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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자의 약점을 담당하라 (롬15:1-13)

본문

교회 안에는 믿음이 강한자가 있고, 믿음이 약한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믿음이 강한자 들만 모인 교회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그러면 우리 각자가 믿음이 강한 사람인 가 믿음이 약한 사람인가를 무엇을 놓고 평가할수 있는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것을 보고 그럴 수도 있지요.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 그럴수도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해박한 것을 보고 그럴수도 있지요. 시간과 재물을 바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보고 그럴수도 있지요. 그러나 롬 14:15절에는 전혀 엉뚱한 기준을 가지고 우리의 믿음이 강하냐 약하냐를 평가 합니다.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인가를 놓 고, 믿음이 강한 사람, 믿음이 약한 사람을 나눕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며, 우리로 하여금 매우 당황하게 만드는 하나의 사실이라고 볼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다른 사람하고 잘 사귀지를 못하고, 남에게 상처를 잘주고 성 격이 괴퍅해서 덕을 세우지 못해도, 열심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교회를 다니면서 일하 면 그 사람이 믿음이 좋은 줄 알았는데, 오늘의 말씀은 아니야! 그것도 믿음이 강한 증거이지만, 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약한 형제에 대해서 어떤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그 약한 형제를 돌보며 감싸 주는가! 그 사람의 그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강한지, 약한지를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이 약해서 흠이 많고, 실수를 잘하는 형제를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 이것이 그 사람의 믿음의 강약을 좌우할수 있는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약한 형제를 바다 같이 넓은 마음으로 감싸 주느냐 그 사람 믿음이 강한 사람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약한 형제가 걸려 넘어질까! 항상 염려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 마시고 싶은 것도 마 시고, 먹고 싶은 것도 안 먹으면서 형제를 생각하고,형제에게 거침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느냐 이 시간 각자가 한번 자신을 돌아 보면서 나의 인간관계가 나의 믿음이 강한 것을 입 증할 만큼,성숙했느냐 한번 깊이 반성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이 시간 자기를 돌아 볼줄 아는 눈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기를 어떻게 보았느냐 믿음이 강하자로 보았습니다. 15:1절에 보면 우리 강한 자가하고 나오지요. 우리 속에는 바울이 들어가요. 자기를 포함해서 우리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를 놓고 믿음이 약한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그는 강한자라고 말합니다.왜 연약한자를 위해서 그는 최선을 다하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세워지기 위해서 필요한 희생을 다하는데,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는 강한자라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이 강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강한자는 약한자를 위해서 할일이 너무 많습니다.그러나 믿음이 약한자는 강한자를 위 해서 할일이 별로 없습니다. 믿음이 강한자가 많은 교회일수록 그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요, 생산적인 교회요, 능 력을 가진 교회요, 사랑이 넘치는 교회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가 교회를 정의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교회만큼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는 없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모이는 단체는 무엇이든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동창이다 그러면 같은 학교를 나왔어요. 종친회다. 고향사람이다. 취미가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교회는 어떻습니까 본능적으로 자연적인 성향으로 보아서는 잘 사귈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라는 말입니다. 취미가 다양하지요. 빈부귀천이 뚜렷이 나타나지요. 식자와 무식자가 한자리에 앉아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혈통도 상이합니다. 이런 상황이니까 하나 되기 어렵고,조화되기 어려 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창녀를 찾아 갔지만, 우리는 안 가지 않아요. 안 갈 뿐만 아니라,비난하잖아 요. 창녀가 예수를 믿고 새사람이 되어도 우리는 색안경을 쓰고 보지 않아요 어느 교회에 유흥가에서 타락했던 여자들에게 전도를 해서 그들로 선교회를 조직하고, 또 자기들이 예전에 빠져들었던 사창가,술집들을 다니면서 복음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데 이들이 목사님에게 호소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우리는 서럽고 외롭습니다. 예배에 참석해도 그 분위기에 동화되지를 않고, 성경공부하는데를 찾아 갔더니, 받아 주지를 않고, 속회에 참석하려고 해도 사람들이 싫어 하는 것 같아서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할까요 우리가 좀더 믿음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하면,과거에 경력이 어떠했던 어떤 죄를 범했 던 허물과 약점을 수두룩하게 가지고 있는 약한 형제들을 끌어 않을수 있지 않을까요 이게 잘 안된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대단한 것 같아도 사실은 별것이 아니라는 것 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믿음이 약한 자는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행할 힘이 없습니다. 