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첫 열매 (고전15:12-22)
본문
먼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면서 이 시간 주의 전에 모여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의 생명과 소망이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지난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특별히 욥이 당한 고난과 그 회복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관련시켜서 묵상하여 보았습니다. 욥이당한 고난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까닭 없는 고난 때문에 욥이 얼마나 하나님께부르짖었습니까 처음에 욥은 살아 생전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부르짖습니다.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없어지기 까지 눈을 뜨지 못하여 잠을깨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욥14:12,14) 그러나 욥은 자신이 받는 고난의심 도가 깊어지면서 위대한부활의 신앙을 고백합니다.지금 나의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보인 (중보자)이 높은데 계시느니라 (욥16:19)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그가 땅 위에서실 것이라나의 이가죽 이것이썩은 후에내가 육체밖에서 하나님을보리라 (욥 19:25-26) 결국 욥은 고난을 통하여 위대한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No Cross, No Crown십자가의 고난 없이는 결코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자기를 낮추셨고,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기까지복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높혀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 이것은 결코 분리해서생각할 수 없는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또한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과부활의 영광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한번 생각 해 봅시다. 만약 복음서의기록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손에 부 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로끝이 났다면, 우리의 기독교는 죽은 종교요,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이상의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주님 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신 부활의 사건을 상세하게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믿는 기독교는 죽은 종교가 아니라, 오늘도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리의 삶이금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한 삶이있음을 확실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천년 전에 일어났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이천년 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입니까 이부활절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의미와 교훈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첫번째이자 유일무이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처음에 욥이 생각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리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을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죽음 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걸어갑니다.본문 21-22절에 언급한 것처럼,사망이 사람으로 말이암았 으니.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죽은 것 같이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어느한 사람 예외없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사람마다 죽는시간과 죽는 모양은 각기 다르 다 할지라도 한번 죽어야 하는 것은 만고불리의 법칙입니다. 옛날에 어떤 왕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죽음을 피해 볼려고 시도하였지만, 그 역시 모든 람 이 가야할 죽음의길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우리에게 분명하게 선포합니다.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믿습니까 그리하여 어떤 철학자는 말하 기를사람은 날때 부터 죽음에로 향하는 불안한 존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에대하여 예외적인 사실을 선포한자가 있습니다. 그는 죽음이 아무리무법자 처럼 동정과 인정없이 사람을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도결코 이기지 못하는 것이 있음 을 밝힙니다. 그 사람은 바로 본문을기록한 사도 바울입니다. 한장 넘겨서 15장 55절 말씀을 같 이 읽겠습니다.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무슨 말 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겼음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사망이예수의 부활을 이길 수 없으며, 결국예수의 부활 앞에 사망이 무릎을 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살았던 많은 사람 중에 죽음을 이긴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살아나심으로 그 죽음을 정복하였음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을 경험 한 자는 비단 예수 그리스도한 사람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었 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그를 믿는 모든 자들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에참여하게 되었 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22절 말씀을보십시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믿습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첫 열 매가 되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오늘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의미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일어난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활의역사성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이제는 앞으로 넘겨서 15장3-8절 말씀을 교독하겠습니다.내가받은 것을 먼저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 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 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 을 직접 만나 변화되었고, 그 이후에는 그분을 증거하는데 모든 생애를 바쳤습니다.여러분! 그분 의 부활을 증거하는데 생명을 바친 사람이 사도바울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역사성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거짓 이론을 제시하면서 반박하기도 합니다. 오늘 새 벽에도 말씀드렸지만, 마태복음에기록된 것처럼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부활을목격한 군병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꾸며낸시체도적설 이나환상설 기절설(가사설) 착각설등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도 터무니 없는 거짓 이론들입니다. 물론 저는 이 시간에여러가지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 이론들 이 거짓임을 반박하고, 그리스도의부활의 확실성을 증거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는 비록 부활하신 주님을직접 우리의 육안으로 보지 못했고, 손에 못자국과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 보지는 못했지만, 주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또한 나를 위해 부활 하신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만약에 그리스도의부활이 거짓이요 꾸며낸 것이라면, 그러한거짓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입니다. 그 거짓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바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역사적인 사건이었기에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수많은사람들이 그를 믿고 그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부활의 신앙과 산 소망을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들역시 이 아침에 사망 권세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하여 이렇게 모였습니다. 