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의 생활화 (고전8:1-9)
본문
제가 교인들이 신앙 생활 하는 것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헌금 생활 하는 데서 신앙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이웃을 위해서 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는 것도 신앙의 성장과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장에서는 바치는 생활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신앙 성장을 도모해 보 려고 합니다. 헌금은 반드시 해야 하는가 먼저 헌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을 남을 위해 쓰면서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한번 해 봅시다. 그런데 사실상 이 질문은 별로 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헌금한다는 것은 상식이요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극장에 가도 돈을 내고 음악회에 가도 돈을 냅니다. 또 추석이나 성탄 이웃과 친척을 위해서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s상식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도 교회에 처음 오면 으레 헌금할 줄 알 고 헌금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수해가 났을 때나 재난이 있을 때 어쩌다가 성금을 하는데, 믿는 사람들은 참 다행스럽게도 정기적으로 매주 한 번 내지 두 번은 하나님께 물질을 바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그분께 드리면서 사는 삶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 믿 지 않을 때에는 주고 싶어도 어디에다 줄지를 몰랐고, 어쩌다가 한 번씩 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정기적으로 늘 줄 수 있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멋입니다. 물질을 바친다는 것은 옛날부터 인류가 늘 해 오던 것입니다. 벌 써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예물을 드리는 것이 나오지 않 습니까 양 한 마리, 소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사는 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류의 종교적인 관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 기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사람마저도 헌금과 제물을 우상 앞에 바쳤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헌금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별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어떻게 바칠 것인가 문제는 어떻게 바칠 것인가입니다. 헌금을 하는 태도와 정신이 결 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할 때 아까워합니다. 또 하나님이 하라고 했다 해서 의무감에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하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헌금과 관계해서 willingly(자진해서, 기꺼이)라는 단어 가 여러 번 나옵니다(출애굽기 35:5,21,22,29). 물론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합니다. 얼마를 해야 하는가 제가 미국에서 목회 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어떤 분은 십 년 전 에 5불을 했는데 십 년 후에도 5불을 합니다. 그동안에 수입이 많이 늘었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의 값이 올라가 도 헌금하는 액수는 그대로인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상식 이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교회 회계부에 계신 분들이 회계부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험에 들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십 년 전에 5불 헌금한 사람이 십 년 후에도 5불을 하는데, 그 가 집사 직분을 맡고 있으며 제직회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계부에서 일하던 사람이 말하기를, 자 신이 회계부원 안 할 때에는 시험에 안 들었는데, 교회에서 두드 러지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인색하게 헌금하는 것을 보고는 시험에 들어서 회계부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가 헌금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니까, 집사님은 집사님이 헌금할 것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것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시험에 빠지게 할 소지가 있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얼마를 헌금해야 하는가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다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사람은 비둘기를 바치 고, 어떤 사람은 양을 바치고, 어떤 사람은 염소를 바치고, 어떤 사람은 황소를 바칩니다. 헌금도 자기 능력에 따라서 바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염소를 바칠 수 있는 능력을 받 은 사람이 양을 바치면 그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황소를 바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비둘기를 바치는 것 역시 적합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대로 헌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으 로 공평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나 자신이 압니다. 당신의 가정에 황소의 은혜를 주셨는지 염소 의 은혜를 주셨는지 양의 은혜를 주셨는지 비둘기의 은혜를 주셨는 지 당신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비둘기의 은혜를 주신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예물을 바칠 때 비둘기를 가져갔습니다. 제일 작 은 헌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둘기를 바칠 사람이 비둘기를 바칠 때 100% 은혜 받은 자로 여기십니다. 황소를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황소를 바칠 때에 그것을 온당하게 여기십니다. 헌금의 액수는 우리 모두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헌신의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서 헌금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헌금에 대한 성경의 지침 성경에는 헌금에 대한 지침이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우리 수 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이 있습니다. 창세기 14장 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4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8장 22절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바치겠다고 벧엘에서 결정하고 약속한 내용이 나옵니다.
레위기 27장 30-3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십일조 에 대한 규례를 모세로부터 가르침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 의 제자들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으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했습니다. 말라기 3장 8-10절에 보면, 십일조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 떻게 축복을 해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라고까 지 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을 모델로 보여 주시면서 권고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벧엘 교회 목회를 시작할 때 처음 믿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처음에는 십일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은 신앙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십일조 이야기를 하면 금방 시험에 들기가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 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제직들에게 이 야기하고 당회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신앙의 성장과 헌금이 똑같 이 갑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회개한 적 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소한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까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의 길이었는데, 저는 교인들이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이야기를 소극적으로 했던 것입니다. 교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크신 축복의 길을 교인들 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 안타깝고 양심에 가책이 되 었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교인들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축복하신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여러분을 생각해 준다고 그동안 말하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것은 율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 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맨몸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입는 옷, 우리의 지식, 우리의 안경, 우리의 자동차, 우리의 가족, 우리의 건강,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 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은혜에 감사해서 선교사를 위해서 ,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수재당한 이웃을 위해서, 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내놓으면서 산다는 것은 신앙인의 정상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바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결 정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주일날 헌금 시간에 호주 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드리는 것은 적절한 신앙 생활의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 가운데에서 십일조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그러나 누가 그 이야기를 꺼내든지, 십일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을 도와서 당신의 가정에 헌금 생활이 정상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정상적인 헌금 생활을 하고 헌금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 를 생각하면 우리의 경제 생활이 정돈됩니다. 하나님 앞에 10분 의 1을 바침으로써 10분의 9를 가지고 가정 생활을 해야 하니 까 생각 없이 함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은 경제 생활에 계획성이 생기고 가정 생활에 질서가 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정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십일조를 하는 가정은 절 대로 모자람이 없습니다. 내 욕심을 채우지 못하지만, 경제 생활 이 정돈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마음과 삶 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으레 하는 것이므로 거기에 대한 논란은 없습니다. 헌금할 수 있는 기회만 오면 언제나 특권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하십시오 . 헌금은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아니하고, 생각 없이 하지 아니하고, 율법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되 성경에서 가르쳐 준 하나의 모델을 놓고 우리들 스스로가 헌금해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 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의 가정에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헌금하는 것을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헌금이 결정됩니다.
