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고전15:12-22)
본문
고전15장 전체가 부활에 관한 논증입니다. 그 중에서도 1-11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12-34절 까지는 인간의 부활에 대해서, 35-58절 까지는 육체의 부활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당시 이 스라엘의 사두개인들처럼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바울이 전한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러한 자들을 향하여 단호하게 반박하면서 그의 논증을 전개시켜 나갔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게 된다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에 대하여 심각하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음을 상기시킵니다.
I.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1.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것이 되 고 맙니다(12-13,16절). 본문 13절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못 하였으리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모든 종교는 교주의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없습니다. 무덤이 있기는 있지만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에 그 교리적 기 초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의 근본을 부정 하는 것이요, 기독교의 기반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부활 하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경배의 대 상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될 것입니다(14-15 절). 복음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요11:25,행1:22,빌3:10)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사도들을 가리켜 부활의 증인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은 헛된 것을 좇아 속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은 거짓말 하는 자로 정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맙니다(14절).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해주는 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믿음도 부 활이 없다면 헛된것 즉, 텅빈 껍데기가 되고 맙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 에 있어서 부활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4.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죽은 성도들 모두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1 7-18절) 본문 18절에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라고 말 합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이 부활이 있는 줄로 알고 그리스도를 믿고 죽었는데 부활이 없다면 그들은 망한 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죽 음 이후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이 존재를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활을 말씀한 그리스도는(요11:25-26) 최대의 사기꾼이 되고 말것입니다.
5.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계에서 가징 불쌍한 사람들입니다(19절). 본문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불쌍한 자들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불 쌍 한 정도에도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정도가 내세의 소망의 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망 때문에 크나큰 고통중 에서도, 또한 절망 중에서도 견디어 나갑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 후의 최대의 소망이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 하나만을 믿 고서 땅에서의 온갖 시련과 신앙의 제한과 한계를 기쁨으로 받아 넘기며 살아 갔던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 때문에 온 생애를 신앙에 바친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 때문에 모든 재능과 모든 재물과 모든 건강을 주를 위해 기꺼이 투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땀을 흘리며, 피를 흘리며, 최 후의 순간에 목숨 까지도 후회없이 주를 위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이 거짓이요, 사기라면 모든 성도들이 그토록 최선을 다해 투자하고 힘쓰고 걸었던 모든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II.그러나 이미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20-22절).
1.첫 열매란 부활의 대표성을 의미합니다(20절). 여기서 구약적 배경을 모르면 '첫 열매'가 담고 있는 부활에 대한 귀중 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그 땅의 수확물 중 첫 열매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레23:10-14). 이것은 모든 수확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첫 열매를 받으심으로써 모든 것을 다 받으신 것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첫 열매'란 대표성의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한 것은 이같은 구약적인 배경에서 한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대표성을 깆는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가 맺히고 나서 이어서 연속적으로 열매가 맺히어 추수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활의 첫 열매를 맺히셨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부활은 당연한 이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대표자가 되십니다. 그이 의로운 삶은 성도들을 대표한 삶이었습니다(히4:15). 또한, 그의 죽음도 성도들을 대표한 죽음이었습니다(롬5:12-19). 그러기에 아무 공로없는 우리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인정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죽음을 면제 받았 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그리스도의 다시 사 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롬6:4-5). 이러한 그리스도의 대표성 때문에 우리 성도들에게 부활에 관한 소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22). 본문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벧전2:9-10). 그리스 스도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백성이 됩니다(요1:12). 어떤 공로나 행위로 되는 것 이 아닙니다(엡2:8). 다만 잊지 말아야 할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된 후에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길을 가는 것이며(마7:13-1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 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하셨 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은 육체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하는 '욕망의 죽음'도 포함합니다(갈5:24). 옛 사람의 죄의 습성과 악한 욕망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장사 지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그대로 간 직하고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인이 그리스도인 답지않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죽음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지안게 살아가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양의 무리가 아니라 염소의 무리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부활은 반드시 있습니다.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 부 활에 참여 할 수 있을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간직한 성도는 살아있는 신앙의 삶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모양은 갖추 었으나 그 속에 부활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삶에 변화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잘 살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그리스도안에 거하므로 영생의 부활, 영광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I.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1.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는 것이 되 고 맙니다(12-13,16절). 본문 13절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못 하였으리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모든 종교는 교주의 무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은 없습니다. 무덤이 있기는 있지만 빈 무덤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 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에 그 교리적 기 초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의 근본을 부정 하는 것이요, 기독교의 기반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부활 하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의 존경과 흠모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경배의 대 상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될 것입니다(14-15 절). 복음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요11:25,행1:22,빌3:10)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였던 사도들을 가리켜 부활의 증인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며, 수많은 사람들은 헛된 것을 좇아 속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사도들은 거짓말 하는 자로 정죄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3.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맙니다(14절). 믿음은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해주는 길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믿음도 부 활이 없다면 헛된것 즉, 텅빈 껍데기가 되고 맙니다. 이처럼 기독교 신앙 에 있어서 부활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4.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죽은 성도들 모두 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1 7-18절) 본문 18절에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라고 말 합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를 믿고 죽은 성도들이 부활이 있는 줄로 알고 그리스도를 믿고 죽었는데 부활이 없다면 그들은 망한 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죽 음 이후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이 존재를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부활을 말씀한 그리스도는(요11:25-26) 최대의 사기꾼이 되고 말것입니다.