세상에이것 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사실,부활이 주는 두번째 의미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한한 인생들에게 영원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겠습니까이 것에 대하여 바울은 본문 13절 이하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여 말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것도 헛것이고 믿음도 헛것이며,여전히 우리가 죄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은 더 이상아무런 소망이 없이 썩어져 없어 질 것이며, 우리 역시 죽음으로서 끝이날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금생으로 끝이 난다면 세상에서 크리스챤이야말로 가장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께서부활하지 않았 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있음을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인간의 삶이 금생으로 끝이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면 사는 영생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죽음 저 너머에 또 하나 의 새로운 삶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수요예배 시간에 전도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미 생각해 보았지만,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 교 중에 죽음을 축하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거의모든 종교와 문화가 출생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축하할 수 있는 것, 이것은기독교의 복음만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 게는 죽음 저너머에 부활의소망이 있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성도에게 있어서가장 위 대한 소망이 되기 때문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있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성경에서 죽음을 자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입니까 잔다는 것은 언젠 가 깨어날 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것은 곧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남은 생애가얼마나 될른지 알 수는 없지만, 죽음 저 건너편에 있는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4.마지막으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어야 합니까 부활의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우리들끼리만부활의 환희와 기쁨 속에 안주해 버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문제는 이 부활의 신앙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느냐 그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러분!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신 주님의 뜻이 과연무엇이 겠습니까 그것은한마디로 말해서 오늘 우리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신앙을 가질뿐만아니라, 이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여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복음서기자는 공통적으로 강조하고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마가복음에는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15) 누가복음에는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24:48) 요한복음에는 베드로에게 세번씩이나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제자들 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고, 이 명령에 기초하여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담대하 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외쳤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한 부활의 신앙은 자기 자신의 구원 신앙에만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차원으로 승화되어 증인의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부활의신앙을 소유하셨읍니 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증인의 사명은 매우 무겁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외쳤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우리들도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아직도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죽어가는 우리의 이웃과 세계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명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고,우리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며, 세상 끝날 까지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부활의 산 증인으로서 사명을잘 감당하는 여러 성도들이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는 지난 고난주간을 지내면서 특별히 욥이 당한 고난과 그 회복을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관련시켜서 묵상하여 보았습니다. 욥이당한 고난이 어떠했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까닭 없는 고난 때문에 욥이 얼마나 하나님께부르짖었습니까 처음에 욥은 살아 생전에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이기 위하여부르짖습니다.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없어지기 까지 눈을 뜨지 못하여 잠을깨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욥14:12,14) 그러나 욥은 자신이 받는 고난의심 도가 깊어지면서 위대한부활의 신앙을 고백합니다.지금 나의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보인 (중보자)이 높은데 계시느니라 (욥16:19)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그가 땅 위에서실 것이라나의 이가죽 이것이썩은 후에내가 육체밖에서 하나님을보리라 (욥 19:25-26) 결국 욥은 고난을 통하여 위대한 부활의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No Cross, No Crown십자가의 고난 없이는 결코 부활의 영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사람 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자기를 낮추셨고,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기까지복종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높혀 만유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 이것은 결코 분리해서생각할 수 없는 필연적인 귀결입니다. 또한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과부활의 영광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한번 생각 해 봅시다. 만약 복음서의기록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손에 부 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로끝이 났다면, 우리의 기독교는 죽은 종교요,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이상의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주님 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신 부활의 사건을 상세하게기록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믿는 기독교는 죽은 종교가 아니라, 오늘도살아 움직이는 생명력 있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리의 삶이금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영원한 삶이있음을 확실하게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천년 전에 일어났던 예수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이천년 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입니까 이부활절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주는 의미와 교훈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 첫번째이자 유일무이한 사건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처음에 욥이 생각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우리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사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을포함한 모든 인간들은 죽음 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걸어갑니다.본문 21-22절에 언급한 것처럼,사망이 사람으로 말이암았 으니.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죽은 것 같이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어느한 사람 예외없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사람마다 죽는시간과 죽는 모양은 각기 다르 다 할지라도 한번 죽어야 하는 것은 만고불리의 법칙입니다. 옛날에 어떤 왕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죽음을 피해 볼려고 시도하였지만, 그 역시 모든 람 이 가야할 죽음의길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은우리에게 분명하게 선포합니다.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믿습니까 그리하여 어떤 철학자는 말하 기를사람은 날때 부터 죽음에로 향하는 불안한 존재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죽음에대하여 예외적인 사실을 선포한자가 있습니다. 그는 죽음이 아무리무법자 처럼 동정과 인정없이 사람을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음도결코 이기지 못하는 것이 있음 을 밝힙니다. 그 사람은 바로 본문을기록한 사도 바울입니다. 한장 넘겨서 15장 55절 말씀을 같 이 읽겠습니다.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무슨 말 입니까 예수님께서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겼음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사망이예수의 부활을 이길 수 없으며, 결국예수의 부활 앞에 사망이 무릎을 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살았던 많은 사람 중에 죽음을 이긴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한 사람,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살아나심으로 그 죽음을 정복하였음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을 경험 한 자는 비단 예수 그리스도한 사람에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었 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그를 믿는 모든 자들도 죽음을 이기고 부활에참여하게 되었 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22절 말씀을보십시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믿습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을 이긴첫 열 매가 되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오늘우리에게 주는 첫번째 의미입니다.
