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직분 감당의 두가지 자세 (고후5:14-21)
본문
성도가 복음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 주는 동기로서 본문 11-13절 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말하고 있으며, 오늘 본눔 14-21절 에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부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정 반대되는 개념의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한 마음 속에 공존해야 하는 마음 입니다. 시2: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며 떨며 즐거워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이같은 마음은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동시에 부모와 부모의 권위를 존 경하는 마음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경건치 못한 자이고, 죄인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 하셨던 것입니다(롬5:6-10).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 세상과(요3:16), 교회와(엡5:25), 개 개의 죄인들(갈2:20)을 사랑하심을 입증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무 었때문에 과연 돌아가셨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 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랑이 성도로 하여금 복음의 직분을 감당하게 만들며, 주님께서는 친히 이같은 화목과 사랑의 멧시지를 세상에 전할 것을 우리에게 부 탁하신 것입니다.
1.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의 직분을 감당하게 사역의 동기입니다(14-17절)
1)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던 것입니다(14절). 본문 14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하였 습니다. 이 구절에서 '모든 사람이 죽언 것이라'는 말씀의 시제를 주의해 서 보면 "모든 사람이 이미 죽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롬 6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 계이므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우리도 그 분 안에서 그 분과 함 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옛 사람이 우리를 더 이상 얽 어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갈2:20절 말씀의 정의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그의 아 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롬6:4절 말씀처럼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죽었을 뿐 아니라 또한 "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분과 함께 죽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분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롬7:4).
2)저가 죽으심은 우리를 살리려 함이었습니다(15절).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나타나는 적극적인 면이 바로 생명이요, 영생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기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나를 위 하여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를 위하여 살며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이 옛 피조물의 머리였다면, 마지막 아담되시는 그리스도는 새 피조물의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옛 피조물은 아담의 불 순종으로 말미암아 범죄 와 저주 가운데로 떨어졌지만,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롬5:12-2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와 관점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그 래야만 신자로서의 직분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자는;
첫째, 그리스도에 관하여 육체대로 이해하는 관점을 버리고(16절), 나의 구주로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한 성인이나 종교 지 도자로 보는 관점을 버려랴 합니다. 나와 생명의 관계로 맺어졌음을 알아 야 합니다.
둘째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야 합니다(16절). 모든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돌아가시게 만든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저 평범한 이웃이요, 친구요, 고객으로만 보는 관점에 서 이제는 목자를 필요로 하는 길 잃은 양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같은 관 점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들 중에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 다면 할 수 있는대로 그리스도에게로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새로운 지위를 얻은 새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교 육 정도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등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갈3: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 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그리스도의 부탁이 성도의 직분을 감당하게 하는 사역의 동기입니다. (18-21절) 본문 18-21절 사이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화목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며, 그로인해 교제가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단절을 다시 회복시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화목케 한다는 단어의 그 근본 의미는 "철저히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즉 인간을 외면하셨던 하나님께서 사랑을 가지시고 다시 그 얼굴을 인간을 향 해 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화목을 요청 할 필요는 없으십니다. 그와같은 일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위에서 이미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화 목을 요청해야 할 편은 오히려 죄악된 인간편입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종 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을 만나려는 미약한 인간의 시도들 입니다. 그와같은 인간의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입니다. 왜냐 면 오직 하나님과 화목할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단락에서 중요한 한 개념은 '죄의 전가'입니다. 21절에 "하나님 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하는 말씀에서 '대신하여 죄를 삼는다'는 것이 죄의 전가를 의미합니다. 이 말 은 은행 업무에서 '누구 앞으로 돈을 넣는다'는 뜻으로서 돈을 예금하면 누구의 구좌로 돈을 넣어 지게 된다고 할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우리의 모든 죄 값이 그 분께 전가, 즉 그 분 앞으로 입금되어 버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그 모든 죄를 범한 것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 죄의 허물을 묻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통장에 그리스도의 그 의를 입금시켜 주신 것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 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화목은 이 죄의 전가 됨에 기초합니다. 바울이 그의 친구 빌레몬에게 쓴 짧은 편지 속에 보면 빌레몬의 종인 오 네시모가 주인에게서 돈을 훔쳐 로마로 달아났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죄로 보자면 당시에 십자가 극형에 처형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회개하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의 친구 빌레몬에게 편지하여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고 그를 다시 받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은(20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화목 케 하는 일을 부탁 받은 자들입니다. 때가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그 때 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는 모두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찢어놓고 성도와 성도와의 관계 를 나누어 놓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이 화목케 하는 사역을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부탁하신 화목케 하는 사역과 직분을 잘 감 당하여 칭찬과 상급을 예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1.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의 직분을 감당하게 사역의 동기입니다(14-17절)
1)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던 것입니다(14절). 본문 14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컨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하였 습니다. 이 구절에서 '모든 사람이 죽언 것이라'는 말씀의 시제를 주의해 서 보면 "모든 사람이 이미 죽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서 롬 6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 계이므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에 우리도 그 분 안에서 그 분과 함 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옛 사람이 우리를 더 이상 얽 어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갈2:20절 말씀의 정의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그의 아 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롬6:4절 말씀처럼 우리가 그 분과 함께 죽었을 뿐 아니라 또한 "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 분과 함께 죽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분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힐 수 있는 것입니다(롬7:4).
