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고상한 염려 (고전7:10)
본문
성도가 받고 있는 축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그중에 큰 축복의 하나가 모든 염려를 맡길 수 있고, 맡아 주시는 분이 있으 니 곧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세상은 근심, 걱정,이 생의 염려로 모든 사람이 피곤에 지쳐 있고, 얼굴은 웃음을 잃어 버 렸으며, 평화를 잃어버린 채 허덕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념려와 근심은 살인마이다.' 사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무려 55O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염려라는 것은 무익한 것이요 인간의 생명을 해롭게 하는 것이며,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이 모든 염려를 맡기라고 하십니다. 세계2차 대전 때 일본과 독일을 상대하여 미국이 치열한 전쟁을 한 결과 =5만명이란 미국의 청년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_!2_다 더 놀라운 일은 2 차 대젖 때 염려로 말미암아 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염려와 근심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 실입니다. 오늘 이 백성들은 온갖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 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염려와 근심 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염려라는 말은 헬라 원어에 ' 메림나오' (=piJrJtJ) 라는 말인데 그 뜻은 네리조' (Jfti rJ) 라는 말과 '누스' (rouS) 라는 말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메리조'란 '갈라 버린다'는 뜻이고, '누스,는 .마음t이 란 뜻인데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 조각으로 갈라 버디는 것이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인간을 약하게 하고 실패자로 만들어 인간을 불행에 울도록 만드는 무 서운 악이요, 신앙을 타락시키려는 원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라는 것 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 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 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한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s:s4)하였습니다 요한복음
I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빌럽보서 4장 s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그리하 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서 성도들에게 주신 염려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lO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의 근 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하였습니다.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적인 근심과 영적인 근심이 바로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근심과 영적인 근심입니다.세상 근 심, 곧 육신적인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우리가 해야할 근 심은 영적인 염려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가져야 할 유익한 것이요,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입니다. 이러한 염려를 우리는 다음 몇 가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까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하여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s:
I2-19에, '영제들아 너희가 삼가 흑 너희 중에 누 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 려할 것이요'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o년간 하니님의 계속적인 이적과 은 혜를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불신앙이었고 악한 행위 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그 마음이 강팍하게 됨을 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회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회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듣고 격노케 하 던 자가 누구뇨'(히 5:15-IS) 하나님을 격노케 하고 하나님의 노 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선민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에서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 하고 우리를 왜 애굽으로 인도하여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이곳에는 파종할 것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도다.모세가 총회를 떠나 회막에 이르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며 너희는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들에게 마시울지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쎄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지이로 반석을 두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와 회중과 짐승이 먹으니라.'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 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사람이 되어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까 염려해야 합니다. 모세가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 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사실입니까 신앙이 잘못 될까 염려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lo장 1o절 -I2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 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 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우리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 어질까 조심하라'하였습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 '리심하다가 넘어지고, 원망하다가 넘어지고, 교만하다가 넘어지고 강팍하여 버림받은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정녕 이 세상적인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의 영적 상태를 보고 탄식하며 염려하는 것은 성도로서 아름다 운 것입니다.
둘째, 성도는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ll .2s-29에,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 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세 번 태장 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 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 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 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 그 손으로 여기에서는 자 신이 교회를 위하여 쉬지 아니하는 염려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진실된 성도라면 자기의 집안 살림 못지 않게 주님의 피로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게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며 안 타깝게 기도하고 봉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진실한 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영흔을 살려내며 수 많은 영흔을 천국으로 인 도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과 교인들의 관계를 결흔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다가 만인 에서 서약하고 결흔하므로 그 사랑은 열매를 맺습니다. 