행서 안되는 행동을 앞세웁니다. 확신이 없스면서도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하기를 잘합니다. 이해를 잘해 주어도 쉽게 상처를 입습니다. 아무리 거치는 것을 없애려고 우리가 조심 을 해도 잘 걸려 넘어집니다. 그리고 그들의 약함이 쉽게 고쳐지는 것도 아닙니다. 상당한 기간동안 어쩔수없이 자 신의 약한 부분을 끌어 않고 어우적 거려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강단이 하나냐 둘이냐 목사가 하는 말이 점잖으냐 빠르냐 넥타이를 맸느냐 안맸느냐 이런 것 때문에 시험이 되어서 한참 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서 우리는 믿음이 약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가지고 '당신, 왜 그런 것 가지고 오해하고 교회를 비판합니까 맘에 안들면 다른 교회에 가시오'그러면 될 것 아니냐 만약에 우리들이 그런식으로 따돌린 다면 우리도 믿음이 약한 자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강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약한자들을 위해 주어야 할까 그들에게 거침돌을 놓지 말라! 실족하게 하지 말라. 그래야만이 그들을 위해주는 것이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정도가지고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첫번째 말한 각각 자기의 마음에 확증한대로 할찌니라. 각자 소신대로 결정할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라. 이것이 약한자를 받아주는 자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 비판 안할수 있어요. 입다물수 있어요. 그리고 다른 형제가 실족하지 않도 록 내가 다른 형제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는 것 나도 할수 있어요. 내가 술 마시는 것보고 시험 받을수 있다면 나는 평생 술 잔에 손도 안댈수 있어요. 저나 여러분이나 그 정도는 할수 있어요. 주일날 물건을 사고 파는 것 때문에 시험든다면, 평생 물건을 사지 않을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한 걸을 더 나아가라고 합니다. 그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1절에 우리 강한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을 것이니라. 믿음이 약한자에게 약점이 있다고 했지요. 상처 잘받고,비판잘하고, 그 다음에 하고 싶어도 쉽게 실천하지 못하고, 여러가지 약 한 부분들이 있지 않아요. 이런 것을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의 약점인 것처럼 짊어 질수 있는데까지 나가야 한 다고 합니다. 여기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담당한다는 말은 짊어진다. 내 것으로 받아 들인 다 하는 뜻입니다. 이사야 53:4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질고와 허물을 어떻게 짊어지셨나 이렇게 표현하지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다.우리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뒤집어 쓰시고, 그 모든 허물로 인해서 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자기가 받았지 않습니까 이것을 일컬어서 담당한다. 짊어진다.하는 말로 표현 합니다.우리가 교회 안에서 약한 형제들에게 약점이 보일 때마다 비판한다든지 탓하지 말고, 저 형제의 약점이 나의 약점인줄 알고,그 것을 함께 짊어지는데 까지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땅히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잘 알지요.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 으면 하기 싫으면 안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꼭 그렇게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꼭 그렇게 해야될 의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수준이 이정돕니다. 그리고 이웃의 약점을 나의 약점으로 알고 짊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한가지 희생의 댓가를 지불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1절 끝에 보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아야 된다. 그러니까 꺼꾸로 하면 무슨 말이 됩 니까. 이웃을 기쁘게 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야만이 약한 형제의 약점을 나의 약점으로 짊어지고 같이 담당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해가 잘 안되고 여러분도 이해가 잘 안될 것입니다. 듣기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진리지요! 자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다. 과연 성경말씀이다. 하고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실제로 이해가 않돼요. 그렇게 됩니까 잘 안됩니다. 그리고 형제의 약함을 내가 짊어지기 위하여 나의 기쁨을 희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 게 하기 위해서는 목적의식이 뚜렷해야 한다. 무슨 목적을 가지 그렇게 해야 하느냐 그 말입니다. 2절에 나오지요.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하겠다는 목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선을 이룬다는 말은 유익을 준다는 말입니다. 약한 형제가 유익을 받도록,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목적. 이것이 있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덕을 세워야 합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건물을 세우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건물을 세우기 위해서는 이 기둥,저 기둥을 맞추어서 세웁니다. 