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별된 신자의 삶 (고후6:11-7:1)
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장차 여호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살게될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된 신자들은 이 땅에서 살면 서 부터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다운 구석이 전혀 없었던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길들이며 훈련받는 신앙의 훈련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무었을 더 취하고 고치 며 살아야 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습니다.
1.신자는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11-13절). 고린도 교회 안에는 거짓교사들의 농간에 의해 편견과 갈등과 시기심이 있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에 대하여 나쁜 편견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 바울 자신이 항상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듯이 고린도 교인들도 마음을 넓히도록 당부 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성경도 중요하고, 기도의 능력도 소중하며, 언변의 재간도 필 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넓은 마음 을 가지는 것은 성도가 지녀야 할 성품중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1)넓은 자아를 가져야 합니다. 넓은 마음을 가질려면 우선, 편협한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기독교는 파당이나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자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의 큰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 지기를 소망하며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기계에서 만든 제품처럼 같은 성격, 동 일한 특성으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개성을 부여하셨으며, 다른 특성을 지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개성이 천차만별이고, 그 주장하는 바도 너무나 다르고 많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것이 갈등과 시기와 편견 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개인간의 다툼이 되고, 지역의 감정이 되며, 사회의 파당으로, 나아가 국가 간의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신자들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엡1:10절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시말해, 신자들은 각기 개성이 다르고 성 장 배경이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하고 일치해야 하는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 끼리만 만나고 상종하는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관이나, 어떤 편견이나 아집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이 온전한 지체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자기의 주장과 자기 생각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 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으로 일치될 때에 이루어 집니다.
둘째로, 특히 신자는 인간적인 독선을 버려야 합니다. 독선 때문에 가장 많이 피해를 본 자들은 바로 스스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간주하였 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야 하는 신분임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의 뜻은 뒷전이고, 그저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 받았 다는 사실에만 집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 신 목적을 이루어 드릴려는 정성과 순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선택 되 었다는 사실을 하나 만을 유대교라는 커다란 가마 솥에 넣고서는 두고두고 국물을 울궈 내는데 온 심혈을 기울였던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 능히 아브라함의 자 손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마3:9). 이 독선은 사람으로 객관성을 잃게 하고 자기가 아는 것만이 최고요, 자 신의 견해와 생각만이 절대 옳다고 우기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 독선적인 생각은 의인을 정죄하기도 하고,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파괴시키는 원흉입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의 뚜렸한 진리와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 독선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잘못 해석하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와 오늘 나와 우리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심 정이 무었인가에 민감하고 깨어있는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면, 무서운 독선의 함정에 희생 당하고 말것입니다.
2)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해는 이웃을 받아 들이고 동정하는 자세입니다. 남의 과오를 탓하고 정죄하기 전에 그 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가 하는 것을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피와 땀으로 기도하는 와중에서도 육신을 피곤을 이기지 못 하여 졸고 자고 있는 제자들을 질책은 하셨지만 비난은 하지 않았습니다.(마26:36-46) 이는 제자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넓은 마음이 있었 기 때문입니다. 또한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용서와 화해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화해의 제물이 되셨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한,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 이 되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화해 시키셨듯이 우리도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넓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삶입니다.
2.신자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14-7:1) 성별된 생활이란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라 고 14절에서 말합니다. 멍에란 수레를 끌기 위해 말이나 소의 목에 얹는 기구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연합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목적을 가져야 할 신자가 불신자들이 즐겨 가지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정욕적인 목적을 같이 연합하여 가지지 말 라는 뜻입니다. 물론, 불신자들과 왕래하며 교제하는 것까지 끊으라는 뜻 은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꺼리낌 없이 행하는 음행, 탐욕, 우상숭배 등을 하지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말라는 이같은 일을 좇다가는 비참 함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신자가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이 '의'이며, 그것을 어기는 것이 '불법'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의롭게 여김을 받은 자들이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래서 마7:13절에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래서 신자는 성별된 생활을 위해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같은 멍에를 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둘째,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빛된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의 인도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어두운 악한 영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빛된 성도들을 미워하는 이유 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벨리알은 사탄과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어찌 우상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가증스러움과 하나님의 노여움만 더할 뿐입니다.
