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자의 성공 (고후5:16-17)
본문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사실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은것을 보게 됩니다. 해마다 대학 입학시험에도 합격한 사람보다는 불합격자가 더 많고, 매년 직장의 취직 시험에도 합격자 보다는 불합격자가 더욱 많은 것을 볼때, 세상은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인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다 성공했는데 나만 실패한 것처럼,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또한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비관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자포자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가 다 실패자들이란 것입니다. 사실 따져보면, 어느누구인들 하나님 앞에 성공자라고 설 수 있겠습니까
1. 인생은 모두 하나님 앞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여도 모두가 자기 중심적이요 자기판단기준에서 서로의 불신과, 위선과,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실패자들입니다. 우리의 사회 구석구석에서 보여지는 범죄의 양상들, 그리고 세계 전체가 교정을 위해 추구하는 모든 노력들을 보면, 우리는 모두 범죄자들이요, 자연의 파괴자들이요, 그리고 부도덕한 실패자들입니다. 제아무리 선진 국가라는 사람들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점지않고, 신사 숙녀같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모두 부끄러운 것들이 차 있다는 말입니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 성공으로 위장된 내면의 세계에는 썩어 냄새나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하나같이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 다른 것 들에 그 이유를 돌립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손가락질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라고 우리가 상대방을 향하여 한 손가락으로 지적한다면, 그 순간 벌써 나를 향하여 세 손가락이 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반드시 실패를 통하여 성공의 길로 들어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도 있습니다.
2. 그러면 성경은 실패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 '지혜'를 모르고 '지식'으로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후자의 것은 잘 모르고 지냅니다. 지식은 열씸히 공부하고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지혜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오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를 먼저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특별히 물질만능의 시대에 들어와 더욱이 지식만 많으면 모두가 잘 될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학교에 들어 보내려고 과외까지 시켜가며 밤낮 가리지 않고 점수 따는법만 배우려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고 실패자가 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중,고등부 수련회에 참석해 보니, 많은 학생들이 학교 과외공부때문에 교회에 행사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그런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도, 그리고 하나님 없이는 못사는 줄 알면서도 아직도 '지혜'로 행하지 못하고 '지식'으로 행하는 경우들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자에게라야 '지혜'가 주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지식'밖에 모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라야 '지혜'를 갖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식으로만 사는 사람과, 지혜로 사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식은 사람을 결국 교만하게 만들지만, 지혜는 그 지식과 함께 겸손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 실패하게 하는 원인은 모두 교만함에서 부터 기인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인간적으로 실패의 낙인이 찍히는 사람들을 보면,모두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잘 했다고 하더라도 교만으로 인하여 쌓았던 공이 묻어지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와서, 일류직장에 들어가,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이 교만하다고 주변에서 평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인간적으로 실패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과 사람됨과는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인간이 먼저 되라'는 말을 하는것을 보면 바로 그런 뜻에서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주만물을 지으실 때, 질서 있게 만드셨습니다. 질서란 있을자리에 제각기 있도록 한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에는 아버지의 위치가 있고 어머니의 위치, 형과 동생의 위치가 각각 다 있다는 말입니다. 위 아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그것을 패륜아라고 합니다. 제멋대로 된 인간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지식은 많은데 위 아래도 모르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그들이 아무리 세계의 유명한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사람으로서 벌써 실패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자유를 그렇게 신장하고 구가하는 선진국가에 사람들에게 서 보면, 교수와 학생의 자리는 하늘과 땅과 같은 것을 실감했습니다. 교수들과 제아무리 토론을 벌리다가도 교수의 학문적 권위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자기 위치를 알고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오늘의 과학기술은 지식의 총화로 이루어진것 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과학의 결과들이 무엇입니까 서로를 불신과 힘으로 대결하려는 가공할 무기의 생산이 아닙니까. 