 뛰어오릅니다. 그러나 작은 막대기라도 하나 잡고 해보십시오. 장대높이뛰기는 장대를 잡고 뛰기 때문에 높은 것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의지하고 뛰어넘으려고 하면 큰 것은 못 넘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붙잡고 넘으면 이 세상의 어떠한 담이라도 넘어설 줄 믿습니다. 모세는 넘어섰습니다. 다윗은 넘어섰습니다. 여호수아는 끝까지 잘 넘어섰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야곱도 넘어섰습니다. 히스기야도 넘어섰습니다. 나의 능력이 되시고, 나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만을 붙잡을 때 나는 영원히 주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담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링컨은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대통령 되기까지 계속 넘어섰습니다. 끝까지 넘어섰습니다. 카터 전대통령도 땅콩 장사하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어섰습니다. 위성턴도 넘어섰습니다. 베토벤도 나중에 귀가 먹어 들을 수 없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어섰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믿음 안에서 주와 함께 살아가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는 줄 믿습니다. 어떤 담이 있습니까 어떤 위험이 있습니까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가정입니까 사업입니까 지금 없을지라도 앞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금년에는 없지만 내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붙잡으면 주님의 은혜로 넘어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죽음이 앞을 가로막습니까 예수님은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을 돕기 원하시는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담을 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넘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십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넘지 못하는 것을 넘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가난한 여러분을 넘게 하여 부유하게 합니다. 병든 여러분을 넘게 하여 건강하게 합니다. 불행을 넘어서게 하여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줄 믿습니다. 죄인인 여러분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곳이 교회인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넘게 하십니다. 교회는 우리로 하여금 넘게 합니다. 예배 시간은 우리를 넘어서게 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는 늘 넘어섭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이기고 모든 담을 뛰어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떠한 담일지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스턴 처칠은 교회학교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어려울지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담이 있습니까 담을 크게 보지 마십시오. 담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고 낙심이 된다 할지라도 분명히 담을 넘어서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더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1517년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에 일개 신부로서 로마 교황청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다 썩어빠진 로마 교황청을 향해 95개 논제를 가지고 정면으로 항의할 때 교황청의 그 어마어마한 힘이 루터를 짓눌렀습니다. 루터는 낙심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포기하고 방안에 누워서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인생이 끝나는구나”하며 좌절했습니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의 아내가 밖에서 검은 상복을 입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곡을 했습니다. 루터가 깜짝 놀라 “무슨 일이오 누가 죽었소”하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여보 하나님이 돌아가셨대요, 하나님이 돌아가셨대요”라고 합니다. 루터는 어떻게 하나님이 돌아가실 수 있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부인이 말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는 줄 알면서 왜 그렇게 낙심하고 누워 있어요” 우리도 루터 부인 같은 부인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있으면 오늘 가셔서 루터 부인처럼 한번 해보십시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줄 믿습니다. 강하고 능하신 주님의 손이 머리털 하나 상함이 없도록 여러분을 도우셔서 담을 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담은 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여 담을 넘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합니다.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합니다.”(찬송가 342 장). 여러분, 저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의지할 것이 예수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갈수록 이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주님만이 확실하게 도와주십니다. 할렐루야. 일생을 목회하신 한 어른께서 좋은 경험담을 들려주셨습니다.
“여러분, 나는 일생 동안 그분의 도움을 꼭 받을 줄 알았는데 도와주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꼭 도와주리라고 믿었던 분이 도와주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정치를 보십시오. 우리 나라의 역사를 보십시오. 언제나 도움을 주어야 할 분들이 도움을 주지 않고, 오히려 그분들 때문에 화를 당하고 어려움을 당합니다. 여러분, 누가 여러분을 도와줄 것 같습니까 병들었을 때 자식이 도와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친척이 도와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도움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담을 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주님만 의지하여 최후의 담, 죽음의 담까지 넘어서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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