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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과 사도 (고전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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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간 지내면서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마치 외국에서 한국을 보면서 “무척 흥미있는 나라다”라고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각 통신사가 한국에도 다 들어와 있는데 해외 토픽란에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한국에 관한 소식이 외국에서 일어나는 것보다 특종이면 외국에 특종기사로 다 나갑니다. 지난 달과 이달 계속 국제 특보를 날려 보내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일어난 일중에 요즘 한강 다리를 건너는데 굉장히 편하다고 합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아침이 좋지 않다고 하여 오후에 건너려고 하는 사람들, 강북에서 강남에 와야 되는데 한강 다리를 건너면 마치 다 죽는 것 같아서 차들이 굼뱅이 걸음을 하고 건너던 곳을 고속도로에서 다니던 속도로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식들이 꼭 TV를 보지 않고 신문을 보아도되고 전화를 통해서도 우리들에게 연락이 되어서 강남에 사는 사람은 앞으로 강남에서만 살고 강북에서 사는 사람은 강북에서만 살면 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강북에 사는 사람은 강남에 올것이고, 강남에 있는 사람은 강북에 갈것입니다. 제가 이러한 얘기를 왜 하느냐하면 사람들은 각자 자기들이 전해야될 소식들이 있고 말하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 이 시대를 우리가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가를 늘 살피며, 하나님의 뜻을 전파할수 있는 그러한 좋은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성경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소식을 전할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시대에는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있습니다. 엡4:11에 보면 5가지 직분이 나오는데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교사, 목자. 다섯가지 직분을 주셨습니다. 이 다섯가지 직분은 어떤 환경과 어떤 입장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교사’는 가르치고, ‘목자’는 인도해 주고, 복음을 전해주고, 그래서 복음 전하는자와 교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교사’는 데려온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요. ‘복음전하는 사람’은 나가서 선포해 주는 것입니다. 선포하고 데리고 와서 가르쳐주면 무엇이 됩니까 ‘복음 전하는 사람’과 ‘교사’의 두가지를 다 구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하나님이 계신쪽으로 계속 인도하는 삶을 살 때 그 사람은 목자가 됩니다.
“사도(아포스텔로)”와 “선지자”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도’와 ‘선지자’입니다. 구약에서는 직분이 ‘제사장, 왕, 선지자’ 세 직분을 하나님이 허락을 하셨습니다. ‘제사장, 왕, 선지자’ 이전에는 ‘족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족장이었고, 노아도 족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셋으로 나누었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역을 하실때에 제자들을 ‘사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포스텔로=사도”인데 사도는 무슨 뜻이며, 선지자는 무슨 뜻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복음 전하는 사람들이 ‘사도권’, 부흥회 많이 다니시는 분들은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와 있는 뜻대로 말하고 살지 아니하면 자기가 아무리 사도, 선지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를 버린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라는 말은 “프로페니” ‘프로=미리, 앞에, 전에’, ‘페니=말하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말라기까지 계속 나오는데 무엇을 하는 사람들 이었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일” 그 당시의 일도 말하지만 앞으로 되어질 일을 미리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선지자다’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세상 말이나하고 사람의 일 가운데에서 돌아 다니는 사람은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말에는 그것을 ‘똘’을 붙입니다. 똘이 무엇입니까 ‘똘중’, ‘똘목사’, ‘똘 선지자’이것은 ‘똘똘’이 아니라 ‘잘못된 똘’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앞으로 되어질 일을 말해서 사람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부흥 강사를 하고 다녀도 하나님 나라 이외에 세상 일에 빠져서 텀벙대고 다니면 그 사람은 “똘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사도”라는 것은 무엇이냐 “아포=1로부터” “보내다”라는 말인데 누가 보냈느냐 사람이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주님에게 은혜를 받으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교사, 목자 이 다섯 가지 일을 다 갖추고 일을 해야 되는데 복음을 전하는 것도 “프로페테스=선지자”의 일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현재의 일과 되어질 일을 전부다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데 보내서 무엇을 말합니까 “선지자의 일”을하고 “복음을 전하고” “교사와 목자의 일”을 전부다 겸비할 수 있는 그러한 기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사도권이라고 하는데 성경이 말하는 “사도”와 사람들끼리 만들은 “사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로 오셨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사도) 중에서 수석 사도가 베드로였으며, 그래서 베드로를 사도중에 사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천주교에 가면 베드로로부터 무엇을 받았다고 합니까 마16:19 “내가 네게 천국 열쇠를 주리니” 그래서 천국 열쇠를 베드로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자기들이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사도입니다. 그러면서 사도가 계속 내려 왔는데 오늘날까지 천주교만이 자기들만이 정통이라고 말을합니다. 그리고 다른 모든 기독교는 정통이 아니다고 말합니다. 