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에게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롬14:13-23)
본문
지난 수요일 설교 기억이 납니다. 이상하게 지난 수요일 설교를 듣고 아, 그렇구 나! 하고 새롭게 깨달은 분들이 많은 것같습니다. 믿음의 생활을 오래 하지 않고, 깊지 못한 분들이 은혜 많이 받았다고 말하드래요. 그 이유를 제가 좀 생각을 해 보았더니, 제 설교를 오해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 봅니다. 그날 설교를 들으니까, 각각 마음에 확증할 찌니라 이 말이 술을 먹는 형제에게는 상당히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 담배를 끊고 싶어도 잘 되는 사람에게는 사람, 주일을 지키고 싶어도 잘 되어서 가책을 받던 사람들의 체면을 많이 세워 주는 말을 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았다고 그러는 것입니다. 분명히 각자가 마음에 화증할찌라도 그 동기와 목적은 무엇을 위해서 주를 위해 서 라고 했는데, 믿음이 적은 사람은 주를 위해서라는 말은 귀에 안들어 오고, <각 각 마음에 확증할찌니라는 말만 귀에 쏙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역시 황목사님은 무엇인가 좀 틀리다!> 라고 말한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은 한걸은 더 나아가야합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두번째 원칙, 다음 주일에 말씀 드릴 세번째 원 칙을 들으신 다음에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다!> 하고 은혜를 받았으면 여러분 의 믿음은 성장한 믿음이고, 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세상에는 그 자체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중성적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죄 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모호한 행동들도 많이 있습니다. 고대 스토아 철학파에 속한 사람들은 이것을 아디아토라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구별하기가 힘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구별하기가 힘든 아디아토라는 우리가 어떠한 손잡 이로 그것을 드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진다고 가르쳤습니다. 예를들면 어떤 그림이 있습니다. 예술의 눈이 열린 화가가 그 그림을 들고 볼 때면 기가막힌 걸작 품입니다.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 볼 때는 외설적이 그림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세상에는 애매모호한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비슷한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가 아무 거리낌없이 할수 있는 일이, 믿음이 약한자에게는 양심의 가책을 일 으킬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로마교회가 그랬습니다. 그 교회는 특별히 음식문제가 성도들에게 큰 과제가 되었습니다.믿음이 약한 자들 은 구약시대의 계율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를 못해서, 먹을 것 먹지 못할 것을 까다롭 게 가리는 버릇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반면에 믿음이 강한 자는 그 음식 같은 것을 가지고 뭐 먹느냐,안 먹느냐 하고 가리는 것은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무슨 확신입니까 14절을 보세요.내가 주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 된 것은 없다.
20절을 보면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만물이 다 정하다. 이와같은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먹을 것, 안 먹을 것을 까다롭게 가리는 것이 유치하게 보일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교인들 사이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과 믿음이 약한 사람들 사이에 이 견해 차이가 있었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원래 자연은 선하고,또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사람이 속되게 바꾸어 놓은 것도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하나들면 얼마나 탐스럽고 향기로운 과일입니까 하나님이 그 포도는 누구나 먹을 수 있고, 즐길수 있도록 정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정한 과일을 바꾸어서 인격을 해치고,남을 해치고 사회를 부패시키는 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포도를 놓고 먹을 것이냐 먹지 않을 것이냐 시험을 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술을 놓고는 마실 것인가 마시지 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이 할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나는 야채는 다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껏 우리가 재배해서 먹고 건 강하도록 하셨습니다만,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어떤 채소는 마약을 만드는 재료로 악용을 합니다. 그러면 채소를 가지고 먹을 것이냐 먹지 아니할 것이냐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약을 놓고는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본래는 선한 것이지만, 신앙양심 상, 반드시 거론하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것들이 우리 주변에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성경이 그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 하나하나 명령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지난 시간에 우리에게 첫번 째 원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각각 마음에 확증할 것이다.
