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기도(3) (에4:16)
본문
본문 어디에도 “기도”나 “하나님”에 대한 표현은 보이지 않지만, 이 구절은 분명히 성도의 간절한 기도를 일컫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이며, 그 다음은 민족과 동포를 위하는 선한 신앙의 결심입니다. 끝으로 우리가 이 구절에서 살펴봐야 할 내용은,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완전한 헌신의 기도입니다. (창 43:14)
즉, 자신의 일신상의 안위와 평안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죽어도 민족과 동포를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위대한 여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단의 기도는 이런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 결단의 삶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잘 명심해서, 어떤 경우도 부름 받은 자로서의 확신 속에서 담대한 기도의 삶과 훈련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딤후2:4)
에스더-교회를 예표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서
그녀의 존귀에서
그녀의 중보에서
모르드개-시련을 통해 남은 유다인을 예표한다.
1)이 신앙의 담대함이란 즉,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생명을 건다
삼십일 동안 왕을 알현하지 못했던 왕비가 자기 생명을 거는 시간입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습니다.
2) 선한 것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선한 것에 여러분의 신앙을 결심하십시오. 선한 일에, 즉,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에 마음을 돌리시고 신앙의 방법으로만 몰두하십시오. 담대한 기도 담대한 신앙인으로 스스로 변하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존 록펠러는 그의 나이 53세에 세계에서 한 사람뿐인 억만장자가되었다. 그러나 이즈음 그는 탈모에 몸이 오그라드는 독두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다.그는 웃음과 삶의 의미를 잃고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날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내세에 갖고 갈 것도 못된다는 것을 깨닫고 '록펠러재단'을 설립,교회를 세우고 극빈자를 돕기 시작했다.그때부터 그는 웃음을 되찾았고 건강도 회복,무려 98세까지 살았다.
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창 43:14의 야곱 이스라엘의 다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림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베냐민이 볼모로 잡히게 되는 순간 이미 신앙으로 결과를 내어 맡깁니다.
이 문제는
1) 하나님께서 과거 요셉을 보내신 것처럼 또 나의 자식을 요구하시는 구나!
2) 같은 일이 반목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겠다 하는 확신이 생깁니다.
로버트 모패트(1795-1883년)는 남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다.그는 선교활동중 고향인 영국에 잠시 들러 후원을 호소했는데 첫번째 교회에 들어섰을 때 무표정한 서너명의 여신도밖에 없어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그래도 그는 잠언8장4절을 인용,'사명의 고귀함'에대해 설교했다.
그가 설교하는 동안 남자라고는 오르간에 바람을 집어 넣는 소년 조수 한명밖에 없었다.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놀라웠다.아무도 안들었을 것같은 그의 설교를 이 소년이 듣고 감화를 받아 후에 위대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다.그의 이름은 리빙스턴이었다.
결론
1) 자기 중심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에스더의 이런 기도가 가능했던 배경은 바로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 성도의 삶에서 비롯됩니다.
예화)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다.그날 밤 신비한 노인이 나타나 산모에게『이 아이를 위해 한가지 소원을 말해 보라』고 했다.산모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아이는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만 했으며 정작 어른이 되자 주위의 지나친 사랑으로 자신만 을 지키는 '정신적인 미숙아'로 머물렀다. 그때 다시 노인이 나타나 '성장한 아들'에게 만족하느냐고 물었다.비로소 그는 『사랑을 받기보다 남에게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해달라』고 말했다.헤르만 헤세의 '어거스터스'라는 단편.베푸는 삶이 더 행복하다.
2) 우리 무엇에 부름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단의 기도 방법을 쓰는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지위와 권세의 방법을 쓰지 않았으며, 동시에 왕비의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에 4:14 의 모르드개의 권면이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딤후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즉, 자신의 일신상의 안위와 평안에 매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은 죽어도 민족과 동포를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위대한 여성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단의 기도는 이런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 결단의 삶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잘 명심해서, 어떤 경우도 부름 받은 자로서의 확신 속에서 담대한 기도의 삶과 훈련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딤후2:4)
에스더-교회를 예표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서
그녀의 존귀에서
그녀의 중보에서
모르드개-시련을 통해 남은 유다인을 예표한다.
1)이 신앙의 담대함이란 즉,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 생명을 건다
삼십일 동안 왕을 알현하지 못했던 왕비가 자기 생명을 거는 시간입니다.
바울의 고백과 같습니다.
2) 선한 것에 소망을 두고 있습니다.
선한 것에 여러분의 신앙을 결심하십시오. 선한 일에, 즉,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에 마음을 돌리시고 신앙의 방법으로만 몰두하십시오. 담대한 기도 담대한 신앙인으로 스스로 변하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존 록펠러는 그의 나이 53세에 세계에서 한 사람뿐인 억만장자가되었다. 그러나 이즈음 그는 탈모에 몸이 오그라드는 독두병에 걸려 의사로부터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다.그는 웃음과 삶의 의미를 잃고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러다 어느날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내세에 갖고 갈 것도 못된다는 것을 깨닫고 '록펠러재단'을 설립,교회를 세우고 극빈자를 돕기 시작했다.그때부터 그는 웃음을 되찾았고 건강도 회복,무려 98세까지 살았다.
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창 43:14의 야곱 이스라엘의 다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림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베냐민이 볼모로 잡히게 되는 순간 이미 신앙으로 결과를 내어 맡깁니다.
이 문제는
1) 하나님께서 과거 요셉을 보내신 것처럼 또 나의 자식을 요구하시는 구나!
2) 같은 일이 반목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이 일은 분명히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겠다 하는 확신이 생깁니다.
로버트 모패트(1795-1883년)는 남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다.그는 선교활동중 고향인 영국에 잠시 들러 후원을 호소했는데 첫번째 교회에 들어섰을 때 무표정한 서너명의 여신도밖에 없어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그래도 그는 잠언8장4절을 인용,'사명의 고귀함'에대해 설교했다.
그가 설교하는 동안 남자라고는 오르간에 바람을 집어 넣는 소년 조수 한명밖에 없었다.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놀라웠다.아무도 안들었을 것같은 그의 설교를 이 소년이 듣고 감화를 받아 후에 위대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다.그의 이름은 리빙스턴이었다.
결론
1) 자기 중심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에스더의 이런 기도가 가능했던 배경은 바로 자기 중심적이지 않은 성도의 삶에서 비롯됩니다.
예화) 기다리던 아들이 태어났다.그날 밤 신비한 노인이 나타나 산모에게『이 아이를 위해 한가지 소원을 말해 보라』고 했다.산모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아이는 자라면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만 했으며 정작 어른이 되자 주위의 지나친 사랑으로 자신만 을 지키는 '정신적인 미숙아'로 머물렀다. 그때 다시 노인이 나타나 '성장한 아들'에게 만족하느냐고 물었다.비로소 그는 『사랑을 받기보다 남에게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해달라』고 말했다.헤르만 헤세의 '어거스터스'라는 단편.베푸는 삶이 더 행복하다.
2) 우리 무엇에 부름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왕비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단의 기도 방법을 쓰는 이유를 살펴봐야 합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지위와 권세의 방법을 쓰지 않았으며, 동시에 왕비의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고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에 4:14 의 모르드개의 권면이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딤후 2: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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