2.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일어난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활의역사성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이제는 앞으로 넘겨서 15장3-8절 말씀을 교독하겠습니다.내가받은 것을 먼저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 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 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 을 직접 만나 변화되었고, 그 이후에는 그분을 증거하는데 모든 생애를 바쳤습니다.여러분! 그분 의 부활을 증거하는데 생명을 바친 사람이 사도바울 한 사람뿐이겠습니까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이 부활의 역사성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거짓 이론을 제시하면서 반박하기도 합니다. 오늘 새 벽에도 말씀드렸지만, 마태복음에기록된 것처럼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부활을목격한 군병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꾸며낸시체도적설 이나환상설 기절설(가사설) 착각설등은 상식적으로 생각해 도 터무니 없는 거짓 이론들입니다. 물론 저는 이 시간에여러가지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 이론들 이 거짓임을 반박하고, 그리스도의부활의 확실성을 증거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는 비록 부활하신 주님을직접 우리의 육안으로 보지 못했고, 손에 못자국과옆구리의 창자국을 만져 보지는 못했지만, 주님께서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또한 나를 위해 부활 하신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만약에 그리스도의부활이 거짓이요 꾸며낸 것이라면, 그러한거짓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입니다. 그 거짓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바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한역사적인 사건이었기에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수많은사람들이 그를 믿고 그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부활의 신앙과 산 소망을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우리들역시 이 아침에 사망 권세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하여 이렇게 모였습니다. 세상에이것 만큼 확실한 증거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사실,부활이 주는 두번째 의미입니다.
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유한한 인생들에게 영원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에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못했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겠습니까이 것에 대하여 바울은 본문 13절 이하에서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여 말하면 이렇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것도 헛것이고 믿음도 헛것이며,여전히 우리가 죄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이미 죽은 자들은 더 이상아무런 소망이 없이 썩어져 없어 질 것이며, 우리 역시 죽음으로서 끝이날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금생으로 끝이 난다면 세상에서 크리스챤이야말로 가장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그리스도께서부활하지 않았 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고, 살아 있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삶이 있음을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인간의 삶이 금생으로 끝이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면 사는 영생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죽음 저 너머에 또 하나 의 새로운 삶이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수요예배 시간에 전도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미 생각해 보았지만,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 교 중에 죽음을 축하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거의모든 종교와 문화가 출생을 축하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축하할 수 있는 것, 이것은기독교의 복음만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 게는 죽음 저너머에 부활의소망이 있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성도에게 있어서가장 위 대한 소망이 되기 때문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있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성경에서 죽음을 자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입니까 잔다는 것은 언젠 가 깨어날 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이것은 곧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남은 생애가얼마나 될른지 알 수는 없지만, 죽음 저 건너편에 있는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면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4.마지막으로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어야 합니까 부활의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우리들끼리만부활의 환희와 기쁨 속에 안주해 버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문제는 이 부활의 신앙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 적용하느냐 그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여러분!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신 주님의 뜻이 과연무엇이 겠습니까 그것은한마디로 말해서 오늘 우리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신앙을 가질뿐만아니라, 이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40여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복음서기자는 공통적으로 강조하고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마가복음에는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15) 누가복음에는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24:48) 요한복음에는 베드로에게 세번씩이나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17)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제자들 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고, 이 명령에 기초하여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담대하 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외쳤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한 부활의 신앙은 자기 자신의 구원 신앙에만 도취되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차원으로 승화되어 증인의사명을 감당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부활의신앙을 소유하셨읍니 까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증인의 사명은 매우 무겁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하게 외쳤던 것처럼, 오늘을 사는우리들도 이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아직도 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죽어가는 우리의 이웃과 세계 모든 민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명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고,우리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으며, 세상 끝날 까지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부활의 산 증인으로서 사명을잘 감당하는 여러 성도들이 되 시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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