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세와 내세 (고전4:16)
본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대립되고 있습니다. 예를들면 육신은 보이는 것이요, 영혼은 보이지 않는 것이며 현재와 고난은 보이는 것이요, 미래의 영광은 보이지 않는 것이며 현세는 보이는 것이나, 내세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은 가견의 육신과, 현재의 고난과, 현세의불 가견의 영혼과 미래의 영광과 내세와 대조하면서 오묘한 진리를 갈파하 였습니다.
1. 보이는 겉사람과 보이지 않는 속사람 보이는 겉사람 (육체)는 후패합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보이는 겉사람은 질병과 노쇠의 죽음으로 인한 후패에 이르게 됩니다. 해가 바뀌고 또 바뀌는 동안 인간의 연령이 증거하여 소년이 장부되고 백발되어 늙고 후패하여 감을 피치 못합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며 힘이 세다 할지라도 소용없습니다. 결국은 겉사람의 후패와 생명의 종점에로의 도달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인은 겉사람의 후패를 탄식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바울은 외칩니다. 보이는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보이지 않는 속사람은 날로 새로 워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접근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 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러한 영의 극치를 무엇으로 표현하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받는 불완전한 인간의 보이는 육체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겉사람은 "무명한자, 죽은자, 징계를 받은자, 근심하는자, 가난한자 같 으나" 속사람은 "유명한 자,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고 항상 기뻐하고 부 요하고 모든 것을 가진자라" (고후 6:9-10)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과 정반대의 법칙으로 역사하십니다.
2. 보이는 환난과 보이지 않는 영광 성도가 세상에서 보이는 환난을 받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바울이 말씀하시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것 이라"하셨고 또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받 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하셨습니다. 애굽왕 바로에게 야곱이 가로되 "내 나그네 길의 세상이 백삼십년이니 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이 미치니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의 연령이 백삼십이나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그동안에 환난과 시험이 더욱 심하여 노쇠와 부패를 신속히 하였다는 탄식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주 모세는 만년시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건강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하거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모세는 120년을 살면서 연령중가와 함게 환난 시험의 인간고를 샅샅이 겪어 신속히 노쇠 후패한 것을 탄식한 것입니다. 본문에 바울이 "겉사람은 후패하나"라고 말한것도 환난 시험의 인간고 때문에 자기의 육체적 생명이 신속히 노쇠후 패한 것을 탄식한 것입니다. 바울이 비참한 고난의 기록은 고후 11:23-33절에 있습니다. 바울은 "현재에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할때에 괴롭고 슬프다 할지라도 베드로 사도의 말씀과 같이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벧전4:12-13) 보이는 현재의 환난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더하는 것이니 모든 환난과 시험을 감수하여 영원한 영광에 참예합시다.
3. 보이는 현세와 보이지 않는 내세 보이는 현세는 시간적으로 잠깐이고, 공간적으로 유한하며 보이지 않는 내세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며 공간적으로 무한하며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현세에 애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내세에 애착합 시다. 환난은 우리 눈에 보이는 곳에 해를 끼칠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에는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믿을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히 브리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 거라"하였습니다. (히11:1) 모세는 120년을 살면서 연령증가와 함께 환난 시험의 인간고를 샅샅이 겪어 신속히 노쇠 후패한 것을 탄식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하나님의 존재의 모습이니 (롬1:20) 그것이 얼마나 존괴하며 참되며 복된 것입니까 인생은 보이는 이 세상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 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기자는 역대 성도들의 신앙을 예찬할 때에 "이 사람 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성을 예비하셨 나니라" (히11:13-16)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올 것을 찾나니" (히13:14) 라 하였고, 바울도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 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있 어 탄식하며 하늘로 부터 오는 울의 처소도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 니" (구호5:1-2) 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가로되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하 지 아니함이로다" (고후 5:7). 하셨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나니라" (전도서 3:11)고 하였습니다. 부귀영화, 권세를 얻었다 하나 저주받은 이 세상에는 진정한 만족이없는 것입니다. 이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에서 천만년 살것같이 대단 한 애착심을 가지고 덤빕니다. 인생아!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보이지 않는 내세는 광명하고 즐겁습니다. 현세는 불의가 충만하지 내세는의가 충만합니다. 현세는 질병과 죽는 일이 많은 내세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과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합니다. (계시록21:4).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주님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셔 서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십니다. 할렐루야! 보이는 겉사람은 후패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며 보이는 현재의 잠시 받는 환난은 경한 것이요, 보이지 않는 장래의 영광은 지극히 크고, 중한 것이요, 보이는 현세는 잠깐이요, 유한하며 보이지 않는 내세는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성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나니 "눈에는 아무 증거 안뵐지라도믿음만 으지하고 걸어 갈지라.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서" (합동 찬송가 298장) 보이는 것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희생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 혼을 위하여 보이는 육체를 쳐서 복종케 하며, 보이지 않는 미래의 영광 위하여 보이는 현세의 잠시 받은 현세를 초월하여 우리 주님 재림하 실 그 아침까지 일로 매진하여 영원무궁토록 천국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1. 보이는 겉사람과 보이지 않는 속사람 보이는 겉사람 (육체)는 후패합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보이는 겉사람은 질병과 노쇠의 죽음으로 인한 후패에 이르게 됩니다. 해가 바뀌고 또 바뀌는 동안 인간의 연령이 증거하여 소년이 장부되고 백발되어 늙고 후패하여 감을 피치 못합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며 힘이 세다 할지라도 소용없습니다. 결국은 겉사람의 후패와 생명의 종점에로의 도달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인은 겉사람의 후패를 탄식하고 슬퍼합니다. 그러나바울은 외칩니다. 보이는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보이지 않는 속사람은 날로 새로 워집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접근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 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러한 영의 극치를 무엇으로 표현하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받는 불완전한 인간의 보이는 육체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겉사람은 "무명한자, 죽은자, 징계를 받은자, 근심하는자, 가난한자 같 으나" 속사람은 "유명한 자,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고 항상 기뻐하고 부 요하고 모든 것을 가진자라" (고후 6:9-10)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사람과 정반대의 법칙으로 역사하십니다.