결혼할 수 없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 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증인들 앞에서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신부가 되겠노라'고 서약하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만 받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세례만으로 완전치는 못 합니다. 결흔을 했으면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부부라면 어떠한 이유가 있든 간에 불행한 일 입니다. 돈이 많아 호화스런 생활을 누린다 할 지라도 진정한 사랑 의 가정을 찾지 못하면 인생 나그네의 외로움은 막을 길 없고 그 삶 은 허전한 삶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판자촌이라도 내 집을 가지 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등록하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이 참 편하다 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것은 가정이 없는 부부 와 같습니다. 분명 교회 생활은 가정을 이룬 부부 생활과 같습니다, 또 아무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어도 부부만이 살게 되면 허전함 이 있습니다. 가정은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고달픔도 있지만 보람 도 또한 그만큼니다. 성도는 열심히 전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가정이 있듯이 성도에 게는 신앙이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성도에게는 네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내 목자, 내 교회, 내 가정, 내 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부족한 것이 있을 지라도 한 가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내 가 훌륭한 것처럼 땅 위의 어느 교회인들 완전한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해도 그 곳에 몸담아 충성을 다 하면 그 신앙은 바르게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상급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발목을 묶는 것과 같습니다. 구역에 묶고 각 기관 에 묶습니다. 마치 병아리를 주인이 묶고 모이를 주며 기르는 것처 럼 처음에는 묶은 줄을 풀고 도망치려다 점차 시간이 가면 줄을 풀 어도 도망가지 아니하고 울 안에서 자랍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상으로 빠져 들려는 사람들을 믿음의 자리로 서게하는 곳입니다. 제가 서울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실에 누워 있을 때 일입니다. 접수받는 아가씨에게 전화벨이 울리면서 이런 대화가 들려오고 있 었습니다. '얘, 너 어싸 교회에 가서 미스터 김 하고 데이트 했니 '못했어 "왜 "알고 보니까 성가대에 같이 앉아 있는 미스 리 하고 좋아한대. 그래서 그 교회 그만 다니기로 했어'하는 것이었읍니다. 교회는 어떤 이유로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만나러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여러 모양으 로 교회에 나오지만 결과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신 교회가 잘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구역장님은 구역 부홍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이 시대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성도는 나라를 위하여 염려하o1야 합니다 로마서 9장 1절에서 s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 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크신 역사 안에서 큰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근심은 곧 자기 동족꽈 나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우리에게 지난날 나라 없는 설움이 그 얼마나 컸습니까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나라 가 안전하고 민주적인 자유 국가가 되도록 염려하고 늘 기도해야 할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불쌍한 민족입니다. 북쪽은 소련이나 중공을 의존해야 하고 남쪽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 그들의 눈치만 바라보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민족입니까우리는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우리는 이 나라의 평화스런 번영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위대한 애국자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얼마나사랑하고 나라를 얼마나 염려하였는지 그의 슬픈 마음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슬프다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 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하였도다.' 그에게는 슬픔이 있었읍니다. 근심이 있었습니다. 고통이 있었습니다.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워 애국은 단순한 애국이 아닙니다. 이는 주안에서 의 애국입니다. '피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 느니라' (잠14:s4)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크게 염 려하는 이유는 이 백성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의 애국심은 어느 시대, 어느 민즉이든지 민족의 제일 큰 원수가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의 제일 큰 원수가 로마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 하 셨습니다. '너희의 제일 큰 원수는 너희 속에 있는 죄'라고 하시면 서'먼저 이 죄를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애국운 동은 회개 운동이요, 진정한 애국은 먼저 교회에서 회개 운동이 일 어나는데서 이룩됩니다. 씨스겔서 9장 1절에서 s절을 보면 이런 맙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큰 소리로 사자들을 불러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는 데 일곱 사람중 여섯 사람이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먹그릇을 찼더라고 했습니다. 먼저 가는 베옷을 입고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명령하기를 '예루살렘성을 두루 다니면서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명 에게는 살륙하는 기계를 가지고 그 뒤를 쫓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있는 자, 즉 그 백성들의 가증한 죄임을 인하여 탄식하며 울던 자는 구원하라고 했읍니다.
그런데 이 심판이 늙은 자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마땅 히 근심하고 탄식해야 할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이나 교회가 무감각하여 근심하고 탄식할 줄 모를 때에 누구보다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심판은 교회에서 시작되며 늙은 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늙은 자가 누구입니까 마음이 굳어진 자들입니다. 자신도 애통할 줄 모르고 교회를 위해서도 무관심하고 나라가 온통 죄악 가운데 있어도 무관심한 자들이 올시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성전 의 늙은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치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에는 어 떠할까요 늙어버린 현대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에스겔 9장 8절에 보면, ,칼든 여섯 사자가 사람들을 쳐죽이는 동 안 나는 홀로 남아서 으로 .쓰러져 호소하였습니다.아 !주 여호와 여 ! 예루살렘의 하는 짓이 아무리 노여우시기로 이스라엘의 얼마남 지 않은 사람마저 이렇게 다 없애실 작정이십니까 그분이 대답하 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 가문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너는 아느냐여호와가 이 나라를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다고 하며 온 나라에 유혈 참극을 벌인 것들, 부정 부패로 이 수도를 채운 것 들 어떻게 내가 그들을 가엾게 여기고 불쌍히 보겠느냐' (공동번 역)하였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 이 민족을 향한 음성 같았고,한국교회에 대한 채리같은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 들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염려하는 것도 달라야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하여 근심하 고 기도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염려는 세상적인 허탄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도 원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신에서 오는 염려가 아니요,사랑하기 때문에 있는 고상한 염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과 이웃과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염려 이기에 이는 참으로 고상한 성도의 염려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그_!2_다 더 놀라운 일은 2 차 대젖 때 염려로 말미암아 심장 마비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염려와 근심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 실입니다. 