정통이 아니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천국을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왜 아무도 없느냐 천국을 가려면 죄 사함을 받아야 되는데 죄사함을 누가 주느냐 예수로부터 사도권을 받은 베드로의 제자들인 자기들이 자기들에게 와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을 자기들이 죄를 사해 주기 때문에 자기들이 죄를 사해주지 아니한 모든 기독교인들은 천국과 무관하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부 어디를 간다는 말입니까 ‘지옥간다’는 것입니다. 그럴까봐 그런 사기를 중간에서 칠까봐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느냐 사도를 또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느 사도를 만들었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되어진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전부가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 교사, 목자입니다. 이제는 사도권을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두 종류의 사도! 그러니까 사도권을 두종류가 가지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 하나는 오늘 여기 등장하는 “바울”이라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안에 있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주님도 사도, 선지자 이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자들도 자동으로 사도, 선지자가 되며 죄사함도 자동으로 부여 받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인간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죄사함을 해 주셨다는 것인데 그 증거가 무엇이냐 우리가 주안에 있는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누구에 의해서 내가 어제 어디에 가서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신부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고 죄 사함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 죄 사함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은 주님으로 부터지 사람들이 아니다 하시고 주님이 말하신 것을 마틴 루터가 현실화 시켰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그래서 사도라고 하는 사람들은 고전1:1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입니다. 그들은 롬1:6에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예수님의 소유가 된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바로 “부르심을 받은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는 “보냄을 받은자” 그리고 그들은 주님이 보내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아가서 선지자의 일을 하고 미리 말할때에도 사람이 보낸 사람으로 사람에게 말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시대에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외국에 알려주고 그것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 있는것같이 우리는 천국의 소식을 전해주는 사도로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일을하러 보내면 보낸 사람의 말을해야지 가서 다른 사람의 말을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라고하는 직분을 바울에게 주셔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으로 사도의 일을 한 것같이 우리도 바울의 일이 우리의 일이요 주님의 일이 우리의 일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눅4:18에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는데 “주의 성령님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셨다”고 말했습니다.
눅4장 주님이 크셨던 고향 나사렛에서 선지자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말합니다. “나를 보내셨다” 무엇 때문에 보내셨느냐 포로된자에게 자유를 보지 못하는 자에게 볼수 있도록하시고 눌린자를 자유하게 하시고 주의 은혜의 해가 모든 사람에게 이루어지도록 하라고 나를 보내셨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예배가 끝난 후에 또 세상에 나아갑니다. 나아갈때에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아간다는 것은 “보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밖에 나아가서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프로페테스=선지자”로서의 삶과 그리고 누가 보냈느냐 하나님이 보내신 “아포스텔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을 미리 말하는 사람의 삶을 우리는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전하는 자가없이 누가 들을수 있느냐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천국이 전파될수 있느냐” 라고 얘기를 하십니다. 그래서 마10:5에서도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시면서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내보내다”는 것이 “아포스텔로”라는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보내셨느냐 예수님으로부터 보내짐을 받았다고 할 때에 “보냈다”는 것은 사도로 내어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루어질 일을 미리가서 전파하라고 내어보내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마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마 10:6)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 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우리는 이제는 천국이 가까히 와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지금 복음을 전파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한 소식을 전파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나를 보내셔서 포로된 자에게, 갇힌 자에게, 병든 자에게, 모든 것을전파하는 것같이 예수님도 제자들을 내어 보내 십니다. 내어 보내실 때 “아포스텔로” 곧 “사도”로 내어 보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도 말씀이 끝나고나면 밖으로 내어 보내 지는데 어느말을 많이 하고 살았느냐 살았던 목적이 한주간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을 하고 한번 정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내어 보내는데 그 후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되어질 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그래서 예수님도 당신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내어 보내짐을 받고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굉장히 강조를 합니다. 