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인간상 (롬12:1-3)
본문
1. 인간의 본질은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습대로 지정의(知情意)의 세 가지 요소를 지닌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정의 세 요소를 올바르게 사용하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지닌다고 본 것이다. 바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특별히 한민족에게 고통을 주었던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하자 일부에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들도 있었다. 민족과 국가적 죄인에게 이러한 애도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은 결국 무너지는 존재요 안개와 같을 분이다.(야고4:14) 그의 부귀영화도 모두 헛것이요 이제 모두 남의 것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대로 심판하신다. (계시2;13) 세상을 사는 동안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린 것 같아도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거두어 가시면 절대무(絶對無:absolute nothingness)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시간 총체적인 인간상을 다시 한번 생각함으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존재는 어떠한 삶을 추구하는 존재인가를 사유하고자 한다.
2. 어떤 이는 인간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으로 파악한다. 즉 인간 심성에서는 정신적 지주(支柱)나 의지의 대상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존재’로 이해된다. (1절) 이 예배적 존재들은
1)공동체적 관계성을 이루며(에베4:3-6), 하나가 되어진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이시다.
2) 또한 이들은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희생과 헌신의 공동체이다.(골로3:12-14)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머리 속에 맴도는 형식적 절차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인 것이다.(이사58:9b-10) 이는 곧 사랑과 정의를 위한 투쟁이며 평화를 위한 행진이다.
3. 총체적 인간의 두 번째 요소는 ‘분별력 있는 새로운 존재’이다.(2절) 인간의 내면의 양심(良心)은 선악(善惡)을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오(正誤)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율법은 우리를 고소하여 우리의 마음상태를 빛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존재로써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올바른 태도를 취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롭다’는 것은 원초적 출발이 아니라 ‘본래의 것으로 복귀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총체적 인간상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늘 자신을 변혁시키는 존재이다.(Homo Reformo) 자신의 이익과 거리가 멀다 해서 혹은 자신에게 해가 된다 하여 정의를 굽게 하거나 사악한 행동을 하는 것(하박1:4)은총체적인 인간상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를 굽히지 않으시고(욥34:12),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신다.(멀러3:5,호세13:3)
4. 총체적 인간은 어느 한편에 치우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믿음의 분량을 따라 생각하는 사유하는 존재’(Homo Cogito)이다. 사람들은 일반 상식 이하나 이상의 것을 추구하다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위대한 발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식 이상 혹은 이하의 행동이라 해도 그것 자체가 문제되기보다는 인간의 생태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사건을 벌인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그리하여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빌립4:8) 바울은 생각을 주님께 복종시키라고 말한다.(Ⅱ.고린10:5)
1)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할 것(Ⅱ.디모1:5),
2)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3) 가난한 자를 생각할 것(갈라2:10) 4) 젊을 때에 창조자를 생각하라.(전도12:1) 우리는 통전적이고, 일치를 추구해 나아가는 공동사회에서 총체적인 인간상을 소유함으로써 새 시대의 역군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어떤 이는 인간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으로 파악한다. 즉 인간 심성에서는 정신적 지주(支柱)나 의지의 대상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합당한 예배를 드리는 존재’로 이해된다. (1절) 이 예배적 존재들은
1)공동체적 관계성을 이루며(에베4:3-6), 하나가 되어진다. 그리고 그 핵심은 바로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이시다.
2) 또한 이들은 자신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희생과 헌신의 공동체이다.(골로3:12-14)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머리 속에 맴도는 형식적 절차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인 것이다.(이사58:9b-10) 이는 곧 사랑과 정의를 위한 투쟁이며 평화를 위한 행진이다.
3. 총체적 인간의 두 번째 요소는 ‘분별력 있는 새로운 존재’이다.(2절) 인간의 내면의 양심(良心)은 선악(善惡)을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정오(正誤)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사람들은 이를 따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율법은 우리를 고소하여 우리의 마음상태를 빛에 대한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빛의 자녀인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존재로써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올바른 태도를 취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롭다’는 것은 원초적 출발이 아니라 ‘본래의 것으로 복귀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총체적 인간상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늘 자신을 변혁시키는 존재이다.(Homo Reformo) 자신의 이익과 거리가 멀다 해서 혹은 자신에게 해가 된다 하여 정의를 굽게 하거나 사악한 행동을 하는 것(하박1:4)은총체적인 인간상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정의를 굽히지 않으시고(욥34:12),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신다.(멀러3:5,호세13:3)
4. 총체적 인간은 어느 한편에 치우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믿음의 분량을 따라 생각하는 사유하는 존재’(Homo Cogito)이다. 사람들은 일반 상식 이하나 이상의 것을 추구하다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위대한 발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상식 이상 혹은 이하의 행동이라 해도 그것 자체가 문제되기보다는 인간의 생태에 심각한 피해를 주거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사건을 벌인다면, 그것은 선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바울 사도는 그리하여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빌립4:8) 바울은 생각을 주님께 복종시키라고 말한다.(Ⅱ.고린10:5)
1)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할 것(Ⅱ.디모1:5),
2)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3) 가난한 자를 생각할 것(갈라2:10) 4) 젊을 때에 창조자를 생각하라.(전도12:1) 우리는 통전적이고, 일치를 추구해 나아가는 공동사회에서 총체적인 인간상을 소유함으로써 새 시대의 역군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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