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존재 (사60:15-22고후5:16-19)
본문
오늘은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주시요 온전케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와 살을 나누는 성찬에 참예하는 날이다.
그러므로 이 성 찬에 참예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또한번 의 경험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가 된다. 낡 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났다"(고린도후 5:17)고 하였다. 오늘 이 성 찬의 의미는 바로 우리에게서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나는 데 있다. 새로운 존재가 사는 방식은 "화목케 하는 일"(고린도후 5:18)이다. 평 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새로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교회의 선교는 이 땅에 분렬과 자기도성을 쌓는 일이 아니라 평화를 이룩하는 일이다. 교회 갱신의 목적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언자 이사야는 바벧론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된 새 이스라엘을 향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예언하였다. "너는 버림받은 몸이었다. 보기도 싫어하여 찾는 이도 없는 몸이었다.
그런데 나 이제 너를 길이 존귀하게 해 주리니 대대로 사람들이 너를 반기리라. 너는 뭇 민족의 젖을 빨며 제왕들의 젖을 먹고 자라리라. 내가 놋쇠 대신 금을 들여 오고 쇠 대신 은을 들여 오리라. 평화가 너를 다스리게 하고 정의가 너를 거느리게 하리라. 다시는 너의 나라 안에서 횡포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며,침략자와 파괴자가 침입하였다는 말도 들리지 않으리라"(이사야 60:15-)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새 날에는 놋쇠 대신에 금을 들여 오고 쇠 대신에 은을 들여 오는 경제적 부흥과 함께 평화와 정의가 온 나라를 다스 리며 거느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멍에를 벗고, 물고 뜯던 미움의 길 고 지루하던 싸움에서 벗어나야 할 때에 이르렀다. 지금은 평화와 정의만이 삼천리 강산에 차고 넘치게 해야 할 때이다. 자신의 원한이나 안전을 위해 분단민족의 비애를 방치하거나 외면할 때가 아니다. 이 때야말로 "일어나 빛을 비출 때" 이다.(이사야 60:1) 세계인류가 우리의 빛을 보고 사방에 서 모여들게 할 때이다. 이 일에 인색하거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자는 마땅히 회개할 때이다. 그 길은 이 땅에 경제가 부흥하고 정의와 평화가 넘 치게 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민족의 숙원이요 나의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간에 군사력만 강화하고 전쟁연습에만 혈안이 되면 민생고는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요 세계인들은 우리들을 한껏 비웃으며 농락할 것이다. 지금은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며 나설 때이다. 모두가 일어나 낫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 때이다. 오늘 우리 겨레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것 뿐이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나누게 될 떡과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다. 우리가 이것을 나누는 것은 이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임재 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기 위해 피 와 살을 내어 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다. 목숨 보다 귀한 신앙이다. 이와 같은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로서 형제의 과거를, 이웃의 잘못을, 동족 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 은 그 존재이유를 잃어 버리게 된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경제는 부흥되지 않으며 이 땅에는 정의와 평화가 이룩되지 못한다. 또 다른 침략 자들이 양의 가죽을 쓴 이리처럼 우리를 먹어 버릴 것이다. 미국은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 준 우방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할 때 우리를 우방으로 여길 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국은 미국의 손실을 막기 위해, 소련 공산주의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 우리 나라를 두 동강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미국의 보호가 아니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요 남북이 하나되는 일이다. 