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다운 대인관계 (롬12:14-21)
본문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무 엇이 있느냐 하면 이것저것을 많이 말할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인관계 를 덕스럽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점을 준비해야 하고,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의 교재안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두뇌를 갈고 닦고 기술을 연마하는 훈련을 잘하면 사회에서 성공할수 있는 확률이 10%정도인데, 뛰어난 대인관계를 잘 이끌어가고 일을 성공할수 있도 록 준비한 사람이 성공할수 있는 확률은 85%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머리좋고,학위를 가지고 똑똑하고 남보다 먼저 뛴다고 성공하는 사람보다도 대 인관계를 잘 하고, 덕스럽게 함으로서 성공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6-7배로 많다는 것입니다. 다른 조사 자료를 보면 회사의 중견간부 중에서 대인관계를 잘못해서 해고 당하는 사람이 일을 잘못해서 해고 당하는 사람보다도 배나 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가 이세상에서 사람과 관계를 어떻게 하면 그 사람들과 좋은 관계 를 계속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우리의 행복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결판내는 중요한 요인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요즈음 유행하는 것처럼, 줄 잘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오늘 읽은 14-21절에서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불신자들과 덕스러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라.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되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 안에만 갇혀서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에 흩어져서 매 일을 삽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면 믿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믿지 아니하는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훨씬더 많습니다.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분들은 영적 인 눈으로 관찰할 때에 우리들과 우호적인 관계라기 보다 적대적인 관계라기보 다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사실 달갑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사귀려고 하기보다는 피하려 고 하는 경향이 더 많습니다. 우리와 그들의 관계는 좋아지기 쉬운 관계라기 보 다는 조금만 잘못하면 나뻐지기 쉬운 관계라고 우리가 인정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얼마나 믿지 아니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가는 여러분이 사 회생활을 하면서 만이 경험했으리라고 봅니다. 불신자와의 관계에서 꼭 기억해야 할 2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1. 할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라-적을 만들지 말라. 할수있거든 이라는 말은 아무리 우리가 잘할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어쩔수 없이 생기는 적이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비록 한계가 있다고 할지라 도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도들과 함께 아파트에 전도를 갔습니다. 전도를 받는 분이 말 하기를 '이 동에 그 교회의 속장님이 살고 있습니다.그 분은 싸움을 너무 잘하 세요
그런데 우리동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하고 안싸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니는 교회를 무엇하러 나갑니까'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이 사람이 우리 속장님을 모함하는구나!' 생각하고 돌 아 왔는데,나중에 알아보니까 진짜 싸움을 잘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적을 만들면서 어떻게 불신사회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2.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똑 같이 악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상대방이 악하게 대해도 선으로 이기는 수준이 되어야지, 상 대방이 악하다고 똑 같이 악해지면 하나님의 자녀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이 두 원리를 중심으로 실제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이 어떤 것이냐 하는 말씀 이 4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14절부터 21절까지는 순서나 논리적으로 기록 되었다고 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 저 하나하나 생각나는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불신자들과 덕스러운 인간관계를 가지기 위한 방법을 쉬운 것부터 찾아 보겠습니다.
1. 겸손한 이웃이 되라-16절 잘난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안믿고를 떠나서 사람들에게는 남 앞에서 으시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기가 안 죽을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남에게 짖밟히는 것 같으면 못견디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나는 당시보다 낳다'는 긍지를 가 지고 살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다르냐 제가 볼 때는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매일 성경을 읽고. 매 일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지만,겸손한 이웃이냐 하고 물을 때는 우리 모두가 양심적인 가책을 숨길수가 없습니다. 진짜 겸손한 사람은 교만한자 앞에서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 앞에서는 나도 겸손해 지는데,상대방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으시대고 교만하 면 못봐준다 이겁니다. 예수를 믿어도 별수가 없더라고요. 목사가 되어도 별수가 없어요. 저도 겸손한 사람 앞에서는 굉장히 겸손합니다.그러나 조금 비위상하는 사람 앞 에서는 무엇이 올라와요.
