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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의 신앙 (고전1:15-20)

본문

사람은 누구나 입신하여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바라는 바 대로 성공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 사람이 자신의 소망대로 성공하기 위하여 필요한 요인이 있다면 어떤 것을 들수가 있을까 커밍 워크(Cumming Walk)교수는 성공의 요인을 4가지로 요약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1.생각하는 능력인 지능이 있어야 한다.
2.좋은 두뇌에 많은 지식을 입력해 두어야 한다.
3.지식을 따라 행할 수있는 실천 능력이 있어야 한다.
4.성공적인 삶의 중요한 요인 중에 93%이상 결정해 주는 것은 삶의 자세이다. 자세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공부 할 때에는 공부하는 자세가 좋아야 하 고 일을 할 때에는 일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성실하게 임하는 바른 자세가 기본입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다보니 이제 학생들의 공 부하는 자세만 보아도 그들의 성적을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험을 보 나마나 평소에 자세가 흐트러진 학생은 으레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저는 학 기초에 학생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는 머리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다." 오늘은 분위기가 나빠서 그만 두고, 내일은 골치가 아파서 그만 두고 오늘 은 날씨가 나빠서 그만두고, 하면 언제 공부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공부가 안되는 날이더라도 책상에 진득이 앉아 있으라는 것입니다. 기분대로 벌떡 벌 떡 일어나면 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공부하려면 엉덩이로 참고 견디어 내는 자세가 있어야 결실을 맺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분대로 살아갈 수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견디어 내려는 바른 자세가 있어야 하겠다. 바른 자 세에는 2가지가 있어야 한다.
1)주저하지 않는 긍정적인 자세(Unhesitating Affirmation)
2)기쁜 마음으로 찬성하는 태도(Joyful Assent)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좋은 교훈이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45 년동안 민주주의를 배워 왔습니다. 민주주의를 토착화 해야한다고 온갖 노력 을 다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원인은 무엇입니까 어떤 모임에서 반대입장이 된 사람은 결정이 된 다음에도 끝까지 반대하 고, 일이 잘 못되면 '내가 애당초 반대하지 않았느냐'고 비아냥거립니다. 내 개인의 뜻이 어떠하였든 결정되면 그것이 내 뜻이요, 이제부터는 그 일이 잘 추진될 수 있도록 최선의 협조를 해야합니다. 기쁜 찬성을 보내야 합니다. 개 인의 운명을 결정하는 결혼도 그러합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혼식을 올 리고 나면 이미 운명은 결정난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남편이요, 내 아내입니다. 부모도 결혼을 반대하다가도 기왕 뜻을 굽혀서 허락했으면 그들 이 살아가는데 어려우면 도와주어야 하는데 조금만 이상이 있으면 '그것보라. 내가 뭐라든….'하면서 먹이를 노리던 매처럼 쏘아붙입니다.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한평생 후회하면서 살도록 조장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자세는 항상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더구다나 믿는 사람이 신앙고백없이 우유부단하다면 이는 하나님의 계시의 확실성에 대한 모독입니다. 엉거주춤하면 언제 주변사람 으로 서성거리며 살아갑니다. 현대인의 불행은 헌신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합니다. 전적으로 헌신하지도 않고 전심전력을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심리학자 들은 그 원인을 교만과 이기심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게 돌아올 이익이 무엇 인지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내게 돌아올 인기, 내게 돌아올 이익과 명예에 신 경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헌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 온전히 자신을 헌신하는 일은 끝내 할 수가 없게 됩니다.
1.긍정적인 신앙생활 사도 바울은 신앙적으로나 사면적으로 가장 약할 때에 고린도교회를 세웠습니다. 마음이 약하여 담대히 전하지도 못하였고 천막을 치는 직업으로 겨우 전도의 명맥을 이어 가고 이었을 때 였습니다. 이렇게 용기가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교회를 세워서 그런지 고린도교회는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사도권에 대한 도전과 혼자 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시비가 있었 고, 분재하는 교회를 수습하기 위하여 몇 곳을 방문하려고 지연되면 또 비난 과 오해가 쏟아집니다. 먼데서만 큰소리쳤지 가까이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편지를 쓸 때와는 딴판이다, 온갖 비난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결정 은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결정한 것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자신의 성실과 강직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誠實이란 말은 단순성과 같은 어원을 갖고 있음을 알아 야 합니다. 성실할 때 단순해지는 것이지, 평소에 성실히 일하지 않으면서 단 순하게 '예' '아니요'를 말하는 것은 불성실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맡겨진 일도 성실히 하지 않으면서 주장만 강력히 하면 이는 항상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잘 모르면 성실히 배운 후에 부정과 긍정을 사용해야 그가 속해 있는 곳이 항상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모이면 부정적인 말만하고 타 인의 문제점만 대책없이 내어놓는 자리에는 가지도 마십시오. 자신의 심심도 그렇게 물들고 맙니다.