그러나 주를 위해서 확증할 것이니라. 그러나 우리가 다 약합니다. <주를 위해서라>라는 아름다운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주를 위해서를 내 마음대로 남용할 수 있는 약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남이 뭐라든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식의 개인주의가 주를 위해서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지 않고, 혼자 잘난 것처럼 떠드는 독선이 주를 위해서라고 하는 말 속에 암암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속된 것은 없다>는 조그마한 지식 하나를 가지고,교만스럽게 말하고 행 동하게 만드는 함정이 <주를 위해서>라는 말 속에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를 나는 절대로 속박 당하지 않는다는 고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경솔한 태도가 <주를 위 해서>라는 말속에 오염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약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유기쳅니다. 우리는 그 몸을 이루는 작은 지체들입니다. 어느 지체나 동등한 입장에서 몸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것이 교횝니다. 이 몸이라고 하는 본질을 놓고 볼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맘대로 해. 하는 생각을 행동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옆에 있는 형제에게 해가 될수 있다면 내 가 하지 못하는 것이 몸이라고 하는 유기체의 관계입니다. 교회에서는 사실 <나>라고 하는 대명사는 사실, 대문자로 쓰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는 <우리>라고 하는 일인칭 복수대명사가 대문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3절에도 보면 바울은 <우리가>라는 말을 씁니다. 영어로 말하면 lets us-같이 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15장 1절에도 우리 강한 자가 하고 말합니다. 왜 공동체의 운명에 있 기 때문입니다. 형제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 자신보다 앞에워야 할 경우 가 너무 많습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의 선물을 우리 모두는 공유 하는 사람들이지, 내가 독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독점을 할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형제를 모르는 나를 알수 없고, 나를 모르는 형제를 알수 없는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라고 하는 공동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형제를 건강하게 세울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파괴할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내 위칩니다. 나는 다른 형제에게 영향을 끼칩니다.다른 형제는 나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이 영 향권에서 벗어나서 유아독존격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 습니다. 모두가 영향권에 있습니다. 나의 영향,형제의 영향-그 영향 안에서 우리는 삽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겨지는 일이라도 형제에게 상처를 주 거나 죄를 짓게 만들수 있는 일이라면 약한 그 형제를 위해서 나 자신의 자유를 스 스로 속박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처집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조용히 쌓아 두는 것이 덕이 될 때가 많습니다. 하고 싶은대로 다 못하는 것이 우리의 처집니다. 부부일신이지요. 결혼하고 나면 남편이 하고 싶은대로 다 못합니다. 부인이 하고 싶은대로 다 못합니다. 서로 억매입니다. 억매이는 그 것이 진정한 부부의 자윱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다 한 몸이요, 한 지체이기 때문에 내 하고 싶은 것 다 못합니다. 내가 할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그 자유를 날개달고 마음대로 날수 있 도록 내버려 둘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를 손에 꼭잡고 복잡한 거리를 걸어 갑니다. 부모는 사람들을 막 헤치고 활개치며 갈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힘이 있습니다. 달려 갈수 있습니다.그러나 두 손에 어린아이를 잡은 부모는 자기의 자유를 가지고 하고 싶은대로 하지를 않습니다. 아이의 걸음걸음에 자기 걸음을 맞춥니다. 아이의 생각에 자기 생각을 조 화시킵니다. 왜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아이를 위하는 것이 부모 를 위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또 같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형제를 판단하진 않는 선에서 만족을 할수 없다고 합니다. 형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비판하고 눈감아 주면 된다.간섭 안하면 된다. 그것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내 마음에 확신이 서는대로 내 소신껏 생활하는 그 원칙만 가지고도 교회생활 은 안된다고 말합니다. 내 소신껏 할수 있다는 그 것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푸는 마스터 키가 된다고는 절대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 걸을 더 나아가야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언동에 영향을 받을수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교훈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한 두번째 원칙이 있습니다. 형제의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는 것입니다. 13절을 봅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조심하라. 여기서 거칠 것, 부딪힐 것은 장애물이나 덫을 말합니다. 이것에 걸리면 누구나 넘어지거나 다칩니다. 그러면 이 부딪친다. 거친다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본문 안에서 몇번 표현을 바꾸어 가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15절을 봅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거치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형제 를 근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에 번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을 계속읽습니다.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않음이라. 그리스도께서 대 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인하여 망케하지 말라. 거치게 하는 말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만들 던지, 영적으로 큰 시련을 당해서 망하게 만드는 것이 형제를 거치게 하는 것이고 잘 못되게 하는 것입니다.