(2) 고린도후서 9장 1-9절 신앙의 성장은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바치고 남을 위해서 주면 서 사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남에게 나누어 주며 살 때 우리가 만족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는 삶의 결심 주면서 사는 삶, 바치면서 사는 삶, 남을 위해서 헌신하며 사는 삶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 속에 하나님 의 은혜를 깨닫고 이제부터는 나의 것을 주면서 살겠노라고 결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주는 삶의 결심을 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과거를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난n 돌이켜보면 주면서, 드리면서, 바치면서 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어 가지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s느 7절에 보면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 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집 이나 물건들이나 생명이나 가족이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그 무엇이든 > 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올 때에는 맨 몸으로 왔습니다. 또 맨몸으로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경영하는지, 하나님께서 보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감사하기 때문에 줄 수 있습니다. 시편 116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편 기자도 3천 년 전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 은덕을 어떻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 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시편 기자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살아 온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 에게 주어진 생명,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번의 기회들은 내가 만 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것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많 이 도와주셨습니까 때때로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을 낫게 해 주 시고,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에 보호해 주시고, 우리가 슬퍼할 때 위로해 주시고, 우리가 어디로 갈지 모를 때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 우리들이 범죄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긍 휼과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를 너그럽게 구원해 주셨고 오늘까지 인 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살까, 어 떻게 하면 내 이웃을 도울까 생각하게 됩니다. 남을 도울 기회가 있을 때 서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도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미래를 내다보아야 합니다. 넉넉히 바치는 자, 늘 남을 위해서 주면서 사는 자의 삶은 어떻 습니까 주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가 준 것 의 몇 배를 주시기 때문에 절대로 모자라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 의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남을 위하여 내놓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은혜가 풍족한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 에 보화를 쌓아 놓는 것이 이 땅에 쌓아 놓는 것보다 휠씬 더 확실하다고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모아 놓은 보화는 썩을 수도 있고, 도적맞을 수 도 있고, 좀먹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한국 교포가 미국에서 잔뜩 돈을 벌 었습니다. 그 돈을 은행에 두면 이자가 늘어서 세금을 물어야 하 니까 은행에 두지 않고 대신 자기 집 오븐 속에 쌓아 놓았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그 오븐이 고장이 났습니다. 오븐을 고치고 나서 시험한다고 불을 켰을 때, 그 속에 넣어 둔 그 많은 돈을 그만 다 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소문이 되어서 신문에까지 기사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 쌓아 놓은 것은 금방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바친 것들과 남을 위해서 준 것은 영원한 기금이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들이 하나님께 헌금과 헌물을 드린 내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 가 무엇을 드렸는지 자세히 적혀 있는 것을 보고서
3,500년 전의 일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남을 위해서 바친 시간과 하나님을 위하여 바친 노동과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의 책에 일일이 적어 놓고 영원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 친 것은 하늘에 다 쌓이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보화가 더 확실 합니다.
셋째로, 밖을 향해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즉,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기 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남에게 주면서 산다는 것은 이웃에 대한 관 심의 표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주는 것과는 비례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사람은 정말 사랑하고 있는 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서로서로 주고 사는 것은 이웃에 대한 큰 관심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우리 교회가 남을 위하여 얼마나 주고 있나를 조 사해 보았습니다. 전부 종합해 보니, 이 교회는 남을 위해서 교회 예산의 20%를 주고 있었습니다. 20%가 많은 것은 아니지 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44개의 교회와 11인의 선 교사와 20여 개의 기독교 기관들, 그리고 소년 소녀 가장들이 이끄는 80가정을 돕는 것을 보고 참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 남을 위해서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나 자신을 한번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남을 위하여 주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만족감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기를 원합니까 마음에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과 기쁨이 있는 그리고 삶의 의미와 만 족감이 있는 삶을 살기 원치 않습니까 욕심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자기만 위하여 살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탐심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늘 짜증만 나고 화만 납니다. 또 경쟁심 때문에 즐겁지 못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주신 은혜를 깨닫고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육체적인 것이든지 남을 위해서 줄 줄 아는 사람들의 삶은, 모든 인간이 원하는 평화와 사랑과 기쁨과 삶의 의미와 만족감이 있는 삶입니다. 이러 한 실례(實例)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탐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물질에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지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5장 2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利)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 예수께서는 인생의 행복이 물질적 풍요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물질과 재주와 시간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쓰면서 살 수 있는 삶, 이것이 우리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삶입니다 . 바치는 사람이 받는 혜택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치는 사람에게는 혜택이 있습니다. 이것은 추 수의 법칙입니다. 씨를 많이 심으면 많이 걷게 되어 있습니다. 밭에다가 씨를 조금 심어 놓고 많이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적의 심보입니다. 심은 그대로 걷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법칙입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기회 있 을 때마다 기도해 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내 몸과 내 재능과 내 손을 내어 주는 삶은 추수의 법칙에 의하여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조금 심는 자는 조금 거둔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나타난 분명한 진리요 변치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즐겨 내십시오. 그럴 때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과 혜택이 있습니다.
