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간인 것과 영원한 것 (고후4:16-18)
본문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으며, 잠간인 것과 영원한 것 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 입니다. 또한, 현재의 고난은 잠간인 것이요, 장래의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대개 눈에 보이는 현재의 고난과 현재의 영광에 대해서는 관심 이 많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장래의 축복과 영광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습니다. 논과 밭이 한 여름에는 푸른 색으로 왕성하게 가득 메워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논과 밭이 푸른 것이 곡식 때문일 수도 있고, 잡초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많은 교회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모두 다가 순전한 성도들이라면 얼마 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그 중에는 광명의 천사 로 가장하고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지만 잡초인 자들이 섞여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의심하면서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인간적인 윤리를 지키면서 진보된 신앙이라 말합니다. 더구나 바르게 살려고 하는 자들을 바 보 취급하며, 윗 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아부한다고 몰아부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밭을 메운 참 곡식이 되어야 합니다. 추수 때에 그것이 철저하게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참 곡식의 자리에 서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바로 지금 깨닫지 못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에 비추어 나는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분석되 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쇠 귀에 경읽기 식의 허송세월이 또 반복되 고 말 것입니다.
1.참 신자는 겉 사람보다 속 사람에 치중하는 사람입니다(16절). 본문 16절에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의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후패하고 썩어져 가는 것은 육체입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육체와 육신의 사람을 말합니다. 청춘은 24세의 나이를 정점으로하여 세포의 노쇠화 현상이 날로 가속화되 어 간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소년도 장부도 잠시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은 운명입니다. 항우 장사도 진시황제의 극성도 늙고 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의탁'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한 손에 가시를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시를 읊으며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겉사람의 후패를 슬퍼하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 은 날로 새로와 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속사람이 날로 새로와 질수 있을까요 그것은 속사람이 날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그 말씀 속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수를 마 시므로 새로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 와 지게 하는 신령한 양식이 들어있습니다. 나는 지금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힘을 얻고 살아가는 자 입니까 아니면 말씀을 잊어버려도 넉넉히 탈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 니까
2.참 신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치중하여 살아가는 자입니다
1)보이는 고난-보이지 않는 영광. 신자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도 세상 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신자가 받을 고난에 대하여 여러차례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것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받으며 미움을 받으며 방해를 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데 도 아무런 고난이 없는 분들은 의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얼마나 세상과 잘 결탁하고 있으면 그렇게 편하게 믿을 수 있느냐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불편한 관계가 싫어서 적당히 타협하고 하나님을 최고의 V
IP로 대접해 드 리는 것을 잠간 보류하고 나서는 '세상 살이가 이렇습니다 좀 이해해 주십 시요 하나님!.'하고 변명하여 슬거먼쩍 넘겨버립니다. 거북스럽고 어렵 고 힘든 배목이 나타날 때면 어김없이 적당한 타협으로 하나님을 감히 물 이려고 하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곤란하고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 간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친척의 눈총과 남편의 호 통도 오래가지 않으며, 주의 일 때문에 결혼식 회갑 생일 잔치 얼굴 못 내 민 것으로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일도 결코 영원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 아야 합니다. 롬8:18절에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환난과 고통과 불편함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위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로써 반드시 영원한 영광의 상급에 참예해야 할 것 입니다.(약1:2-12)
2)현재-내세 보이는 세계는 시간적으로 잠간이며, 공간적으로는 유한한 반면에 보이 지 않는 세계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며 무한합니다. 환난이 보이는 세계에 서는 해를 입힐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에 까지는 그 영향을 미치 지 못합니다. 인생은 보이는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부인하고 이 세상에서 무었인가 얻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성도는 이세상에서 얻어지는 것에 애착을 가지는 자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장차 멸망할 곳이기 에 세상에서는 아무리 좋게 보여도 모두 뜬 구름에 불과합니다. 잠간 있다 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에 애착을 두기보다 성도는 보이지 않지마는 다시는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없는 저 하늘나라를 소망하 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 고인 물은 썩기 쉽듯이 성도는 날마다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서 항상 새로운 자세를 지시받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자신을 살피는 삶만이 속사람을 새롭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을 붙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에 비추어 나는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지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분석되 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쇠 귀에 경읽기 식의 허송세월이 또 반복되 고 말 것입니다.
1.참 신자는 겉 사람보다 속 사람에 치중하는 사람입니다(16절). 본문 16절에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의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후패하고 썩어져 가는 것은 육체입니다.
그러므로 겉사람은 육체와 육신의 사람을 말합니다. 청춘은 24세의 나이를 정점으로하여 세포의 노쇠화 현상이 날로 가속화되 어 간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소년도 장부도 잠시 피었다가 지는 꽃과 같은 운명입니다. 항우 장사도 진시황제의 극성도 늙고 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의탁'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한 손에 막대를 잡고 또한 손에 가시를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는 시를 읊으며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겉사람의 후패를 슬퍼하고 탄식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겉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 은 날로 새로와 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속사람이 날로 새로와 질수 있을까요 그것은 속사람이 날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므로 그 말씀 속에서 흘러 나오는 생명수를 마 시므로 새로와집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는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새로 와 지게 하는 신령한 양식이 들어있습니다. 나는 지금 신령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힘을 얻고 살아가는 자 입니까 아니면 말씀을 잊어버려도 넉넉히 탈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 니까
2.참 신자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치중하여 살아가는 자입니다
1)보이는 고난-보이지 않는 영광. 신자가 세상에서 고난을 받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도 세상 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에서 신자가 받을 고난에 대하여 여러차례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믿는 것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받으며 미움을 받으며 방해를 받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잘 믿고 있는데 도 아무런 고난이 없는 분들은 의심해야 합니다. 왜냐면 얼마나 세상과 잘 결탁하고 있으면 그렇게 편하게 믿을 수 있느냐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불편한 관계가 싫어서 적당히 타협하고 하나님을 최고의 V
IP로 대접해 드 리는 것을 잠간 보류하고 나서는 '세상 살이가 이렇습니다 좀 이해해 주십 시요 하나님!.'하고 변명하여 슬거먼쩍 넘겨버립니다. 거북스럽고 어렵 고 힘든 배목이 나타날 때면 어김없이 적당한 타협으로 하나님을 감히 물 이려고 하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곤란하고 어려운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 간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친척의 눈총과 남편의 호 통도 오래가지 않으며, 주의 일 때문에 결혼식 회갑 생일 잔치 얼굴 못 내 민 것으로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일도 결코 영원하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 아야 합니다. 롬8:18절에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환난과 고통과 불편함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위한 것 입니다.
그러므로 인내로써 반드시 영원한 영광의 상급에 참예해야 할 것 입니다.(약1:2-12)
2)현재-내세 보이는 세계는 시간적으로 잠간이며, 공간적으로는 유한한 반면에 보이 지 않는 세계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며 무한합니다. 환난이 보이는 세계에 서는 해를 입힐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에 까지는 그 영향을 미치 지 못합니다. 인생은 보이는 세상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부인하고 이 세상에서 무었인가 얻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성도는 이세상에서 얻어지는 것에 애착을 가지는 자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장차 멸망할 곳이기 에 세상에서는 아무리 좋게 보여도 모두 뜬 구름에 불과합니다. 잠간 있다 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있는 이 세상에 애착을 두기보다 성도는 보이지 않지마는 다시는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없는 저 하늘나라를 소망하 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결론' 고인 물은 썩기 쉽듯이 성도는 날마다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 앞에서 항상 새로운 자세를 지시받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자신을 살피는 삶만이 속사람을 새롭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것을 붙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