2. 마음을 주는 이웃이 되라.-15절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우리가 누구한테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주는가 안주는가를 정확하게 테스트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그것은 두가지 있는데, 그 사람이 슬픈 일을 당했 을때 내가 슬픈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되고,그 사람이 참 좋은 일을 만나서 기뻐할 때 내가 정말로 기쁜가를 검토해 보면 내가 마음을 주는 이웃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웃 나름입니다. 이해관계가 있고, 좋아하는 이웃이 괴로운 일을 당하면 우리 모두 동정의 눈물 을 흘리고 함께 슬퍼 할수 있습니다.그러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고 마음 으로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이웃이 그런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과연 내 마음이 슬프냐 양심적으로 대답해야 할 문젭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동정을 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를 않습니다.그러나 더 어려운 것있습니다.이웃이 정말 기쁜일을 당했을 때 내가 정말 기뻐할수 있는가 하는 문젭니다. 지금부터 1800년전에 살았던 크리소스톰이라고 하는 유명한 설교자는 정곡을 찌 르는 말을 했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은 웃는 자와 함께 웃는 것보다는 쉽다. 만약에 우리가 '웃는자와 함께 웃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인격이 훨씬더 고상해져 야 할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웃이 성공해서 기뻐하고 좋아하고 과연 그 기쁨에 내가 동참할수 있느냐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잘되는 것을 은근히 싫어하고,견제하는 심리가 다 있습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진정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정의한 사람이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비극이 어디에서 생겨 났습니까 형제를 잘 되는 것을 못 보아 죽 인 데에서 살인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형제의 축복 받고, 인정 받는 것을 볼수가 없어서 죽인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처럼 사람이 많아서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사람 하나가 그렇게 귀한 시기에 형제끼리 못 보아 주는 거야. 한쪽이 잘되는 것을 못보아 주는 거야.-그래서 죽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이 여기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본성적으로 남 잘되는 것을 좋아 안해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엄숙하게 선포하십니까 마음을 주는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이 시간 여러분 마음 속에 누구누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은근히 고통을 당하고 상처 입은 사람이 있으면 주님께서 고쳐 주 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누구누구가 잘 되는 것이 샘이 나고, 마음 속으로 은근히 잘 못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 오르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녹여서 다시 만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축복하는 이웃이 되라고 말씀 하십니다.14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축복하는 이 웃이 되라. 핍박이라는 것은 원래 신앙문제를 가지고 받는 박해를 가리킵니다. 아무 이유없 이 우리를 괴롭히고,재산에 손해를 주고, 가정의 행복을 깨뜨려 버리는 외부적 인 압박을 핍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핍박을 가하는 사람을 놓고 축복할 수 있는가 저는 사실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핍박할 때에 저주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느냐 어느 전도사님 유신 때에 정보부에 끌려가서 손톱을 뽑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자기도 모르게 저주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어디 두고 보자. 네 자식과 네 처와 너의 앞날을 두고 보자!'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주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축복하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볼수 밖에 없어요. 벧전 2: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시며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을 용서하시고,기도하시고,축복해 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님께서 그의 제자된 우리들을 향해서 베드로전서 3:9절에 분명히 말씀합니다.'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갑지 말고,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 가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내가 너희를 불러서 자녀 삼은 이유가 어디 있는 줄 아느냐 내가 너희를 택하여 은혜를 베푸는 이유가 어디 있는줄 아느냐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불러 세웠다.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말속에 축복이 많습니까 저주가 많습니까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저주를 할 때가 많습니다.'너희의 혀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또 너희의 혀로 하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축복하면 상대방이 축복을 받나요 내가 저주를 하면 상대방이 저주를 받나요 눅 10:5-10을 보면 어느 집에 들어 가면서 평안을 빌면 자격이 있으면, 그 집에 축복이 임하고, 자격이 없으면 나에게 돌아 옵니다. 반대로 저주를 하면 나에게 돌아 옵니다. 저주를 하면 안됩니다.