첫째로, 기쁨의 영을 받습니다. 바칠 줄 알고 줄 줄 아는 사람은 삶을 기쁘게 살 줄 압니다(고 후 9:1). 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당신이 가진 것을 사용해 보 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기쁨의 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받는 사람의 필요와 채워지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주었기 때문에 받는 사람의 필요가 채워질 수 있습니다. 궁핍했고 모자랐고 힘들었는데, 바로 그때에 우리가 물질을 주었든 지 위로를 주었든지 사랑을 주었든지 육체적 도움을 주었든지 해서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채워 주는 결과가 되었으니까 얼마 나 좋은 일입니까 그뿐입니까 받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 가 넘치게 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세계에 나가 있는 선교사 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 중에 우리들이 보낸 헌금을 통해서 날마다 필요한 것들이 메꿔질 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한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를 위해서 이 물질을 보내 주어 서 가정 생활의 필요가 채워지고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게 되었 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작년에 수해가 났을 때에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여러 시골 교회 사람들에게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오는 도움의 손길을 생각할 때 그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겠습니까
셋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 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 가면서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믿는 사람들 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의식하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 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 나 와 똑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도 신앙 안에서 아름답고 선하게 사는 친구를 볼 때 격려가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이 얼 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그 자리가 비면 반드 시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 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 남에게 자꾸 주면 하나님께서도 자꾸 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 가지고 있는 것은 축나지 않습니다. 주면 또 오고 주면 또 오고 합니다. 자꾸 주어야 또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꿩 먹고 알 먹기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는 사람 좋고, 받는 사람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통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이 주시고 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많이 주어서, 주는 기쁨과 받는 감사와 하나님의 영광이 번갈아서 계속 나타날 때 얼마나 사는 재미가 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주고 내놓은 것에 절대로 빚지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신 것은, 심는 대로 거두 게 하시고 주면서 사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며 받는 사람에게 필요 한 것을 채워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많이 나타나는 은 혜를 즐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많은 것을 주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성경에 가끔 나타납니다. 뽕나 무에 올라갔던 삭개오가 그렇습니다. 삭개오가 올라갔던 뽕나무를 제가 여리고에 가서 보았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삭개오는 아주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의 이(利)를 탐내고 세금을 부정 하게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그날부터 회개하고, 다 른 사람에게 토색(討索)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당신도 과거에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이 있으면 그 돈 을 하나님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쓰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제가 옛날에 다니던 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했었는데 그 것을 안 했거든요. 어떻게 하죠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헌금하겠다고 약속한 교회에 지금이라도 주든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그것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약속한 것은 아예 갚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까 마리아의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예수님이 얼마 안 있으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가만히 쳐다보니 까 예수님의 가슴에 슬픔이 있었습니다. 애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 어딘가 무거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옆에서 지켜보던 마리아는 살짝 들어가서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 에 붓고 그분께 마음의 즐거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삶은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고 그것을 채워 주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비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바쳤을 때, 예수 께서는 두고두고 그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 부(富)하신 예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부 자가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히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렇게 살고자 하는 결단을 언젠가는 내려야 합니다. 언제나 너그럽게 주면서 살 때, 당신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충 분한 은혜가 있기를 그리고 그 은혜로 인한 기쁨과 평화와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목:바로 드리는 사람들 자료원: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고후 8:1-8 지방 중심도시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있는데 어느날 그 도시의 천주교 신 부가 찾아 왔답니다. 찾아온 목적은 신도드을 모아 놓을테니 몇시간 집회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천주교에서 개신교 목사를 청해다가 집회를 할 려고 하는가,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달라는 것인가라고 물언더니 이미 로마 바티칸의 허락까지 받았다며 개신교의 십일조하는 법을 얘기해 달라고 하더 라는 것입니다. 찾아온 신부의 얘기는 도대체 천주교 교인들이라는게 헌금할 줄도 모르고 바티칸에서 돈오기나 기다리고 있어서 답답하고 속상하다며 몇시간 개신교인들 헌금하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쾌히 승락하고 가서 몇 시간 십올조 얘기를 했더니 반응이 크 게 일더라고 했습니다. 천주교보다는 개신교가 훨씬 더 헌금생활에 익숙하 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세계교회 가운데 한국 교인들이 가장 올바른 헌금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빈다. 그러나 보다 더 헌금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드린다면 받으시는 하나님 께는 더 큰 영광이 될 것이고 드리는 우리에게도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1-8과 고린도후서 8:1-8과 고린도후서 9:1-7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주신 헌금에 관한 교훈입니다. 몇가지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6:3을 보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8:1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했고, 8:4을 보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6을 보면 "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말하고 있는 "은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행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그 행위자체를 은혜로 해석한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은혜]로 해석한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감사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88년 10월 5일 아침 계약 회사원이었던 전용기 씨가 아침 조깅을 하러 나갔다가 차에 치어 두개골 골절 등 14가지 합병증세로 전주예수병원에 입 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쫓아간 부인 성정식 씨의 놀 라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 당시 네살된 딸과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 을 대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을 대 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방을 병원 앞에 얻어 남편의 간병 을 시작했습니다. 남편 전용기씨는 식물인간이었습니다. 하루 수십 차례씩 가래를 빼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등 남편 수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고통의 날들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5년 11개월이었습니다. 주위에선 포기하라고 했고 시댁식구들도 발길이 뜸해지는가 하면 의사들도 합병증세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며 살아난다고 해도 식물인간을 벗어 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사람들은 새출발을 하라 고 권위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급성폐렴 등 합병으로 수많은 고비를 넘겼는가 하면 성정식씨도 4 개월만에 쓰러져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씨는 평소 배워둔 미용기술로 환자들의 머리를 깍아주고 한달에 4-5만원 을 받아 남편의 기저귀를 사거나 약값에 보탰습니다. 본래 성정식씨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믿는 집으로 출가를 해왔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고로 쓰러지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날마다 병원교회에 나가 남편 살려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4년 11개월간의 길고 긴 식물인간의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저는 이 사연을 신문에서 읽었고, 예수병원 관계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 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한편의 인간드라마입니다.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마 주 바라보며 주고 받는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여보 고맙소","여보 깨어나줘서 고마워요내 일생 당신 은혜 잊지 않을꼐나 당신 사랑한다구저두요" 부부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니지만 대충 그런 대화가 오고 갈 것입니다. 은혜는 순수한 것입니다. 은혜는 조건도 없습니다. 다만 은혜는 감동과 감 격과 감사가 넘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감동하고 감격한다면 드린다는 행위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드릴 수 있고, 드릴 것이 있다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억천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죽어버리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드릴 수 있고 또 드릴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제아 무리 드리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다면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 릴 것이 있다는 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그대로 무릎꿇고 즉시 그 자리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오늘도 깨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으로 보게 해주셨군요. 귀로 듣게 해주셨군요 입으로 말하게 해주셨군요. 손발이 움직이게 해주셨군요 또 다시 오늘 하루를 주셨 군요 감사합니다." 이 기도를 드리고 일어서곤 합니다. 여러분, 억천만원을 벌지 못했더라도, 성공출세를 내 욕심대로 못했더라면 살아있다는 것과 내 것이라고 몫지은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은혜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장병을 치료하는 내과 전문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평소 식도락을 즐기 던 두 남자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위장병 환자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음식을 조심해야하고 특히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빈다. A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의 말에 순응하고 치료되면 마음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 절제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치료가 급속도로 빠릅니다.
