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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일을 당할 때 (고후4:7-15)

본문

이스라엘의 시인은 시편 121편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 의 도움이 어디에서 올꼬"라고 인생의 태산 같은 험산줄령을 내다보면서 가 장 근본적인 인간의 실존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질문에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로 부터 온다고] 신앙적 고백을 했습니다. 오늘도 이 질문은 계속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도 움이 어디에서 올까고 방황하면서도움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젊은 청년에게는 청년의 문제가 있고, 늙은 노인에게는 노인들로서의 문제가 있습니다. 생활하고 활동하고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문제 들이 항상 따라 다닙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어쩌면 문제들이 더 크게 가 로 막힐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일찍이 예례미야나, 하박국 선지자가 [어찌 하여 의인이 땅위에서 더 많은 고난을 당해야 만합니까" 라고 하나님께 질문 을 던졌던 사실이 있습니다. 오늘날 기계문명이 발달되면 될수록 인간의 문제가 해소되기는 커녕, 더욱 더 복잡해만 가니, 어디에서 무엇으로 인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지구상에 인류의 문제중 제일 심각한 문제는 그것은 곧 생존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종교와 양심과 자유 보다 우선되는 것이 곧 생 존의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경쟁 사회에서 내 아들딸들이 남에게 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 특히 우리 민족은 아직도 [민족적 생존권] 문제를 최우선 적으로 내 세워야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본래 <생존의 문제>에서 출발된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에덴 동산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을 창조하였을 때, 생존 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도리어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주관하고, 번성하고 충만 하라]는 축복과 함께 시작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후에 보면, 인간이 죄를 번했을 때, [아담에게 이르시되 땅은 너 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고 하였 습니다. 여기서 비로소 <먹고사는 문제> 즉 생존의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 보면, [먹고사는 문제]가 근원적으로 물질로 연유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관계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이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땅을 주시고, 소산 중 처음 것과 소득의 열의 하나 를 구별하여 가져 받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저들에게 생존의 문제를 해결시키는 복으로 갚아 주겠다는 묵시적 교훈이 담겨 있는 명령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종신토록 수고한다]는 말이 곧 삶의 무제들이란 말입니다. 종신토록 문제들 속에서 수고하는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살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제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수고]는 계속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면 잘못된 생각들이 간혹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그저 하나님이 모두 다 해결해 준다고 수고와 노력은 아니하고, 바라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땀흘리지 않고 쉽게 살수 있도록 하나님이 척척 준비하셨다가 내 주는 줄 그렇게 알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것이 뭔지 압니까 힘든일은 피하고 쉬운일만 하려고 하면서 열씸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또 어떤 경우인가 하면 노력하지 않고,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성적만 좋게 나오기를 바라는 그런 경우입니다.
1. 답답한 일은 누구에게나 현실적 생존 문제에서 다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마에 땀을 흘리는 힘씀과 노력이 있어 야 먹고산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수고해야 먹고산다]는 것입니다. 노력해야 소득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수고하는자에게 함께 하셔서 식생활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먹을 수 있는 생존권을 주시고수고한 만큼 소산을 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이 질서가 깨진 사회라면, 바람직스러운 사회가 아니요, 일하는자가 더 궁핍하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거스리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노소득은 죄입니다. 불노소득으로 얻은 것은 하나님께 환원해야 합니다. 수고한 대로 먹도록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수고하지 않고 얻은 것은 이웃을 위 해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삭캐오가 한 말이었습니다. "내가 뉘게 토색한 것이 있거든 4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한 말이 바로 이런 뜻에서 한 말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보면 <희년>이 되면, 모든 토지는 본래 주인에게 도로 돌려 주라는 것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한 대로 먹고 살수 있도록 해 주었기에, 이것을 어떠한 명분으로 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일 안하고 먹겠다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일한 것 보 다 더 요구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고, 일한 만큼 주지 않는 것도 잘못된 일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미워하십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깨달았기에 그는 전도 여행 중에서 도 손수 천막을 만들어 자기 생활을 해결했고, 더욱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2. 답답한 일을 당할 때 필요한 것은 믿음뿐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은 수고해야 먹고사는 이 진리를 바로 깨닫지 못하고있 기에 답답한 일을 당하면 쉽게 낙심합니다. 오늘 본문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 습니까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답답 한 일이란 바울자신에게 여러 가지 핍박과 훼방과 박해들이라고 봅니다 마는, 좀 넓게 생각해 보면, 우리 모든 생활의 영역에서 다 확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답답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으로 진퇴양난의 경우를 만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금 당장 경제적인 문제로 답답한 일을 당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에게는 질병의 문제로 답답한 일을 당하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직장 생활에서, 아니면, 인간관계에서, 아니면, 사랑과 결혼 문제로 답답한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 게 보면 이 세상에 답답한 일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답답한 경우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들 합니까 술을 퍼 마시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법으로 고소를 제기하거나, 아니면, 자 학으로 떨어져 버리거나, 아예 이불 쓰고 실의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거나, 이 중에 어느것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경우에서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 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핍박을 당하여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꺼꾸러 트 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이런 힘이 어디에서 왔다고 봅니까 술기운입니까 권력의 힘을 의지해서 입니까 아니면 폭력으로 해결되기 때 문입니까 아닙니다!. 단 하지 비결은 그 위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은즉" 즉 보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보화가 무엇입니까 <믿음> 입니다. 이 믿음을 질그릇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질그릇이란 우리의 약한 육체를 말합니다. 이 보잘것없는 약한 육체 속에 가장 귀한 보화인 믿음을 간직하고 있기에 답 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영국의 토마스 칼라일은 7년의 긴 세월에 걸쳐 심혈을 쏟아 [불란서 혁 명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칼라일이 외출하고 없는 틈에 하녀가 난 로에 불을 피우려다가 불쏘시개를 찾다가 노랗게 퇴색된 이 원고 뭉치를 못쓰는 휴지 인줄 알고 무심코 기름을 쳐서 쏘시개로 써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칼라일은 너무나 답답해서 일주일 동안 음식도 먹지 못하고 미칠듯 한 실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작품을 쓰라는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또다시 온 정성을 다하여 새로 쓰기 시작하여 오늘의 우리가 읽고 있는 세계적인 불후의 명작 [불란서 혁명사]인 것입니다.
3. 답답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은 제일 가까이 계십니다. 답답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말씀하고 깨닫게 합니다.
왜냐하면, 평상시에는 모두 하나님께 향하는 시선보다 세상으로 향하는 시 선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괴로운 일이 닥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렇게 했어라도 당신의 자녀들과 가까워지게 되 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의 신을 따라 갔을 때마다 그대로 방치해 두지 아니 했습니다. 반듯이 어떠한 답답한 일을 만나게 함으로 저들이 돌아오도록 하였 습니다. 그래서 시편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중에 지금 답답한 일을 당한 분들이 계십니 까 낙심하지 마시고, 여러분 곁에 그 어느 때 보다 하나님은 제일 가까이 와 계신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라고 하는데 아직도 기도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통회자복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관계 개선을 먼저 하시 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산을 향하여 눈을 들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막막한 문제가 산처럼 앞에 가로막혀 있어도 눈을 들어 하나님을 향할 수 있을 때, 도움이 어디에서 올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답 답한 일을 만났을 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시편 18:29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답답한 일을 당할 때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현실의 담을 뛰어 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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