<결론>
이렇게 구별된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내리십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위로가 있으며, 교제가 있으며,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을 유업으로 받게되는 영광에 들어 가는 것입니다. 성별된 삶을 살기가 어렵지만 그렇게 살기를 힘쓰므로 성별된 자들이 받는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신자는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11-13절). 고린도 교회 안에는 거짓교사들의 농간에 의해 편견과 갈등과 시기심이 있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에 대하여 나쁜 편견을 가진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 바울 자신이 항상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듯이 고린도 교인들도 마음을 넓히도록 당부 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성경도 중요하고, 기도의 능력도 소중하며, 언변의 재간도 필 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넓은 마음 을 가지는 것은 성도가 지녀야 할 성품중 가장 큰 덕목 중의 하나입니다.
1)넓은 자아를 가져야 합니다. 넓은 마음을 가질려면 우선, 편협한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기독교는 파당이나 지엽적인 문제에 집착하는 자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늘의 큰 뜻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 지기를 소망하며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기계에서 만든 제품처럼 같은 성격, 동 일한 특성으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개성을 부여하셨으며, 다른 특성을 지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개성이 천차만별이고, 그 주장하는 바도 너무나 다르고 많습니다. 어떤 때에는 이것이 갈등과 시기와 편견 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들이 개인간의 다툼이 되고, 지역의 감정이 되며, 사회의 파당으로, 나아가 국가 간의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는 신자들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엡1:10절에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다시말해, 신자들은 각기 개성이 다르고 성 장 배경이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하고 일치해야 하는 명령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 끼리만 만나고 상종하는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습관이나, 어떤 편견이나 아집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이 온전한 지체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자기의 주장과 자기 생각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 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으로 일치될 때에 이루어 집니다.
둘째로, 특히 신자는 인간적인 독선을 버려야 합니다. 독선 때문에 가장 많이 피해를 본 자들은 바로 스스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간주하였 던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야 하는 신분임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의 뜻은 뒷전이고, 그저 자신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선택 받았 다는 사실에만 집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작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 신 목적을 이루어 드릴려는 정성과 순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선택 되 었다는 사실을 하나 만을 유대교라는 커다란 가마 솥에 넣고서는 두고두고 국물을 울궈 내는데 온 심혈을 기울였던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 능히 아브라함의 자 손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마3:9). 이 독선은 사람으로 객관성을 잃게 하고 자기가 아는 것만이 최고요, 자 신의 견해와 생각만이 절대 옳다고 우기며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은 전혀 무가치한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이 독선적인 생각은 의인을 정죄하기도 하고, 교회의 평화와 질서를 파괴시키는 원흉입니다. 물론 우리가 복음의 뚜렸한 진리와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 독선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잘못 해석하는데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와 오늘 나와 우리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심 정이 무었인가에 민감하고 깨어있는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면, 무서운 독선의 함정에 희생 당하고 말것입니다.
2)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해는 이웃을 받아 들이고 동정하는 자세입니다. 남의 과오를 탓하고 정죄하기 전에 그 가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가 하는 것을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자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피와 땀으로 기도하는 와중에서도 육신을 피곤을 이기지 못 하여 졸고 자고 있는 제자들을 질책은 하셨지만 비난은 하지 않았습니다.(마26:36-46) 이는 제자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넓은 마음이 있었 기 때문입니다. 또한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용서와 화해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친히 화해의 제물이 되셨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한,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 이 되지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화해 시키셨듯이 우리도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넓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는 삶입니다.
2.신자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14-7:1) 성별된 생활이란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라 고 14절에서 말합니다. 멍에란 수레를 끌기 위해 말이나 소의 목에 얹는 기구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연합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목적을 가져야 할 신자가 불신자들이 즐겨 가지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이며 정욕적인 목적을 같이 연합하여 가지지 말 라는 뜻입니다. 물론, 불신자들과 왕래하며 교제하는 것까지 끊으라는 뜻 은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꺼리낌 없이 행하는 음행, 탐욕, 우상숭배 등을 하지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말라는 이같은 일을 좇다가는 비참 함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신자가 성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사는 것이 '의'이며, 그것을 어기는 것이 '불법'입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의롭게 여김을 받은 자들이므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래서 마7:13절에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래서 신자는 성별된 생활을 위해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같은 멍에를 져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둘째, 빛과 어두움이 사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빛된 그리스도를 만나서 그의 인도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어두운 악한 영의 인도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빛된 성도들을 미워하는 이유 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벨리알은 사탄과 적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일치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에 어찌 우상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가증스러움과 하나님의 노여움만 더할 뿐입니다.
<결론>
이렇게 구별된 삶을 사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은혜를 내리십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위로가 있으며, 교제가 있으며,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을 유업으로 받게되는 영광에 들어 가는 것입니다. 성별된 삶을 살기가 어렵지만 그렇게 살기를 힘쓰므로 성별된 자들이 받는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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