그런데 B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먹는 재미로 사는데 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느냐, 먹으면서 치료를 하는 법은 없느냐, 먹고 치료하면 되지 않 느냐며 항의하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환자는 A 환자에 비해 80% 치료가 지연되고 있다는것입니다. 먹게되면 먹게 되서 감사하고, 먹지 못하면 이 다음에 잘 먹게 될 줄로 믿 고 감사하는 사람이 은혜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그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것, 드릴 수 있게 된 것, 드릴 것이 있다는 것, 오늘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은혜로 믿고 감사합시다.
2. 자신을 먼저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5을 보면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물질로 헌금을 하기 전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들어 설명해 보게습니다. 가령 남편이 딴집 살림을 차리고 딴 살림을 하면서 그것을 미봉하기 위해 자기 부인에게 좋은 차를 사주고 좋은 옷을 사주고 용돈을 분에 넘치도록 준다고 가정해 좁시다. 부인은 남편이야 어디를 싸돌든 돈주고, 차사주고,옷사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수 있겠습 니까 돈이 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마찬 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내게 달라"고 하 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저는 어느 사진전에 갔다가 별난 작품을 구경했습니다. 사진모 델은 주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거의가 얼굴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각선미, 히프 가슴, 팔목, 등 그런 부분만을 클로즈업시켜 찍은 사진들이었 습니다. 얼굴없는 지체들의 전시회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돈만 드린다면 그것은 얼굴없는 가슴처 럼 흉물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나 를 먼저 드릴 때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물질과 시간과 재주를 받으시는 것 입니다.
3. 심는대로 거둡니다. 고린도후서 9:6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농사법칙이고 인생 법칙입니다. 바울은 그 법칙을 하나님께 드리는 법칙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쿠바의 산티아고 마을에 [마리아]라는 여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말을 타고 학교에 출퇴근을 했습니다. 어떤 날 남루한 옷차림에 맨발로 학 교를 향해 뛰어가는 소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림새가 꽤재재한 거라든지 맨발로 뛰는 걸로 보아 가난한 집 아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인가를 알아 보았더니 자기학교 학생이었고, 검은 눈이 초 롱초롱 빛나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마리아 선생 은 구두 한 켤레를 사서 그 학생에게 주었고, 정성껏 도와 주었습니다. 그 리고 그 다음해 그는 그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후 쿠바의 지도자로 카스트 로가 권좌에 오르게 되었고, 마리아 선생은 한 신문에 공산주의를 비방하는 글을 썼다는 죄목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그 선생은 곧 바로 정보과 정에게 넘겨졌습니다. 마리아 선생을 본 정보과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마리아 선 생이 아니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옛날 구두 사준 학생이 바로 접니다." 라며 덥썩 손을 잡았습니다. 구두 한 켤레와 작은 정성이 훗날 위기를 모면 케 해주었던 것입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을 뿌리고,부덕을 뿌리고,죄를 뿌리면 그것들을 많이 거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일은 많이 뿌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어떤 날 아브라함 집에 낯선 손님 셋이 찾아왔습니다. 너그럽고 후덕한 아브라함 부부는 정성을 다해 송아지를 잡고 요리를 만들 어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그날 아브라함 은 그들을 대접하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그날의 약속대로 일년 후에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공짜가 없습니다. 많이 드리면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면서 늘 해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더 많 이 못드려 죄송합니다","주님 정성껏 드리겠습니다","주님 더 많이 드리도 록 복 내려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알고 드립시다. 은혜를 감사하며 드립시다. 나 자신을 드립시다. 풍성하게, 넉넉하게, 많이 드십시다.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드리는 사람들의 헌신과 헌물과 감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드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거지 도 거지취급하면 화내고 덤빕니다.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믿고 드리고 있습니까 바로 드리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헌금한다는 것은 상식이요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극장에 가도 돈을 내고 음악회에 가도 돈을 냅니다. 또 추석이나 성탄 이웃과 친척을 위해서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s상식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도 교회에 처음 오면 으레 헌금할 줄 알 고 헌금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수해가 났을 때나 재난이 있을 때 어쩌다가 성금을 하는데, 믿는 사람들은 참 다행스럽게도 정기적으로 매주 한 번 내지 두 번은 하나님께 물질을 바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그분께 드리면서 사는 삶이 참 멋지지 않습니까 예수 믿 지 않을 때에는 주고 싶어도 어디에다 줄지를 몰랐고, 어쩌다가 한 번씩 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정기적으로 늘 줄 수 있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멋입니다. 물질을 바친다는 것은 옛날부터 인류가 늘 해 오던 것입니다. 벌 써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이 예물을 드리는 것이 나오지 않 습니까 양 한 마리, 소 한 마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런데 그런 것을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사는 것이 고대로부터 내려온 인류의 종교적인 관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섬 기는 사람 뿐만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사람마저도 헌금과 제물을 우상 앞에 바쳤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헌금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는 별로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어떻게 바칠 것인가 문제는 어떻게 바칠 것인가입니다. 헌금을 하는 태도와 정신이 결 정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할 때 아까워합니다. 또 하나님이 하라고 했다 해서 의무감에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헌금을 하되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쁘고 즐겁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헌금과 관계해서 willingly(자진해서, 기꺼이)라는 단어 가 여러 번 나옵니다(출애굽기 35:5,21,22,29). 물론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합니다. 얼마를 해야 하는가 제가 미국에서 목회 생활을 하면서 보니까, 어떤 분은 십 년 전 에 5불을 했는데 십 년 후에도 5불을 합니다. 그동안에 수입이 많이 늘었는데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의 값이 올라가 도 헌금하는 액수는 그대로인 것을 보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상식 이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교회 회계부에 계신 분들이 회계부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험에 들기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십 년 전에 5불 헌금한 사람이 십 년 후에도 5불을 하는데, 그 가 집사 직분을 맡고 있으며 제직회에서 제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회계부에서 일하던 사람이 말하기를, 자 신이 회계부원 안 할 때에는 시험에 안 들었는데, 교회에서 두드 러지게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인색하게 헌금하는 것을 보고는 시험에 들어서 회계부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 가 헌금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니까, 집사님은 집사님이 헌금할 것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의 것까지 간섭할 필요는 없지만, 시험에 빠지게 할 소지가 있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얼마를 헌금해야 하는가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 다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어떤 사람은 비둘기를 바치 고, 어떤 사람은 양을 바치고, 어떤 사람은 염소를 바치고, 어떤 사람은 황소를 바칩니다. 