21절을 한번 봅니다.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를 거리끼게 아니함 이 아름다우니라. 여기서 거리끼지 않는 것이 형제에게 거침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형제가 신앙생활 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을 봅니다.의심하고 먹는자는 정죄 되었나니 무슨 뜻인지 아세요. 내가 볼 때 이것은 신앙양심상 옳은 것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는데 <아, 우리교회의 누구누구 가 마시니까 내가 마시면 이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신이 없으면서도 마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이는 믿음으로 쫓아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니라. 거치게 한다하는 말이 뭐냐 형제를 죄짓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죄 냐 형제가 믿음이 없으면서 확신도 없으면서 누가 하니까 따라하게 만들면 그 것 이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거치게 한다는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요, 망하 게 하는 것이요,거리끼게 하는 것이요, 죄 짓게 한는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형제를 이렇게 만들면 그것은 좋은 일이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술을 예로 한번듭시다. 성경에 보면 술마시는 것을 죄라고 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구약에도 술을 마시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경우는 꼭 한 케이습니다. 나실인이 되었을 땝니다. 얼마동안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구별하여 드리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그 서약한 기 간 동안에 술을 마시면 죄가 됩니다. 그리고 구약에 보면 가급적이면 술을 안마시면 좋겠다고 권고하는 경우는 왕이 왕 자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행여나 잘못 할까 두려워서 교훈하는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이 죄라고 하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신약에 와서 보아도 <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마시면 죄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때 한창 유행하던 금주가 처럼 <아, 마시지 말라. 그 술. 보지도 말라 그 술> 아주 분명하게 술은 죄라고 하는 성경 구절은 없어요. 또 이 말이 상당히 많은 분들에게 은혜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술은 죄라고 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는 지식, 그 지식 가지고 마음 놓고 어디서나 술을 마실 수가 있는가 성경에 죄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마음놓고 마실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할수 있느냐 그렇게 할 자유는 있습니다. 술 한잔 마신 것 때문에 하나님이 천국 문 앞에 천사를 세워 놓고 기다리다가 ,<너 언 제 술 한잔 마셨지!> 하면서 골라 내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교회 안에 있는 다른 형제들 때문에 제제를 받을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젭니다. 마실 자유가 있지만, 마시지 않는 자유를 선택해야 할 두가지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교회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세기 동안 지속 되어온 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음주는 곧 죄라고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은 반드시 술을 끊는다고하는 상식 이 있습니다. 선교사가 처음 들어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술을 허용했습니다.지금 이 화여고가 있는 자리에 강정승네 댁이라고 하는 큰 집이 있었습니다.아마 정승을 지 낸 집이 예수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집이 크기 때문에 일년에 몇번씩 사랑방에 서 사경회를 했습니다. 성경공부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는데, 네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마다 술과 담배가 제공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담배는 불겅이 혹은 막 초라고 불렀습니다. 곰방대에 채워 넣어서 피우거나, 담배 잎사귀를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곰방대를 허리 춤에 차고 교회에 나오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둘어 앉아서 담배를 피우 느라고 은혜가 충만했다고 그럽니다. 이렇게 해나가다가 보니까 무엇을 깨닫게 되었느냐하면 술.담배를 허용해 가지고는 도저히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회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온 백성이 자포자기하고, 젊은이는 울분에 쌓여서 이래저래 술독에 빠지고, 담배에 절고,도박 에 빠져들어 가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 술 마시고,담배 피우다가는 이 나라를 이끌 어갈 어떤 지도자적인 힘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선교사들이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1901년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에서는 신앙생활 지침서를 만들어서 금주,금 연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신앙지침서는 7대 강령이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 세례 받은 자는 반드시 암송해야 하고,그 다음에 실천한다는 서약을 해야 했습니다.
