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제사로 드리라 (롬12:1-2)
본문
현대사회에서 교회와 신앙인들이 사회에 대하여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그 신앙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있다하나 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이같은 죽은 믿음을 가지고서야 어떻게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른바 교회의 비유가 있습니다. 자주 파선사고가 일어나는 위험한 해안에/볼품없이 작은 인명구조대가 있었습니다. 건물이라곤 작은 오두막 한채와/ 장비라고는 작은 보우트 한척과/ 구명대 몇개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헌신적인 몇몇 회원들이 끊임없이 바다를 살피며, 실종된 자들을 구조하였습니다. 작지만 훌륭한 이구조대는 유명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의해 생명을 건졌습니다. 그러자 구조된 사람 몇과, 또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이 구조대에 돈과 시간을 제공하여, 그들의 사업을 돕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보우트를 더 구입하고, 새로 가입된 구조대원들을 훈련 시켰습니다. 작은 구조대는 이제 갖출것을 다갖춘 훌륭한 구조대로 변모하였습니다. 구조대규모는 날로 커져갔습니다. 그러자 낡고 비좁은 오두막을 탓하는 대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식 휴식시설이 갖추어진,아름답고, 훌륭한 구조본부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구조대원들은 점차 이 본부를 사교클럽 처럼 생각하고, 회합장소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인명구조에는 점차 관심을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클럽회원 간에 불화가 생기고/ 어떤이는 인명구조가 별로 즐겁지 않은 일이므로 구조활동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 했습니다. 그 보다는 회원간의 친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몇은 인명구조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며, 클럽의 본래 목적임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래서 표결에 들어갔는데, 구조대의 임무를 상기시켰던 이들은 패배하였고, 그들은 새로운 구조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출발한 구조대도 전번과 똑같은 변화를 겪었고, 그 해안에는 여전히 파선사고가 일어나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한 채 물에 빠져 죽어갔습니다. 많은 교회와 교회의 모임이 자체친교만을 중시하고, 봉사와 선교를 외면함으로/ 스스로 진정한 교회 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예배와 친교, 봉사와 선교는 새의 두날개와 같습니다. 이 둘중 어느 한쪽 만 없어도, 약해도, 새는 날지 못합니다. 날개가 부러진 새, 날지 못하는 새는 볼품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날개를 쓰지 못하는 새 처럼, 아름답지 못합니다. 교회가 본연의 자세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 책임은 구성원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근원을 살펴본다면 바른신앙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의 하십시다. 오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참 모습을 제시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로마서 11장 까지는 교리편 ,12장 이후는 실천편인데 특별히 12장은 교회적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11장에서 12장으로 넘어가면서 ,교리와 의무를 함께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거기서 바울은 하나님에게서 사람에게로 전달되는 은사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즉 이제까지 믿음의 내용을 말한 후에,
그러므로 이렇게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은 어떻게 살아야하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를 말하는 서론이며,대강령입니다. 단언하여 말하면 '몸으로 산제사가 되는것'그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은자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불신자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인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11장까지는 복음의 내용,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일과 그를 믿음으로 얻는 우리의 유익과,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교리와 생활을 연결시켜 주는 하나의 고리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이 단어는 소산물을 그 소산물이 있게한 힘에다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알려면/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 하노니, 너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말씀은 종교적인 의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몸뚱아리를 드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약의 죽은 제물/, 즉 레위기의 규례를 따라, 제단에서 죽여 바친 제물에 상대되는 말씀입니다. 산제사란 다른 것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성도 자신의 몸으로하는 헌신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 생활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냄새나는 몸뚱이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될 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신자의 가장 큰 일은 기독교 신앙을 행위로 옮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에는 유혹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악한 것을 보지 않으면 그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사람들이 천박하고 비루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지 않는 것이 예배입니다. 손이 범죄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좋은 일을 행하면 그것이 번제입니다 손은 구제하고, 입은 찬송하며, 복음을 전하며, 귀는 하나님 음성듣기를 즐겨하면 이것이 곧 산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생활을 드리십시요.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산제사란 제단위에 번제물로 드리는 짐승의 죽은시체를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살아있는 생명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사르는 불이 있다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제물은 사랑의 불로 사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래 무릎꿇고,기도하는 것 보다는 그 삶이 바르게 되고,건전하기를 오히려 더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하여도 변화되지 아니하면 그 기도는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기도는 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소리쳐 찬송하여도, 삶이 따르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 오래 했다고 공덕이 쌓여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공덕의 종교가 아니요, 마음의 종교이며, 생활의 종교입니다.