아들은 밖에 나아가면 아버지의 뜻을 제일 먼저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는 것이 자기의 일입니다.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그래서 예수님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교사, 목자로 사셨지만 주님이 사신 것은 미리 말해 주시는 것 가운데 무엇을 말하느냐 “내게오는 자는 내가 살려 주겠다”고하는 “아버지의 뜻이 나는 너희를 통해서 이루겠다”는 말씀을 해 주시고 계십니다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찬송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뒤돌아 서지 않겠네!” 그래서 주님의 뜻대로 어떻게 살았습니까 여러분들에게 보내어지는 사람들을 살려주는 일을 할수 있도록 빨리 커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보내주는 자를 살려주는 것은 사람의 말로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나님의 존재와 형상이 심어짐으로 내게 보내주신자를 살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각자 보면 한주간에 만나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장에서 만나기도하고 집에 있다가보면 누가 오기도하고 내가 나가다가 보면 누구와 만나기도하고 대화도 합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모든일에 핵심이 어디에가 있느냐 성경에 관한 이루어지고 또 이룰어 질일에 대해서 말할수 있도록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냥 세상 말만을 하고 끝나면 완전히 자기만을 위해서 산 것이 되는 것입니다. 농사를 짖는 사람들은 보면 농사만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많이 놀러 다니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서울 사람들이 아닙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첫째둘째를 다툽니다. 이 사람들은 농사를 짓는 것이 본업인데 농사를 짓는 사이 사이를 이용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도 놀러갑니다. 왜냐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일년에 네 번을 놀러가는 것이 요즈음 농촌 사람들의 사정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농사일을 게을리 하느냐 아닙니다. 농사를 짓는 것이 현대화 되다가 보니까 시간이 많이 남는 것입니다. 놀러만 다니려는 사람은 문제가 있지만 자기 일을 다하는 농부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하루에 10 시간을 나가서 일하는데 30분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마음속에 생각을하고 있었다면 나에게 와주는 사람에게 30분이라도, 10분이라도 복음을 전했다면 그 사람은 그날 하루 일과가 자기를 위해서 산 것이 아닙니다. 그 10, 20, 30분을 증거했던 그 마음이 그 하루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하나님의 일을한 사도라고 말해줄 수가 있습니다. 내게오는 사람에게 어떤 세상적인 이익을 바라보고 세상의 교제를 바라보고 하는 것이 덤이 되어버린 삶을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이 이땅에 오신 목적이 30년 동안의 생애를 덮어버리고 오직 3년 반동안 살았던 것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33년 반, 그중에 10분의 1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았는데 10분의 1인 3년 반동안을 사셨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밥도 안먹고 복음을 전했느냐 그것이 아니예요. 예수님도 제자들과 대화하시는 시간이 있었고 주무시는 시간이 있었고, 제자들과 농담도하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3년 반의 세월을 아버지는 인정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33년 반세월 전부를 네가 나를 위해서 살았다 하시고 인정을 해 주는 것과 똑같은 삶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 어떻게 살았든지 그것을 따지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남은 생애를 무엇을 주 목적으로 사느냐 하는 마음의 기본이 잡혀서 살면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데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그런 삶을 살때에 우리가 자식으로도 인정을 받지만 요1서5:14에서 보면 “내가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너희들에게 이것을 씀은 너희에게 영생이 있게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는 영생이 따라 다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일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만약에 요3장에서 “하늘로서 온 인자 외에는 다시 땅에 왔다가 하늘로 가는 자가 없다”고 말씀을 했다고해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할 일을 안하고 하늘로 가실수 있었느냐 가시지 못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가실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하늘로 가실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뜻을 다 마무리를 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늘에 가실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면 천국간다. 천국간다고 하는데 하늘나라는 제힘으로 가거나 자기 노력으로 갈수 있거나 한다면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하늘나라를 못갈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는데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외치셨던 말씀중에 하나, 그것을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기도하셨던 내용이 나옵니다. 마26:39이하에서 동일한 말씀으로 세 번 기도 하셨다고 나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마무리를 했습니다. 오직 한가지를 남겨놓으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자를 구원하러 오셨는데 예수님은 마지막 구원을 하셨습니다. 어디에서 십자가위에 매달려서 죽음을 눈앞에 보고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강도가 한사람 있었습니다. 