1. 예배에 반드시 참석할 것.2. 성수 주일 할 것.3. 부모에게 효도할 것.4. 일부일처를 지킬 것.5. 인가귀도 할 것. 6. 근면성실 할 것. 7. 금연금주할 것. 그리고 1914년 황해노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자는 절대로 장로로 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포했습니다. 이와같은 전통에서 한국교회가 자라왔습니다. 백여년간 지속되어온 한국교회의 풍 톱니다. 너무나 귀한 유산입니다. 이런 교회의 풍토 안에서 <나는 괜찮아, 성경에 어디 술먹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라는 데가 있나!>하고는 가책 안 받고 맘대로 담배 피우고 술이 항상 거나해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나 거의 마찬가집니다. 왜 다른 사람이 좋은 눈으로 안보니까요 그리고 <나는 확신이 있어! 천국가는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법은 없어>한다 면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괴팍한 옷을 혼자 입고 나와서 서 있는 이상한 사람처 럼 한국교회에서는 보일 것입니다. 이런 한국풍토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내가 피울수 있고,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실족해 넘어질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나의 그런 행동 때문에 죄를 범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사회학적인 상황을 들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냐 하는 것입니다. 술은 득보다 해가 더 많다는 시각이 지 배적입니다.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모든 악행과 범죄에 술이 끼어 들지 않고, 담 배가 끼어들지 않고, 여자가 끼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85년도에 나온 바바라 톰슨이라고 하는 분이 쓴 <한잔 술로 죽어가다>라는 그 책 안에는 방화와 익사사고의 80%가 술 때문에 폭력의 60%가 술 때문에, 자살의 30%가 술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알콜중독자가 되면 그 인격이 파산합니다. 가정이 깨어집니다. 수많은 생명을 해 칩니다. 우리나라는 자랑스럽게 82년에 세계의 제 1위가 된 것이 있습니다. 술마시는데 세계의 1위입니다. 39억56435000병입니다. 이 양이 얼마 정도냐 서울 에 있는 종합청사를 11개를 가득채우고 5/1을 채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많 이 마셔 댄다고요. 우리나라 예산의 의 6/1이나 되는 금액이고 병을 연결하면 달나라를 한번 갖다오고 또한번 갈수 있는 거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양식이 있는 사회의 지성인들은 술은 안먹는 것이 좋겠다고 주 장합니다.그래서 53%의 사람들이 <술을 끊겠다>고 마음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자.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상황입니다. 술 뿐이 아닙니다. 담배도 마찬가집니다.도박도 마찬가집니다. 마약도 마찬가집니다. 사치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아무리 술.담배가 성경이 금하는 죄가 아니라는 확신 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거나, 담배 연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면, 교회 안에서도 상처 입을 사람들이 많고, 안 믿는 사람들도 실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를 받습니까 실망해요. <저 사람은 그렇게 안 봤는데.>하고 실망해요. 그리고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 술집에 들어 앉아 있으면, <저게 집사 야.>하고 비판합니다. 실망하는 사람,비판하는 사람은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예수 믿어도 별수 없구만!>하고 신앙을 버렸다면 그 사람을 죄 짓게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 14절을 보십시요. 내가 주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다고 여 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마음에 가책을 받으면서 먹고 마시면 그게 부정한 것 이 된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봅니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마음에 거리낌으로 먹는 그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3절-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형제를 우리가 이렇게 만들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성경에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내 자유와 확신을 가지 고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교회의 전통과 유산과 상황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있 어요. 여러분 삼계탕집을 가 보셨지요. 그러면 인삼주를 조그만 잔에 가져다 놓아요. 그것은 참 좋은 것에요. 닭고기가 얼마나 니끼합니까 거기에 몸에 좋은 인삼주을 먹으면 입맛이 돋구워지고 소화도 잘될 거에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먹는 때라면 그것 마시고 싶기도 해요. 그러나 먹어볼 기회가 없어요. 언제나 주위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나 때문에 실족해서 신앙에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옆으로 밀어 놓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입안이 덥덥하니까 그 술로 입가심을 하고 뱉어 논다고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믿음이 강해서 술.담배를 마시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히려 믿음 이 약하니까 술.담배의 유혹을 못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교회와 아주 반대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술.담배를 좀한다고 해서 믿음 좋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좀 실망을 하고,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크게 죄에 까지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핑계를 가지고 자꾸 술마시고, 담배 피우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전도의 문을 막습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세상 사람이 교회를 멸시하게 만듭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국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큰 교회였는데, 미국인 35명 만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 고 나니까 2층으로 올라가서 친교를 나누자고 해서 따라 올라갔더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 잔들이 뺑둘러서 진열이 되어 있고, 담배 연기를 뽑아내는 커다란 환풍기가 돌아 가는 가운데서 술잔이 돌아가고 연기가 가득차서 옆사람 얼굴이 뿌엿 케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속으로 <과연 시내산이구나>라고 혀를 찼다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절대로 술.담배를 못하게 금했습니다. 반발이 심했지요. 미국에서 미국교인들에게 한국식으로 할려고 하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몇년 후에 그 교회는 430명이 모이는 교회로 부흥했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텅텅 비어 가는데도 그 교회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떳떳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안하는 쪽이 더 훨씬 은혜스럽고, 좋 은 것이 술.담배 문제고 주일을 지키는 문젭니다. 15절을 봅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 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술.담배로 망케하지 말지니라. 믿습니까 주일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21절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 리끼는 일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아름다우니라. 바울은 형제가 자기가 고기 먹는 것으로 인해서 거리끼게 되면 평생 고기를 안먹 겠닫고 선언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형제에게 걸림이되지 않기 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 락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딴데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가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먹는 것을 가지고 나도 가책 받고,남도 가책 받고, 나도해치고 남도 해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 속에 있을수 있습니까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수 있습니까 천만에요.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서 최상의 옳은 관계를 이루는 법칙입니다. 인관간계의 법칙입니다. 평화는 무엇이냐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의로운 관계가 존재하는 형탭니다. 그러면 기쁨은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의로운 관계의 열맵니다. 의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기쁨으로 체험이 됩니다. 형제와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형제가 거리낌을 느끼면 의로움이 사라지고, 평화 가 깨어지고,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모시고 평화와 기쁨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18절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러게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리지 마십시요. 주일을 범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평화를 잃어 버리지 마십시요.