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쓰는 사람, 그가 곧 그리스도인이며, 산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본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기쁘게 받으실만한 제사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쉽게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형제와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게 대한 자기의 사랑 을 나타내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입술의 고백은 희생이 필요없지만, 이웃을 사랑하고,형제를 사랑 하는 것은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제물은 이러한 우리 자신의 희생이 아니겠습 니까 '즐거워하는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우는자들로 함께 울라'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이웃의 기쁨과 슬픔에 관심을 가지고 삽시다. 그것이 산제사입니다. 전도입니다. 돈이 많으면서도 구두쇠 처럼 돈을 아끼고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그돈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는 즐거움을 누려 보십시요. 내게 주신 많은 재물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때에 그것이 산제물이 됩니다. 아깝겠지요 그러나 그 아까움을 무릅쓰는 희생이 곧 진정한 제물입니다. 모든 재물은 그 사람이 죽어버린 후에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우리의 것은 없지마는 죽은 후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돈이라는 보물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보다 값진 보물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산 제사를 드린다. 드린다는 말은 '양도하다', '포기 하다'라는 뜻으로 희생제물을 가져올 때에 흔히 쓰이던 말입니다.(눅2: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욕심과 기대를 포기하고 그것을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양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2절을 함께 보십시다. 이 말씀은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대에 본받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실상이 어떠한지 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회개를 촉구 하십니다. 나 개인이, 그리고 교회가 산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의 모습이/ 그 교회의 구성원이 사회에 빛을 발하기 보다는, 영향력을 미치기 보다는 오히려 영향받고,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어떤 클럽과 같은 곳도 있습니다. 신앙공동체라기 보다는 사교단체 같습니다. 신앙적인 토론과 권면 보다는 ,서로 덕을 세우는 말 보다는, 세속적인 이야기와 온갖 잡설로,서로를 비방하는 말로 마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래된 교회일수록 더합니다. 우리 경천교회는 그와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교회가 어떠하더라도/여러분은 교회 본연의 자세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전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봉사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께서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2절에는 대조적인 두 낱말이 있습니다. 본 받아/ 변화를 받아(, )가 그것입니다. 본받아라는 말은 어근이 스케마로서 눈에 보이는 외형'Fashion'을 가리키고 변화를 받아는 모르페로서 본질적 형체(essential form) 를 뜻합니다.'빌2:6' 결국 본받는 다는 말은 "보이는 모양을"같이한다는 것으로 이 시대의 유형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고, 변화를 받으라는 말은 본질적형체를 변화하라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외적이며, 지나가는 이 세상의 유행을 본받지 말고, 내적 본성에서 변화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밤이 맞도록 철야기도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 마다, 아멘, 아멘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으면 모두가 헛된 노력입니다. 변화 되기를 힘쓰지 않는다면, 위선입니다. 조그만 선이라도 행하려는 노력, 비록 힘에 부치지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추상명사이지마는/그것은 경험을 통하여 실체로 나타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겨레가 다 교인이 되어도/ 변화받은 사람,/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사람이 없다면/ 한갖 커다란 조직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혹 여러분이 교회에 대하여 실망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여러분 자신이 교회라는 것을 기억 하십시요. 여러분이 교회를 비난하는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비난입니다. 나는 빼고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생각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합시다. 신앙은 먼저 개인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그 개인의 모임이 공동체를 이룸을 유의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분별의 영이 필요합니다. 분별함이란 금을 제련하여 순금을 분리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옥석을 가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변화의 결과로, 거듭난 생활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 시고,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은 그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우리 주변에, 그리고 우리 안에 침투해 있는 영적인 세력이며, 참되고 선한것과 교묘하게 섞여있기 때문에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으로 끊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대를 본받는 자는 이 세상속에 들어있는 것들에 큰 가치를 두고 거기에 빠져 종노릇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러한 마음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 세대를 본받는 결과는 영성이 망가집니다. 영혼은 침체되고, 사랑의 불은 꺼집니다.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게 되면, 교회와 세상의 구분이 흐려지고, 교회는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그리고 멸망의 운명을 짊어집니다. 세상을 택한 사람은 세상과 함께 멸망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 세대를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죄악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본받은 일에 대하여 누구도 서로 정죄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영적 유익을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앞서 교회의 비유를 말씀 드렸는데, 그와같은 결과는 이 세대를 본받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천교회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의 가치를 정당하게 분간하고, 오히려 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다시 정리하여 듣습니다.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생활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입니다. 구체적인 우리의 모습을 살펴 봅시다. 예수님이라면 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예수님이라면 자기만 생각 하겠습니까 신앙의 나눔 보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교회생활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이라면 죽어가는 생명을 그대로 방치하겠습니까 예수님이라면 봉사를 기피하겠습니까 신앙생활은 예수님 처럼 살기를 힘쓰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교회출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을 예배로 받으십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 되었다는 뜻인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믿지않는 자들과 구별되는 점이 무엇입니까 무익한 발걸음을 계속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교회출석자에게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출석은 중요합니다. 