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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을 맞는 태도 (고후6:7)

본문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다 고난의 삶을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주 예수를 믿든지 아니 믿든지 말입니다. 요16:33절에서는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다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였습니다. 주님은 이 말씀 속에서 주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22절에서는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당하여야 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바다에 나타나는 해적선들은 본국을 출발하여 물건을 실으러 가는 빈 배는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타국에 가서 물건을 잔뜩 싣고오는 배를 공격하여 모든 보물을 다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그리스도라는 보화를 소유한 자들이기에 해적과 같은 사탄의 공격을 더 받게 되어 세상 사람들 보다도 환란을 더 많이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좁은 길이니, 당연히 그 길이 좁고 협착하므로 고난이 따르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예수님의 삶도 고난과 환란이 많은 삶이었습니다. 40일 금식 후 고통 속에서 마귀에게 세 번씩이나 시험을 당하였습니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또한 장로들이 시시각각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여 함정에 빠뜨리고자 하였습니다. 때로는 고향 사람들이 낭떠러지에 예수님을 밀어 떨어뜨리려고도 하였습니다. 5,000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서 굶주리고 있어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들을 먹이지 아니하면 안되게 될 난감한 처지를 당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 광야에서 그냥 돌려보내게 되면 그들은 길에서 기진하여 쓰러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예수님은 그들을 먹여야 되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지요. 또한 예수님은 침 뱉음을 당하고 귀신이 들렸다고 조롱 받기도 하셨고, 결국은 오른뺨과 채찍을 맞으시며 십자가에서 죽게 되기까지 많은 환란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도 이러한 고통을 당하셨다면, 하물며 우리들은 어떠하겠느냔 말입니다. 우리가 밥과 고기, 채소 등을 먹음으로 몸에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 좋은 밥과 고기, 채소가 체하게 된다면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환란과 시험을 잘 소화시키면 결국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는 것이지만, 잘 소화시키지 못하게 되면 큰 고통과 괴로움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형통한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듯이 예수님의 삶에 환란이 없어서 형통한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환란이 있었지만 그러한 것을 잘 소화시켜 이기고, 다스리고, 정복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형통한 삶을 주시는데, 이 형통한 삶이란 것이 결코 아무런 환란이나 핍박이 없는 삶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살펴 보면서 성도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인데, 이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온전케 하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종이를 제작하는 과정을 보면 넝마들을 잘게 썹니다. 그리고 그것을 펄프로 만드는 것이지요. 그리고 눈처럼 희게 표백을 합니다. 그런 후 서로 견고하게 연결 시키기 이해 고르게 흔들어 배합을 시키는 것입니다. 잘 섞이도록 세차게 흔들어서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뜨거운 실린더로 다림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과정을 거쳐 하나의 종이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온전한 종이의 모습이 될 때까지 많은 과정과 연단이 필요한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강가에 조약돌들이 매끈매끈하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흠도 없는 고운 돌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세월동안 물에 씻겨진 결과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온전케”하시기 위하여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연단하시고, 환란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26편 2절에서는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 하소서” 하였던 것입니다. 환란을 통하여 자신이 단련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67절에서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였던 것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온전해진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독수리에 관한 이야기가 신명기 32장 11절에 나와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하여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뒤에 업는 것 같이” 이 말씀은 독수리가 자신의 새끼를 새의 왕 독수리로 온전케 만들기 위해 어떻게 양육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높은 절벽에 짐을 짓는데 가시가 달린 아카시아 나무로 집을 짓고 토끼 가죽으로 덮은 후 자신의 부드러운 앞가슴 털로 깐 다음 알을 낳아 깨어서 새끼를 기르고, 어느정도 크면 비행 연습을 시키는데, 새끼들이 보금자리를 잘 털고 일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 떨러뜨려 비행연습을 철저히 시킨다는 것입니다. 독수리도 새끼들이 평안한 곳에 있기를 왜 싫어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면 평생 나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백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백로들이 새끼를 키울 때 어느정도 자라나면 며칠동안 밥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기름기가 빠져 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이 백로를 주어다가 집에서 기르는데, 잘 먹이기만 하니까 살만찌고 한 번도 날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밥을 주지 않는 동안은 어미새도 안타깝고 본인도 괴롭겠지만 그래야 진정한 백로가 되어서 푸른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를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때때로 연단하시고 환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으십시오.