20절을 보면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만물이 다 정하다. 이와같은 사실을 확신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먹을 것, 안 먹을 것을 까다롭게 가리는 것이 유치하게 보일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교인들 사이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과 믿음이 약한 사람들 사이에 이 견해 차이가 있었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원래 자연은 선하고,또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게 만들어 놓은 것을 사람이 속되게 바꾸어 놓은 것도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하나들면 얼마나 탐스럽고 향기로운 과일입니까 하나님이 그 포도는 누구나 먹을 수 있고, 즐길수 있도록 정하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정한 과일을 바꾸어서 인격을 해치고,남을 해치고 사회를 부패시키는 술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포도를 놓고 먹을 것이냐 먹지 않을 것이냐 시험을 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만, 술을 놓고는 마실 것인가 마시지 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이 할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밖에서 나는 야채는 다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껏 우리가 재배해서 먹고 건 강하도록 하셨습니다만,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어떤 채소는 마약을 만드는 재료로 악용을 합니다. 그러면 채소를 가지고 먹을 것이냐 먹지 아니할 것이냐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약을 놓고는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본래는 선한 것이지만, 신앙양심 상, 반드시 거론하고 생각하고 판단해서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것들이 우리 주변에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성경이 그 구체적인 것에 대해서 하나하나 명령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지난 시간에 우리에게 첫번 째 원칙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각각 마음에 확증할 것이다.
그러나 주를 위해서 확증할 것이니라. 그러나 우리가 다 약합니다. <주를 위해서라>라는 아름다운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주를 위해서를 내 마음대로 남용할 수 있는 약점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남이 뭐라든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식의 개인주의가 주를 위해서 안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하지 않고, 혼자 잘난 것처럼 떠드는 독선이 주를 위해서라고 하는 말 속에 암암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속된 것은 없다>는 조그마한 지식 하나를 가지고,교만스럽게 말하고 행 동하게 만드는 함정이 <주를 위해서>라는 말 속에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자유를 나는 절대로 속박 당하지 않는다는 고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경솔한 태도가 <주를 위 해서>라는 말속에 오염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약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유기쳅니다. 우리는 그 몸을 이루는 작은 지체들입니다. 어느 지체나 동등한 입장에서 몸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것이 교횝니다. 이 몸이라고 하는 본질을 놓고 볼 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 맘대로 해. 하는 생각을 행동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를 않습니다. 아무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옆에 있는 형제에게 해가 될수 있다면 내 가 하지 못하는 것이 몸이라고 하는 유기체의 관계입니다. 교회에서는 사실 <나>라고 하는 대명사는 사실, 대문자로 쓰여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는 <우리>라고 하는 일인칭 복수대명사가 대문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3절에도 보면 바울은 <우리가>라는 말을 씁니다. 영어로 말하면 lets us-같이 라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15장 1절에도 우리 강한 자가 하고 말합니다. 왜 공동체의 운명에 있 기 때문입니다. 형제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내 자신보다 앞에워야 할 경우 가 너무 많습니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의 선물을 우리 모두는 공유 하는 사람들이지, 내가 독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독점을 할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형제를 모르는 나를 알수 없고, 나를 모르는 형제를 알수 없는 공존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교회라고 하는 공동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형제를 건강하게 세울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파괴할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내 위칩니다. 나는 다른 형제에게 영향을 끼칩니다.다른 형제는 나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이 영 향권에서 벗어나서 유아독존격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 습니다. 모두가 영향권에 있습니다. 나의 영향,형제의 영향-그 영향 안에서 우리는 삽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고 여겨지는 일이라도 형제에게 상처를 주 거나 죄를 짓게 만들수 있는 일이라면 약한 그 형제를 위해서 나 자신의 자유를 스 스로 속박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처집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조용히 쌓아 두는 것이 덕이 될 때가 많습니다. 하고 싶은대로 다 못하는 것이 우리의 처집니다. 부부일신이지요. 결혼하고 나면 남편이 하고 싶은대로 다 못합니다. 부인이 하고 싶은대로 다 못합니다. 서로 억매입니다. 