마찬가지로 그 형제의 믿음,그 형제의 인격을 세워 줄려고 내가 사방에서 붙들어서 협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형제의 믿음이 잘 자라도록 헌신해 주는 것을 덕을 세운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약한 점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내가 옆에서 손을 빌려 그를 위해서 도움 을 준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운다는 말을 하나로 묶어서 그 형제의 신앙과 인격을 키 우기 위해서 내가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32-33에는 다른 말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같이 모 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 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여기서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한다는 말을 오늘 본문에서는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앞에 놓고 조용히 묵상하면 예수 믿는 생활이 재미가 없을 것 같 아요. 전부 주어야 된다는 말이니까. 이래가지고 무슨 재미가 있느냐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반댑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형제를 기쁘게 할려고 나의 기쁨을 희생하고, 다른 형제에게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기 위해서 내가 적극적으로 섬기는 자가 되면 나의 모든 즐거움은 사라지고 다른 형제만 좋게 하는 꼴이 되니까 신앙생활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그러나 그 것이 아니고, 이웃을 위할 때 나를 위하는 것이 되고,이웃을 기쁘게 할 때 내가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것이 교회 안의 영적인 원립니다. 약한 형제를 위해 줄 때, 그것이 누구를 위하는 것이 된다고요. 나를 위하는 것이 된 다고요 하도 요즈음 예수를 믿어도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저 하늘의 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듣는 다고요.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하는지 아세요 도둑질을 한다고 해서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수 준 만큼 살지 못하는 데도, 전혀 가책을 받고 있지 않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무 서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 돼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다시 살펴 보세요!! 약한 형제를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고, 약한 형제를 기쁘게 할 때, 그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된다는 것이 영적생활의 대원립니다. 왜 그러느냐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이요. 우리는 지체이기 때문입니다.다리가 따뜻하고 노근하면 온 몸이 편한함을 느끼는 것처럼 내 약한 형제를 기쁘게 하면 그 기쁨이 나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꾸로 이야기해서 나 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나 만을 위해서 교회생활을 하면, 그 기쁨은 기쁨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고 행복이 무엇인 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빨리 믿음이 강한자가 되어서 약한 형제를 위해서 희생해 줄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힘든 일입니다. 저는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 아픈일이 있습니다. 마차교회의 권목사님!-그 분이 상처를 받고 그래서 감리사님을 만들어 드림. 그러나 갈리사 이.취임식에서 사표를 제출함. 그것을 두고두고 섭섭해함. 그 이유 중에 하나가 그 분이 좀 어눌하고 무능력해 보인 이유도 있습니다. 내가 정말 롬 15:1-2절을 바로 이해했더라면 그 분을 위해서 좀더 열심히 도와 주고 애썼어야 할 텐데. 신학교를 나와도 별수 없고,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목회를 하면서도 별수 없더라구요 요.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에도 잘 안돼요. 지금도 아직 멀었어요. 그러니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에는 할수 있는 일을 명령하십니다. 전혀 안되는 일을 하라고 하신다면 하나님이 책임을 져야지요. 그러나 될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라 고 하시는 것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너무나 잘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있을 것 아니에요.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강한자로서 약한자를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밑바닥을 흔들어 놓을수 있는 동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어요. 우리의 마음을 힘있게 끌어 당길수 있는 초자연적인 감동을 하나님이 성경에 주셨어 요. 그 감동에 붙들리기만 하면 나는 믿음이 강한 자가 되어서 형제의 약함을 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감동이 뭐냐 그 동기가 뭐냐 그것이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시지 않았나니. 여러분,오늘 우리가 자기의 기쁨을 희생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헌신할 수 있 습니까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할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앞에 감동을 받고 녹아지면 할수 있다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셔서 활동 하실 때, 자기를 위해서 하신 일이 하나도 없 었습니다. 