5.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계에서 가징 불쌍한 사람들입니다(19절). 본문 19절에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정말 불쌍한 자들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불 쌍 한 정도에도 차이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쌍한 정도가 내세의 소망의 정도에 따라서 차이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소망 때문에 크나큰 고통중 에서도, 또한 절망 중에서도 견디어 나갑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 후의 최대의 소망이 바로 부활의 소망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 하나만을 믿 고서 땅에서의 온갖 시련과 신앙의 제한과 한계를 기쁨으로 받아 넘기며 살아 갔던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 때문에 온 생애를 신앙에 바친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 때문에 모든 재능과 모든 재물과 모든 건강을 주를 위해 기꺼이 투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땀을 흘리며, 피를 흘리며, 최 후의 순간에 목숨 까지도 후회없이 주를 위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부활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이 거짓이요, 사기라면 모든 성도들이 그토록 최선을 다해 투자하고 힘쓰고 걸었던 모든 것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어리석은 삶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II.그러나 이미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20-22절).
1.첫 열매란 부활의 대표성을 의미합니다(20절). 여기서 구약적 배경을 모르면 '첫 열매'가 담고 있는 부활에 대한 귀중 한 진리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게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그 땅의 수확물 중 첫 열매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레23:10-14). 이것은 모든 수확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첫 열매를 받으심으로써 모든 것을 다 받으신 것으로 여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첫 열매'란 대표성의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한 것은 이같은 구약적인 배경에서 한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이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대표성을 깆는다는 것입니다 첫 열매가 맺히고 나서 이어서 연속적으로 열매가 맺히어 추수를 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부활의 첫 열매를 맺히셨기 때문에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들의 부활은 당연한 이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면에서 우리의 대표자가 되십니다. 그이 의로운 삶은 성도들을 대표한 삶이었습니다(히4:15). 또한, 그의 죽음도 성도들을 대표한 죽음이었습니다(롬5:12-19). 그러기에 아무 공로없는 우리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인정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죽음을 면제 받았 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없지만 그리스도의 다시 사 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롬6:4-5). 이러한 그리스도의 대표성 때문에 우리 성도들에게 부활에 관한 소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길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22). 본문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간다는 것입니다(벧전2:9-10). 그리스 스도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백성이 됩니다(요1:12). 어떤 공로나 행위로 되는 것 이 아닙니다(엡2:8). 다만 잊지 말아야 할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된 후에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좁은 문을 통과하여 길을 가는 것이며(마7:13-1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 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하셨 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부활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것은 육체적인 죽음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하는 '욕망의 죽음'도 포함합니다(갈5:24). 옛 사람의 죄의 습성과 악한 욕망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장사 지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그대로 간 직하고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인이 그리스도인 답지않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죽음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답지안게 살아가게 된다면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양의 무리가 아니라 염소의 무리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부활은 반드시 있습니다. 부활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이 부 활에 참여 할 수 있을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부활의 생명을 간직한 성도는 살아있는 신앙의 삶이 자연스럽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모양은 갖추 었으나 그 속에 부활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삶에 변화가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미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잘 살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 그리스도안에 거하므로 영생의 부활, 영광의 부활에 참여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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