구원의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들음을 통하여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나가서 행하는 자가 복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예배를 드립시다. 구별된 삶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립시다. 오늘 말씀은 신앙과 생활을 연결 시키라는 말씀입니다. 11장까지는 믿음의 내용을 설명 하였는데,오늘날 많은 한국의 교인들이 행함이 없는것은 그 믿음의 진도가 11장까지 밖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념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17-바울사도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셨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본이 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갈파합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고,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 나는 참 좋구나! 난 참 복 받았구나!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복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요. 그리고 행 하십시요. 이것은 권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이렇게 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말씀은 어떻게 살아야하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를 말하는 서론이며,대강령입니다. 단언하여 말하면 '몸으로 산제사가 되는것'그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맺은자의 삶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불신자에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신앙인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11장까지는 복음의 내용,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일과 그를 믿음으로 얻는 우리의 유익과,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
그러므로'라는 단어는 교리와 생활을 연결시켜 주는 하나의 고리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서 이 단어는 소산물을 그 소산물이 있게한 힘에다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알려면/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 하노니, 너희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 말씀은 종교적인 의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몸뚱아리를 드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약의 죽은 제물/, 즉 레위기의 규례를 따라, 제단에서 죽여 바친 제물에 상대되는 말씀입니다. 산제사란 다른 것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성도 자신의 몸으로하는 헌신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 생활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냄새나는 몸뚱이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될 때/ 그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참된 예배가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말하기를 "신자의 가장 큰 일은 기독교 신앙을 행위로 옮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예배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에는 유혹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눈이 악한 것을 보지 않으면 그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사람들이 천박하고 비루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이와같이 하지 않는 것이 예배입니다. 손이 범죄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좋은 일을 행하면 그것이 번제입니다 손은 구제하고, 입은 찬송하며, 복음을 전하며, 귀는 하나님 음성듣기를 즐겨하면 이것이 곧 산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생활을 드리십시요.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산제사란 제단위에 번제물로 드리는 짐승의 죽은시체를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살아있는 생명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사르는 불이 있다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제물은 사랑의 불로 사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래 무릎꿇고,기도하는 것 보다는 그 삶이 바르게 되고,건전하기를 오히려 더 원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기도를 하여도 변화되지 아니하면 그 기도는 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기도는 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소리쳐 찬송하여도, 삶이 따르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 오래 했다고 공덕이 쌓여서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공덕의 종교가 아니요, 마음의 종교이며, 생활의 종교입니다.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쓰는 사람, 그가 곧 그리스도인이며, 산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본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기쁘게 받으실만한 제사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쉽게 고백합니다. 그러면서도 형제와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게 대한 자기의 사랑 을 나타내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입술의 고백은 희생이 필요없지만, 이웃을 사랑하고,형제를 사랑 하는 것은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제물은 이러한 우리 자신의 희생이 아니겠습 니까 '즐거워하는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우는자들로 함께 울라'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이웃의 기쁨과 슬픔에 관심을 가지고 삽시다. 그것이 산제사입니다. 전도입니다. 돈이 많으면서도 구두쇠 처럼 돈을 아끼고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그돈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하는 즐거움을 누려 보십시요. 내게 주신 많은 재물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할 때에 그것이 산제물이 됩니다. 아깝겠지요 그러나 그 아까움을 무릅쓰는 희생이 곧 진정한 제물입니다. 모든 재물은 그 사람이 죽어버린 후에는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닙니다. 본래부터 우리의 것은 없지마는 죽은 후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돈이라는 보물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보다 값진 보물을 갖게 될 것입니다. 산 제사를 드린다. 드린다는 말은 '양도하다', '포기 하다'라는 뜻으로 희생제물을 가져올 때에 흔히 쓰이던 말입니다.(눅2: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욕심과 기대를 포기하고 그것을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양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 2절을 함께 보십시다. 