그것만이 미국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들과의 공존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국을 원망만 하고 있을 정신 적 여유가 없다. 6.25 민족분쟁을 일으킨 소련을 탓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이제 세계는 이념이나 체제보다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에 몰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밀고 밀리는 국제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남북이 하나 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권력 다툼을 일삼다가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 라엘이 하나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바벧론 침노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남북 이스라엘은 바벧론의 식민지로 맡기셨다. 그리고 파사의 고레스시대에 해방시켜 고국에 돌아오게 하셨다. 돌아올 때의 이스라엘은 남북이 하나된 민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예수의 십자가는 유다인과 이방인의 분렬에서 그들을 하나 되게 하셨다. 그 십자가는 나 한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십자가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되게 하는 십자가이기도 하다. 하나가 되는 기본 틀이 있다. 그것은 진리와 정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죽음에 즈음하여 " 아버지 저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되게 하옵소서"(요 한 17:17-21)라고 기도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원수가 없다. 있다면 오 직 용서하며 하나가 되는 것 뿐이다.-할렐루야-제 목:' 예화 ' 세례의 뜻 자료원:안양일심교회 예장고신 아프리카에서 전도하고 있던 어느 선교사 한분이 이와같은 이야기를 토인들에게 해주었더니 모두들 갸우뚱하며 말하기를 "몸이 살아있는데 마음은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 했습니다.그래서 선교사는 생각다 못해서 어느날 모든 사람들을 불러 놓고 그 구덩이에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선교사의 말 에 따라 그 구덩이에 들어갔습니다. 선교사는 흙을 조금 그 구덩이에 넣고서, "어디,죽었습니까"하고 묻자 그 사람은 웃으면서 "아니오, 죽지 않았습니다."선교사는 다시 구덩이에 흙을 넣어 그 사람 허리에 까지 차게 하고는, "아직도 죽지 않았습니까" '천만에요, 아직도 살 아있습니다."이번에는 목까지 올라오게 흙을 메꾸었습니다. 그 사람의 두팔이 흙에 마묻혀 버리고 목만 밖으로 나와 있을때, 선교사가 묻기도 전에, "선생님, 이젠 죽었습니다. 천만에요, 당신은 아직도 살아 있지 않소아닙니다,저는 죽은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그 사람을 구덩이에서 꺼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몸은 살아있으나 악한 일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세례를 받 ' 은 사람의 각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 찬에 참예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사는 또한번 의 경험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가 된다. 낡 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났다"(고린도후 5:17)고 하였다. 오늘 이 성 찬의 의미는 바로 우리에게서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이 나타나는 데 있다. 새로운 존재가 사는 방식은 "화목케 하는 일"(고린도후 5:18)이다. 평 화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새로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새로운 교회의 선교는 이 땅에 분렬과 자기도성을 쌓는 일이 아니라 평화를 이룩하는 일이다. 교회 갱신의 목적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언자 이사야는 바벧론의 포로상태에서 해방된 새 이스라엘을 향해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을 예언하였다. "너는 버림받은 몸이었다. 보기도 싫어하여 찾는 이도 없는 몸이었다.
그런데 나 이제 너를 길이 존귀하게 해 주리니 대대로 사람들이 너를 반기리라. 너는 뭇 민족의 젖을 빨며 제왕들의 젖을 먹고 자라리라. 내가 놋쇠 대신 금을 들여 오고 쇠 대신 은을 들여 오리라. 평화가 너를 다스리게 하고 정의가 너를 거느리게 하리라. 다시는 너의 나라 안에서 횡포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 들리지 않을 것이며,침략자와 파괴자가 침입하였다는 말도 들리지 않으리라"(이사야 60:15-)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새 날에는 놋쇠 대신에 금을 들여 오고 쇠 대신에 은을 들여 오는 경제적 부흥과 함께 평화와 정의가 온 나라를 다스 리며 거느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반세기에 걸친 분단의 멍에를 벗고, 물고 뜯던 미움의 길 고 지루하던 싸움에서 벗어나야 할 때에 이르렀다. 지금은 평화와 정의만이 삼천리 강산에 차고 넘치게 해야 할 때이다. 자신의 원한이나 안전을 위해 분단민족의 비애를 방치하거나 외면할 때가 아니다. 이 때야말로 "일어나 빛을 비출 때" 이다.(이사야 60:1) 세계인류가 우리의 빛을 보고 사방에 서 모여들게 할 때이다. 이 일에 인색하거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자는 마땅히 회개할 때이다. 그 길은 이 땅에 경제가 부흥하고 정의와 평화가 넘 치게 하는 것 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민족의 숙원이요 나의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간에 군사력만 강화하고 전쟁연습에만 혈안이 되면 민생고는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요 세계인들은 우리들을 한껏 비웃으며 농락할 것이다. 