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교회의 일꾼 되어 삽시다 (롬16:1-7)

본문

3명의 일꾼이 교회를 짖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첫번째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지금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소’ 예 노동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지금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소’ 예 돈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셋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소’ 예 여호와 하나님의 집을 짓고 있습니다. 같은 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3명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이들 중 누가 교회의 참된 일꾼입니까 바울은 33명의 교회의 일꾼을 소개합니다. 24명은 로마교회의 일꾼이요, 9명은 고린도 교회의 일꾼입니다. 그들은 유, 무식의 차이가 있었고, 빈부귀천의 혁혁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참된 교회의 일꾼은 누구입니까
1.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가 교회의 일꾼입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가 교회의 일꾼입니다. 본문에 ‘주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3, 7, 8, 10, 12, 13절 바울이 이 말을 할 때에는 3가지를 염두에 두고 했습니다.
1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자
2계속 예수님과 교제하는지
3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고 교회의 일꾼이 되면 교권주의자가 됩니다. 3절에 보면 브리스가 와 아굴라가 등장합니다. 이들이 어떻게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까 사도행전18장에 보면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로마에서 모든 유대인은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때 아굴라와 브리스가는 고린도에 왔습니다. 이때 바울을 만나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로마에서 쫓겨나는 불행이 예수 믿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7절에 보면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등장합니다. 그는 바울의 친척이었습니다. 바울 보다 먼저 예수 믿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스데반 집사님의,순교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개종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의 기도가 바울을 회심하게 했습니다. 13절에 보면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루포는 마가복음15:21절에 등장하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입니다 구레네 시몬은 북아프리카출신의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왔다가 예수님의 처형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대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끌려오던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므로 자원하는 신앙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신앙은 아들 루포에게 이어져 루포는 초대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믿음도 훌륭함을 알 수 있는 것은 루포의 어머니가 곧 나의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10,11,15절에는 로마의 귀족이 등장합니다. 10절의 ‘아리스다 불로’는 헤롯 대왕의 손자로 로마에 거주한자입니다. 11절의 ‘나깃수’는 행18장에 나오는 크라우디오 황제의 개인비서였고, 15절에 등장하는 ‘네레오’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제1비서관의 개인비서 였습니다. 아리스다 불로, 나깃수, 네레오 이들은 모두 기독교가 핍박받던 시대에 목숨걸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특히 네레오는 AD 95년에 로마를 깜짝 놀라게 하는 빅 뉴스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하루는 로마에 소문이 돌았는데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모시고 있는 신하 중에서 그리스도인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 장본인인 이 후레디오스 클레맨스의 개인비서인 네레오였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후레 디오스 클레맨스가 기독교인을 처형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 후레 디오스 사비누스가 예수를 믿었는데 이일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이 네레오 였습니다. 즉 교회의 일꾼은 예수 안에 있으면서 목숨걸고 예수를 구세주로 시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2.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의 사람을 돕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유기체입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있을 때 교회인 것입니다. 로마서16장에 등장한 일꾼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교회의 중간 지도자 였습니다. 뵈뵈 여집사는 겐그리아(고린도 옆에 있는 항구도시)에 살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고린도에 있을 때 기록했습니다. 이 편지를 뵈뵈 여집사를 통해서 로마교회에 전달하도록 했습니다. 3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로마에서 쫓겨나 고린도에 살고 있을 때 바울에게 전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자가의 집을 예배당으로 제공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에베소로 갈 때 함께 에베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도 자기의 집을 예배 처서로 제공했습니다. 5절에 보면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저의 교회는 브리스가 와 아글라가 바울보다 먼저 로마에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돕되 (롬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즉 에베소에서 이방 신을 섬기는 자들이 바울을 죽이려 할 때 자기의 목숨을 걸고 바울을 지켜 주었다는 말입니다. 또한 “(갈4:15)-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 복음을 위해 복음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을 위해 희생적으로 도왔습니다. 바울이 1세기를 주름 잡고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성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2절의 ‘더디오’는
셋째라는 뜻입니다. 23절의 ‘구아오’는
넷째라는 뜻입니다. 이 두명의 이름은 종의 신분을 의미합니다. 어떤 집에 먼저 온 자가
첫째 그 다음 종이
둘째,셋째 이렇게 불렀습니다. 로마서는 더디오가 대서한 것으로 보아 그는 똑똑한 종이었을 것입니다. 혹시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까 뵈뵈집사가 바울사도여! 내가 예수 믿은 것이 이런 편지나 전달하고자 믿음 줄 아십니까 더디오가 사도바울에게 사도여 내가 예수 믿는 것이 대서나 하자고 믿는 줄 아십니까 이렇게 했다면 로마교회는 부흥하지 못했으며 로마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못해을 것입니다. 작은 일에 모든 성도가 충성했기에 위대하게 초대교회가 꽃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교회에 충성한 다는 말은 애매한 말입니다. 교회에 충성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람이 교회에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담임목사를 돕는 자는 교회의 일꾼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의 동업자입니다.
3. 교회의 일꾼은 교회의 사람들 가운데 평화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6장에서 33명의 일꾼을 소개하면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 말이 ‘문안하라’입니다. 이것은 바울 개인의 인사가 아닙니다. 로마교회의 성도는 문안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16절에서는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생명유지의 키(Key)는 교제입니다. 교회에 생명력이 넘치려면 성도의 따뜻한 교제가 있어야합니다. 내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으려면 주님과 날마다 긴밀한 교제를 해야하는 것처럼 성도간의 교제는 교회의 활력소가 됩니다. 마귀는 분열시킵니다. 이간질합니다. 교제를 방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로마 교회에도 큰 위기가 있었습니다. “(롬16: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롬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그러나 대다수의 성도는 바울의 권면에 순종했습니다. “(롬16:19)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20절에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마귀는 이간질하는 자요 사단은 대적하는 자 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아름다운 교제가 우리 안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났을 때 교회에서 뭐라고 묘비를 쓸것 같습니까 외국의 비문 가운데 재미있는 것을 소개합니다.
1부지런한 내 딸 잠들다 부활 때 제일먼저 일어나리.
2참 말많던 내 아내 이젠 입다물다.
3사랑하는 내 아내 잠들다 제발 깨우지 말라. (롬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에게 문안하라 (롬16:12)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에게 문안하라 ‘드루’는 쌍둥이에게 붙이는 말이고, ‘배나’는 우아하다는 뜻이고 ‘보사’는 섬세하다는 뜻입니다. 13절 하반절“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에게 문안하라” 이런 증거는 바울의 개인적인 증거가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이기에 성령님의 증거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주 안에서 수고한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 버시와 같이 우리도 주님 앞에서 이런 가치 있는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47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