억매이는 그 것이 진정한 부부의 자윱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다 한 몸이요, 한 지체이기 때문에 내 하고 싶은 것 다 못합니다. 내가 할수 있는 자유는 있지만, 그 자유를 날개달고 마음대로 날수 있 도록 내버려 둘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모가 어린아이를 손에 꼭잡고 복잡한 거리를 걸어 갑니다. 부모는 사람들을 막 헤치고 활개치며 갈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힘이 있습니다. 달려 갈수 있습니다.그러나 두 손에 어린아이를 잡은 부모는 자기의 자유를 가지고 하고 싶은대로 하지를 않습니다. 아이의 걸음걸음에 자기 걸음을 맞춥니다. 아이의 생각에 자기 생각을 조 화시킵니다. 왜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 아이를 위하는 것이 부모 를 위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는 또 같은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형제를 판단하진 않는 선에서 만족을 할수 없다고 합니다. 형제가 무슨 일을 하든지 비판하고 눈감아 주면 된다.간섭 안하면 된다. 그것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또 내 마음에 확신이 서는대로 내 소신껏 생활하는 그 원칙만 가지고도 교회생활 은 안된다고 말합니다. 내 소신껏 할수 있다는 그 것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푸는 마스터 키가 된다고는 절대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 걸을 더 나아가야 된다고 합니다. 우리의 언동에 영향을 받을수 있는 형제들을 위해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교훈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한 두번째 원칙이 있습니다. 형제의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는 것입니다. 13절을 봅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조심하라. 여기서 거칠 것, 부딪힐 것은 장애물이나 덫을 말합니다. 이것에 걸리면 누구나 넘어지거나 다칩니다. 그러면 이 부딪친다. 거친다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본문 안에서 몇번 표현을 바꾸어 가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15절을 봅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거치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형제 를 근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음에 번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을 계속읽습니다.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않음이라. 그리스도께서 대 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인하여 망케하지 말라. 거치게 하는 말을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포기하게 만들 던지, 영적으로 큰 시련을 당해서 망하게 만드는 것이 형제를 거치게 하는 것이고 잘 못되게 하는 것입니다.
21절을 한번 봅니다.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를 거리끼게 아니함 이 아름다우니라. 여기서 거리끼지 않는 것이 형제에게 거침돌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 형제가 신앙생활 하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을 봅니다.의심하고 먹는자는 정죄 되었나니 무슨 뜻인지 아세요. 내가 볼 때 이것은 신앙양심상 옳은 것이 아니라고 판단이 되는데 <아, 우리교회의 누구누구 가 마시니까 내가 마시면 이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확신이 없으면서도 마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이는 믿음으로 쫓아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니라. 거치게 한다하는 말이 뭐냐 형제를 죄짓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죄 냐 형제가 믿음이 없으면서 확신도 없으면서 누가 하니까 따라하게 만들면 그 것 이 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거치게 한다는 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형제를 근심하게 하는 것이요, 망하 게 하는 것이요,거리끼게 하는 것이요, 죄 짓게 한는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형제를 이렇게 만들면 그것은 좋은 일이 될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 술을 예로 한번듭시다. 성경에 보면 술마시는 것을 죄라고 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습니다. 구약에도 술을 마시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경우는 꼭 한 케이습니다. 나실인이 되었을 땝니다. 얼마동안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구별하여 드리겠다고 서약한 사람이 그 서약한 기 간 동안에 술을 마시면 죄가 됩니다. 그리고 구약에 보면 가급적이면 술을 안마시면 좋겠다고 권고하는 경우는 왕이 왕 자에게 아버지가 아들에게, 행여나 잘못 할까 두려워서 교훈하는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이 죄라고 하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신약에 와서 보아도 <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마시면 죄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때 한창 유행하던 금주가 처럼 <아, 마시지 말라. 그 술. 보지도 말라 그 술> 아주 분명하게 술은 죄라고 하는 성경 구절은 없어요. 또 이 말이 상당히 많은 분들에게 은혜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술은 죄라고 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는 지식, 그 지식 가지고 마음 놓고 어디서나 술을 마실 수가 있는가 성경에 죄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마음놓고 마실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할수 있느냐 그렇게 할 자유는 있습니다. 술 한잔 마신 것 때문에 하나님이 천국 문 앞에 천사를 세워 놓고 기다리다가 ,<너 언 제 술 한잔 마셨지!> 하면서 골라 내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교회 안에 있는 다른 형제들 때문에 제제를 받을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과젭니다. 