위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지식은 결국 바벨탑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지식으로 실패하는 자들이 되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2) '영원'을 모르고 '순간'로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 보이는 세상은 잠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의세계는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들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말을 이해하려고도 아니 합니다. 그냥 미래란 기껏 7,80년의 이 세상의 삶 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주여! 주는 대대의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밤의 한 경점 같이 지나가는 인생들이라고 했습니다. 순식간에 그 수명이 다하는 짧은 인생들이란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절에는 나그네와 행인같은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란 어떤 존재들입니까 돌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인생의 삶을 장막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비유 하였습니다. 장막이란 요즘 텐트생활을 말합니다. 물가에 골짜기 하루밤 쳤다가 걷우어 가는 임시적인 거처를 말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천막생활과 같습니다. 엇그제 까지 우리들과 같이 이곳에서 살아서 예배를 들이던 사람들이 그 육신의 장막을 걷우어 갔기에 지금은 그들을 대할 수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또 어떤이는 인생을 잠시 멈추었다 가는 '간이역'에다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인생이란 짧은동안 이 세상에서 머물다가 영원한 세계로 되돌아가야 할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여기 70-80대의 부모님들에게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들이 살아온 세월이 꿈결과 같이 흘렀습니까 아니면 지겹도록 지루합니까 라고. 아마 대부분 꿈결과 같이 흘렀다고 말씀 하실 것입니다. 어느새 20대가 지나고, 30대를 지나, 40대가 되었는지.한창 일하다 보면 어느새 50대를 맞게 되고, 그 50대가 넘어가면 그야말로 가속이 붙어 오죽하면 '쏜 살' 같은 세월이라고 하였겠습니까 이렇게 인생은 시편기자의 말처럼 밤의 한 경점같이 지나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성공적인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육체의 쾌락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젊음의 사랑도 모두 한때 뿐입니다. 순간을 위하여 영원을 상실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너희중 에서와 같은 망녕된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영원히 누릴 장자의 기업을 한 그릇 파죽에 팔아넘긴 장본인입니다. 팥죽의 배부름은 그 순간 뿐입니다. 팥죽에서 품기는 냄새는 코를 유혹했지만, 그 쾌락은 순간적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순간적인 쾌락에 눈이 멀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 눈먼 사랑으로 영원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인생들, 전도서의 기자처럼, 모두 헛되고 헛된 것 뿐이요 바람을 잡는 것 같은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 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늘 심판하실 줄 알라'고 하였고, 그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고 여기에 '헛되다'는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읽으면서 반항적 생각을 품었던 기억이 납니다. 솔노몬 자기자신은 다 경험해 보구선 누구보고는 하지 말라고 하느냐 고.반항적 기분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잠간입니다.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하여 영원을 놓치는 미련한 인생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결론은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실패자들이지만, 그 실패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세상의 점수따기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하나님께 돌아서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식! 하나님을 제쳐놓은 쾌락! 모두가 순간적인요 바람을 잡는 것 같은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패자의 성공'!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의 복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1. 인생은 모두 하나님 앞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여도 모두가 자기 중심적이요 자기판단기준에서 서로의 불신과, 위선과, 방탕한 삶을 살아가는 실패자들입니다. 우리의 사회 구석구석에서 보여지는 범죄의 양상들, 그리고 세계 전체가 교정을 위해 추구하는 모든 노력들을 보면, 우리는 모두 범죄자들이요, 자연의 파괴자들이요, 그리고 부도덕한 실패자들입니다. 제아무리 선진 국가라는 사람들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 죄인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한사람도 없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점지않고, 신사 숙녀같이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모두 부끄러운 것들이 차 있다는 말입니다. 소위 성공한 사람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 성공으로 위장된 내면의 세계에는 썩어 냄새나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하나같이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있습니다. 모두가 나 아닌 다른 사람들, 다른 것 들에 그 이유를 돌립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손가락질 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라고 우리가 상대방을 향하여 한 손가락으로 지적한다면, 그 순간 벌써 나를 향하여 세 손가락이 향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실패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반드시 실패를 통하여 성공의 길로 들어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도 있습니다.
