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새로운 각성 (고전2:1-2)
본문
바울은 일찍이 고린도에서 전도하기 전에 희랍 아덴의 아레오바고에 서 설교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대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철인 들이 활동하던 곳이요, 또 지식인들의 열띤 토론의 광장인 아레오바고 에서 설교를 하게 된 바울은 자기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합리적이고 지성이 담긴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2-31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그의 설교는 사상적으로 흠잡을데 없는 훌륭한 설교였으며 희랍의 문화인들이 듣기에 매우 적 절한 설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바울의 설교 결과는 별 소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 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후에 "몇 사람이 그를 친히 믿으니" (행 17:34)라고 기록한 내용으로 미루어 볼때 바울의 설교는 별다른 성과 를 올리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학문의 조예가 별로 없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3,000명씩 "선생들아 우리는 어찌할꼬" 하면서 가슴을 치며 회개한 역사에 견주 어 본다고 하면 너무도 의외의 결과에 대해서 바울은 커다란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가지 고 있는 바울이 고린도에 오게 되었습니다. 고린도에 와서 새로운 전도를 시작한 바울은 아덴에서 겪은 실패의 경험을 거울삼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 고 작정하였다"고 그의 피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은 인간의 지혜와 아름다운 말로 아덴 시민에게 전도하려던 계획 이 실패한데서 크게 깨달은바 있어서 이제부터는 사람의 지혜와 사람 의 말이 아니라 성령님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아니하기"로 일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후부터 바울의 선교 전략에는 큰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당 시의 대학자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석학 바울은 함부로 사람의 환심 을 사려고 하지를 않았으며 또 조금도 자기의 지식을 과시하려고도 하 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비평을 받거나 조롱을 당하거나 무엇이 라고 말하건 간에 오로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로 서 이것 이외에는 사람을 구하는 길이 달리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전도하는데 있어서 전도자가 지혜 가 있고 말을 잘하는 것은 다소간의 도움은 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성령님의 권능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나 전도사나 복음을 선포 하고 증거하는데 있어서, 장로나 집사가 교회를 봉사하는데 있어서, 말로, 재능으로, 돈으로, 수단으로, 권력으로 하면 대개의 경우 실패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옛날 스룹바벧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 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경 구절에서 우리가 크게 배워야 할 것은 바울이 자기의 지 혜를 가지고 전도하려다 실패한 것을 거울로 삼아 "이제부터는 사람의 지혜나 말로 전하지 않기로" 작정한 이 결심을 다시 말하면 신앙적으 로 일대 각성한 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앙의 각성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크게 요구되는 시 점에 서 있습니다. 현대는 "불신의 시대" 로서 신앙이 외면당한 시기 에 놓여 있습니다. 잘 믿는다는 사람들의 신앙도 깊이 진단을 해보면 문제점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오랜 신앙의 습성에 젖어서 '타 성화된 신앙'이며, 그래서 신앙생활이 무기력하고 생활의 힘을 잃어버 리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교회 출석의 반복으로 만족하는 '바리새화 "된 오늘날의 이러한 신앙에는 일대 수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 신앙적 권태기에 빠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 히에 정기적으로 출입을 하고 있지만, 기도를 드리고 성겨을 읽지만 마음에 넘치는 감격과 기쁨, 생명력있게 주님께 봉사하는 생동하느 힘 을 잃고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능력을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자기 합리화 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기력한 신앙, 게으르고 잘못된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를 은폐하거나 내 사정과 형편을 잘아 시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하고 자기의 입장을 합리시키고 거 기서 위로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자기의 삶을 개혁하려는 의도가 엿보 이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변역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우유부단하게 하루 하루 미뤄나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자기 기만이며 하나님께 대한 일련의 죄요 신앙의 일대 위기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 해 내랴"고 뼈를 깎듯이 외친 바울의 심정으로 돌아가 통회의 심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에게 가끔 보오링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 도 신앙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이래가지고 되겠는가" 고 자기 자신 에 대해서 철저한 비판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범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때 이것을 속히 깨닫는 지혜와 이것을 고쳐 서 개혁하려는 노력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 회망이 없는 사람으로 버림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설교 가운데 "신자 안에 있는 죄", "신자의 회개생활 풍습의 개혁"이라는 제목의 설교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 면 모든 사람에게는 그가 의롭다함을 얻은 후일지라도 거기에는 두 개 의 상반되는 세력 곧 육과 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들에게 있어서 보다 더욱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원수에 대항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자기의 길'을 걸어 갈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리에서 회개해야 하며 그러기에 위로부터 순간 순간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더욱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회개란 희랍어로 ' 메타노이아'입니다. 그것은 가던 길을 180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일시에 바구어 참된 길로 걸어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괴로움과 잘모과 오만과 불신앙의 죄를 성령님 의 책망을 받는 이 시간에 크게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바울이 스 스로의 과오에 대해서 "크게 각성" 하여 그 방햐을 신속하게 전환한 것처럼 우리 신앙에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에 한번쯤은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10분 동안만이라도 좋습니다. 조용한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사람다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것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고 있으며 내가 해야 할 구실을 제대 로 다하고 있는가 나를 속이고 또 남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있지 나 않은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진지하게 자기 반성과 기도의 시 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참 신앙 생활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참 신앙 생활은 부단한 깨달음과 개혁과 결심 그리고 즉각적인 행동으로 전환 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을 향한 삶이 되어서 감사와 기쁨과 보람찬 나날이 되도록 인생 항로의 키를 바로 잡고 힘차게 전진해 나갑시다.