지금은 이와 같은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며 나설 때이다. 모두가 일어나 낫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칼을 쳐서 쟁기를 만들 때이다. 오늘 우리 겨레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것 뿐이다. 이것을 위해 교회는 십자가 군병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나누게 될 떡과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다. 우리가 이것을 나누는 것은 이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임재 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기 위해 피 와 살을 내어 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다. 목숨 보다 귀한 신앙이다. 이와 같은 신앙으로 사는 사람들로서 형제의 과거를, 이웃의 잘못을, 동족 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 은 그 존재이유를 잃어 버리게 된다. 그것을 할 수 없다면 우리의 경제는 부흥되지 않으며 이 땅에는 정의와 평화가 이룩되지 못한다. 또 다른 침략 자들이 양의 가죽을 쓴 이리처럼 우리를 먹어 버릴 것이다. 미국은 우리를 위험에서 건져 준 우방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할 때 우리를 우방으로 여길 뿐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국은 미국의 손실을 막기 위해, 소련 공산주의의 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해, 우리 나라를 두 동강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미국의 보호가 아니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일이요 남북이 하나되는 일이다. 그것만이 미국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들과의 공존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길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미국을 원망만 하고 있을 정신 적 여유가 없다. 6.25 민족분쟁을 일으킨 소련을 탓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 이제 세계는 이념이나 체제보다 모두가 자신들의 이익과 안전에 몰두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밀고 밀리는 국제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길은 남북이 하나 되는 길이다. 하나님께서는 권력 다툼을 일삼다가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 라엘이 하나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바벧론 침노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남북 이스라엘은 바벧론의 식민지로 맡기셨다. 그리고 파사의 고레스시대에 해방시켜 고국에 돌아오게 하셨다. 돌아올 때의 이스라엘은 남북이 하나된 민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되게 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예수의 십자가는 유다인과 이방인의 분렬에서 그들을 하나 되게 하셨다. 그 십자가는 나 한 사람의 죄를 속량하는 십자가일 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되게 하는 십자가이기도 하다. 하나가 되는 기본 틀이 있다. 그것은 진리와 정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죽음에 즈음하여 " 아버지 저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하시며 하나되게 하옵소서"(요 한 17:17-21)라고 기도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원수가 없다. 있다면 오 직 용서하며 하나가 되는 것 뿐이다.-할렐루야-제 목:' 예화 ' 세례의 뜻 자료원:안양일심교회 예장고신 아프리카에서 전도하고 있던 어느 선교사 한분이 이와같은 이야기를 토인들에게 해주었더니 모두들 갸우뚱하며 말하기를 "몸이 살아있는데 마음은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 했습니다.그래서 선교사는 생각다 못해서 어느날 모든 사람들을 불러 놓고 그 구덩이에 들어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선교사의 말 에 따라 그 구덩이에 들어갔습니다. 선교사는 흙을 조금 그 구덩이에 넣고서, "어디,죽었습니까"하고 묻자 그 사람은 웃으면서 "아니오, 죽지 않았습니다."선교사는 다시 구덩이에 흙을 넣어 그 사람 허리에 까지 차게 하고는, "아직도 죽지 않았습니까" '천만에요, 아직도 살 아있습니다."이번에는 목까지 올라오게 흙을 메꾸었습니다. 그 사람의 두팔이 흙에 마묻혀 버리고 목만 밖으로 나와 있을때, 선교사가 묻기도 전에, "선생님, 이젠 죽었습니다. 천만에요, 당신은 아직도 살아 있지 않소아닙니다,저는 죽은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그 사람을 구덩이에서 꺼내어주며 말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몸은 살아있으나 악한 일에 대해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세례를 받 ' 은 사람의 각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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