헌금도 자기 능력에 따라서 바치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만약에 염소를 바칠 수 있는 능력을 받 은 사람이 양을 바치면 그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입니다. 황소를 바칠 수 있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 비둘기를 바치는 것 역시 적합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혜대로 헌금하게 되어 있습니다. 참으 로 공평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지만 나 자신이 압니다. 당신의 가정에 황소의 은혜를 주셨는지 염소 의 은혜를 주셨는지 양의 은혜를 주셨는지 비둘기의 은혜를 주셨는 지 당신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비둘기의 은혜를 주신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예물을 바칠 때 비둘기를 가져갔습니다. 제일 작 은 헌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둘기를 바칠 사람이 비둘기를 바칠 때 100% 은혜 받은 자로 여기십니다. 황소를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황소를 바칠 때에 그것을 온당하게 여기십니다. 헌금의 액수는 우리 모두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헌신의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판단해서 헌금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헌금에 대한 성경의 지침 성경에는 헌금에 대한 지침이 있습니까 물론 있습니다. 우리 수 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모델이 있습니다. 창세기 14장 20절에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이것은 4천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28장 22절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에서 10분의 1을 바치겠다고 벧엘에서 결정하고 약속한 내용이 나옵니다.
레위기 27장 30-33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십일조 에 대한 규례를 모세로부터 가르침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예수님 의 제자들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십일조를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으레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했습니다. 말라기 3장 8-10절에 보면, 십일조를 할 때에 하나님께서 어 떻게 축복을 해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고 말씀합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지 아닌지 시험해 보라고까 지 하셨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을 모델로 보여 주시면서 권고하셨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벧엘 교회 목회를 시작할 때 처음 믿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처음에는 십일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믿는 사람들은 신앙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십일조 이야기를 하면 금방 시험에 들기가 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 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제직들에게 이 야기하고 당회원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신앙의 성장과 헌금이 똑같 이 갑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을 때,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크게 회개한 적 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소한 십분의 일을 헌금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까지 하신 하나님의 크신 축복의 길이었는데, 저는 교인들이 혹시나 다치지 않을까 싶어서 그 이야기를 소극적으로 했던 것입니다. 교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크신 축복의 길을 교인들 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 교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나 안타깝고 양심에 가책이 되 었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교인들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축복하신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여러분을 생각해 준다고 그동안 말하지 않은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것은 율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의 모델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가운데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 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맨몸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입는 옷, 우리의 지식, 우리의 안경, 우리의 자동차, 우리의 가족, 우리의 건강, 어느 하나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 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은혜에 감사해서 선교사를 위해서 ,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수재당한 이웃을 위해서, 내 가진 것을 과감하게 내놓으면서 산다는 것은 신앙인의 정상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얼마를 바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결 정해야 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주일날 헌금 시간에 호주 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드리는 것은 적절한 신앙 생활의 표현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 가운데에서 십일조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에 대해서 논란이 있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그러나 누가 그 이야기를 꺼내든지, 십일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으면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을 도와서 당신의 가정에 헌금 생활이 정상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정상적인 헌금 생활을 하고 헌금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 를 생각하면 우리의 경제 생활이 정돈됩니다. 하나님 앞에 10분 의 1을 바침으로써 10분의 9를 가지고 가정 생활을 해야 하니 까 생각 없이 함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하는 사람들은 경제 생활에 계획성이 생기고 가정 생활에 질서가 잡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 가정에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십일조를 하는 가정은 절 대로 모자람이 없습니다. 내 욕심을 채우지 못하지만, 경제 생활 이 정돈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마음과 삶 속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으레 하는 것이므로 거기에 대한 논란은 없습니다. 헌금할 수 있는 기회만 오면 언제나 특권으로 생각하고 즐겁게 하십시오 . 헌금은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아니하고, 생각 없이 하지 아니하고, 율법적으로 하지 아니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되 성경에서 가르쳐 준 하나의 모델을 놓고 우리들 스스로가 헌금해야 합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 거운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헌금함으로써 하나님의 은혜가 당신의 가정에 넘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헌금하는 것을 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헌금이 결정됩니다.