물론 그 강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날강도 같은 강도들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보는 강도는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강도입니다. 예수님도 무엇으로 매어 달렸습니까 죄인으로 매어 달리셨습니다. 누가 인정하는 죄인입니까 인간들,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이 자기들 법에의한 죄인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십자가에서까지 마지막 한 사람을 구원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아이고 나 죽겠다. 힘들어 못하겠다고 해서 옆에 있는 십자가 우편에있는 강도를 구원을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누구의 뜻을 행하지 못한 것입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자 중에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살리겠다고 하는 일을 예수님이 여기에서 한국말로 농땡이를 피워 버렸다면 예수님이 부활하시는데 어떻게 되었겠느냐 한번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에도 무엇을 했느냐 이 십자가 사건을 눈앞에 놓고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서 기도를 하십니다. “아버지여!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해달라고 말하십니다. 아버지께서 그 잔을 옮겨 주셨겠습니까 안옮겨 주셨겠습니까 아버지는 그 잔을 옮겨주시지 안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매어 달렸을 때 예수님은 마27:48에서 보면 해융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서 장대에 매어 달린 것을 예수님은 받아서 마셨습니다. 앞으로 마태복음을 강해할 때 그 문제도 다시 또 풀겠습니다만 그 잔을 옮겨 달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옮겨주시지 않으시고 아들에게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내 뜻대로 마시고 나는 옮겨 주셨으면 좋겠지만 옮겨 주시는 것도 아버지의 뜻대로이지 옮겨주지 않으셔도 나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 할것입니다. 하고 예수님은 그 마지막 당신에게 닥쳐온 일조차 순종을 하셨습니다. (요일 2:17)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한국 말로는 영원히 거한다고 했는데 영원히 “거한다”를 헬라어에서는 “메노”를 썼는데 이것은 혼자 어디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거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이 영원히 살수 있도록 해 주신다고 하는 약속이 바로 이런 말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혼자서 거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는 말을 헬라어에서는 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삶으로 인해서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길들이 삶속에서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 뜻대로 살지 아니하면 내어 좇기기도 합니다. 부모 뜻대로 살지 아니하면 유산을 나누어 주겠다해도 또 바꾸어 버릴수가 있습니다. 누구에게 상속을 해줄것이냐를 가지고 세 아들을 놓고 고심한 곳이 어디에가 있습니까 삼성그룹이죠. 큰아들과 둘째아들에게 주어야 되겠다고 했다가 마지막으로 막내에게 갔습니다. 상속은 당현히 장자인줄로 알았지만 삼성그룹에서 그 회장이 되는 분은 막내에게 주어야 되겠다고 마지막으로 점을 찍어 버렸습니다. 왜 가장 누구의 뜻을 잘 행하니까 이병철 회장의 뜻대로 회사의 그룹을키우고 잘해 나갈 수 있는 아들로 마지막 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을 살다가 마지막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메노” 함께 살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온전히 행했을 때 즉 나아가서 보냄을 받은자로 하나님의 일을 미리 미리 되어질 일을 선포하고 사람의 일 가운데 취하지 아니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에서 그리스도의 사도, 그리스도의 것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한 사도바울의 삶은 우리가 이 세대에 천국 소식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또 전파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해야 되는데 그것은 전하는데 알겠습니다! 하고 나서 받고서 내 뜻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파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대로 전하라고 하시는 그대로 하는데 전하기만하면 되느냐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 기도 많이 말하는데 정말 주님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기도와,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의 기도는 다르다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요한 복음 9장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9장 31절을 봅시다. (요 9:31)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요 9:32)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요 9: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이건 무슨 이야기냐 바리새인들을 보고 “당신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께서 보냈다고 하지만 당신들의 여기서 말하는 데로 돌이다 돌! 하나님이 보낸 자들이 아니다는 그 말입니다. 내가 볼 때 왜 소경으로 난 자를 눈뜨게 한 것은 당신들이 아니라 바로 당신 들이 죄인이라고 하는 그 예수님이었다. 아버지 뜻대로 살고자 하는 아들의 사역에서 예수님이 원하는 일들은 아버지께서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하는 기도는 부모 뜻대로 살지 아니하면 여러가지 죄의식중에 뜻대로 살지 못한 의식이 마음 속에 남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죄인 죄인 하는데 무슨 죄인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는 죄가 우리들에게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 뜻대로 살지 아니하는 죄에서 빠져 나오려면은 그 뜻대로 살게끔 변화가 되어야 되요. 그래서 말씀대로 산다하는 이야기는 모든 일에 응답을 받는 거예요. 말씀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상고하지 아닐할 방법이 없습니다. 말씀을 따라 살아야 되기 때문에 시 1장1절에서 말하는 대로 “복있는 자는-”하면서 3절에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면서 주야로 묵상 하는 자로다” 하나님과의 말씀과의 관계가 매일 계속되기 때문에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져요 (시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다 형통, 불통하리로다예요 다 형통하리로다예요!.