2)저가 죽으심은 우리를 살리려 함이었습니다(15절).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나타나는 적극적인 면이 바로 생명이요, 영생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를 위하여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이기적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나를 위 하여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를 위하여 살며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에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 이 옛 피조물의 머리였다면, 마지막 아담되시는 그리스도는 새 피조물의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옛 피조물은 아담의 불 순종으로 말미암아 범죄 와 저주 가운데로 떨어졌지만,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와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롬5:12-21).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와 관점을 새롭게 가져야 합니다. 그 래야만 신자로서의 직분과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신자는;
첫째, 그리스도에 관하여 육체대로 이해하는 관점을 버리고(16절), 나의 구주로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한 성인이나 종교 지 도자로 보는 관점을 버려랴 합니다. 나와 생명의 관계로 맺어졌음을 알아 야 합니다.
둘째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야 합니다(16절). 모든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돌아가시게 만든 죄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저 평범한 이웃이요, 친구요, 고객으로만 보는 관점에 서 이제는 목자를 필요로 하는 길 잃은 양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같은 관 점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이해입니다.
그러므로 주위 사람들 중에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 다면 할 수 있는대로 그리스도에게로 그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새로운 지위를 얻은 새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교 육 정도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등으로 그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갈3: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 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그리스도의 부탁이 성도의 직분을 감당하게 하는 사역의 동기입니다. (18-21절) 본문 18-21절 사이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화목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반역함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며, 그로인해 교제가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 단절을 다시 회복시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화목케 한다는 단어의 그 근본 의미는 "철저히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즉 인간을 외면하셨던 하나님께서 사랑을 가지시고 다시 그 얼굴을 인간을 향 해 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화목을 요청 할 필요는 없으십니다. 그와같은 일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위에서 이미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화 목을 요청해야 할 편은 오히려 죄악된 인간편입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종 교들은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을 만나려는 미약한 인간의 시도들 입니다. 그와같은 인간의 시도는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시도입니다. 왜냐 면 오직 하나님과 화목할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단락에서 중요한 한 개념은 '죄의 전가'입니다. 21절에 "하나님 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하는 말씀에서 '대신하여 죄를 삼는다'는 것이 죄의 전가를 의미합니다. 이 말 은 은행 업무에서 '누구 앞으로 돈을 넣는다'는 뜻으로서 돈을 예금하면 누구의 구좌로 돈을 넣어 지게 된다고 할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우리의 모든 죄 값이 그 분께 전가, 즉 그 분 앞으로 입금되어 버린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그 모든 죄를 범한 것과 같은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더 이상 우리 자신에게 죄의 허물을 묻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통장에 그리스도의 그 의를 입금시켜 주신 것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처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 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렇게 화목은 이 죄의 전가 됨에 기초합니다. 바울이 그의 친구 빌레몬에게 쓴 짧은 편지 속에 보면 빌레몬의 종인 오 네시모가 주인에게서 돈을 훔쳐 로마로 달아났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죄로 보자면 당시에 십자가 극형에 처형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회개하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의 친구 빌레몬에게 편지하여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고 그를 다시 받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한 자들은(20절)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화목 케 하는 일을 부탁 받은 자들입니다. 때가되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향하여 전쟁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그 때 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있는 모두에게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찢어놓고 성도와 성도와의 관계 를 나누어 놓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이 화목케 하는 사역을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부탁하신 화목케 하는 사역과 직분을 잘 감 당하여 칭찬과 상급을 예비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