2.아멘의 의미 주기도문의 마지막은 아멘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쓰는 용어를 보면 은혜, 믿음, 속죄, 소망,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 이 쓰는 것이 아멘입니다. 기도할 때나 설교를 듣다가 감동이 나올 때, 찬송 을 부를 때에도 아멘을 하게 됩니다.
1)구약에의 사용.
1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일의 수락을 확증하는데 쓰여졌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위협이나 저주가 내리기를 확증하는 것과
3 송영에 답하여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입증하는데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경우에 타당하거나 구속력이 있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나 다 인정한다는 뜻으로 '아멘'이라는 말을 했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찬양이 있고 축복이 있으며, 서원과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서약이나 기도의 내용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2)신약에서는
1예배시의 환호로서 '아멘'은 응답을 의미했고
2기도와 송영의 끝에서 하나님의 긍정에 대한 응답으로 사용되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사건을 보고 '아멘' 이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곧 '아멘'이십니다(계3:14).
3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라는 말이 '아멘'입니다. 이 말을 예수님께서 말씀 앞에 두실 때 그 목적은 그 말씀을 시인함으로써 진정성과 타당성을 강조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아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역사 하심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히브리인들은 예배를 드리는데 성도들이 돌아가며 한시간 동안 성경을 읽는데 한 문장이 끝날 때마 다 회중들이 다함께 "아멘"하고 화답한다. 이것은 말씀을 전적으로 수락하며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합니다. '애화' 극동방송국의 어느 목사님이 중국에 가서 교인들을 방문하여 가정 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외국인은 설교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어서서 말하면 설교이고, 앉아서 말하면 좌담이기 때문에 그 목사님은 앉아서 좌담식의 설교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꾸 하라고 해 서 2시간 정도를 했는데 끝까지 듣고 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말하 더랍니다. "오늘의 교양, 전적으로 접수합니다." 공산당이 쓰는 말이다. 여러분, 전적으로 접수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을 하지 마십시오. 홍해 를 건넜다면 건넌 줄로 알아야 합니다. 장님이 눈을 떴다면 뜬 줄로 알아야 지, 죽은 자가 살아 왔다면 그대로 믿으십시오. 거기에 인간의 이성적 비판을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이 든지 주시는 데로 아멘으로 받아 들이시요
3)예수님의 아멘 사용 예수님의 별명을 아십니까 (계3:14)에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 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아멘으로 시작하여 아멘으로 끝났 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멘으로 오셨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내 뜻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아멘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별명은 아멘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을 그대 로 시인하셨고, 살아가신 모습으로 이를 확증하셨으며, 사람들에게도 이를 요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한 번도 '아멘'을 하 지 않으신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도 그랬고, 오셔 서 살아가신 생애도 그랬으며,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아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토록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되어지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기에 우리에게도 이러한 신앙의 삶 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과 모세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없었으나 고향을 떠나라고 하 실 때 묵묵히 떠났습니다. 100살에 얻은 아들을 바치라고 할떼에도 아무런 반 론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이 백성을 구하라고 하실 때 모세는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인도하여 파도가 일렁이는 홍해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건너거라는 말 한마디에 그대로 순종했기에 마침 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홍해도강 작전위원회"를 만들고 사전에 계획하지도 않았으나 믿고 아멘으로 건너게 되었습니다. '성경이야기'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갈릴리 호수에서 밤새 물고기를 잡으려 하 였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그물을 정리하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을 보시며 깊은 데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십니다. 에 수님은 목수요,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목수 말을 듣고 어부가 그물을 내릴 수 있는가 베드로는 밤새 한 마리도 안 잡힌 물고기가 지금 와서 잡힐 리가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며 그물을 내립니다. 못 잡을 것이 분명하지만 예수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내려보겠다는 것입니다. 일단 순종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물이 찢어질 정도로 가득 잡혔다. 그는 그물을 끌어올리다 말고 예수님께 나 와서 무릎을 꿇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소이다." 그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 이가 예수께서 8씔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실 때 그의 말씀을 듣고 기 쁜 마음으로 그물을 내려야했던 것입니다. 100% 순종했어야 하는데 그 순종 속에 '아니다'는 부정이 섞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불신앙-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주님의 뜻 에 억지로 순종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자니 아까운 것이 많고 안 따르자니 꺼림찍합니다. 이렇게 주춤거리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깊이 생각합시다. 아멘 아멘 하며 주님이 인도하는데로,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약 하면 약한 데로 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바칩시다. 순종해 나갑시다. 거기 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아멘, 아멘, 이렇게 순종하여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복을 주시고 그 일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3.아멘의 잘 못된 사용.