오늘 이 백성들은 온갖 염려와 근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 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도 염려와 근심 속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염려라는 말은 헬라 원어에 ' 메림나오' (=piJrJtJ) 라는 말인데 그 뜻은 네리조' (Jfti rJ) 라는 말과 '누스' (rouS) 라는 말로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메리조'란 '갈라 버린다'는 뜻이고, '누스,는 .마음t이 란 뜻인데 우리들의 마음을 산산 조각으로 갈라 버디는 것이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서 인간을 약하게 하고 실패자로 만들어 인간을 불행에 울도록 만드는 무 서운 악이요, 신앙을 타락시키려는 원수 마귀의 무서운 무기라는 것 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 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 까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한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마태복음s:s4)하였습니다 요한복음
I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빌럽보서 4장 s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그리하 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하였습니다. 성경은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믿으라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에 서 성도들에게 주신 염려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 lO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의 근 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하였습니다. 근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적인 근심과 영적인 근심이 바로그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근심과 영적인 근심입니다.세상 근 심, 곧 육신적인 염려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우리가 해야할 근 심은 영적인 염려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가져야 할 유익한 것이요,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염려입니다. 이러한 염려를 우리는 다음 몇 가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질까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하여 근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s:
I2-19에, '영제들아 너희가 삼가 흑 너희 중에 누 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 려할 것이요'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o년간 하니님의 계속적인 이적과 은 혜를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시험한 것은 불신앙이었고 악한 행위 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도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서도 그 마음이 강팍하게 됨을 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회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회 마음을 강팍케 하지 말라. 듣고 격노케 하 던 자가 누구뇨'(히 5:15-IS) 하나님을 격노케 하고 하나님의 노 하심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선민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에서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 하고 우리를 왜 애굽으로 인도하여 이곳에서 죽게 하느냐.이곳에는 파종할 것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도다.모세가 총회를 떠나 회막에 이르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며 너희는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들에게 마시울지니라. 모세와 아론이 총회를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쎄게 이르되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그 손을 들어 지이로 반석을 두번 치매 물이 많이 솟아나와 회중과 짐승이 먹으니라.'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 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백성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우리는 불순종의 사람이 되어 멸망의 자리에 들어갈까 염려해야 합니다. 모세가 넘어졌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 습니다. 이 얼마나 두려운 사실입니까 신앙이 잘못 될까 염려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lo장 1o절 -I2절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 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 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우리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 어질까 조심하라'하였습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 '리심하다가 넘어지고, 원망하다가 넘어지고, 교만하다가 넘어지고 강팍하여 버림받은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정녕 이 세상적인 염려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의 영적 상태를 보고 탄식하며 염려하는 것은 성도로서 아름다 운 것입니다.
둘째, 성도는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ll .2s-29에,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 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세 번 태장 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 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 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 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 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 그 손으로 여기에서는 자 신이 교회를 위하여 쉬지 아니하는 염려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진실된 성도라면 자기의 집안 살림 못지 않게 주님의 피로 사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줄 알게 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근심하며 안 타깝게 기도하고 봉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진실한 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영흔을 살려내며 수 많은 영흔을 천국으로 인 도하는 사명을 가진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과 교인들의 관계를 결흔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을 하다가 만인 에서 서약하고 결흔하므로 그 사랑은 열매를 맺습니다. 결혼할 수 없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 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증인들 앞에서 나는 주님을 사랑하고 그의 신부가 되겠노라'고 서약하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만 받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세례만으로 완전치는 못 합니다. 결흔을 했으면 반드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가정을 이루지 못한 부부라면 어떠한 이유가 있든 간에 불행한 일 입니다. 