모두가 우리를 기쁜게 하기 위해서 희생했습니다. 그 예수님을 바로 알고,그 예수님 앞에 앉아서 그 분의 그 놀라운 은혜에 감동 받으면 아무리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처럼 우리도 할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이나, 약한 형제를 위해서 내가 희생하는 것, 잘 안되면 대답은 간단합니다. 나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덜알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멀리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해요.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향해서 하는 비방을 전부 홀로 다 받 으셨습니다.죄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욕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거역합니다. 하나님 을 대적합니다. 그 모든 죄악의 값을,그 비방의 값을 예수 혼자 다 감당하시고 십자가 에서 죽으셨습니다. 빌빌보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 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 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왜 하나님의 자리를 마다하고 세상에 오셨습니까 왜 예수님이 종의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왜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까 자기의 기쁨을 포기하고 우리의 기쁨을 위해섭니다. 왜 주님께서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까 목적은 우리에게 선을 이루고, 우리에게 덕을 이루기 위해섭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대신 우리는 질고에 서 해방이 되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로 만나는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진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아,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기쁨을 위하여, 나의 구원을 위하여 이렇게 하셨다네. 이 예수님을 믿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이질적인가를 우리는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처럼 살고 싶다하는 마음을 일컬어서 성경에서는 예수의 마음 이라고 합니다. 빌립보서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러분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예수 믿을 때에 우리 안에 누가 임합니까 성령님이 임 하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자연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합니다.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가지게 된 사람에게는 그 믿음이 자라면서 자연적으로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일컬어서 성령님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갈 5:25절에 아홉가지 열매가 나옵니다. 사랑.희락.화평.오래참음.자비.양선.온유.절제-이런 성품이 우리 안에서 들어 납니다. 그러면 이 성령님의 열매-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 라 형제를 위하는 삶 입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고,이웃에 있는 형제를 기쁘 게 하는 삶입니다.다른 형제의 짐을 지고 그것을 기뻐하면서 사는 삶을 일컬어서 성령님 의 열매를 맺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옆에 나오는 육체의 일을 한번 보세요. 음행.술수.원수맺음.시기.분쟁.분냄.당짓는 것.분리하는 것.투기하는 것.방탕하는 것이다.그랬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령님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인격을 가졌다는 것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다른 형제와의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하느냐를 가지고 판단할 수가 있습니다. 형제의 어려운 짐을 지고 함께 기뻐하면서 나갈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성령님의 열매를 가 진 사람이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주신 말씀대로 약한 형제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 줄려면 한마디로 작 은 예수가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처럼 되지 아니하면 되지 아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꾸 배우는데서 내가 예수처럼 되어야 비로소 약한 형제를 내가 받 을수 있고, 그 형제의 약함을 기뻐할 수 있고, 그 형제와 함께 동거 동락을 할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와같은 수준에까지 가야 된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라고 하는 사람은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요,설교자였고, 목회자였습니다.그가 프린스톤신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그에게 딸이 하나있었습니다. 그 딸이 나이가 차서 결혼할 혼기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딸이 성격이 아주 괴팍하고,너무 강하고,고집이 쎄고,융통성이 업어요. 아버지가 그 딸을 볼 때마다 '저 애를 누가 데리고 가서 사나','저 애가 가서 살면 그 남편이 평생 얼 마나 불행할까' 늘 걱정이 그거에요. 이상 하지요 좋은 아버지,좋은 어머니 밑에서 이런 애가 나온다구요. 나오는 걸 어떻 게 합니까