(2) 고린도후서 9장 1-9절 신앙의 성장은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바치고 남을 위해서 주면 서 사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남에게 나누어 주며 살 때 우리가 만족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주는 삶의 결심 주면서 사는 삶, 바치면서 사는 삶, 남을 위해서 헌신하며 사는 삶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 속에 하나님 의 은혜를 깨닫고 이제부터는 나의 것을 주면서 살겠노라고 결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주는 삶의 결심을 할 수 있습니까
첫째로, 과거를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지난n 돌이켜보면 주면서, 드리면서, 바치면서 또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나누어 가지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s느 7절에 보면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 이 자랑하느뇨라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진 집 이나 물건들이나 생명이나 가족이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그 무엇이든 > 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올 때에는 맨 몸으로 왔습니다. 또 맨몸으로 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동안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경영하는지, 하나님께서 보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감사하기 때문에 줄 수 있습니다. 시편 116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편 기자도 3천 년 전의 사람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 가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 은덕을 어떻게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 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시편 기자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살아 온 우리의 인생은 너무도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 에게 주어진 생명,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번의 기회들은 내가 만 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그것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많 이 도와주셨습니까 때때로 우리가 병들었을 때 병을 낫게 해 주 시고,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에 보호해 주시고, 우리가 슬퍼할 때 위로해 주시고, 우리가 어디로 갈지 모를 때 인도해 주셨습니다. 또 우리들이 범죄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은 긍 휼과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를 너그럽게 구원해 주셨고 오늘까지 인 도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 어떻게 주님을 위해서 살까, 어 떻게 하면 내 이웃을 도울까 생각하게 됩니다. 남을 도울 기회가 있을 때 서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자원해서 도우려는 자세를 가지고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미래를 내다보아야 합니다. 넉넉히 바치는 자, 늘 남을 위해서 주면서 사는 자의 삶은 어떻 습니까 주면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가 준 것 의 몇 배를 주시기 때문에 절대로 모자라는 법이 없습니다. 자기 의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들은 남을 위하여 내놓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은혜가 풍족한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 에 보화를 쌓아 놓는 것이 이 땅에 쌓아 놓는 것보다 휠씬 더 확실하다고 마태복음 6장 19,20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땅에 모아 놓은 보화는 썩을 수도 있고, 도적맞을 수 도 있고, 좀먹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인데, 어느 한국 교포가 미국에서 잔뜩 돈을 벌 었습니다. 그 돈을 은행에 두면 이자가 늘어서 세금을 물어야 하 니까 은행에 두지 않고 대신 자기 집 오븐 속에 쌓아 놓았습니다 .
그런데 어느 날 그 오븐이 고장이 났습니다. 오븐을 고치고 나서 시험한다고 불을 켰을 때, 그 속에 넣어 둔 그 많은 돈을 그만 다 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이야기가 소문이 되어서 신문에까지 기사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 쌓아 놓은 것은 금방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바친 것들과 남을 위해서 준 것은 영원한 기금이 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 들이 하나님께 헌금과 헌물을 드린 내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 가 무엇을 드렸는지 자세히 적혀 있는 것을 보고서
3,500년 전의 일을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남을 위해서 바친 시간과 하나님을 위하여 바친 노동과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의 책에 일일이 적어 놓고 영원히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바 친 것은 하늘에 다 쌓이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보화가 더 확실 합니다.
셋째로, 밖을 향해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즉,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기 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남에게 주면서 산다는 것은 이웃에 대한 관 심의 표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를 주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주는 것과는 비례합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주지 않는 사람은 정말 사랑하고 있는 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 서로서로 주고 사는 것은 이웃에 대한 큰 관심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우리 교회가 남을 위하여 얼마나 주고 있나를 조 사해 보았습니다. 전부 종합해 보니, 이 교회는 남을 위해서 교회 예산의 20%를 주고 있었습니다. 20%가 많은 것은 아니지 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44개의 교회와 11인의 선 교사와 20여 개의 기독교 기관들, 그리고 소년 소녀 가장들이 이끄는 80가정을 돕는 것을 보고 참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 남을 위해서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나 자신을 한번 돌이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치고 남을 위하여 주고자 하는 태도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삶에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평화가 있고 사랑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 만족감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살기를 원합니까 마음에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과 기쁨이 있는 그리고 삶의 의미와 만 족감이 있는 삶을 살기 원치 않습니까 욕심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자기만 위하여 살고,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탐심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재미가 없습니다. 늘 짜증만 나고 화만 납니다. 또 경쟁심 때문에 즐겁지 못한 삶을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 주신 은혜를 깨닫고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육체적인 것이든지 남을 위해서 줄 줄 아는 사람들의 삶은, 모든 인간이 원하는 평화와 사랑과 기쁨과 삶의 의미와 만족감이 있는 삶입니다. 이러 한 실례(實例)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탐심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물질에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지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잠언 15장 2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利)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사느니라. 예수께서는 인생의 행복이 물질적 풍요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물질과 재주와 시간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쓰면서 살 수 있는 삶, 이것이 우리들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삶입니다 . 바치는 사람이 받는 혜택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치는 사람에게는 혜택이 있습니다. 이것은 추 수의 법칙입니다. 씨를 많이 심으면 많이 걷게 되어 있습니다. 밭에다가 씨를 조금 심어 놓고 많이 거두려고 하는 것은 도적의 심보입니다. 심은 그대로 걷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법칙입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도움의 손길을 뻗치고, 기회 있 을 때마다 기도해 주고, 기회 있을 때마다 내 몸과 내 재능과 내 손을 내어 주는 삶은 추수의 법칙에 의하여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조금 심는 자는 조금 거둔다는 것은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나타난 분명한 진리요 변치 않는 진리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즐겨 내십시오. 그럴 때 당신에게 다음과 같은 축복과 혜택이 있습니다.