4. 원수라도 먹이우고 마시우라.19-20절 세상을 살다보면 원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어느 사람이 술 먹고 운전을 하다가 내 자식을 죽여 버렸습니다. 아무리 용서할 려고 해도 힘들어요 중상모략해서 아버지의 정치생명을 끊어 놓은 사람이 있다 고 합시다. 그 사람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싫어서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보복심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는이로,눈은 눈으로 복수하고 싶 어 합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복수하지 말라고 합니다.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지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정하게 원수를 갚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갚으면 더 갚았지 덜 갚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하게 판단하시고 원수를 갚으실수 있는 권한 과 능력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맡겨야 되어야. 왜 또 원수 갚지 말라 하느냐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 피는 피를 부릅니다. 서로 죽이고, 죽는 결과가 올 뿐입니다.그럴 때 우리가 행복할수 있습니까 모은 억울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 좋은 이웃 으로 사는 방법입니다. 야곱이 세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야곱의 예쁘장한 딸이 관광을 갔다가 강간을 당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이스라 엘을 아들들 둘이 그 다음날 들어가서 남자를 다 죽였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마음에 못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야곱이 임종시에 아들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축복할 때에 시므온과 레위 가 들어 올 때에 옛날의 그일을 되살려서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합니다. 창 49:6-7 '내 영혼아 이 두 놈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 저주를 받을 찌어다' 요셉도 마찬가집니다. 자기를 판 형들을 향해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겠습니까' 오히려 당신들의 처자를 내가 먹이고 입히겠습니다. 네가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얻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면 마음이 감격해서 뜨거워지고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설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 말씀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약간 겸손하라면 하겠지만 원수를 향해서 축복하라고요. 못합니다. 그러면 목사도 못하는 일을 왜 성도들에게 하라고 하느냐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자기이 자녀답게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마 5:44-45에 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 라. 하나님처럼 되기를 바란다. 너희 아버지처럼 되기를 바란다-이것이 하나님의 원입니다. 또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될수 있습니다. 스데반에 돌에 맞아 죽으면서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를 갈고 저주 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는 축복하고 죽었습니다.왜 그렇게 축복할수 있었느냐 스데반은 성령님충만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하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면 성령님이 우리의 본성을 다스리면 원수를 축복하고 원수에게 먹을 것도 같다주는 이웃이 될수있고, 마음을 주는 이웃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또 우리에게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우리의 행복을 위해섭니다. 우리가 마음에 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 행복할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미운 사람이 있어서 날마나 복수하고 싶어 하면 그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고 일 찍 죽는 것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서로 죽이고, 서로 물고 서로 악을 악으로 대하면 둘다 망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 다'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할수없다고 체념하지 마십 시요 할수 있다는 믿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순종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릴수 있습니다. 할수 있다하신이는 .
1. 할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라-적을 만들지 말라. 할수있거든 이라는 말은 아무리 우리가 잘할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어쩔수 없이 생기는 적이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비록 한계가 있다고 할지라 도 최선을 다하라는 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성도들과 함께 아파트에 전도를 갔습니다. 전도를 받는 분이 말 하기를 '이 동에 그 교회의 속장님이 살고 있습니다.그 분은 싸움을 너무 잘하 세요
그런데 우리동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하고 안싸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니는 교회를 무엇하러 나갑니까'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이 사람이 우리 속장님을 모함하는구나!' 생각하고 돌 아 왔는데,나중에 알아보니까 진짜 싸움을 잘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적을 만들면서 어떻게 불신사회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2.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절 똑 같이 악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상대방이 악하게 대해도 선으로 이기는 수준이 되어야지, 상 대방이 악하다고 똑 같이 악해지면 하나님의 자녀가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이 두 원리를 중심으로 실제로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이 어떤 것이냐 하는 말씀 이 4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14절부터 21절까지는 순서나 논리적으로 기록 되었다고 보지 않아도 됩니다. 그 저 하나하나 생각나는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불신자들과 덕스러운 인간관계를 가지기 위한 방법을 쉬운 것부터 찾아 보겠습니다.