둘째는 깊은 신앙을 주고자 함입니다. 미국에 가면 5천년 묵은 나무가 있는데, 학자들이 조사해보니 그 땅은 결코 좋은 땅이 아니더랍니다. 그러나 이 나무는 그 좋지 않은 환경을 이기기 위해 뿌리를 깊이 깊이 내렸기에 건강한 나무가 되어 5천년을 살게 된 것입니다. 환란을 통하여 우리는 깊은 신앙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은 인간을 지혜롭게 만든다. 지혜는 인생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통 속에서 깊어질 수 있는 사람들의 특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시인 괴테는 말하기를 “자기의 빵을 눈물 흘리며 먹어보지 않은 사람, 근심으로 가득한 밤에 자기의 잠자리에서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하늘의 힘을 모른다.” 하였는데, 환란과 역경이 아니고는 하나님께 두 손을 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깊은 신앙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자신의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괴로워 했지만, 그 가시로 인하여 자신의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강한 힘이 나타나는 진리를 체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육체적 질병인 고통을 통하여 일평생 겸손하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깊은 신앙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를 깨끗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8장 16절에서는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였는데, 시험을 통하여 낮추시고 정결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해 줍니다. 사실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살펴보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듯이 핍박받고 환란의 때에는 순수하고 깨끗했지만 국교가 되고 지금처럼 아무런 핍박도 없는 시대에서는 타락하게 되고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험과 환란은 우리의 불순물을 걸러내고 정결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고난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오늘 제목의 말씀과 같이 환란을 맞는 태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환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이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란의 의미를 생각해 본대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주어진 환란과 시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시험을 믿음으로 받도록 합시다. 어떠한 연단이건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믿음으로 받는다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참새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앉고 서는 것을 주장하시고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신 분이 주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므로 잠언 24장 16절에서는 “대저 나의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들은 일곱 번 넘어지는 환란 가운데서도 주님의 주권을 믿고 믿음으로 받아들여 여덟 번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의인이 될 수 없고, 믿음없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 자신의 수십년 연단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형제의 배신과 억울한 누명,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는데, 그가 형제들에게 당신들과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나를 이 땅에 먼저 보낸 것이니 나를 노예로 팔아 넘긴 것으로 괴로워 말라고 했습니다. 만약 요셉이 그 자신의 연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골육상잔의 결과가 주어졌을 것입니다.
둘째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서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을 주고 감당치 못할 시험을 하지 않으며,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길을 내사 능히 감당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대로 고난의 의미를 잘 이해 했다면 이제 감사하는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설령 죄의 겨로가라 할지라도 주님이 나를 깨우치시고, 깨끗게 하기 위함이나 감사할 일 아닙니까 또한 나를 온전케 하시고 깊은 신앙으로 끌어 올리기 위함이니 감사할 뿐인 것입니다.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텔로서 홀리데이 인 (Holiday inn )이라는 호텔이 있습니다. 이 호텔은 전세계적으로 체인이 되어 있기도 합니다만, 그 호텔의 회장이 40세에 재제공장에서 해고를 당하여 실직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조그만 집을 담보 잡혀 사업을 시작했는데, 크게 성공하여 억만장자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호텔업계에 손을 대어 전세계적인 호텔 경영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거부가 된 다음, 재제소 사장을 만날때마다 감사한다고 합니다. “그 때 나를 해고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고 말이지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주님께 환란날에 감사 드리도록 합시다. 욥은 큰 환란을 통과 한 다음에 “전에는 내가 주를 귀로만 들었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보나이다” 하였던 것입니다. 더욱 확실한 신앙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환란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신 시50:15절 말씀과 같이 환란의 때에는 당연히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하였지 않습니까 야곱의 삶을 살펴보면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20여년 동안 참으로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라헬도 얻었고, 자식도 많이 낳았습니다. 또한 많은 가죽도 소유하게 되었는데, 외삼촌 라반과의 게임에서 그는 늘 승리 하였던 것입니다. 검은 양이 나와라 하면 검은 양이 나오고, 흰 양이 나오라 하면 흰 양이 나왔고, 아롱진 양이 나오라 하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형 에서의 칼날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일생일대 최고의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힘으로 능으로 이길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그러한때 두 손을 높이 들고 밤이 맟도록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도로 인하여 그는 마침내 “야곱”에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를 그 환란에서 건진 것은 기도였습니다. 지금까지 노력하여서 얻은 자식이나, 아내나, 재물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기도하는 밤을 통하여 축복을 받고 승리 하였습니다. 이제 환란의 때에 기도하는 자세를 꼭 보임으로 승리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끝. ♡♡♡♡♡♡♡♡♡♡♡♡ 찾아오시는 길 ◀ 가좌역 수 색 → ←연세대 모래내천 모래내 시 장 은좌 극장 좌원상가2층 섬김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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