2. 그러면 성경은 실패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 '지혜'를 모르고 '지식'으로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후자의 것은 잘 모르고 지냅니다. 지식은 열씸히 공부하고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지혜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오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를 먼저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특별히 물질만능의 시대에 들어와 더욱이 지식만 많으면 모두가 잘 될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학교에 들어 보내려고 과외까지 시켜가며 밤낮 가리지 않고 점수 따는법만 배우려고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남에게 뒤지지 않고 실패자가 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중,고등부 수련회에 참석해 보니, 많은 학생들이 학교 과외공부때문에 교회에 행사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그런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도, 그리고 하나님 없이는 못사는 줄 알면서도 아직도 '지혜'로 행하지 못하고 '지식'으로 행하는 경우들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혜의 근본은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자에게라야 '지혜'가 주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오로지 '지식'밖에 모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라야 '지혜'를 갖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식으로만 사는 사람과, 지혜로 사는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식은 사람을 결국 교만하게 만들지만, 지혜는 그 지식과 함께 겸손하게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 실패하게 하는 원인은 모두 교만함에서 부터 기인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앞잡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인간적으로 실패의 낙인이 찍히는 사람들을 보면,모두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잘 했다고 하더라도 교만으로 인하여 쌓았던 공이 묻어지는 경우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아무리 일류대학을 나와서, 일류직장에 들어가,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사람이 교만하다고 주변에서 평을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인간적으로 실패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과 사람됨과는 구별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인간이 먼저 되라'는 말을 하는것을 보면 바로 그런 뜻에서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본래 우주만물을 지으실 때, 질서 있게 만드셨습니다. 질서란 있을자리에 제각기 있도록 한 것을 의미합니다. 가정에는 아버지의 위치가 있고 어머니의 위치, 형과 동생의 위치가 각각 다 있다는 말입니다. 위 아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을, 그것을 패륜아라고 합니다. 제멋대로 된 인간이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보면, 지식은 많은데 위 아래도 모르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비록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도, 그들이 아무리 세계의 유명한 대학을 나왔다고 해도, 사람으로서 벌써 실패자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자유를 그렇게 신장하고 구가하는 선진국가에 사람들에게 서 보면, 교수와 학생의 자리는 하늘과 땅과 같은 것을 실감했습니다. 교수들과 제아무리 토론을 벌리다가도 교수의 학문적 권위앞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먼저 자기 위치를 알고 위로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야 할 존재들입니다. 오늘의 과학기술은 지식의 총화로 이루어진것 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과학의 결과들이 무엇입니까 서로를 불신과 힘으로 대결하려는 가공할 무기의 생산이 아닙니까. 위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지식은 결국 바벨탑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지식으로 실패하는 자들이 되지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2) '영원'을 모르고 '순간'로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고 하였습니다. 보이는 세상은 잠간이지만, 보이지 않는 영의세계는 영원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들을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말을 이해하려고도 아니 합니다. 그냥 미래란 기껏 7,80년의 이 세상의 삶 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주여! 주는 대대의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밤의 한 경점 같이 지나가는 인생들이라고 했습니다. 순식간에 그 수명이 다하는 짧은 인생들이란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2:11절에는 나그네와 행인같은 존재들이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란 어떤 존재들입니까 돌아가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인생의 삶을 장막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비유 하였습니다. 장막이란 요즘 텐트생활을 말합니다. 물가에 골짜기 하루밤 쳤다가 걷우어 가는 임시적인 거처를 말합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천막생활과 같습니다. 엇그제 까지 우리들과 같이 이곳에서 살아서 예배를 들이던 사람들이 그 육신의 장막을 걷우어 갔기에 지금은 그들을 대할 수 없는것이 사실입니다. 또 어떤이는 인생을 잠시 멈추었다 가는 '간이역'에다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인생이란 짧은동안 이 세상에서 머물다가 영원한 세계로 되돌아가야 할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여기 70-80대의 부모님들에게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들이 살아온 세월이 꿈결과 같이 흘렀습니까 아니면 지겹도록 지루합니까 라고. 아마 대부분 꿈결과 같이 흘렀다고 말씀 하실 것입니다. 어느새 20대가 지나고, 30대를 지나, 40대가 되었는지.한창 일하다 보면 어느새 50대를 맞게 되고, 그 50대가 넘어가면 그야말로 가속이 붙어 오죽하면 '쏜 살' 같은 세월이라고 하였겠습니까 이렇게 인생은 시편기자의 말처럼 밤의 한 경점같이 지나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성공적인 삶이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입니까 육체의 쾌락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젊음의 사랑도 모두 한때 뿐입니다. 순간을 위하여 영원을 상실한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너희중 에서와 같은 망녕된 자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에서는 영원히 누릴 장자의 기업을 한 그릇 파죽에 팔아넘긴 장본인입니다. 팥죽의 배부름은 그 순간 뿐입니다. 팥죽에서 품기는 냄새는 코를 유혹했지만, 그 쾌락은 순간적이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순간적인 쾌락에 눈이 멀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술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 눈먼 사랑으로 영원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인생들, 전도서의 기자처럼, 모두 헛되고 헛된 것 뿐이요 바람을 잡는 것 같은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 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늘 심판하실 줄 알라'고 하였고, 그 뒤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고 여기에 '헛되다'는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읽으면서 반항적 생각을 품었던 기억이 납니다. 솔노몬 자기자신은 다 경험해 보구선 누구보고는 하지 말라고 하느냐 고.반항적 기분이 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인생은 잠간입니다.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갑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하여 영원을 놓치는 미련한 인생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결론은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 하나님 앞에서 실패자들이지만, 그 실패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세상의 점수따기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하나님께 돌아서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식! 하나님을 제쳐놓은 쾌락! 모두가 순간적인요 바람을 잡는 것 같은 헛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패자의 성공'!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총의 복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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