이것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로 서 이것 이외에는 사람을 구하는 길이 달리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전도하는데 있어서 전도자가 지혜 가 있고 말을 잘하는 것은 다소간의 도움은 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성령님의 권능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나 전도사나 복음을 선포 하고 증거하는데 있어서, 장로나 집사가 교회를 봉사하는데 있어서, 말로, 재능으로, 돈으로, 수단으로, 권력으로 하면 대개의 경우 실패 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옛날 스룹바벧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 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경 구절에서 우리가 크게 배워야 할 것은 바울이 자기의 지 혜를 가지고 전도하려다 실패한 것을 거울로 삼아 "이제부터는 사람의 지혜나 말로 전하지 않기로" 작정한 이 결심을 다시 말하면 신앙적으 로 일대 각성한 점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앙의 각성이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크게 요구되는 시 점에 서 있습니다. 현대는 "불신의 시대" 로서 신앙이 외면당한 시기 에 놓여 있습니다. 잘 믿는다는 사람들의 신앙도 깊이 진단을 해보면 문제점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오랜 신앙의 습성에 젖어서 '타 성화된 신앙'이며, 그래서 신앙생활이 무기력하고 생활의 힘을 잃어버 리고 있습니다.
형식적인 교회 출석의 반복으로 만족하는 '바리새화 "된 오늘날의 이러한 신앙에는 일대 수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 신앙적 권태기에 빠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 히에 정기적으로 출입을 하고 있지만, 기도를 드리고 성겨을 읽지만 마음에 넘치는 감격과 기쁨, 생명력있게 주님께 봉사하는 생동하느 힘 을 잃고 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능력을 잃어버린 상황 속에서도 자기 합리화 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기력한 신앙, 게으르고 잘못된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를 은폐하거나 내 사정과 형편을 잘아 시는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겠지 하고 자기의 입장을 합리시키고 거 기서 위로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자기의 삶을 개혁하려는 의도가 엿보 이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새로운 변역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우유부단하게 하루 하루 미뤄나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자기 기만이며 하나님께 대한 일련의 죄요 신앙의 일대 위기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 해 내랴"고 뼈를 깎듯이 외친 바울의 심정으로 돌아가 통회의 심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자동차에게 가끔 보오링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 도 신앙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이래가지고 되겠는가" 고 자기 자신 에 대해서 철저한 비판을 가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르고 범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되었을 때 이것을 속히 깨닫는 지혜와 이것을 고쳐 서 개혁하려는 노력과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그 사람은 정말 회망이 없는 사람으로 버림받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설교 가운데 "신자 안에 있는 죄", "신자의 회개생활 풍습의 개혁"이라는 제목의 설교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 보 면 모든 사람에게는 그가 의롭다함을 얻은 후일지라도 거기에는 두 개 의 상반되는 세력 곧 육과 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들에게 있어서 보다 더욱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원수에 대항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는 '자기의 길'을 걸어 갈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자리에서 회개해야 하며 그러기에 위로부터 순간 순간 베풀어 주시는 은총이 더욱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회개란 희랍어로 ' 메타노이아'입니다. 그것은 가던 길을 180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일시에 바구어 참된 길로 걸어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괴로움과 잘모과 오만과 불신앙의 죄를 성령님 의 책망을 받는 이 시간에 크게 뉘우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바울이 스 스로의 과오에 대해서 "크게 각성" 하여 그 방햐을 신속하게 전환한 것처럼 우리 신앙에 반성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에 한번쯤은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 10분 동안만이라도 좋습니다. 조용한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사람다운 올바른 삶을 살 수 있는것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을 걷고 있으며 내가 해야 할 구실을 제대 로 다하고 있는가 나를 속이고 또 남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고 있지 나 않은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진지하게 자기 반성과 기도의 시 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참 신앙 생활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참 신앙 생활은 부단한 깨달음과 개혁과 결심 그리고 즉각적인 행동으로 전환 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님을 향한 삶이 되어서 감사와 기쁨과 보람찬 나날이 되도록 인생 항로의 키를 바로 잡고 힘차게 전진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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