2. 보이는 환난과 보이지 않는 영광 성도가 세상에서 보이는 환난을 받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바울이 말씀하시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것 이라"하셨고 또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받 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하셨습니다. 애굽왕 바로에게 야곱이 가로되 "내 나그네 길의 세상이 백삼십년이니 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이 미치니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창 47:9) 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의 연령이 백삼십이나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그동안에 환난과 시험이 더욱 심하여 노쇠와 부패를 신속히 하였다는 탄식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주 모세는 만년시에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건강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하거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모세는 120년을 살면서 연령중가와 함게 환난 시험의 인간고를 샅샅이 겪어 신속히 노쇠 후패한 것을 탄식한 것입니다. 본문에 바울이 "겉사람은 후패하나"라고 말한것도 환난 시험의 인간고 때문에 자기의 육체적 생명이 신속히 노쇠후 패한 것을 탄식한 것입니다. 바울이 비참한 고난의 기록은 고후 11:23-33절에 있습니다. 바울은 "현재에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 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라고 하였습니다. 환난을 당할때에 괴롭고 슬프다 할지라도 베드로 사도의 말씀과 같이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벧전4:12-13) 보이는 현재의 환난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더하는 것이니 모든 환난과 시험을 감수하여 영원한 영광에 참예합시다.
3. 보이는 현세와 보이지 않는 내세 보이는 현세는 시간적으로 잠깐이고, 공간적으로 유한하며 보이지 않는 내세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며 공간적으로 무한하며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현세에 애착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내세에 애착합 시다. 환난은 우리 눈에 보이는 곳에 해를 끼칠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하늘 나라에는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믿을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히 브리 기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 거라"하였습니다. (히11:1) 모세는 120년을 살면서 연령증가와 함께 환난 시험의 인간고를 샅샅이 겪어 신속히 노쇠 후패한 것을 탄식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하나님의 존재의 모습이니 (롬1:20) 그것이 얼마나 존괴하며 참되며 복된 것입니까 인생은 보이는 이 세상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찾 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기자는 역대 성도들의 신앙을 예찬할 때에 "이 사람 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성을 예비하셨 나니라" (히11:13-16)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올 것을 찾나니" (히13:14) 라 하였고, 바울도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 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있 어 탄식하며 하늘로 부터 오는 울의 처소도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 니" (구호5:1-2) 라고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가로되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하 지 아니함이로다" (고후 5:7). 하셨습니다. 솔로몬도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나니라" (전도서 3:11)고 하였습니다. 부귀영화, 권세를 얻었다 하나 저주받은 이 세상에는 진정한 만족이없는 것입니다. 이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에서 천만년 살것같이 대단 한 애착심을 가지고 덤빕니다. 인생아!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보이지 않는 내세는 광명하고 즐겁습니다. 현세는 불의가 충만하지 내세는의가 충만합니다. 현세는 질병과 죽는 일이 많은 내세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과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합니다. (계시록21:4).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 주님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셔 서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십니다. 할렐루야! 보이는 겉사람은 후패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며 보이는 현재의 잠시 받는 환난은 경한 것이요, 보이지 않는 장래의 영광은 지극히 크고, 중한 것이요, 보이는 현세는 잠깐이요, 유한하며 보이지 않는 내세는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성도는 보이지 않는 것을 사모하나니 "눈에는 아무 증거 안뵐지라도믿음만 으지하고 걸어 갈지라.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려도 하나님의 약속 위에 굳게서" (합동 찬송가 298장) 보이는 것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희생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영 혼을 위하여 보이는 육체를 쳐서 복종케 하며, 보이지 않는 미래의 영광 위하여 보이는 현세의 잠시 받은 현세를 초월하여 우리 주님 재림하 실 그 아침까지 일로 매진하여 영원무궁토록 천국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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