이 말씀은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세대에 본받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실상이 어떠한지 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 회개를 촉구 하십니다. 나 개인이, 그리고 교회가 산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의 모습이/ 그 교회의 구성원이 사회에 빛을 발하기 보다는, 영향력을 미치기 보다는 오히려 영향받고,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어떤 클럽과 같은 곳도 있습니다. 신앙공동체라기 보다는 사교단체 같습니다. 신앙적인 토론과 권면 보다는 ,서로 덕을 세우는 말 보다는, 세속적인 이야기와 온갖 잡설로,서로를 비방하는 말로 마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오래된 교회일수록 더합니다. 우리 경천교회는 그와같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른 교회가 어떠하더라도/여러분은 교회 본연의 자세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전도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봉사를 포기하지 마십시요.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 합니다. 하나님께서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2절에는 대조적인 두 낱말이 있습니다. 본 받아/ 변화를 받아(, )가 그것입니다. 본받아라는 말은 어근이 스케마로서 눈에 보이는 외형'Fashion'을 가리키고 변화를 받아는 모르페로서 본질적 형체(essential form) 를 뜻합니다.'빌2:6' 결국 본받는 다는 말은 "보이는 모양을"같이한다는 것으로 이 시대의 유형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고, 변화를 받으라는 말은 본질적형체를 변화하라는 뜻입니다. 정리하면 외적이며, 지나가는 이 세상의 유행을 본받지 말고, 내적 본성에서 변화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명령형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밤이 맞도록 철야기도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씀을 들을 때 마다, 아멘, 아멘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으면 모두가 헛된 노력입니다. 변화 되기를 힘쓰지 않는다면, 위선입니다. 조그만 선이라도 행하려는 노력, 비록 힘에 부치지마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추상명사이지마는/그것은 경험을 통하여 실체로 나타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모든 겨레가 다 교인이 되어도/ 변화받은 사람,/자신을 산제물로 드리는 사람이 없다면/ 한갖 커다란 조직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혹 여러분이 교회에 대하여 실망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여러분 자신이 교회라는 것을 기억 하십시요. 여러분이 교회를 비난하는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비난입니다. 나는 빼고 생각하지 맙시다. 우리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생각하기 이전에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합시다. 신앙은 먼저 개인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그 개인의 모임이 공동체를 이룸을 유의 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분별의 영이 필요합니다. 분별함이란 금을 제련하여 순금을 분리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옥석을 가린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변화의 결과로, 거듭난 생활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 시고,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됩니다. 성도들은 그 시대의 흐름을 따라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우리 주변에, 그리고 우리 안에 침투해 있는 영적인 세력이며, 참되고 선한것과 교묘하게 섞여있기 때문에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으로 끊어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세대를 본받는 자는 이 세상속에 들어있는 것들에 큰 가치를 두고 거기에 빠져 종노릇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러한 마음을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잘라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 세대를 본받는 결과는 영성이 망가집니다. 영혼은 침체되고, 사랑의 불은 꺼집니다.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게 되면, 교회와 세상의 구분이 흐려지고, 교회는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그리고 멸망의 운명을 짊어집니다. 세상을 택한 사람은 세상과 함께 멸망합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이 세대를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죄악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본받은 일에 대하여 누구도 서로 정죄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영적 유익을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앞서 교회의 비유를 말씀 드렸는데, 그와같은 결과는 이 세대를 본받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경천교회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의 가치를 정당하게 분간하고, 오히려 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다시 정리하여 듣습니다. 산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생활을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입니다. 구체적인 우리의 모습을 살펴 봅시다. 예수님이라면 말을 함부로 하겠습니까 예수님이라면 자기만 생각 하겠습니까 신앙의 나눔 보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교회생활을 하겠습니까 예수님이라면 죽어가는 생명을 그대로 방치하겠습니까 예수님이라면 봉사를 기피하겠습니까 신앙생활은 예수님 처럼 살기를 힘쓰는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교회출석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삶을 예배로 받으십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거룩하다는 말은 구별 되었다는 뜻인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믿지않는 자들과 구별되는 점이 무엇입니까 무익한 발걸음을 계속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교회출석자에게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출석은 중요합니다. 구원의 말씀을 듣기 때문입니다. 들음을 통하여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나가서 행하는 자가 복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예배를 드립시다. 구별된 삶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립시다. 오늘 말씀은 신앙과 생활을 연결 시키라는 말씀입니다. 11장까지는 믿음의 내용을 설명 하였는데,오늘날 많은 한국의 교인들이 행함이 없는것은 그 믿음의 진도가 11장까지 밖에 나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념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17-바울사도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피흘려 죽으셨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본이 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갈파합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고,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 나는 참 좋구나! 난 참 복 받았구나! 이렇게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복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요. 그리고 행 하십시요. 이것은 권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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