마실 자유가 있지만, 마시지 않는 자유를 선택해야 할 두가지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은 교회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세기 동안 지속 되어온 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음주는 곧 죄라고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믿음 좋은 사람은 반드시 술을 끊는다고하는 상식 이 있습니다. 선교사가 처음 들어와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술을 허용했습니다.지금 이 화여고가 있는 자리에 강정승네 댁이라고 하는 큰 집이 있었습니다.아마 정승을 지 낸 집이 예수를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 집이 크기 때문에 일년에 몇번씩 사랑방에 서 사경회를 했습니다. 성경공부 중간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는데, 네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때마다 술과 담배가 제공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담배는 불겅이 혹은 막 초라고 불렀습니다. 곰방대에 채워 넣어서 피우거나, 담배 잎사귀를 종이에 말아서 피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곰방대를 허리 춤에 차고 교회에 나오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이면 둘어 앉아서 담배를 피우 느라고 은혜가 충만했다고 그럽니다. 이렇게 해나가다가 보니까 무엇을 깨닫게 되었느냐하면 술.담배를 허용해 가지고는 도저히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사회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온 백성이 자포자기하고, 젊은이는 울분에 쌓여서 이래저래 술독에 빠지고, 담배에 절고,도박 에 빠져들어 가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예수 믿는 사람들까지 술 마시고,담배 피우다가는 이 나라를 이끌 어갈 어떤 지도자적인 힘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선교사들이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1901년 예수교 장로회 공의회에서는 신앙생활 지침서를 만들어서 금주,금 연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신앙지침서는 7대 강령이 기록되어 있는 것인데, 세례 받은 자는 반드시 암송해야 하고,그 다음에 실천한다는 서약을 해야 했습니다.
1. 예배에 반드시 참석할 것.2. 성수 주일 할 것.3. 부모에게 효도할 것.4. 일부일처를 지킬 것.5. 인가귀도 할 것. 6. 근면성실 할 것. 7. 금연금주할 것. 그리고 1914년 황해노회에서 담배를 피우는 자는 절대로 장로로 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포했습니다. 이와같은 전통에서 한국교회가 자라왔습니다. 백여년간 지속되어온 한국교회의 풍 톱니다. 너무나 귀한 유산입니다. 이런 교회의 풍토 안에서 <나는 괜찮아, 성경에 어디 술먹지 말고 담배 피우지 말라는 데가 있나!>하고는 가책 안 받고 맘대로 담배 피우고 술이 항상 거나해 가지고 있다면 이것은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것이나 거의 마찬가집니다. 왜 다른 사람이 좋은 눈으로 안보니까요 그리고 <나는 확신이 있어! 천국가는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법은 없어>한다 면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괴팍한 옷을 혼자 입고 나와서 서 있는 이상한 사람처 럼 한국교회에서는 보일 것입니다. 이런 한국풍토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느냐 내가 피울수 있고, 마실 수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면 그것으로 인해서 실족해 넘어질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나의 그런 행동 때문에 죄를 범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는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사회학적인 상황을 들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냐 하는 것입니다. 술은 득보다 해가 더 많다는 시각이 지 배적입니다. 사회의 불안을 조성하는 모든 악행과 범죄에 술이 끼어 들지 않고, 담 배가 끼어들지 않고, 여자가 끼어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85년도에 나온 바바라 톰슨이라고 하는 분이 쓴 <한잔 술로 죽어가다>라는 그 책 안에는 방화와 익사사고의 80%가 술 때문에 폭력의 60%가 술 때문에, 자살의 30%가 술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알콜중독자가 되면 그 인격이 파산합니다. 가정이 깨어집니다. 수많은 생명을 해 칩니다. 우리나라는 자랑스럽게 82년에 세계의 제 1위가 된 것이 있습니다. 술마시는데 세계의 1위입니다. 39억56435000병입니다. 이 양이 얼마 정도냐 서울 에 있는 종합청사를 11개를 가득채우고 5/1을 채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 정도로 많 이 마셔 댄다고요. 우리나라 예산의 의 6/1이나 되는 금액이고 병을 연결하면 달나라를 한번 갖다오고 또한번 갈수 있는 거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좀 양식이 있는 사회의 지성인들은 술은 안먹는 것이 좋겠다고 주 장합니다.그래서 53%의 사람들이 <술을 끊겠다>고 마음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자.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상황입니다. 술 뿐이 아닙니다. 담배도 마찬가집니다.도박도 마찬가집니다. 마약도 마찬가집니다. 사치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부정적인 시각 때문에 아무리 술.담배가 성경이 금하는 죄가 아니라는 확신 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거나, 담배 연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면, 교회 안에서도 상처 입을 사람들이 많고, 안 믿는 사람들도 실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처를 받습니까 실망해요. <저 사람은 그렇게 안 봤는데.>하고 실망해요. 그리고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 술집에 들어 앉아 있으면, <저게 집사 야.>하고 비판합니다. 실망하는 사람,비판하는 사람은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예수 믿어도 별수 없구만!>하고 신앙을 버렸다면 그 사람을 죄 짓게 만드는 겁니다. 여러분 14절을 보십시요. 