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되새김질 (고전3:18)
본문
“되새김하는 일”은 어느 특정한 동물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람에게도 되새김질은 아주 중요한 기능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애초 무시해 버렸을 때 삶의 건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느낌과 생각에 대하여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되새김질이 언제나 필요합니다. 달리말하여 “우리가 선택한 일은 과연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던가, 우리의 생각은 너무 한쪽 치우치지는 않았는가, 우리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실했는가, 마음의 건강함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가” 등등을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로써 새로운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하게 될 또다른 선택과 행동들이 바른 방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되새김질을 “반성”이라고도 표현 합니다. “돌이켜 살피는 일”,“자신의 판단과 행위에 어그러짐이 없는지를 살피는 것”을 뜻 합니다. 실로 이러한 성실한 “반성” 혹은 “되새김질”은 우리의 판단에 활기를 불어넣는 저력이 되곤 합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러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일은 헛되지 않습니다. 마치 호흡하는 일이 그러하며, 우리의 소화기능이 언제나 쉬임없이 반복되는 일이지만 언제나 중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삶의 되새김질”은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에 서투르거나 아예 관심 밖인 경우에 사실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위장장애” “소화불량”이 곧바로 건강한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거짓없는 솔직한 “되새김질”이 없는 삶은 곧바로 “건강함을 잃어버린 삶”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결코 자신을 속이려 들지 않는 것”이 되새김질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언제나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쉽사리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 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송곳같은 예리함으로 비난하며 비판하는 사람도 자신에게는 그렇게 넓은 포용력으로 대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실수와 판단과 행동에 대하여 관대하다 못해 연민을 가지기 까지 합니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솔직하게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새로운 돌파구와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성”하는 일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투명한 태도”의(고전3:18) 다른 이름입니다. 보다 더 철저하게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고 투명하고 엄정하게 자신을 바로보는 태도는 살아있는 만남과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도 이러한 생기로운 힘이 일정하게 전달되는 까닭입니다. “삶의 되새김질”은
그러므로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이며,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마땅한 일입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새우며 새롭게하는 일입니다. 말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의미심장한 일인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어느 누구도 자기기만에 빠져서는 않된다”(3:18a)고 경고합니다. 누구라도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않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어디서 어그려졌는지를 솔직하게 살피는 것을 오히려 덜된 사람의 행동으로 생각하며, 언제나 자신의 판단이 옳고 그릇됨이 없다는 자기중심적인 판단으로 살아가는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꺼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일인 듯이 보여도 솔직하게 자신의 어그러짐을 돌이켜 생각하며 공동체 속에서 인정하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일을 더디게 한다”는 말을 듣거나, 또한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혹 들을 수도 있겠지만 기꺼이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해 지고, 투명해져야 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3:18b)” 많은 사람들의 “자기기만”을 “세련된 합리화”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려 들지 않고, 달리말하면 자신에 대하여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변명하기에만 정신이 없는 모습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아주 무게있고 세련되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무리 말하면서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한다고 해도 그것은 허공에 떠있는 말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헛된 것”(3:20)입니다. 이러한 일이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더 나빠지게 할 뿐이고, 자신의 삶의 건강성을 더욱 잃게 만듭니다. 변명은 또다른 변명을 낳고 변명은 자신을 교묘하게 둘러싸는 두터운 담이 되어 버립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자기 기만 속에서 자기 자신은 근본적으로 뿌리로부터 병들고 썩게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차라리 바보가 되라”는 말이 더욱 크게 울려옵니다.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자신의 판단과 행동의 어그러짐을 바로 보는 사람은 다시사작할 수 있고,
그러므로 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기꺼이 바보가 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한 성서의 말을 의미심장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되새김질 기능은 무사한지”를 물어야할 시점입니다. “돌이켜 살핌”,“자신의 판단과 행위에 어그러짐이 없는지를 살핌”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삶의 되새김질 기능이 살아있는지의 여부가 우리들이 보다 새롭게 될 수 있는지, 변화될 수 있는지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기만에 빠져서는 않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에 서투르거나 아예 관심 밖인 경우에 사실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위장장애” “소화불량”이 곧바로 건강한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거짓없는 솔직한 “되새김질”이 없는 삶은 곧바로 “건강함을 잃어버린 삶”으로 통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것”,“결코 자신을 속이려 들지 않는 것”이 되새김질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의 발단은 언제나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쉽사리 자기 자신에게 관대해 지는 것을 많이 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송곳같은 예리함으로 비난하며 비판하는 사람도 자신에게는 그렇게 넓은 포용력으로 대하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실수와 판단과 행동에 대하여 관대하다 못해 연민을 가지기 까지 합니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솔직하게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새로운 돌파구와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성”하는 일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투명한 태도”의(고전3:18) 다른 이름입니다. 보다 더 철저하게 자신을 돌이켜 생각하고 투명하고 엄정하게 자신을 바로보는 태도는 살아있는 만남과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자기 자신이 살아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도 이러한 생기로운 힘이 일정하게 전달되는 까닭입니다. “삶의 되새김질”은
그러므로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이며,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마땅한 일입니다. 이것은 서로가 서로를 일으켜 새우며 새롭게하는 일입니다. 말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내는” 의미심장한 일인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어느 누구도 자기기만에 빠져서는 않된다”(3:18a)고 경고합니다. 누구라도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않된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돌아보며 어디서 어그려졌는지를 솔직하게 살피는 것을 오히려 덜된 사람의 행동으로 생각하며, 언제나 자신의 판단이 옳고 그릇됨이 없다는 자기중심적인 판단으로 살아가는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기꺼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어리석은 일인 듯이 보여도 솔직하게 자신의 어그러짐을 돌이켜 생각하며 공동체 속에서 인정하는 “바보”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이 “일을 더디게 한다”는 말을 듣거나, 또한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진취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혹 들을 수도 있겠지만 기꺼이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해 지고, 투명해져야 합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3:18b)” 많은 사람들의 “자기기만”을 “세련된 합리화”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려 들지 않고, 달리말하면 자신에 대하여 되새김질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변명하기에만 정신이 없는 모습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아주 무게있고 세련되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무리 말하면서 자신을 변호하고 변명한다고 해도 그것은 허공에 떠있는 말에 불과합니다. 한마디로 “헛된 것”(3:20)입니다. 이러한 일이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더 나빠지게 할 뿐이고, 자신의 삶의 건강성을 더욱 잃게 만듭니다. 변명은 또다른 변명을 낳고 변명은 자신을 교묘하게 둘러싸는 두터운 담이 되어 버립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자기 기만 속에서 자기 자신은 근본적으로 뿌리로부터 병들고 썩게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차라리 바보가 되라”는 말이 더욱 크게 울려옵니다.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자신의 판단과 행동의 어그러짐을 바로 보는 사람은 다시사작할 수 있고,
그러므로 그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기꺼이 바보가 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한 성서의 말을 의미심장하게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되새김질 기능은 무사한지”를 물어야할 시점입니다. “돌이켜 살핌”,“자신의 판단과 행위에 어그러짐이 없는지를 살핌”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는 삶의 되새김질 기능이 살아있는지의 여부가 우리들이 보다 새롭게 될 수 있는지, 변화될 수 있는지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기만에 빠져서는 않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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