우리가 오늘날 주님 뜻대로 아버지 뜻대로 산다는 이야기는 그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필요한 합당한 것들은 반드시 응답이 있어요. 그것을 따로 구하지 아니하여도-. 따로 구하지 아니하여도 생각해서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 조차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해결이 되요. 무엇만 열심히 하면 아버지 뜻대로 사람만 살리는 일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면 응답을 해주십니다. 그러니 지나고 보면 다 어떻게 되었어요. 해달라고 마음속에 깊이 생각하기 전에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했던 그러한 것들도 분명히 응답이 있어요. 우리에게 합당치 아니한것들은 생각을 해보았자 되지도 아니할뿐더러 또, 생각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데 있어서는 반드시 해결을 해 줍니다. 해 달라고 밤새 기도하지 아니하여도 해 주셔요. 물론 그러한 성장과 그러한 기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고난 이후부터는 분명히 역사 해주시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꼭 해 달라고 했더니-!. 그게 아닙니다. 해주었으면 참 좋겠다! 우리는 간구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왜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모든 역사를 우리는 보고 사는 것입니다. 간증은 일반적으로 어쩌다가 하나씩 쓰는 것을 간증을 하는데, 그것은 어린 아이적에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장성했다, 컸다하는 이야기는 모든 면에서 형통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형통하게 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나 (시 1:4)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악한 사람은 그러면 성경에서 악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예요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이 악한 사람이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다 지금 못해도 하겠다는 마음이 그 속에 자리를 잡을 때에 이때가 시작입니다. 이게 시작이예요.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구나! 하고 매일 고민하고 번민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자는 반드시 그의 삶이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대로 사는 자는 하나님이 그 행하시는 자들을 그대로 이끌고 인도해 주는 줄을 안다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살전 5장 16118절에 항상 무엇을 하라고 되어 있어요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그리고 그 뒤에 단서를 붙여 놓았어요. 어디 있을 때에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니깐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자기가 기뻐지는 것이고, 기도가 이루어지고, 감사할수 있는 것이지 그리스도밖에 혼자 떨어져 나가 버리면 감사도, 기쁨도, 기도도 시한부적인 것으로 잘라져 버린다는 말이예요. 그래서 우리가 주기도문이라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리스도 밖에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하는 기도입니다.
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할 때 주님과 함께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말게 해달라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시험에 들지 않는 것이고 악한 자에게서 우리를 구하여 달라는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악한 자가 손도 못대는 것이지 내가 주님을 버려 놓고, 혼자 나가 떠돌아 다니면 그때는 사탄도 우리를 마음대로 가지고 시험하고 문제 거리를 주는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식! 그건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습니다. 죄의식 중에 가장 큰 죄의식은 무엇이냐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 생각이 났을 때 죄의식이예요. 사람들이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를 많이 이야기 합니다만 모르고 지은 죄가 무어냐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기억하고 저지른 것들이 모르고 지은 죄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할 때 그것이 바로 모르고 산 죄의 결과인 것을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기쁘지 않다 왜 뭔가가 있는데도 이렇게 허전하냐 뭔가가 있는데도 이렇게 불만족 스러우냐 할 때는 모르고 짓는 죄 가운데 들어 있다 그 말이예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불순종하고 있는데도 거기서 깨닫지 못할 때에는 죄의식이 우리를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말씀대로 살되 우리에게는 히10:36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다” 합니다.