돈이 많아 호화스런 생활을 누린다 할 지라도 진정한 사랑 의 가정을 찾지 못하면 인생 나그네의 외로움은 막을 길 없고 그 삶 은 허전한 삶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판자촌이라도 내 집을 가지 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등록하지 않고 예수 믿는 것이 참 편하다 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것은 가정이 없는 부부 와 같습니다. 분명 교회 생활은 가정을 이룬 부부 생활과 같습니다, 또 아무리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어도 부부만이 살게 되면 허전함 이 있습니다. 가정은 자녀가 있어야 합니다. 고달픔도 있지만 보람 도 또한 그만큼니다. 성도는 열심히 전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형제들을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가정이 있듯이 성도에 게는 신앙이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 좋은 성도에게는 네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내 목자, 내 교회, 내 가정, 내 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부족한 것이 있을 지라도 한 가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내 가 훌륭한 것처럼 땅 위의 어느 교회인들 완전한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하지 못해도 그 곳에 몸담아 충성을 다 하면 그 신앙은 바르게 성장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상급도 받게 되는 것 입니다. 교회는 성도의 발목을 묶는 것과 같습니다. 구역에 묶고 각 기관 에 묶습니다. 마치 병아리를 주인이 묶고 모이를 주며 기르는 것처 럼 처음에는 묶은 줄을 풀고 도망치려다 점차 시간이 가면 줄을 풀 어도 도망가지 아니하고 울 안에서 자랍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세상으로 빠져 들려는 사람들을 믿음의 자리로 서게하는 곳입니다. 제가 서울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실에 누워 있을 때 일입니다. 접수받는 아가씨에게 전화벨이 울리면서 이런 대화가 들려오고 있 었습니다. '얘, 너 어싸 교회에 가서 미스터 김 하고 데이트 했니 '못했어 "왜 "알고 보니까 성가대에 같이 앉아 있는 미스 리 하고 좋아한대. 그래서 그 교회 그만 다니기로 했어'하는 것이었읍니다. 교회는 어떤 이유로도 나올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만나러 갔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여러 모양으 로 교회에 나오지만 결과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한신 교회가 잘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구역장님은 구역 부홍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이 시대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성도는 나라를 위하여 염려하o1야 합니다 로마서 9장 1절에서 s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 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님의 크신 역사 안에서 큰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근심은 곧 자기 동족꽈 나라를 위한 것이었습니다.우리에게 지난날 나라 없는 설움이 그 얼마나 컸습니까 우리 한국의 성도들은 나라 가 안전하고 민주적인 자유 국가가 되도록 염려하고 늘 기도해야 할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불쌍한 민족입니다. 북쪽은 소련이나 중공을 의존해야 하고 남쪽은 미국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어 그들의 눈치만 바라보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불행한 민족입니까우리는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우리는 이 나라의 평화스런 번영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위대한 애국자입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얼마나사랑하고 나라를 얼마나 염려하였는지 그의 슬픈 마음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슬프다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 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하였도다.' 그에게는 슬픔이 있었읍니다. 근심이 있었습니다. 고통이 있었습니다. 눈물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워 애국은 단순한 애국이 아닙니다. 이는 주안에서 의 애국입니다. '피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 느니라' (잠14:s4)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하여 크게 염 려하는 이유는 이 백성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의 애국심은 어느 시대, 어느 민즉이든지 민족의 제일 큰 원수가 죄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의 제일 큰 원수가 로마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 하 셨습니다. '너희의 제일 큰 원수는 너희 속에 있는 죄'라고 하시면 서'먼저 이 죄를 회개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애국운 동은 회개 운동이요, 진정한 애국은 먼저 교회에서 회개 운동이 일 어나는데서 이룩됩니다. 씨스겔서 9장 1절에서 s절을 보면 이런 맙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께서 큰 소리로 사자들을 불러 예루살렘 성을 심판하는 데 일곱 사람중 여섯 사람이 살륙하는 기계를 손에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먹그릇을 찼더라고 했습니다. 먼저 가는 베옷을 입고 먹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서 명령하기를 '예루살렘성을 두루 다니면서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명 에게는 살륙하는 기계를 가지고 그 뒤를 쫓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있는 자, 즉 그 백성들의 가증한 죄임을 인하여 탄식하며 울던 자는 구원하라고 했읍니다.
그런데 이 심판이 늙은 자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마땅 히 근심하고 탄식해야 할 지도자급에 있는 사람이나 교회가 무감각하여 근심하고 탄식할 줄 모를 때에 누구보다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심판은 교회에서 시작되며 늙은 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늙은 자가 누구입니까 마음이 굳어진 자들입니다. 자신도 애통할 줄 모르고 교회를 위해서도 무관심하고 나라가 온통 죄악 가운데 있어도 무관심한 자들이 올시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성전 의 늙은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치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날에는 어 떠할까요 늙어버린 현대 교회 지도자들이나 성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에스겔 9장 8절에 보면, ,칼든 여섯 사자가 사람들을 쳐죽이는 동 안 나는 홀로 남아서 으로 .쓰러져 호소하였습니다.아 !주 여호와 여 ! 예루살렘의 하는 짓이 아무리 노여우시기로 이스라엘의 얼마남 지 않은 사람마저 이렇게 다 없애실 작정이십니까 그분이 대답하 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 가문의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 너는 아느냐여호와가 이 나라를 내버리고 돌보지 않는다고 하며 온 나라에 유혈 참극을 벌인 것들, 부정 부패로 이 수도를 채운 것 들 어떻게 내가 그들을 가엾게 여기고 불쌍히 보겠느냐' (공동번 역)하였습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오늘 이 민족을 향한 음성 같았고,한국교회에 대한 채리같은 음성으로 들려왔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 들과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염려하는 것도 달라야겠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영적 상태를 위하여 근심하 고 기도할 줄 아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달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염려는 세상적인 허탄한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성도들에게도 원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불신에서 오는 염려가 아니요,사랑하기 때문에 있는 고상한 염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과 이웃과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솟아오르는 염려 이기에 이는 참으로 고상한 성도의 염려인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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