1)어떤 사람은 아무때나 함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복 받으라고 하기만 하면 아멘이 잘 나옵니다. 분위기에 따라서 그냥 아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흥회 같은 집회시에는 어떤 부흥사가 욕을 하는 데도 좋다고 아멘 하고 말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아멘은 강요하면서 훈 련을 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만 사용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함부로 내 뱉는 말처럼 해도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라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2)어떤 사람은 사용해야 할 때 사용하지 않는 경향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기회에 신앙적 결단이 오면 하나님께 '아멘'이라고 응답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을 입으로 시인할 수 있어 야 합니다.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이 있을 때 '아멘'이라고 응답을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도록 성령님의 역사에 순 종하여야 합니다. 기도할 때, 찬양을 부를 때 이는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므로 '아멘'이라고 응답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도할 때나 마지막에 합창하듯이 하는 것이 '아멘'인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4.'아멘' 신앙을 가지면 주어지는 축복
1)아멘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인에서 예가 되었으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아멘으로 화답합시다. 지구 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는데 현세를 부정하고 운명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교는 인생을 산다 고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고통을 면하기 위하여서는 마음 속 의 생의 의지나 욕망을 부인하면 된다고 합니다. 즉, 무아지경에 들어가면 마음에 평화가 찾아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서 머리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서 고통을 호소하면서 머리가 아픈 이유는 머리 때문이니 그 머리를 잘라 버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 습니다. 생을 부인하는 종교는 창조력도 없고 개혁의지도 없고 현실 안주의 살을 최상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현대의 과학은 진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지 못할 만큼 급변하고 있다. 어 제의 진리라는 이론이 오늘에서는 한갓 지난날의 유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 단히 새것을 향하여 달려가면서 오늘을 부정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매사가 지난 것은 잘 못 되었고 새것은 무조건 좋다는 이론은 급진적인 것으로서 현 실을 파괴하는 매우 위험한 사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 풍조에 따라서 신앙도 문제가 있다. 반면에, 옛것은 무조건 좋고 오늘의 것은 여건과 형편에 맞지 않는다고 보 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도 발전이 없는 고루한 사상입니다. 사람이 죽으 면 한 줌의 재만 남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고 구조는 능력을 상실한 나약한 자의 절규입니다. 바람직한 생각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가장 옳은 것을 아멘으로 겸손히 받아들이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좌절과 아픔이 많은 세상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아멘은 인간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운명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만 사를 팔자 닻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나 미성숙한 것인가 얼마전 TV. 얼굴만 보아도 사주 팔자를 알아 맞춘다는 여자 도사라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는 팔자도 사주도 결혼 후에도 변하고 출 산후에 도 변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면 사주도 팔자도 바뀐다고 하더라. 그러니 점치러 가지 말고 나에게 오시오. 내가 예수 이름으로 사주 팔자 고쳐주리라.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노력하고 애쓰면 인간은 새로워 질 수가 잇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팔자고친 사람들' 연세대 총장을 지냈고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한국인으로서 처음 박사학위를 받는 백낙준박사는 백정 가문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분의 할아버지가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선교사의 주선으로 유학을 떠 나서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평북 의주에 지지리 도 가난한 집안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서 태어난 딸은 어찌나 가난한지 배고 픔을 면해 보려고 소실로 들어가서 아기를 나았는데 그가 김활란 박사입니다. 김활란 박사의 어머니는 소실로서 서러움을 받으며 살았으나 딸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고 기도를 길렀더니 그 딸이 신앙 가운데에 자라나서 한국 여 성 교육의 서구자가 된 것입니다. 만일 운명대로 되어 진다면 그는 별로 주 목받지 못한 초라한 인생을 살다가 가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남는 분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3)아멘은 성령님 충만의 역사를 믿는 고백입니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 주기도문의 내용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와 실천은 성령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들은 3년동안 따라 다녔으나 변화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님충만함의 능력을 체험한 후에야 밖으로 뛰쳐나가 몇 시간 못 되어서 3000명을 회개시키는 위대한 일을 해내었습니다. 교회의 성장과 성숙 은 인간의 지혜나 지도력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듯을 깨닫고 성령님에 충만한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라고 하는 참된 신앙적 진실을 지키 기 위하여 로마 교황을 상대로 종교개혁의 건의문을 내었습니다. 그 일로 재 판을 받고 바르트부르그(Wartburg)에 위패 되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중요한 일을 해냈습니다. 그는 조금만 생각을 바 꾸어 교황과 타협하면 풀려날 것은 물론 좋은 자리에서 일생을 편히 지낼 수 도 있었습니다. 유별나게 살다보니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자꾸만 유혹의 손길이 다가옵니다. 나만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있는가 지지하여 주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야. 유혹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움트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탄이 눈 앞에 나타 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마다 벽을 향하여 잉크병을 던졌습니다. 그리하여 기거하던 방의 벽에는 잉크자국이 선명하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적으로 '예'하기 위하여 사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친 것입니다. 거기 에서 그 유명한 찬송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지었습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함마슐드는 그가 비행기 사고로 죽기 얼마 전에 1961 년 9월17일 일기에 이런 이야기를 남기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사랑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 안에 살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그는 주님 앞에 온전하게 순종하였습니다. 아멘 아멘 이렇게 순종하여 나 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복을 주시고 그 일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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