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을 통하는 승리 (고전15:50-58)
본문
인생의 모든 이에 최종적인 승리의 원인은 어떤 환경의 여건보다도 자신의 의지문제에 달려 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사회와 인류를 행복하게 만 드는데 공헌을 끼치고 있는 것이라는 긍지의 자부심고, 또한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는 승리에의 확신이 그 일의 성 패를 좌우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최종 승리에 대한 확신과 이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에야만 사람 은 절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정말 내게 확신되어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제조건이 따르게 된다.
첫째는 현재 내가 받고 있느니 [고난에 의미]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단순히 인과응보적인 '해서, 했기 때문에. 이러하다'는 식이 아닌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두번째는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의 출처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내 잘못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 고 있는 고난이며, 아버지의 뜻 안에 있기에 궁극적인 승리가 확실함을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십자가의 끝에 다다라서 면 류관을 차지하리라는 보장의 약속된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승리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사망을 향해서도 "사 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책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살기 때문이다. 본문 51절에서 사도바울은 한가지 놀라운 비밀을 말해 주고 있다. 주님의 재림 때에 우리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게 될 터인데, 먼저는 죽은 자들 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그 후에 우리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살전 4:16-17). 그러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환난의 때에 성도가 휴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도 그 의견이 분 분하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환난 전 휴거설]이다. 주님 재 림의 마지막 때에 이 땅위에 엄청난 재앙의 환난이 있게 될 터인데, 택함받 은 성도(교회)들은 그 환난을 통고하지 않고 환난 직전에 공중으로 들림받 아 환난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럴까정말 그럴까 주 님의 은혜로 우리에게는 결코 그 어떤 재앙의 환난도 임하지 않게 된단 말 인가 그러나 이 견해는 분명 잘못된 해석이다. 좀 지나친 말 같으나 이러 한 성경해석의 오류가 결국은 우리의 신앙을 저급하게 하였으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하기 보다는 그저 '값싼 은혜(Cheap Grace) '로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 들이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분명히 본문 (15절)은 우리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게 되는 시기가 변화 하게 되는 시기가 [마지막 나팔]때임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심판의 일곱 나팔에서, 우리의 변화는 바로 그 마지막 나팔인 일곱번째의 나팔 소리가 나게 될 때에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지막 심판재앙의 환난을 알리는 일곱번째의 나팔소 리를 듣고, 그리고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도 의 소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여섯개의 환난을 통과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이 에 사도바울은 울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깨어 있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환난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의 길 로 인도하실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의 조건이며, 승리의 비결 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환난을 통과할 수 있도록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첫째는 현재 내가 받고 있느니 [고난에 의미]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 단순히 인과응보적인 '해서, 했기 때문에. 이러하다'는 식이 아닌 분명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인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두번째는 자신이 받고 있는 고난의 출처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필요하다. 내 잘못으로 인한 고통이 아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 고 있는 고난이며, 아버지의 뜻 안에 있기에 궁극적인 승리가 확실함을 믿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십자가의 끝에 다다라서 면 류관을 차지하리라는 보장의 약속된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승리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사망을 향해서도 "사 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책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살기 때문이다. 본문 51절에서 사도바울은 한가지 놀라운 비밀을 말해 주고 있다. 주님의 재림 때에 우리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게 될 터인데, 먼저는 죽은 자들 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그 후에 우리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살전 4:16-17). 그러면 그 시기는 언제인가 환난의 때에 성도가 휴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도 그 의견이 분 분하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환난 전 휴거설]이다. 주님 재 림의 마지막 때에 이 땅위에 엄청난 재앙의 환난이 있게 될 터인데, 택함받 은 성도(교회)들은 그 환난을 통고하지 않고 환난 직전에 공중으로 들림받 아 환난의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럴까정말 그럴까 주 님의 은혜로 우리에게는 결코 그 어떤 재앙의 환난도 임하지 않게 된단 말 인가 그러나 이 견해는 분명 잘못된 해석이다. 좀 지나친 말 같으나 이러 한 성경해석의 오류가 결국은 우리의 신앙을 저급하게 하였으며,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게 하기 보다는 그저 '값싼 은혜(Cheap Grace) '로 십자가의 사랑을 받아 들이게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분명히 본문 (15절)은 우리가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게 되는 시기가 변화 하게 되는 시기가 [마지막 나팔]때임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한다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언급하고 있는 심판의 일곱 나팔에서, 우리의 변화는 바로 그 마지막 나팔인 일곱번째의 나팔 소리가 나게 될 때에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마지막 심판재앙의 환난을 알리는 일곱번째의 나팔소 리를 듣고, 그리고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도 의 소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여섯개의 환난을 통과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이 에 사도바울은 울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깨어 있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환난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의 길 로 인도하실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의 조건이며, 승리의 비결 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환난을 통과할 수 있도록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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