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아이들은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면 그냥 공부 안해요 근데 무얼 하나 내어 걸면 공부 합니까 평소에 도저히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것을 하나 내어 걸어 보세요. 공부 해요. 그러고도 공부 안하는 놈은 그건 빨리 빨리 내어 보내야되요! 어느쪽으로 대학 포기하고 어느쪽으로 빨리 돈 버는 쪽으로든지! 좋아 하는 쪽으로 빨리 내어 보내야되요. 너 하라는 데로도 안한다 그건 가능성이 없는거예요. 왜 머리구조가 아예 지 좋은 쪽으로만 간 놈이지 부모 뜻을 안 따라오는 놈이라고요. 자 내버려두었어요 저 하라는 대로 그런데 성적이 향상이 되기는 고사하고 퇴보한다면 그것도 기대하지 말아야되요 문제는요 아무리 좋은 것을 내어 걸어도! 아무리 좋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내어 걸어도 하다가 하다가 포기하면, 하다가 포기 하면 안돼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마지막까지 잘 견디다가 마지막 한번만 잘못 먹고 떨어져 나간 사람이 있어요 누구 있어요 예수님 따라 다니다가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되는 데 넘기지 못한 사람 누구 있어요 가롯 유다! 그래서 두자를 빼놓으면 가-유라는 가롯 유다예요. 하다가 갈려요 하다가! 충청도 말로 갈시유 가세요가 아니라고! 마지막 까지 간다하지 못하고 가버린 사람이예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어떻게 갔던지 간에 마지막 까지 인내를 못했어요. 그는 은전 30냥이 제사장에게 가서 타엽을 하며는 은전 30냥이 큰 돈이라 생각 했던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복음도 증거 했어요 그는 주님과 함께 제자와 함께 다니면서 요 11장에 보며는 우리가 또 죽으러 가자! 복음 증거 하는 데 돌맹이가 날아 았단 말이예요! 졸맹이가 날아 왔어요! 그랬던 과정 가운데서 나사로가 죽었다고해서 가자하니깐 “죽으려 가자!” 도대체 죽은 사람이 누구인데 나사로가 죽었다고 가자고 하니깐 죽으러 가자! 도대체 죽은 사람이 누구인데 나사로가 죽었다고 살려달라고 가는 판국에 저희가 죽으러 가제. 그러한 과정에서 그는 돌을 맞는데에도 앞장섰던 사람들 중에 돌을 피하였다고 쓰지를 않았어요 그는 굉장히 열심히 했던 사람입니다.
꼭 배반만 하려던 사람이 아니예요. 제자들과 함께, 주님과 함께 같이 먹고, 자고, 마시고, 복음 증거 하고, 돌 팔매질 맞고 욕도 얻어 먹고 마지막 까지 견디다가 갯세마네 가기 직전에 그는 먼저 홀로 빠져 나갔어요 우리는 사역을 하는데 그 마지막까지 견디는 과정 중에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많이 옵니다. 인내와 약속 근데 그것을 견디면 약속을 바라고 있다 그 말이예요 아버지가 우리에게 주겠다고 하는 약속이 있어요 시험공부를 잘 해서 성적이 올라 가며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가난한 집에서 100만원, 200만원 꿈도 못꾼다고. 근데 정말이지 이번에는 무슨 품을 팔아서라도 컴퓨터를 사주겠다 286, 386이 아니고 486을 사주겠다. 내 걸었으며는 이건 자식에게 꿈같은 소리예요. 그것을 얻기까지 성적이 항상 되고, 부단이 노력을 하면 486 얻어요. 하다가 가롯 유다같이 어이고 486 그만 두겠다. 486은 고사하고 286도 아니 되겠다 하며 나가 버리면 안된다 그말이예요.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보내준 이 세대 나아가서 사역을 하라하는 일 가운데에서 마지막 그 인내! 마지막까지 견디어서 그 상급을 우리는 받도록 살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 전에 도망갔던 제자들도 주님이 부활하고 다시 모았더니 모여 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때는 사도행전에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기다리라 내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열어 너희에게 능력을 주고 말씀을 주어서 나아가 전파 하라고 할 때까지 아버지가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했더니 그 도망 갔던 사건 가운데서 다시 모인 제자들이 120여명이 몇 칠 동안 기도 했어요 10일동안 감래하고 예루살렘에서 기도 했습니다. 기다려라! 어디서 기다렸느냐 바로 예루살렘에서 기다렸단 말입니다. 그곳은 누구를 죽였던 곳이예요 예수를 죽였던 곳이고,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그당시에 로마 병정들이 유대 앞잡이들이 삿삿이 예루살렘을 뒤지고 다니던 중에 120명이나 되는 엄청난 무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기도 할 때에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그들의 존재를 찾아 내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기대를 방해를 못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결국은 그들이 기다렸던 약속한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오순절날 그 역사와 함께 예루살렘에 수 많은 유대인들, 예수를 죽이려던 자들, 죽였던 자들, 예수를 따르던 자들을 죽이려던 자들을 그들앞에서 담대하게 대낮에 선포했어요. 