1. 겸손한 이웃이 되라-16절 잘난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안믿고를 떠나서 사람들에게는 남 앞에서 으시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기가 안 죽을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남에게 짖밟히는 것 같으면 못견디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나는 당시보다 낳다'는 긍지를 가 지고 살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다르냐 제가 볼 때는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매일 성경을 읽고. 매 일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하지만,겸손한 이웃이냐 하고 물을 때는 우리 모두가 양심적인 가책을 숨길수가 없습니다. 진짜 겸손한 사람은 교만한자 앞에서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 앞에서는 나도 겸손해 지는데,상대방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으시대고 교만하 면 못봐준다 이겁니다. 예수를 믿어도 별수가 없더라고요. 목사가 되어도 별수가 없어요. 저도 겸손한 사람 앞에서는 굉장히 겸손합니다.그러나 조금 비위상하는 사람 앞 에서는 무엇이 올라와요.
2. 마음을 주는 이웃이 되라.-15절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우리가 누구한테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을 주는가 안주는가를 정확하게 테스트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그것은 두가지 있는데, 그 사람이 슬픈 일을 당했 을때 내가 슬픈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되고,그 사람이 참 좋은 일을 만나서 기뻐할 때 내가 정말로 기쁜가를 검토해 보면 내가 마음을 주는 이웃인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웃 나름입니다. 이해관계가 있고, 좋아하는 이웃이 괴로운 일을 당하면 우리 모두 동정의 눈물 을 흘리고 함께 슬퍼 할수 있습니다.그러나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고 마음 으로 떨떠름하게 생각하는 이웃이 그런 이웃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과연 내 마음이 슬프냐 양심적으로 대답해야 할 문젭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동정을 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를 않습니다.그러나 더 어려운 것있습니다.이웃이 정말 기쁜일을 당했을 때 내가 정말 기뻐할수 있는가 하는 문젭니다. 지금부터 1800년전에 살았던 크리소스톰이라고 하는 유명한 설교자는 정곡을 찌 르는 말을 했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은 웃는 자와 함께 웃는 것보다는 쉽다. 만약에 우리가 '웃는자와 함께 웃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인격이 훨씬더 고상해져 야 할 것입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이웃이 성공해서 기뻐하고 좋아하고 과연 그 기쁨에 내가 동참할수 있느냐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잘되는 것을 은근히 싫어하고,견제하는 심리가 다 있습니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 진정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정의한 사람이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비극이 어디에서 생겨 났습니까 형제를 잘 되는 것을 못 보아 죽 인 데에서 살인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형제의 축복 받고, 인정 받는 것을 볼수가 없어서 죽인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처럼 사람이 많아서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는 그런 시대가 아닙니다. 사람 하나가 그렇게 귀한 시기에 형제끼리 못 보아 주는 거야. 한쪽이 잘되는 것을 못보아 주는 거야.-그래서 죽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이 여기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본성적으로 남 잘되는 것을 좋아 안해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우리에게 엄숙하게 선포하십니까 마음을 주는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이 시간 여러분 마음 속에 누구누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은근히 고통을 당하고 상처 입은 사람이 있으면 주님께서 고쳐 주 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누구누구가 잘 되는 것이 샘이 나고, 마음 속으로 은근히 잘 못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떠 오르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녹여서 다시 만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축복하는 이웃이 되라고 말씀 하십니다.14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축복하는 이 웃이 되라. 핍박이라는 것은 원래 신앙문제를 가지고 받는 박해를 가리킵니다. 아무 이유없 이 우리를 괴롭히고,재산에 손해를 주고, 가정의 행복을 깨뜨려 버리는 외부적 인 압박을 핍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핍박을 가하는 사람을 놓고 축복할 수 있는가 저는 사실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핍박할 때에 저주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느냐 어느 전도사님 유신 때에 정보부에 끌려가서 손톱을 뽑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고통을 견디지 못해서 자기도 모르게 저주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어디 두고 보자. 네 자식과 네 처와 너의 앞날을 두고 보자!'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주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축복하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는 예수님을 볼수 밖에 없어요. 벧전 2: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않으시며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셨다'-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그들을 용서하시고,기도하시고,축복해 주셨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주님께서 그의 제자된 우리들을 향해서 베드로전서 3:9절에 분명히 말씀합니다.'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갑지 말고,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 가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내가 너희를 불러서 자녀 삼은 이유가 어디 있는 줄 아느냐 내가 너희를 택하여 은혜를 베푸는 이유가 어디 있는줄 아느냐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축복하라고 불러 세웠다.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말속에 축복이 많습니까 저주가 많습니까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저주를 할 때가 많습니다.'너희의 혀로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또 너희의 혀로 하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축복하면 상대방이 축복을 받나요 내가 저주를 하면 상대방이 저주를 받나요 눅 10:5-10을 보면 어느 집에 들어 가면서 평안을 빌면 자격이 있으면, 그 집에 축복이 임하고, 자격이 없으면 나에게 돌아 옵니다. 반대로 저주를 하면 나에게 돌아 옵니다. 저주를 하면 안됩니다.