첫째로, 기쁨의 영을 받습니다. 바칠 줄 알고 줄 줄 아는 사람은 삶을 기쁘게 살 줄 압니다(고 후 9:1). 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당신이 가진 것을 사용해 보 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기쁨의 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받는 사람의 필요와 채워지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주었기 때문에 받는 사람의 필요가 채워질 수 있습니다. 궁핍했고 모자랐고 힘들었는데, 바로 그때에 우리가 물질을 주었든 지 위로를 주었든지 사랑을 주었든지 육체적 도움을 주었든지 해서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채워 주는 결과가 되었으니까 얼마 나 좋은 일입니까 그뿐입니까 받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 가 넘치게 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세계에 나가 있는 선교사 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 중에 우리들이 보낸 헌금을 통해서 날마다 필요한 것들이 메꿔질 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한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나를 위해서 이 물질을 보내 주어 서 가정 생활의 필요가 채워지고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게 되었 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작년에 수해가 났을 때에도 어려움에 처해 있는 여러 시골 교회 사람들에게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오는 도움의 손길을 생각할 때 그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겠습니까
셋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 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 가면서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믿는 사람들 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의식하게 될 때, 그것은 하나님 께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 나 와 똑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도 신앙 안에서 아름답고 선하게 사는 친구를 볼 때 격려가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것이 얼 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그 자리가 비면 반드 시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 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 남에게 자꾸 주면 하나님께서도 자꾸 주십니다. 그러니까 우리 가 가지고 있는 것은 축나지 않습니다. 주면 또 오고 주면 또 오고 합니다. 자꾸 주어야 또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꿩 먹고 알 먹기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는 사람 좋고, 받는 사람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통로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이 주시고 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많이 주어서, 주는 기쁨과 받는 감사와 하나님의 영광이 번갈아서 계속 나타날 때 얼마나 사는 재미가 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주고 내놓은 것에 절대로 빚지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신 것은, 심는 대로 거두 게 하시고 주면서 사는 기쁨을 누리게 하시며 받는 사람에게 필요 한 것을 채워 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많이 나타나는 은 혜를 즐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많은 것을 주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성경에 가끔 나타납니다. 뽕나 무에 올라갔던 삭개오가 그렇습니다. 삭개오가 올라갔던 뽕나무를 제가 여리고에 가서 보았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삭개오는 아주 고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남의 이(利)를 탐내고 세금을 부정 하게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그날부터 회개하고, 다 른 사람에게 토색(討索)한 것이 있으면 네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당신도 과거에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번 것이 있으면 그 돈 을 하나님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쓰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제가 옛날에 다니던 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했었는데 그 것을 안 했거든요. 어떻게 하죠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헌금하겠다고 약속한 교회에 지금이라도 주든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 그것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약속한 것은 아예 갚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까 마리아의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예수님이 얼마 안 있으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가만히 쳐다보니 까 예수님의 가슴에 슬픔이 있었습니다. 애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 어딘가 무거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옆에서 지켜보던 마리아는 살짝 들어가서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 에 붓고 그분께 마음의 즐거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리아의 삶은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피고 그것을 채워 주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비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바쳤을 때, 예수 께서는 두고두고 그 여자를 칭찬하셨습니다. 부(富)하신 예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부 자가 되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히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렇게 살고자 하는 결단을 언젠가는 내려야 합니다. 언제나 너그럽게 주면서 살 때, 당신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충 분한 은혜가 있기를 그리고 그 은혜로 인한 기쁨과 평화와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제 목:바로 드리는 사람들 자료원: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예장통합 구 절:고후 8:1-8 지방 중심도시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있는데 어느날 그 도시의 천주교 신 부가 찾아 왔답니다. 찾아온 목적은 신도드을 모아 놓을테니 몇시간 집회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천주교에서 개신교 목사를 청해다가 집회를 할 려고 하는가, 그리고 무슨 얘기를 해달라는 것인가라고 물언더니 이미 로마 바티칸의 허락까지 받았다며 개신교의 십일조하는 법을 얘기해 달라고 하더 라는 것입니다. 찾아온 신부의 얘기는 도대체 천주교 교인들이라는게 헌금할 줄도 모르고 바티칸에서 돈오기나 기다리고 있어서 답답하고 속상하다며 몇시간 개신교인들 헌금하는 얘기를 해달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쾌히 승락하고 가서 몇 시간 십올조 얘기를 했더니 반응이 크 게 일더라고 했습니다. 천주교보다는 개신교가 훨씬 더 헌금생활에 익숙하 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세계교회 가운데 한국 교인들이 가장 올바른 헌금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빈다. 그러나 보다 더 헌금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드린다면 받으시는 하나님 께는 더 큰 영광이 될 것이고 드리는 우리에게도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1-8과 고린도후서 8:1-8과 고린도후서 9:1-7은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에 주신 헌금에 관한 교훈입니다. 몇가지 기본적인 원리를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6:3을 보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8:1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라고 했고, 8:4을 보면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8:6을 보면 "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상에서 말하고 있는 "은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행위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그 행위자체를 은혜로 해석한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를 [은혜]로 해석한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며 감사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88년 10월 5일 아침 계약 회사원이었던 전용기 씨가 아침 조깅을 하러 나갔다가 차에 치어 두개골 골절 등 14가지 합병증세로 전주예수병원에 입 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쫓아간 부인 성정식 씨의 놀 라움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 당시 네살된 딸과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 을 대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생후 45일밖에 안된 딸을 대 전의 친정집에 맡기고 월 5만원의 사글세 방을 병원 앞에 얻어 남편의 간병 을 시작했습니다. 남편 전용기씨는 식물인간이었습니다. 하루 수십 차례씩 가래를 빼내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키는 등 남편 수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고통의 날들은 하루 이틀이 아니었습니다. 5년 11개월이었습니다. 주위에선 포기하라고 했고 시댁식구들도 발길이 뜸해지는가 하면 의사들도 합병증세 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며 살아난다고 해도 식물인간을 벗어 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가까운 사람들은 새출발을 하라 고 권위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급성폐렴 등 합병으로 수많은 고비를 넘겼는가 하면 성정식씨도 4 개월만에 쓰러져 입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성씨는 평소 배워둔 미용기술로 환자들의 머리를 깍아주고 한달에 4-5만원 을 받아 남편의 기저귀를 사거나 약값에 보탰습니다. 본래 성정식씨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믿는 집으로 출가를 해왔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고로 쓰러지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날마다 병원교회에 나가 남편 살려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이라도 좋으니 제발 살아만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4년 11개월간의 길고 긴 식물인간의 잠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저는 이 사연을 신문에서 읽었고, 예수병원 관계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들었 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한편의 인간드라마입니다. 부부가 서로 얼굴을 마 주 바라보며 주고 받는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여보 고맙소","여보 깨어나줘서 고마워요내 일생 당신 은혜 잊지 않을꼐나 당신 사랑한다구저두요" 부부의 대화를 엿들은 건 아니지만 대충 그런 대화가 오고 갈 것입니다. 은혜는 순수한 것입니다. 은혜는 조건도 없습니다. 다만 은혜는 감동과 감 격과 감사가 넘칠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감동하고 감격한다면 드린다는 행위가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사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둘째 드릴 수 있고, 드릴 것이 있다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억천만금을 가지고 있어도 죽어버리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드릴 수 있고 또 드릴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드리는 것입니다. 제아 무리 드리고 싶어도 가진 것이 없다면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 릴 것이 있다는 것은 은혜인 것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면 그대로 무릎꿇고 즉시 그 자리에서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오늘도 깨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으로 보게 해주셨군요. 귀로 듣게 해주셨군요 입으로 말하게 해주셨군요. 손발이 움직이게 해주셨군요 또 다시 오늘 하루를 주셨 군요 감사합니다." 이 기도를 드리고 일어서곤 합니다. 여러분, 억천만원을 벌지 못했더라도, 성공출세를 내 욕심대로 못했더라면 살아있다는 것과 내 것이라고 몫지은 것이 없다는 것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라야 은혜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위장병을 치료하는 내과 전문의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평소 식도락을 즐기 던 두 남자환자를 치료하고 있습니다. 위장병 환자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음식을 조심해야하고 특히 의사의 지시를 따라야 하빈다. A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의 말에 순응하고 치료되면 마음놓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기 절제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치료가 급속도로 빠릅니다.