그리고 회개하고 돌이키려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3000명도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이제 주님이 격었던 고통과 어려움을 통해서 이 세대에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고, 우리를 그리스도안에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시고 여러분들을 칭하여 무어라고 이야기 해요 “아포스텔로=사도”라는 말이예요 사도!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살았던 그러한 고통과 어려움을 끝내 감려하면서 그 일을 하고 베드로도 거꾸로도 갔아오니 우리가 찬송도 불려요 “-거꾸로도 갔아오니-” 멸시 천대 그러한 고통도 우리가 다 받겠다고 하던 내용들이 이 세대 나아가서 일을 하면서, 살면서, 누가 우리를 핍박하는 그러한 내용 보다는 유혹하는 일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핍박이 올 때에 기독교인들은 잘 견디었어요.
그런데 자기들이 과거에 좋아 했던 유혹들이 올 때, 세상적인 것들이 올 때 많이 넘어 지고 자빠지고 합니다. 오히려 환란과 핍박은 잘 견디어 내면서 일반적인 유혹에 약점이 있는 것을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역을 하다가 도망간 사람들 중에 딤후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문에 도망 간 자라면 데마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하며 다니는 바울과 함께 다니다가 “아이구 못견디겠다-”고 맨 날 해 보아야 왜 바울 무슨 꼴 당했어요 돌이 날아 오고 죽을 려고 쫓아 다니고 결사대가 예루살렘부터 결성되어 가지고 특공대가 쫓아 다니는 판국이예요. 그 특공대가 와서 어떤 일이 날지 모릅니다. 특공대는 청하대를 공격하러 왔던 이북의 김일성보다 더 무서운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이 쫓아 다니는 데도 바울은 여전히 인내하며, 여전히 하나님이 주신 영생과 그 하나님의 나라의 약속을 믿고 그는 전하고 있을 때 데마가 가만히 뒤에서 알아보니깐 바울이 하는 일이 더디움하거든 도대체 무얼 바라보고 저러느냐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역을 하다가 예루살렘에서도 아니고 외국 땅에서 도망가 버렸어요 외국 땅에서. 한국에서 사역하다가 힘드니깐 미국에 가서 접시 닦고 있는 목사들처럼 도망 가버렸어요. 우리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보냄을 받은 자들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증거 하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약속이 있습니다. 그 약속은 주어지지 않은게 아니예요.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을 그 삶을 삶으로 확증하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엡2:5-6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켜서 그리스도 안에 함께 일으킨 약속을 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현재 하늘에 앉힌 상태에서 이루운 약속을 예수님은 2000년전에 홀로 먼저 오셨어요. 먼저 오셔서 사역을 하고 십자가에 죽음도 그는 불사 하시고 그 살았던 결과가 하나님 보좌에 앉는 영광을 얻었는데, 우리는 수고하고 애쓴 것도 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원의 시작을 이루면서 우리는 하늘에 앉힌 바된 그 영광을 그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마지막까지 감내하는 자에게 또 주시겠다고 헸어요. 우리는 끝까지 인내해야 됩니다. 그 주신 약속을 남에게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가롯 유다같이 데마같이 사역을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도망을 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낳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로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내서 우리를 끝까지 이끌어 온것과 같이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오는 환란과 역경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것을 이기게 하시고 넘어가게 하셔서 우리를 마지막 때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게하는 약속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께서 여러분들을 다 지켜주실 것을 주의 이름으로 믿고 확증을 합니다. 다같이 “여러분들은 보냄을 받은 자다”, “이미 이루어진 일을 말하는 자다” 그럴 때 우리를 보고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 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일을 할 때 사람들이 볼 때는 사람들인지 모르나 여러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디 긍지를 잃지 말고 또한주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할 수 있도록 자라고 또 사역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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