4. 원수라도 먹이우고 마시우라.19-20절 세상을 살다보면 원수가 없을 수 없습니다. 어느 사람이 술 먹고 운전을 하다가 내 자식을 죽여 버렸습니다. 아무리 용서할 려고 해도 힘들어요 중상모략해서 아버지의 정치생명을 끊어 놓은 사람이 있다 고 합시다. 그 사람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싫어서 고개를 돌려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보복심리가 들어 있습니다. 이는이로,눈은 눈으로 복수하고 싶 어 합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복수하지 말라고 합니다.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지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정하게 원수를 갚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갚으면 더 갚았지 덜 갚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하게 판단하시고 원수를 갚으실수 있는 권한 과 능력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 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맡겨야 되어야. 왜 또 원수 갚지 말라 하느냐 검을 가진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 피는 피를 부릅니다. 서로 죽이고, 죽는 결과가 올 뿐입니다.그럴 때 우리가 행복할수 있습니까 모은 억울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위탁하는 것이 좋은 이웃 으로 사는 방법입니다. 야곱이 세겜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야곱의 예쁘장한 딸이 관광을 갔다가 강간을 당했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이스라 엘을 아들들 둘이 그 다음날 들어가서 남자를 다 죽였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마음에 못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야곱이 임종시에 아들들을 하나하나 불러서 축복할 때에 시므온과 레위 가 들어 올 때에 옛날의 그일을 되살려서 축복이 아니라 저주를 합니다. 창 49:6-7 '내 영혼아 이 두 놈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 저주를 받을 찌어다' 요셉도 마찬가집니다. 자기를 판 형들을 향해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겠습니까' 오히려 당신들의 처자를 내가 먹이고 입히겠습니다. 네가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면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얻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면 마음이 감격해서 뜨거워지고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설교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 말씀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약간 겸손하라면 하겠지만 원수를 향해서 축복하라고요. 못합니다. 그러면 목사도 못하는 일을 왜 성도들에게 하라고 하느냐 부모가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자기이 자녀답게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마 5:44-45에 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 라. 하나님처럼 되기를 바란다. 너희 아버지처럼 되기를 바란다-이것이 하나님의 원입니다. 또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될수 있습니다. 스데반에 돌에 맞아 죽으면서 자기를 향해서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를 갈고 저주 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그는 축복하고 죽었습니다.왜 그렇게 축복할수 있었느냐 스데반은 성령님충만 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령님이 충만하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면 성령님이 우리의 본성을 다스리면 원수를 축복하고 원수에게 먹을 것도 같다주는 이웃이 될수있고, 마음을 주는 이웃이 될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또 우리에게 이렇게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십니까 우리의 행복을 위해섭니다. 우리가 마음에 한을 품고 사는 사람이 행복할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미운 사람이 있어서 날마나 복수하고 싶어 하면 그 사람이 오래 살지 못하고 일 찍 죽는 것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서로 죽이고, 서로 물고 서로 악을 악으로 대하면 둘다 망한다는 것을 하나님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 다'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하나님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할수없다고 체념하지 마십 시요 할수 있다는 믿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그리고 순종해야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릴수 있습니다. 할수 있다하신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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