그런데 B라는 성을 가진 환자는 의사 말을 듣지 않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먹는 재미로 사는데 왜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느냐, 먹으면서 치료를 하는 법은 없느냐, 먹고 치료하면 되지 않 느냐며 항의하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 환자는 A 환자에 비해 80% 치료가 지연되고 있다는것입니다. 먹게되면 먹게 되서 감사하고, 먹지 못하면 이 다음에 잘 먹게 될 줄로 믿 고 감사하는 사람이 은혜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그가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것, 드릴 수 있게 된 것, 드릴 것이 있다는 것, 오늘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은혜로 믿고 감사합시다.
2. 자신을 먼저 드려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8:5을 보면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물질로 헌금을 하기 전에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들어 설명해 보게습니다. 가령 남편이 딴집 살림을 차리고 딴 살림을 하면서 그것을 미봉하기 위해 자기 부인에게 좋은 차를 사주고 좋은 옷을 사주고 용돈을 분에 넘치도록 준다고 가정해 좁시다. 부인은 남편이야 어디를 싸돌든 돈주고, 차사주고,옷사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수 있겠습 니까 돈이 큰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도 마찬 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내게 달라"고 하 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10여년 전 저는 어느 사진전에 갔다가 별난 작품을 구경했습니다. 사진모 델은 주로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거의가 얼굴이 없었습니다. 여자의 각선미, 히프 가슴, 팔목, 등 그런 부분만을 클로즈업시켜 찍은 사진들이었 습니다. 얼굴없는 지체들의 전시회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돈만 드린다면 그것은 얼굴없는 가슴처 럼 흉물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수재민 구호금을 내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나 를 먼저 드릴 때 하나님은 내가 드리는 물질과 시간과 재주를 받으시는 것 입니다.
3. 심는대로 거둡니다. 고린도후서 9:6을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농사법칙이고 인생 법칙입니다. 바울은 그 법칙을 하나님께 드리는 법칙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쿠바의 산티아고 마을에 [마리아]라는 여선생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말을 타고 학교에 출퇴근을 했습니다. 어떤 날 남루한 옷차림에 맨발로 학 교를 향해 뛰어가는 소년을 보게 되었습니다. 차림새가 꽤재재한 거라든지 맨발로 뛰는 걸로 보아 가난한 집 아이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소년이 누구인가를 알아 보았더니 자기학교 학생이었고, 검은 눈이 초 롱초롱 빛나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였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마리아 선생 은 구두 한 켤레를 사서 그 학생에게 주었고, 정성껏 도와 주었습니다. 그 리고 그 다음해 그는 그 학교를 떠났습니다. 그후 쿠바의 지도자로 카스트 로가 권좌에 오르게 되었고, 마리아 선생은 한 신문에 공산주의를 비방하는 글을 썼다는 죄목으로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그 선생은 곧 바로 정보과 정에게 넘겨졌습니다. 마리아 선생을 본 정보과장이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당신은 마리아 선 생이 아니오 저를 모르시겠습니까 옛날 구두 사준 학생이 바로 접니다." 라며 덥썩 손을 잡았습니다. 구두 한 켤레와 작은 정성이 훗날 위기를 모면 케 해주었던 것입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덕이라는 씨앗을 뿌리면 덕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사랑이라는 종자를 뿌 리면 사랑이라는 열매를 거둡니다. 그럼으로 좋은 일은 많이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악을 뿌리고,부덕을 뿌리고,죄를 뿌리면 그것들을 많이 거 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일은 많이 뿌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어떤 날 아브라함 집에 낯선 손님 셋이 찾아왔습니다. 너그럽고 후덕한 아브라함 부부는 정성을 다해 송아지를 잡고 요리를 만들 어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그날 아브라함 은 그들을 대접하고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리고 그날의 약속대로 일년 후에 이삭을 낳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은 공짜가 없습니다. 많이 드리면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면서 늘 해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더 많 이 못드려 죄송합니다","주님 정성껏 드리겠습니다","주님 더 많이 드리도 록 복 내려 주옵소서"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알고 드립시다. 은혜를 감사하며 드립시다. 나 자신을 드립시다. 풍성하게, 넉넉하게, 많이 드십시다. 심는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드리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드리는 사람들의 헌신과 헌물과 감사를 받으실 것입니다. 얼마나 드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거지 도 거지취급하면 화내고 덤빕니다. 하나님을 누구로 알고 믿고 드리고 있습니까 바로 드리는 사람들에게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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