내가 주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다고 여 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마음에 가책을 받으면서 먹고 마시면 그게 부정한 것 이 된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봅니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마음에 거리낌으로 먹는 그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3절-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형제를 우리가 이렇게 만들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성경에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내 자유와 확신을 가지 고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교회의 전통과 유산과 상황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이 있 어요. 여러분 삼계탕집을 가 보셨지요. 그러면 인삼주를 조그만 잔에 가져다 놓아요. 그것은 참 좋은 것에요. 닭고기가 얼마나 니끼합니까 거기에 몸에 좋은 인삼주을 먹으면 입맛이 돋구워지고 소화도 잘될 거에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먹는 때라면 그것 마시고 싶기도 해요. 그러나 먹어볼 기회가 없어요. 언제나 주위에 여러 사람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나 때문에 실족해서 신앙에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옆으로 밀어 놓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입안이 덥덥하니까 그 술로 입가심을 하고 뱉어 논다고 합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원리입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믿음이 강해서 술.담배를 마시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히려 믿음 이 약하니까 술.담배의 유혹을 못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교회와 아주 반대입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술.담배를 좀한다고 해서 믿음 좋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좀 실망을 하고,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크게 죄에 까지 빠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핑계를 가지고 자꾸 술마시고, 담배 피우고, 제멋대로 행동하면 전도의 문을 막습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세상 사람이 교회를 멸시하게 만듭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국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큰 교회였는데, 미국인 35명 만이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 고 나니까 2층으로 올라가서 친교를 나누자고 해서 따라 올라갔더니,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 잔들이 뺑둘러서 진열이 되어 있고, 담배 연기를 뽑아내는 커다란 환풍기가 돌아 가는 가운데서 술잔이 돌아가고 연기가 가득차서 옆사람 얼굴이 뿌엿 케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속으로 <과연 시내산이구나>라고 혀를 찼다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 그 목사님은 교회에서 절대로 술.담배를 못하게 금했습니다. 반발이 심했지요. 미국에서 미국교인들에게 한국식으로 할려고 하니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몇년 후에 그 교회는 430명이 모이는 교회로 부흥했습니다. 다른 교회들은 텅텅 비어 가는데도 그 교회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떳떳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안하는 쪽이 더 훨씬 은혜스럽고, 좋 은 것이 술.담배 문제고 주일을 지키는 문젭니다. 15절을 봅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 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술.담배로 망케하지 말지니라. 믿습니까 주일을 지키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말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21절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 리끼는 일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아름다우니라. 바울은 형제가 자기가 고기 먹는 것으로 인해서 거리끼게 되면 평생 고기를 안먹 겠닫고 선언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다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형제에게 걸림이되지 않기 위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 락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딴데 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나의 마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가정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먹는 것을 가지고 나도 가책 받고,남도 가책 받고, 나도해치고 남도 해칠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 속에 있을수 있습니까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수 있습니까 천만에요. 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서 최상의 옳은 관계를 이루는 법칙입니다. 인관간계의 법칙입니다. 평화는 무엇이냐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 의로운 관계가 존재하는 형탭니다. 그러면 기쁨은 무엇이냐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의로운 관계의 열맵니다. 의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기쁨으로 체험이 됩니다. 형제와의 관계도 마찬가집니다.형제가 거리낌을 느끼면 의로움이 사라지고, 평화 가 깨어지고,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모시고 평화와 기쁨을 모시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18절에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러게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술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리지 마십시요. 주일을 범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평화를 잃어 버리지 마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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