그런데 어느날 멋있게 생긴 평소에 잘아는 청년이 찾아와 가지고는 '목사님, 딸하고 결혼하겠습니다'하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목사만 아니라 면 그 탐나는 사윗감을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할 겁니다. 그러나 목사니까 양심이 있거든요. 그래서 그 청년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자네가 내 딸을 아직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결혼을 하지 말게' 그러니까 청년이 '제가 따 님을 사랑하는데 왜 그러십니까' '글쎄, 내 딸을 사랑하지 않는게 좋다니까''아니, 따님도 저를 사랑하는데 왜 그러세요''글쎄, 내 딸이 자네를 사랑하는지를 알수는 없 지만, 내 딸과 자네는 맞지를 않아, 자격이 자네에게는 없어''아이구 무슨 자격이에 요. 저도 예수를 믿는 데요''물론 자네도 예수를 잘 믿는 훌륭한 청년이라는 것을 잘 알아. 내 딸도 예수는 믿어. 그러나 내가 말하는 자격은 그런 것이 아니야' 그래도 이 청년이 자꾸 결혼하게 해 달라고 조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젊은이 고집부리지 말게! 내 딸같은 사람과 평생 동거를 할려면 적어도 그는 하나님 이라야 가능할 거야.그럼 자네가 하나님인가' 이 말속에서도 우리는 진리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허물투성이의 어떤 인격하나를 내가 받기 위해서 나는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흠이 없는 사람은 다 좋아합니다. 강한 사람은 다 존경합니다.믿음이 약해 가지고 이 런 허물 저런 허물을 가진 사람을 참 내가 포근히 싸주고,그의 약함을 내가 짊어질려 고 하면,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너, 이거는 분수에 지나치는 일이니까 포기하라!'고 하 시지를 않고,'네가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 교회 안의 형제들을 네가 싸매 어주고, 감싸 주어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으로 별수없지요.우리가 작은 예수가 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을 거부하고,관심이 없는자라면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실망시키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우리는 얼굴을 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 있는 예수님의 마음이 점점 자라서 내가 예수님을 닮는 정도까지 갈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령님의 열매,예수님의 품성이 나의 인격을 통해서 흘러 넘치도록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에,'야,예수처럼 사는구만!'하고 말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자랄수 있을까 오늘 본문 말씀은 중요한 것 하나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4절을 봅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라. 이 4절의 말씀의 핵심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정말 위해 줄수 있는 수준까지 작은 예수가 될수 있는 수준까지 자랄려 면 성경공부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니까 자연적으로, 예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고, 나중에는 내 가 예수님처럼 되겠지! 천만에요.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계속 먹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꾸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왜 그렇게 될 때에 내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랍니다.자꾸 자라서 나도 모르게 예수님처럼 변 해 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배우는 사람은 그 말씀 앞에서 자기의 이기적인 마음이 녹아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아멘! 그런 체험이 없이 아직까지 성경공부하나요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계속 말씀을 먹는 영혼은 자기만을 내세우는 악한 성품은 깨어 지는 것을 체험합니다.예수가 다스리는 심령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합니다. 예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것을 매일매일 새롭게 느낍니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고, 약한자의 약점을 짊어지고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발견합니다. 나도 모르게 바뀌어요! 성령님이 나에게 자꾸 말씀을 먹입니다. 좋은 음식을 먹이는 애가 안자라는 것을 보았습니까 특별히 병든애가 아니면 안자라는 것 보았어요! 보이지는 않지만 계속 자랍니다. 하나님의 양식을 자꾸 먹는 사람은 나도 모르게 자랍니다. 나도 모르게 예수가 되어 갑니다. 나도 모르게 예수처럼 행동합니다. 이런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성경말씀을 잘못 배우는 것입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받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인격이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처럼 된다는 그 말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성경을 공부하면서 변화되는 형제자매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산돌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 육을 받아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사명이고, 또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저는 이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새힘이 솟습니다. 하루의 시간이 짧고, 하루해가 넘어가는 것이 아깝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장성한 인격을 가지고 형제를 돌보아 주며, 약점을 감당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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